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능미달 방탄복'
지난 18일, 감사원이 방탄복 감사결과를 발표하며 감사보고서에 적은 제목입니다. 감사결과는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방탄복을 만드는 업체가 성능시험 하는 특정 부위에만 방탄 소재를 덧대어 제작했다는 겁니다. 덧대지 않은 곳에 총을 쏘면 충격으로 장 파열 등의 장기 손상까지도 생길 수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방탄복이 제 역할을 못한다는 얘기입니다. 이를 시험하고 확인해야 하는 국방기술진흥연구소는 알고도 묵인했다는 내용까지 포함됐습니다. 이렇게 지난해 보급된 방탄복만 약 5만 벌. 100억 원어치가 넘는다는 것도 기록돼 있었습니다.
감사원은 자체 테스트 결과를 근거로 들었습니다. 통상 방탄복 성능 시험을 할 때 몸통을 향해 총알 3발을 쏘는데, 여기에 장 파열 등 장기 손상 방지하기 위한 '후면변형량'을 측정해 보니 일부 방탄복에서 안전 규격인 44mm 이상 변형됐다는 겁니다.
국군 장병에게 보급되는 방탄복인데 성능이 미달이라니.. 대부분 언론도 감사원 자료를 바탕으로 "뚫리는 방탄복"이라며 기사를 쏟아냈습니다.
군에서 만들라는 데로 했는데 왜 사기꾼?
방탄복 제작업체 측에 전화했습니다. 펄쩍 뛰었습니다. 억울하다는 겁니다. 업체 측 주장은 이렇습니다. 방사청에서 방탄복 최저가 입찰 공고를 했고, 이후 입찰을 받으면 국방규격과 구매요구서라는 걸 준다는 겁니다. 쉽게 말해 군에서 요구하는 방탄복의 품질과 제작 기준을 정하고 그대로 납품한다는 얘기입니다. 통상 방탄복은 미국 법무부 산하 국립사법연구소, 즉 ‘NIJ Standard-0101.06' 규정대로 제작한다고도 했습니다. 그렇게 나라에서 원하는 대로 만들어 납품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왜 온 국민 앞에 사기꾼이 되었느냐는 겁니다.
NIJ 규정을 찾아봤습니다. 기본적으로 목 부위 상단과 좌측 아래, 우측 아래 그리고 중앙 부위 3발, 그렇게 총알을 쏴 성능을 확인합니다. 여기에 0.357 SIG탄, 0.44 Magnum 이렇게 사격 탄종 별로도 테스트를 합니다. 파편에 대한 시험도 있습니다. 탄종 별로는 총알 쏘는 위치도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가장자리에서 51mm 떨어진 곳에 또는 가장자리에서 76mm 떨어진 곳에 쏘라고 나와 있습니다. 다른 총알과 51mm 거리는 떨어져 한다는 규정도 있습니다. 방탄복 제작업체는 이런 성능 시험을 모두 통과했다고 맞섭니다.
제작 기준 다르고? 평가 기준 다르고?
감사원은 성능 미달 방탄복이라는 데, 제작 업체는 성능 시험을 통과했다고 반박합니다. 뭐가 잘못된 걸까요.
문제는 방사청에서 방탄복을 주문할 때 업체에 요구한 기준과 감사원의 성능 평가 기준이 달랐습니다. NIJ 기준을 보면 '후면변형량'은 목 아래, 왼쪽 아래, 오른쪽 아랫부분만 44mm 이내라는 규정을 둡니다. 몸통 쪽 3발에 대해선 방탄이 뚫는지 여부만 판단할 뿐 '후면변형량'에 대한 기준이 없습니다. 몸통에는 방탄복 안에 두꺼운 방탄판을 넣기 때문에 굳이 후면변형량까지는 평가하지 않다는 게 업체 측 설명입니다. 하지만 감사원은 후면변형량 기준을 몸통 쪽 3발에도 자체적으로 적용했습니다. 방탄판을 착용 안 할 수도 있으니 테스트해야 한다는 논리입니다.
국기연 "성능시험, 구매요구서랑 달라"
감사원으로부터 지적을 받은 국방기술진흥연구소도 감사 결과에 조목조목 반박했습니다. 먼저 감사원의 방탄복 성능시험이 구매요구서에 나온 것과 다르다는 겁니다. 그리고 NIJ 절차대로 모두 시험을 했고, 업체의 방탄복에는 이상이 없어 납품하도록 했다는 겁니다. 게다가 성능시험을 하는 곳에만 방탄소재를 덧댔다는 민원이 제기되어서 덧대지 않은 부위에 시험을 다시 했는데도 성능을 만족했다고까지 했습니다.
군인의 안전과 생명 책임은 누가?
군에서는 늘 하던 대로 방탄복을 요구했습니다. 감사원에서는 새로운 기준으로 방탄복을 평가했습니다. 업체는 한순간에 날벼락을 맞았다고 합니다. 그럼 정작 중요한 국군 장병의 안전과 생명은 누가 책임지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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