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옥이라는 것을 일찍부터 깨달은 치건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치열하게 세상과 맞서 버텨왔다. 연규는 이복 여동생 하얀(김형서)을 지키려다 싸움에 휘말리고, 합의금을 위해 치건의 도움을 받는다. 그렇게 연규와 치건은 보스와 부하로 얽혀 서로를 위험한 상황으로 끌고 내려간다.
● 비포스크리닝
"송중기가 이런 걸? 비비가 웬 연기를? 홍사빈은 누구야?"
'화란'을 보기 전엔 물음표 투성이일 수밖에 없다. 정상급 배우 송중기가 출연료를 받지 않고 이 작품에 출연을 결심했다는 소식도 의아함을 자아냈다. 미리 공개된 스틸에서는 낯선 그의 모습이 더욱 궁금증을 유발했다. 수려한 외모로 여심을 울리거나, 마치 히어로가 되어 문제를 해결하는 멀끔한 송중기의 외양이 대중의 뇌리에 깊이 박혀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스틸 속 송중기는 기름때가 그득 낀 얼굴로 오만상을 일그러뜨리고 있는 모습. 싱그러운 향기보단 쾌쾌한 악취를 풍겨댄 송중기의 작심, 그 결과물이 기대되는 작품이었다.
가수 비비(BIBI)의 출연 소식도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었다. 제76회 칸국제영화제(Cannes Film Festival·칸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 부문에 공식 초청 된 '화란'이다. 영화인들의 최종 목적지라 표현해도 과언이 아닌 이곳에 외부인이 어부지리 발을 들이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타인의 진정성을 함부로 예단할 수 없는 노릇이지만, 이미 뮤지션으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그이기에 배우 김형서라는 이름이 주는 신뢰는 작을 수밖에 없는 셈. 홍사빈이라는 신인 배우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는 캐스팅 라인업에 송중기보다 앞에 이름이 오른 그다.

"송중기가 이런 것도! 비비였구나! 홍사빈 끝내주네!"
선입견에서 비롯된 물음표는 느낌표로 바뀌었다. 편협한 선입견으로 무장한 채 감상한 '화란'은 필자를 조롱하듯 제대로 굴러갔다. 특히 작품성이나 이야기 구성을 차치하고서라도 배우들의 명연만큼은 볼맛난다.
선봉장에는 홍사빈이 자리했다. 행복이라는 감정을 알기는 할까 싶을 정도로 음울한 인생을 사는 인물 연규. 홍사빈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안갯속에서 허우적대는 나약한 존재를 손짓, 발짓, 눈빛으로 스크린에 투영했다. 벌써부터 일상의 연기가 가능한 배우다.
절로 코를 막고 괜히 가방 속 지갑을 감추게 만드는 달동네 어딘가에서 남루한 행색을 하고 존재할 거 같은 감상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홍사빈은 송중기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않았다. 연규는 치건이라는 크나큰 존재 앞에 휩쓸려 동요한다. 종국에는 반쯤 정신이 나간 표정으로 이빨을 드러내고 맞선다. 이들이 대립할 때 튀기는 불꽃은 영화의 관전포인트 그 자체다.


이호영 / 사진출처 플러스엠
당신의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