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PROJECT SILENCE)'는 갑작스러운 안개의 습격으로 공항대교의 시야가 극도로 나빠져 사람들은 고립되고, 연쇄 충돌과 폭발이 벌어지며 시작된다. 다리가 붕괴될 위험에 처하고, 혼란 속에서 비밀리 이송되던 군사 실험 '프로젝트 사일런스'의 개 실험체 '에코'가 탈출하고, 살아남은 모든 인간은 끊임없는 공격의 표적이 된다.
'미스터 고', '신과함께', '모가디슈' 등을 통해 이미 컴퓨터 그래픽(CG) 명가로 자리한 덱스터 스튜디오의 기술력에 대한 신뢰와 더불어 CJ ENM의 거대 자본이 기대감을 자아냈다.
배우진 구축도 흠잡을 데 없었다. 이선균의 첫 재난 영화로 그의 히어로 열연과 주지훈의 반전 코믹 연기, 베테랑 김희원과 천재 아역 김수안의 조합은 위험부담을 줄였다.
제76회 칸 국제영화제 비경쟁부문 미드나잇 스크리닝 초청작이라는 대목 역시 괄목할만했다. 액션, 스릴러, 느와르, 판타지, 호러와 같은 장르 영화 중 작품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소수의 작품을 상영하는 부문에 공식으로 초청받은 것.
별 다섯 개 중 두 개 반, 절반의 성적 그 이상도 이하도 논하기 어렵다. 위협적인 존재에 의한 위기 촉발부터 그 와중 잇속을 챙기려는 빌런과의 갈등, 관계 설정으로 구축된 곳곳의 신파까지 뻔한 플롯으로 칠갑한 한국형 블록버스터 재난 영화다.
공간 설정은 영리했다. 저마다의 사연을 지닌 이들이 누군가는 떠나고 누군가는 돌아오는 과정을 위해 반드시 지나쳐야 하는 공항으로 이어지는 대교. 이곳이 통제되며 사건이 발생한다. 한정된 장소에 괴수에 가까운 군견들이 풀어져 날뛴다는 설정이다. 역할마다의 과거 서사를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더라도 짐작 가는 드라마가 관객들의 뇌리에 스치도록 만들어 100여분의 짧은 러닝타임을 알차게 사용한 것.
청와대 국가안보실 소속 행정관이자 유력 대권 후보 정현백(김태우)의 든든한 비서관 차정원(이선균)은 킹메이커 노릇을 자처하는 지독한 워커 홀릭이다. 여타 작품들처럼 당연히 가정엔 소홀하며 아내를 먼저 떠나보냈다는 서글픈 서사를 지녔다. 관계가 소원해진 사춘기 딸 경민(김수안)을 유학 보내기 위해 공항으로 향하는 대교를 달리다가 재난 상황과 마주한다.
여기에 더해 치매에 걸린 아내를 극진히 보살피는 노인, 운동선수 동생을 보필하는 쾌활한 성격의 언니, 자신의 이익만 따지다가도 의외의 활약을 펼치는 렉카 기사, 군견의 사연을 알고 있는 연구원 박사까지. 인물관계도만 살펴도 눈물 콧물을 흘리며 서로를 구하기 위해 비명을 질러대기 제격인 무대를 마련한 셈이다. 하지만 너무나도 편리한 설정 탓인지 신파 분량의 완급조절을 따져보자면 실패에 가깝다. 한국 관객의 입장에서는 기시감을 지울 수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간 수도 없이 맛봐 질려버린 그 나물에 그 밥이나 다름없다.
기대한 대로 CG는 흠잡을 곳 없었다. 개가 인간만이 지을 법한 고유의 표정을 지어 보인다. 덱스터의 기술력이 다시 한번 위상을 떨칠 기회라는 점은 분명하다. 상상 속 크리처가 아닌 카네 코르소, 즉 개를 위협적 존재로 활용한 대목도 현명했다. 충분히 일상에서 마주할 수 있는 존재가 일순간 공포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은 몰입에 도움을 준다.
이러한 이유에서 억지 신파와 기시감을 고려하지 않아도 될 관객층에겐 부담 없이 추천할만한 영화다. 골 아픈 생각이나 해석 없이 긴박한 음향효과와 풍성한 볼거리만을 기대하는 관객 혹은 아직까지 전형적인 한국형 재난영화를 접하지 않은 어린 아이들이 롤러코스터를 타듯 유쾌하게 시간을 때울 '탈출'이다.
이호영 / 사진출처 CJ E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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