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은 이런 극한 대립을 해소할 방안으로 중대선거구제 도입을 들고 나왔습니다. 대통령도, 국회의장도 거들었습니다. 기존 거대 양당 구도에선 상대를 적폐로 내모는 극한대립이 이어질 수밖에 없으니 이참에 아예 선거제도 자체를 개혁하자는 겁니다.
민주당내 선거제도 개혁에 앞장선 김두관, 이탄희 의원을 만나 극단으로 치달은 한국 정치의 원인을 진단하고, 중대선거구제는 실현 가능한지 물었습니다.
극한 대립의 원인은? "거대 양당 체제"
김두관 민주당 의원은 거대 양당 체제에선 협치가 사라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대통령을 등에 업은 여당과, 이에 맞서는 야당의 대결구도가 형성된다는 게 그 이유입니다. 김 의원은 지난 한해 우리 정치를 돌아본 뒤 "윤석열 대통령은 야당의 협치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았다"고 단언했습니다. 특히 최근 이어지고 있는 이재명 당대표와 노웅래 의원을 겨냥한 검찰 수사를 언급하며 "현재 민주당은 단일 대오로 검찰공화국 독재의 파상 공세를 막아내는 게 당면 현안"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정부·여당이 국회 제1당인 야당을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았고, 타도의 대상으로 삼는다며 정면 비판에 나선 겁니다.
이탄희 의원은 이런 과정에서 당내 '소신파'들이 실종됐다고 지적했습니다. 이 의원은 "소신 정치인들이 없어져 가고 있다. 국민의힘에선 대통령이 사실상의 공천권자인데, 대통령 눈치를 보지 않고 얘기할 수 있는 소신 정치인이 없어졌다"며, "이 때문에 국민의힘 소신 정치인들과 같이 이야기하자는 민주당 쪽 소신 정치인들도 설 자리가 없어졌다"고 밝혔습니다. 이 의원은 "양당의 소신 정치인들이 다 사라지고 있다는 게 문제인 만큼, 거꾸로 소신 정치인들을 부활시켜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강성 팬덤정치? "지지자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인의 문제"
팬덤 정치가 극단적 대립을 부추긴다는 지적에 대해선 한 목소리로 강성 지지층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인들의 문제라고 꼬집었습니다. 이탄희 의원은 "이에 편승하고 팬덤과 대중을 통합하려고 노력하지 않는 정치인들이 문제다"라고 지적했습니다. 팬덤으로 지칭되는 강성 지지층에 대해선 "팬층을 두텁게 형성하고 있는 이분들은 소위 말하는, 눈앞에 닥친 정파적 문제만 다루라고 하는 게 아니다. 그것에 더 관심을 가지고 있을 뿐이지, 그게 전부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고, 더 나아가서 국민들 다수의 삶의 문제도 다뤄주기를 요구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다만, 강성 팬덤이 극한 대립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도 이어졌습니다. 김두관 의원은 지난해엔 민주당 전당대회가 열렸고 올해는 국민의힘 전당대회가 열리는 점을 언급한 뒤, "역사적으로 전당대회 시기를 보면 정치인들이 강성 지지자들 쪽으로 강하게 갈 수밖에 없었다"며, 올 한해도 강성 지지층을 겨냥한 정치인들의 행태는 더 심화할 것이라고 우려했습니다. 그러면서 "매우 걱정이 된다. 강성 지지자들의 요구나 이해를 전혀 무시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받아들이는 것은 정치 발전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며,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으로서 협조할 건 협조하고, 따끔하게 지적할 건 지적하는 게 정치 발전에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승자 독식, 거대 양당? "소선거구제 폐지로 극복"
김두관 의원은 여기에 중대선거구제에선 영호남 갈등을 줄일 수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김두관 의원은 "한 지역구에서 국회의원 5명을 뽑는다고 가정해보자"며, "민주당이 아무리 유리한 지역이라고 하더라도 5명을 뽑으면 민주당이 2명이나 3명, 국민의힘은 1명이나 2명이 당선될 것이다. 그러면 정의당이나 기본소득당, 시대전환 등 다양한 당들도 당선자를 낼 수 있다"며, "대립을 촉발시키는 거대 양당체제가 사라지니 정치의 기본 원리인 대화와 타협이 작동해 국회가 굉장히 생산적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호남에선 국민의힘이 한 석도 없고, 대구·경북에선 민주당이 한 석도 얻지 못했다"며, "추가로 권역별 비례대표제도 함께 도입해 호남에선 국민의힘이, 대구·경북에선 민주당이 의석을 얻게 해줘야, 특정 세력의 지역 독과점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실현 가능성은? "49 대 251"
중대선거구제로의 요구는 사실 과거 20년 전부터 심심치 않게 정치권의 화두로 되풀이되었던 사안입니다. 멀게는 1990년 3당 합당 때도, 1997년 DJP 연합 때 논의됐고, 짧게는 지난 대선에서도 윤석열·이재명 여야 두 후보가 중대선거구제를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과거 논의들이 '찻잔 속의 태풍'으로 그쳤다면, 이번에는 좀 탄력을 받은 듯 보입니다. 3년 전 위성정당 사태 이후 다수의 민주당의원들이 중대선거구제 개편을 주장하는 상황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김진표 국회의장, 그러니까 대한민국 의전서열 1, 2위가 새해 시작부터 선거제 개편 방향 중 하나로 중대선거구제를 제안한 겁니다. 이에 맞춰 지난 3일 국민의힘 원내대표회의에서도 김태호 의원이 "중대선거구제 전환에 대한 논의는 시급하게 미래로 가기 위해 반드시 성취해야 한다"고 했고, 이태규 의원도 "선거구제 개편과 중대선거구제는 승자 독식과 정치 양극화를 완화하는 대안 될 수 있다"고 힘을 보탰습니다.
이런 와중에 내년 총선의 선거구 획정 기한은 오는 4월 10일까지입니다. 이때까지 선거구 획정을 위한 선거법 개정을 마쳐야 하기 때문에 앞으로 논의 과제로 중대선거구제는 반드시 포함될 수밖에 없을 겁니다.
다만, 중이 제 머리를 못 깎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중대선거구제로 가게 되면, 거대 양당인 국민의힘과 민주당은 자신들이 과점했던 지역구에서 기존 의석수를 잃을 가능성이 많아 보입니다. 현역 국회의원들의 상당수가 낙선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기에 중대선거구제는 기존 소선거구제하에서 당선된 현역 국회의원들이 기득권을 내려놔야 가능한 일입니다. 과연 실현 가능한 일일까요.
민주당에선 김두관, 김영배, 박주민, 이탄희, 국민의힘에선 강민국, 최형두 의원 등 여야 국회의원 49명이 '초당적 정치개혁 모임'을 구성했습니다. 대립의 정치를 끊고 대화의 정치를 해야 한다며, 현직 국회의원들이 기득권을 내려놓고 중대선거구제 개혁에 나설 것을 요구하고 나섰습니다. 그런데 49명입니다. 나머지 251명의 국회의원들은 과연 어떤 선택을 할까요.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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