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란' 김창훈 감독이 가수 비비 아닌 배우 김형서의 연기를 볼 때마다 엄지를 치켜세우며 내뱉은 감탄사다.

'화란'의 이야기는 미래도 희망도 없는 마을 명안시에서 시작된다. 열일곱 살 연규(홍사빈)는 이곳을 벗어나본 적이 없다. 의붓아버지의 폭력을 견디며 엄마와 함께 네덜란드로 가겠다는 일념으로 돈을 모은다. 마찬가지로 명안시에서 나고 자란 치건(송중기)은 이제 범죄 조직의 중간 보스가 됐다.
지옥이라는 것을 일찍부터 깨달은 치건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치열하게 세상과 맞서 버텨왔다. 연규는 이복 여동생 하얀(김형서)을 지키려다 싸움에 휘말리고, 합의금을 위해 치건의 도움을 받는다. 그렇게 연규와 치건은 보스와 부하로 얽혀 서로를 위험한 상황으로 끌고 내려간다.
iMBC연예와 만난 김형서는 상기된 얼굴로 "아싸"라고 외쳤다. 수많은 영화인들의 최종 목적지라 해도 과언이 아닌 이곳에 초청돼 가수 아닌 배우로 자리한 소감을 묻자, 비비답게 내놓은 유쾌 발랄한 감탄사였다. 그는 "첫 영화 작업이다. 내가 발탁됐다는 소식을 듣고서 '왜?'라는 의구심이 먼저 들었다. 부담도 분명 있었지만, 실망시켜드리지 않겠노라 열심히 몫을 해내야겠다는 생각으로 촬영에 임했다"고 전했다.
김형서는 캐릭터 구축에 힘을 쏟았다. 하얀은 배다른 오빠 연규의 유일한 그리고 든든한 인생 동반자다. 급박한 상황이 닥치면 겉으로는 강인하게 맞서지만, 속으로는 사시나무처럼 떨어댄다. 이 복잡 미묘한 감정은 김형서를 거쳐 스크린에 고스란히 녹아든다. 그는 "처음에는 하얀을 노는 아이처럼 표현하려 했으나, 잘못 설정한 것이라는 걸 알게 됐다. 주변에 도움을 구하고, 감독님과 수많은 대화를 하며 제대로 된 길을 찾아갔다"고 말했다.
이어 "MBTI 중 ESTJ로 인물을 설정했다. 계획적이고 단단하다.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절망 속에서도 부단히 희망을 찾는다.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머리를 굴린다. 하지만 어린 나이와 주변의 괴로운 상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니 담담한 척 대범한 척 연기했다. 손은 덜덜 떨고 있지만, 위험한 순간 연규보다 앞에 서 보호한다. 세심한 컨트롤이 필요하더라"고 회상했다.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김 감독은 화면 속 김형서를 볼 때마다 연신 감탄했다고. 현장에서 들은 말 중 가장 흐뭇한 이야기는 무엇이냐 물으니 김형서는 "감독님이 모니터링을 할 때마다 '형서야, 내가 너 진짜 잘 뽑은 거 같아'라고 말해주셨다. 그만한 극찬이 또 어디 있겠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고 말했다.
가수와 배우를 나누는 편협한 선 가르기는 김형서 사전에 없다. 그는 창작 활동은 매한가지라고 확신했다. 작업 방식에 대해 "음악을 할 때도 앨범마다 캐릭터를 하나씩 구상하고 수록곡을 통해 이야기를 진행시킨다. 그 인물의 서사가 완벽히 구축되어야 작업이 수월해지더라. 지난 앨범에서는 오금지라는 주인공의 일대기를 노래로 표현했다. 조만간 발매될 앨범에서는 이브라는 여인이 등장할 예정이다. 연기도 역할 구상도 마찬가지 아닌가. 엄청나게 다른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임한다"고 확신한 김형서다.
목표는 겸손했다. 그는 "'비비라는 가수가 이런 것도 할 줄 아네?' 정도의 평가도 감사한 일이다. 이후의 입증은 내가 활동을 통해 해내야 할 숙제고, 현 위치는 그 정도인 거 같다. 내가 어찌 벌써부터 송중기 선배, 홍사빈 오빠처럼 역할과 작품에 푹 젖어있을 수 있겠나. 과도한 욕심은 금물이다. 그들에게 배울 점을 찾기 바쁘다"고 덧붙였다.

주제파악에도 솔직 담백 가감 없는 김형서다. 그렇기에 발전 가능성이 더욱 훤히 보인다. 그는 "난 특출 나게 잘하는 건 정말 없는 거 같다. 그럼에도 증명할 길이 없는 재능들이 있지 않나. 사람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고 비전을 동기화시키는 재능에는 자신 있다. 나를 필요로 하는 이들의 니즈를 파악하는 재능 말이다. 이번 '화란'을 통해 배우 생활 중 가장 중요하다 여기고, 조금 자신감을 얻은 대목도 소통 능력이었다. 김 감독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소통할수록, 다른 배우분들에게 여쭙고 다가가 곁눈질할수록 결과물이 좋아진다는 걸 확실히 체감했다"고 설명했다.
인간 김형서, 아티스트 김형서의 원동력은 '쓸모'란다. 그는 "나의 쓰임새를 찾으며 살아온 거 같다. 스스로가 쓸모없게 느껴지면 주눅 들기도 했다. 어쩌다 운 좋게 한 계단씩 올라가더라도 쓸모 있는 인간, 아티스트라는 것을 체감하지 못하니 행복감을 느끼지 못했다"며 "그런데 요즘 '화란' 속 하얀과 연규처럼 나의 절망에도 볕이 들었다. 혼자 명상을 하다 찾은 답이다. '아무것도 아니라도 괜찮아'라는 생각을 해보니, 그게 요즘의 나를 살아가게 만들더라. 찬찬히 내 주변을 둘러보니 좋은 사람밖에 없더라. 씨앗 하나를 찾은 느낌이다. 이 씨앗이 싹을 틔워 할미꽃이 될 수도, 노랗게 잘 익은 벼 이삭이 될 수도 있는 노릇이니 잘 키워보겠다"고 자신했다.
이호영 / 사진출처 플러스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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