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지금 안 자고 거기서 뭐해?"
영화 '잠'(감독 유재선)에서 서로를 끔찍이 사랑하는 부부 현수(이선균)와 수진(정유미)의 신혼 단꿈은 어느새 악몽으로 뒤덮였다. 남편 현수의 수면 중 이상행동, 몽유병 탓이다. 잠드는 순간 시작되는 끔찍한 공포의 비밀을 풀기 위해 애쓰는 두 사람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iMBC 연예뉴스 사진](http://talkimg.imbc.com/TVianUpload/tvian/TViews/image/2023/05/25/1df611a5-7216-491f-88ce-891b3fee2a3a.jpg)
'봉준호 수제자'라는 다소 거창한 수식어가 잔뜩 기대감을 부풀렸다. '옥자'로 유재선 감독과 인연을 맺은 봉준호 감독은 '잠'에 대해 "최근 10년간 본 영화 중 가장 유니크한 공포 영화이자 스마트한 데뷔 영화"라며 "가장 평범한 일상의 공간에서 예측 불가능한 커플의 드라마가 펼쳐진다, 나는 관객들이 아무런 정보 없이 스크린 앞에서 이 영화와 마주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봉 감독의 안목은 역시나였던 것일까. 새파란 신인 감독 유재선의 첫 장편 영화 입봉작이 칸 레드카펫을 밟았다. 제76회 칸 국제영화제 비평가주간에 공식 초청된 것. 새로운 재능을 발굴하는 데 중점을 둔 섹션으로, 전 세계 작품들 중 감독의 첫 번째 또는 두 번째 작품만을 대상으로 선정된다. 제자를 유달리 아끼는 봉 감독의 사람 좋은 허풍일지, 상자를 열기 전까지 아무도 모를 일이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기 마련이기에 감독의 입장에선 부담 요소로 작용했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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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우였다. 막상 열어보니 기대 이상이다. 봉 감독의 식견을 높이살 일이 아니었다. 유 감독이 눈에 띄게 특출 난 제자였던 것이 틀림없다. 사전 정보 없이 '잠'을 접한다면 누구도 1989년생 신인 감독의 나이와 경력을 짐작할 수 없을 터.
'잠'의 구성은 신속하고 담백하다. 마치 연극처럼 3막으로 나뉘어 이야기가 진행된다. 한 장 한 장 넘기며 친절하게 안내하니 쫓아 읽기에 용이하다. 챕터가 끝날 때마다 극한 상황 하나씩을 던져 주인공들의 등을 떠미니 관객들은 손에는 땀을 쥐고 숨을 참는다. 사이사이 시간의 흐름을 둬 다음 막이 올랐을 때 관객에게 상상의 여지도 준다. '저런 일을 겪다니, 그사이에 무슨 일이 있던 거야?'라는 퀘스천 말이다. 그렇게 현수의 시선, 수진의 시선으로 쉴 틈 없이 '잠'을 쫓아가다 보면 절로 닭살이 돋아 잠이 확 달아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알뜰하고 영리하다. 주된 배경은 부부의 집이다. 혹자에겐 한정된 공간이 제약일 수 있지만, 유 감독은 활용의 기회로 삼았다. 챕터가 전환될 때마다 같은 공간의 분위기가 주인공들의 심리를 그대로 쫓아 달라진다. 소품, 조명, 구도로 몰입에 도움을 준 셈이다. 그러니 자연히 예산도 아꼈을 테고, 촬영 시간도 줄어들었을 것.
![iMBC 연예뉴스 사진](http://talkimg.imbc.com/TVianUpload/tvian/TViews/image/2023/05/25/3b56268c-8df6-4411-8e90-088e8e2a067e.jpg)
자던 중 일어나 날달걀을 와자작하고 씹어먹는 현수의 행동과 겁에 질린 수진의 표정으로도 충분히 오감을 자극한다. 직접 묘사가 필요한 클라이맥스에서는 작정하고 본색을 드러낸다. 칸 미라마르(Miramar) 극장에 모인 전 세계 관객들은 이 대목에서 일순간 압도당해 입을 틀어막기도 했다. 이에 더해 틈새마다 코믹한 상황까지 가미되어 관객을 안심시키다가도, 일순간 표정을 바꿔 사람을 놀라게 한다.
![iMBC 연예뉴스 사진](http://talkimg.imbc.com/TVianUpload/tvian/TViews/image/2023/05/25/024fac7a-9303-46d0-9d78-269826ac44ce.jpg)
이선균은 목소리로 이름난 배우다. 단단하고 옹골찬 음성은 주로 로맨스 도구로 활용되어 왔다. '잠'에서는 다르다. 비몽사몽 취해 푹 잠긴 목소리로 이선균이 읊조리는 대사들을 듣고 있자면, 등골이 오싹해진다. 정유미의 난생 처음보는 기괴한 표정과 광기도 발견할 수 있다. 그놈의 잠 때문에 시뻘겋게 충혈된 눈에는 안광이 서려있다. 사투를 벌이며 괴성을 질러대는 그의 열연은 기괴한 감상을 선사한다. 이웃여자 김국희, 무속인 김금순, 의사 윤경호 역시 마침맞은 모양으로 제 몫을 톡톡히 해낸다.
이호영 / 사진출처 롯데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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