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한국에서 만들어진 '오징어 게임'은 그야말로 글로벌한 히트가 되었다. 전 세계 모두가 초록색 트레이닝 복을 입었으며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게임을 하고 달고나를 먹었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작품으로는 최초로 프라임타임 에미상에 진출, 6관왕을 차지하며 한국 드라마 역사에 큰 획을 그었다.
이런 '오징어 게임'을 모티브로 상금 456 달러를 두고 실제 456명이 경쟁을 펼치는 리얼리티쇼가 만들어졌다. 만 21세 이상, 영어 구사 가능한 전 세계인을 대상으로 모집한 456명의 참가자들은 원작 '오징어 게임'과 똑같이 만들어진 초대형 세트에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비롯 달고나 뽑기 게임 등을 진행했다.
온라인 스크리너를 통해 먼저 살펴본 '오징어 게임: 더 챌린지'는 놀라웠다. '오징어 게임'에서의 세트를 그대로 옮겨놨더라. 첫 게임인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은 무려 2천8백 평이 넘는 공간에서 진행되었으며 가로 100m, 세로 40m의 면적 안에서 출연자들은 결승에 골인하거나 꼼지락 거리다 탈락되었다. 게임이 진행되는 방식, 탈락자가 표시되는 방식, 스피커를 통해 전해지는 안내까지 모든 게 '오징어 게임'과 똑같았다. 게임을 하다 총에 맞아 죽는 설정은 가슴팍에 특수 효과를 장착해 탈락시 '탕' 하는 효과음과 함께 터짐으로써 자신이 걸렸다는 걸 알게 되는데 재미있게도 탈락자들은 정말 총이라도 맞은 듯 자리에 털썩하고 쓰러진다.
거대한 영희의 눈을 통해 참가자들의 미세한 움직임을 고도의 자동영상 시스템으로 체크했으며 이 리얼리티에 나오는 게임과 챌린지의 논란을 피하기 위해 완전한 자격을 갖춘 변호사들로 심사 담당자를 정했다고 한다.
이들이 함께 지내는 숙소도 '오징어 게임' 속 모습과 똑같았다. 출연자들도 시청자와 동일한 감정으로 현장을 보며 놀라고 환호하며 소름 끼쳐했다. 허공에 떠 있던 돼지 저금통은 CG였던 원작과 달리 이번에는 실물로 제작했다고.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현금으로 가득 찬 저금통의 무게는 800KG가 넘었다고 한다. 이렇게 돈으로 가득 찬 투명 돼지 저금통이 천장에 매달려 있는 걸 보는 참가자들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드라마에서 보여준 '기훈' '상우' '준호'등의 서사는 456명의 출연자에게서도 나왔다. 중간중간 인터뷰를 통해 보이는 출연자들의 사연은 다만 이야기를 듣고 있을 뿐인데도 개별 드라마를 보는 듯 다양한 사연들이 넘쳐났다.
그러며 숙소에서 진행되는 과제, 게임을 진행하는 방식을 통해 '오징어 게임'이 전하고자 했던 핵심적인 메시지인 사람들의 도덕성과 인성, 믿음과 동맹, 배신의 적나라함을 볼 수 있다. 그저 게임일 뿐인데, 심지어 이 리얼리티는 탈락한다고 죽는 것도 아닌데 자신이 지목됐다는 사실 만으로도 덜덜 떨며 통곡하는 출연자가 속출하게끔 엄청난 몰입감을 안겨준다.
너무 튀어도 안되고 너무 역할이 없어도 안되고 누군가에게 서운하게 해도 안되고 드러내고 누군가와 무리를 지어도 안 되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사람들에게 미움받아 탈락당하지 않을까. 뛰어난 인성도 갖춰야 하지만 운동신경과 집중력, 센스, 지략 등을 갖춰야 매 게임마다 탈락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다. 그렇다고 이 챌린지의 끝까지 살아남는 사람은 도덕성과 인성, 능력의 정점에 있는 사람인 걸까?
기대했던 것보다 재미있고 외국인이 펼치는 '오징어 게임'은 뿌듯해서라도 자꾸 보게 된다. 숙소에서 나눠주는 우리의 전통 도시락(철 도시락에 계란 프라이가 들어간 볶음밥)도 자랑스럽고 '오징어 게임' 덕후 출연자들이 게임의 룰이나 철학에 대해 아는 척하는 걸 보면 기특하기도 하다.
이 리얼리티를 보며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오징어 게임' 원작의 설정과 너무 똑같은 세팅에 대한 놀라움이고. 두 번째로 든 생각은 '이 IP는 우리의 것인데 왜 우리는 이걸 리얼리티로 만들 생각을 못했을까?'였다. 세 번째로 든 생각은 '원판 불편의 법칙'이었다. 원작 IP가 가진 뛰어나고 완벽한 설정 때문에 그걸 똑같이 따라만 해도 장르가 바뀌는 것과 상관없이 임팩트가 컸다. 이런 정도의 퀄리티라면 '오징어 게임: 더 챌린지'는 시리즈가 계속되어도 계속 흥미롭게 볼 것 같다. '오징어 게임' 시즌 2가 나오면 그 이야기를 토대로 '오징어 게임: 더 챌린지'도 업그레이드될 수 있을 것 같다.
이 작품을 만든 스튜디오 램버트의 총괄 프로듀서 토니 아일랜드는 무려 8만 1천 명의 지원서를 추려서 456명의 출연자로 좁혀나갔다고 밝혔다. 크리에이티브 감독인 팀 하코트 "호감형, 비호감형 캐릭터를 잘 섞는 게 필요했다. 도덕적으로 복잡한 면을 만들려고 했다."며 캐스팅 과정에서 신경 쓴 부분을 언급했다. 이렇게 공들여 456명의 출연자를 선정했지만 총괄 프로듀서인 스티븐 예모는 "흥미로운 서사를 가진 사람들로 엄선했지만 막상 게임을 시작하고 나면 모든 건 신의 소관이었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진행하면서 손 쓸 수 없이 훌륭한 플레이어들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라며 게임이 시작된 이후부터는 주어지는 상황을 쫓아가며 경쟁이라는 개념 자체가 주인공이었음을 강조했다.
# 알고 보면 더 재미있는 비하인드 -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의 영희를 제작하는데 3개월이나 걸렸단다. 영희의 키는 4.2미터였으며 참가자 모두에게 공정할 수 있게 노래의 특정 부분에서 정확하게 고개를 돌려 멈추는 걸 구현하기 위해 로봇공학적 설계를 했단다. 엄격한 심사와 판단을 통해 탈락자를 가려내야 했기에 자동영상 시스템 + 영역별 영상 스캔 + 12명 이상의 심사담당자의 확인을 통해 매 번 규칙에 어긋나는 움직임을 판단하느라 가장 빠른 속도로 결승을 통과한 참가자가 2시간, 느린 참가자의 경우 4~5시간이 걸렸단다. - 달고나 과자를 수백 개 만드는 게 생각보다 난항이었다고. 전통적인 달고나는 습도에 민감하기도 했고 이동 과정에서 부서지기도 해서 전통 레시피를 이용해 만들 수 없었다고 한다. 19개 버전의 실패를 거친 뒤에서야 프로그램을 위해 쉽게 부서지지 않고 균일한 깊이로 찍힌 달고나 과자를 완성할 수 있었다고 한다. - 참가자가 탈락하면 셔츠 안에 있는 검은 잉크 폭죽이 커진다. 검은 잉크를 선택한 이유는 오징어 먹물을 연상시켜서라고. - 생활관의 화장실 타일은 원작 시리즈와 정확하게 일치하는 6만 개의 크림색과 파란색 계열의 타일로 만들어졌단다. - 이 시리즈의 촬영은 16일 넘게 런던의 워프 스튜디오에서 진행되었다. 이 세트 안에 발을 들인 이상 탈락할 때까지 나갈 수 없었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는 유일하게 다른 시설에서 촬영을 했단다. 게임 참가자 수가 가장 많았기에 어지간한 사이즈의 스튜디오에서 촬영을 진행할 수가 없었다고.
김경희 / 사진제공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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