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제공:연합뉴스
1938년 서울에서 태어난 고인은 집안 형편이 어려워 유년시절부터 신문 배달 등을 하며 고학했습니다.
1959년 서울대 음대에 입학한 뒤 4학년 때인 1962년 성악가로 데뷔했고, 1970년 미국 줄리아드 음악원과 맨해튼 음악원 등지에서 수학했습니다.
당시 전설적인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의 줄리아드 음악원 오디션에도 합격해 화제가 되기도 했으며, 그는 이후 미국과 캐나다 등지에서 '라보엠', '리골레토' 등 다수의 오페라 주역으로 활약했습니다.
1983년 서울대 성악과 교수로 부임한 뒤 '향수'를 발표하며 대중적인 행보에 나섰는데, 이 노래가 큰 인기를 끌면서 '국민 테너'로 불렸습니다.
시인 정지용이 쓴 동명의 시에 작곡가 김희갑이 곡을 붙인 '향수'는 1989년 음반이 발매된 후 현재까지 130만 장 넘게 팔렸습니다.
클래식과 가요 간의 장벽이 높았던 당시 성악가가 대중가요를 불렀다는 이유로 클래식계에서 배척을 당하기도 했지만, 그는 독창회 2천회 이상, 오페라 주역으로 300회 이상 무대에 서는 등 클래식 대중화에 앞장섰습니다.
고인은 생전에 한 언론 인터뷰에서 "클래식은 대중음악과 다르다는 고정관념에 위배되는 일을 했기 때문에 파문의 중심에 섰던 것"이라며 "'향수'를 부르고 나서 잃은 것보다 얻은 것이 훨씬 많다.
대중적 인지도가 높아졌고, 사람들의 인생을 다양하게 이해하게 됐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유족으로는 부인 안희복 한세대 음대 명예교수, 아들 플루티스트 박상준 씨가 있다고, 장례 예배는 LA 현지에서 3일 오후 6시 진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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