"러시아인들은 집으로 돌아가라." "빌어먹을 러시아!"
조지아 수도 트빌리시 거리 곳곳에는 요즘 이렇게 러시아에 반감을 드러내는 스프레이 낙서가 널려 있습니다.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가 정치적 탄압이나 강제 징집 등을 피해 조지아로 피신한 러시아인들이 현지 주민들의 얼음장 같은 적대감을 맞닥뜨리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심지어 러시아 손님을 걸러서 받는 주점도 등장했습니다.
이 주점은 러시아인의 경우 자국 정부의 잘못을 인정하는 경우에만 입장을 허용하는데, `제국주의자로 세뇌된 러시아인은 받지 않겠다`는 것이 주점 사장의 원칙입니다.
'푸틴은 독재자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침략을 규탄한다', '크림반도는 우크라이나 땅이다', '러시아가 조지아 영토 20%를 무단 점령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에 영광을'이라는 항목에 모두 체크 표시를 해야만 주점 입장을 허용해주는 방식입니다.
'주문할 때 러시아어를 사용하지 않겠다', '루블화로 결제하지 않겠다', '취해서 정치논쟁을 벌이지 않겠다'는 항목도 있습니다.
읽어보지도 않고 모든 항목에 동의하는 것을 막기 위해 `입장하려면 이 항목은 표시하지 마시오` 같은 함정도 있습니다.
"'루스키 보에니 코라비 이디 나 후이'라는 말을 좋아한다"는 항목도 있는데, 이는 우크라이나어로 "러시아 함선은 꺼져라"라는 뜻입니다.
전쟁 첫날 우크라이나 수비대원이 러시아 흑해함대 기함 모스크바함을 향해 내뱉은 말로 우크라이나군의 저항을 상징하는 '명언'이 됐습니다.
점주는 "러시아인들은 불편함에서 벗어날 특권을 주면 안 된다"며 동의서를 도입한 4월 이후 이 모든 항목에 제대로 동의하고 입장한 러시아인은 2천500명에 달한다고 말했습니다.
동의서를 보고 돌아선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 러시아인 '인기 피난지'된 조지아‥월세 80% 폭등 >
트빌리시의 한 숙소에 머무는 한 러시아 형제는 트빌리시 현지의 적대감에 대해 "러시아 정부가 아주 지옥을 만들었다. 2차대전 후 독일인이 어떤 마음이었을지 알 것 같다"고 어려움을 토로했습니다.
조지아는 러시아인들에게 '인기 피난지'입니다.
워낙 러시아인이 많이 몰려와 수도 트빌리시의 월세가 올해 들어서만 80% 상승했습니다.
1년 동안 무비자 체류가 가능하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입니다.
러시아인 입국을 비교적 적극 받아들이면서, 입국한 러시아인에게 정작 눈을 흘기는 복잡한 태도는 두 나라 사이에 전쟁을 치른 앙금이 여전하기 때문입니다.
러시아와 조지아는 2008년 전쟁을 치렀습니다.
친 서방 노선을 걷던 조지아가 자국 내 친러시아 분리주의 지역을 먼저 공격했다가 러시아군의 반격에 밀려 5일 만에 수도를 방어해야 할 처지에 몰렸습니다.
결과적으로 러시아 측이 압하지야, 남오세티야 등을 차지했습니다.
당시 전쟁을 기억한다는 23살 여성은 "한밤중에 헬리콥터 소리가 울리는데 가족들이 날 깨워서 짐을 싸라고 했던 게 생각난다"며 "러시아인들이 우리를 탈출로로 선택한다니 정말 짜증 난다"고 말했습니다.
결국 조지아는 서방과 가까이 지내면서도 러시아를 자극할 수 없는 상황이 됐습니다.
실제로 조지아는 서방의 대러시아 제재에 동참하지 않았고, 유럽연합 국가들과 달리 러시아인 무비자 입국도 유지했습니다.
푸틴의 반대파 인사 일부는 조지아 입국이 거절된 경우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조지아의 한 국회의원은 "우리는 실용적이고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당신의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