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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 유재선, 깐느가 알아본 '물건' [인터뷰M]

'잠' 유재선, 깐느가 알아본 '물건' [인터뷰M]
입력 2023-05-23 08:01 | 수정 2023-05-23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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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 칸=iMBC연예)칸 영화제가 귀한 인재를 알아봤다. '잠' 유재선 감독의 이야기다.

    iMBC 연예뉴스 사진
    프랑스 남부 칸에서 제76회 칸 국제영화제 비평가주간 부문에 진출한 영화 '잠'(감독 유재선, 배급 롯데엔터테인먼트, 제작 루이스픽쳐스)이 상영되자, 미라마르(Miramar) 극장에 모인 전 세계 영화 팬들은 숨 죽인 채 스크린에 빠져들었다. 러닝타임 내내 속도감 있게 휘몰아치는 극적 전개와 3막으로 나뉘어 매 순간 더욱 깊고 서늘하게 영상의 분위기가 전환됐다. 이에 압도된 외국 관객들은 중간중간 탄성을 내질렀다. 영화가 끝나고 엔딩크레디트가 올라가자, 주연 배우 이선균, 정유미가 관객석에서 일어나 인사했고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그 곁에는 연출자 유재선 감독이 서 있었다.

    '잠'은 행복한 신혼부부를 악몽처럼 덮친 남편 현수(이선균 분)의 수면 중 이상행동, 잠드는 순간 시작되는 끔찍한 공포의 비밀을 풀기 위해 애쓰는 현수와 수진(정유미 분) 부부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유 감독은 업계에서 봉준호 감독의 제자 중 한 명으로 알려졌다. '옥자' 연출팀에서 2년간 일하며 실력을 갈고닦은 그다.

    현지에서 iMBC연예와 마주한 유 감독은 앳된 얼굴로 취재진을 놀라게 했다. 그의 이력은 더욱 반전이었다. 그간 단편 영화만 제작하다, 첫 장편 영화가 바로 외국 관객들을 사로잡은 '잠'이었던 것. 1989년생 신인 감독의 입봉작이 꿈의 무대 '깐느'에 선보여진 셈이다. 서사 자체가 타고난 천재임을 입증한다. 태도는 겸손했다. 그는 소감을 묻자 "처음 만든 장편 영화로 칸에 오다니 정말 꿈만 같다. 칸 영화제에서 자신의 영화를 상영하는 건 모든 영화인의 꿈이 아닌가. 워낙 막연한 꿈이라 상상하지도 않았다. 저 멀리 어딘가에 평행우주에서나 가능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꿈이 현실이 됐다. 하지만 아직도 제대로 실감하지 못해 '잠'을 자며 꿈을 꾸는 느낌"이라고 전했다.

    이어 "그런 감사함과 기쁨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굉장한 걱정과 근심도 있다. 워낙 큰 영광을 누려 그런 거 같다. '잠'을 향한 평가도 아직은 막연하고 두렵다. 품속에 안고 있던 아기를 내보내고 두 발로 서서 사람들에게 평가받아야 하는 상황이라 악몽까지 꿨다. 다행히 첫 상영을 마쳤고, 관객들의 좋은 반응을 체감했다"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잠'은 소재만 따지자면 평범하고 일상적이다. 누구에게나 밤은 오고, 필수로 잠이 따라오기 마련이다. 유 감독은 뒤집어 생각했다. 기괴한 상상 속 괴물이나, 비현실적 존재의 출현 아닌 매일 다가오는 일상이 두려움을 주는 주체가 되었을 때의 상황을 말이다. 그는 "피상적인 호기심에서 출발한 영화다. 누구나 살면서 몽유병에 대한 괴담을 한 번씩은 접하고 살지 않나. 잠결에 사랑하는 사람을 자신도 모르게 해치는 일들 말이다. 뉴스를 접하고 받은 충격이 떠올랐다. 어느 순간 그들의 일상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다. 그 곁을 지키는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도 궁금했다. 어떤 위협이 도사릴지 모르는 상황에 어떤 모양새로 살아갈 것이지가 1차적 호기심이었다"고 설명했다.

    유 감독은 "장르 영화의 경우 주인공이 위협의 대상, 공포의 대상이 되어 도망치기 마련이다. 몽유병은 그렇지 않다. 본인을 위협하는 공포의 존재가 잠 그 자체다. 위협의 대상으로부터 탈출할 수 없으며 필연적으로 정면으로 마주해야 한다는 지점이 흥미로웠다. 그 곁을 지키고, 당사자에게 해를 입는 인물 역시 가장 사랑하는 존재라는 것"이라고 '잠'의 특장점을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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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은 계산적이고 낭비 없이 타이트하다. 3막으로 챕터가 나뉘어 느슨해질 틈 없이 관객을 인도한다. 상상의 여지만 남겨 시청자 저마다의 해석을 내놓을 기회와 재미를 주기도 한다. 유 감독은 "계산된 선택은 아니었다. 직관적으로 보여지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수진과 현수가 극단적인 3가지 상황에 처하길 원했다. 보통 연극이 그렇지 않나. 막과 막 사이에 시간이 흘러있다. 그 사이에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상상하는 재미를 제공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여타 스릴러 장르와 견주었을 때 '잠'은 중후반부까지 간접적인 묘사로 관객을 겁준다. 종국엔 직접적인 묘사와 인물들의 행동으로 충격을 배가시킨다. 유 감독은 "무언가 감추고 연출하지는 않았다. 효과적인 연출을 위해 고민이 많았다. 장면마다 이야기마다 챕터마다 직간접 묘사를 적적히 배치했다. 간접적으로 보여줘야 더욱 공포감을 키울 수 있겠다는 판단이 선 장면들이 있었다. 반면에 파격적인 장면이 필요할 때에는 과감히 시도했다"고 덧붙였다.

    예산을 짐작하자면 저예산 영화에 가까운 '잠'이다. 신혼부부의 집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두 사람이 주고받는 이야기와 상황들이 주가 되어 이야기가 흘러가기 때문. 누군가에겐 제약일 수 있는 사안이 유 감독에겐 기회였다. 그는 "한정적인 공간은 변주의 기회나 다름없었다. 관객 입장에서 같은 공간의 분위기가 챕터마다 달라지는 것을 확연히 체감할 수 있지 않나. 인물들의 심리를 따라 공간 분위기와 결의 변화를 줄 수 있어 오히려 다행이었다"고 전했다.

    신인 감독들의 난관 중 하나는 배우 섭외다. 배우들의 입장에서는 감독의 이름값이 없기에 시장의 논리를 쫓아 해당 작품을 선택지 후순위로 미뤄둘 수밖에는 없을 터. 그럼에도 유 감독은 이선균과 정유미라는 유명 배우들에게 다가갔다. 작품을 위해서 용기를 낸 것. 그는 "장르물 경험이 아주 많은 배우들이다. 그럼에도 현실적인 생활연기가 능란하다. 항상 일상에 근간을 둔 연기 톤을 사용한다고 느껴왔다. 내 영화에 기필코 필요한 배우들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선균, 정유미를 섭외하기까지 용기가 필요했다. 뜬구름 잡는 소리일 수 있고, 절대 그들이 내 작품을 택하지 않을 거라는 불안감이 있었다. 그러던 중 '좋은 배우는 좋은 이야기에 끌리기 마련'이라는 말을 들었다. 용기를 냈다. 기적과도 같게 정유미 배우가 만나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고 하더라. 이후 이선균 배우까지 승낙해줬다. 꿈만 같더라"고 덧붙였다.

    함께 일한 이들의 말에 따르면 유 감독은 의견 수용에 특출난 재능을 지닌 연출자다. 고집과 아집을 구분해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인정할 줄 안다고. 이는 예술인에게 있어 아주 큰 장점이다.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전체를 흐트러뜨리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 그는 스스로의 장점을 묻는 질문에 "그 물음을 들으니 단점들만 떠오른다. 하지만 그게 바로 내 장점인 거 같다. 인간은 완벽하지 않은 존재라고 믿는다. 한계를 인지하고 전문가의 고견을 듣고 도움을 받는 태도도 아주 중요하다고 여긴다. 내 단점을 먼저 받아들이고 주제파악하는 것"이라며 "누군가 꿈을 묻는다면 내 수많은 단점들을 보완하고 내공을 쌓겠노라 말하고 싶다"고 밝혔다.



    이호영 / 사진출처 롯데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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