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만배가 428억원 약속했다"‥이재용보다 통 큰 기자?
오는 28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해 조사를 받습니다. 재작년 가을 대선 국면을 뜨겁게 달궜던 '대장동' 의혹 때문입니다. 검찰이 2021년 9월 수사에 착수한 지 1년 4개월 만입니다. '의혹'의 최정점 조사로 검찰 수사도 마무리 국면에 접어들게 됩니다.
핵심은 과연 대장동 특혜를 이재명 대표가 알았는지, 또 승인했는지 여부입니다. 그리고 조사를 불과 일주일 앞둔 시점, 검찰이 이 대표에게 던질 구체적인 질문들의 윤곽이 드러났습니다.
바로 김만배씨 등 대장동 일당 5명을 이해충돌방지법 위반 혐의로 추가 기소한 공소장이 공개된 겁니다. 공소장에는 '이재명' 이름이 146차례 언급됐습니다. 어쩌면 대장동 일당이 아니라 이 대표 공소장이라고 봐도 무방한 수준입니다. 대부분은 이 대표가 대장동 사업의 주요 내용을 지시하고 승인했다는 대목들입니다.
특히 주목되는 건 사업이 아니라 "지분 약속을 보고 받고 승인했다"는 대목입니다. 기자 출신 김만배씨가 2014년과 2015년 자신의 대장동 개발 이익 지분 절반을 '이재명 대표측'에게 나눠주기로 약속했는데, 이 대표가 이를 직접 보고받고 승인했다는 겁니다.
검찰은 ‘정영학 녹취록’ 등을 토대로 대장동 일당이 이익분배를 논의한 결과, ‘김만배 49%’, ‘남욱 25%’, ‘정영학 16%’로 나누기로 합의했다고 결론내린 바 있습니다. 김씨 지분 49%의 절반을 추후 금액으로 따져보니 428억원이 계산됩니다.
당초 검찰은 유동규·정진상·김용 세 사람에게 이 428억원을 약속받았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공개된 공소장에서 '428억원 약정설'의 실제 승인자가 이재명 대표라고 검찰이 처음 못박은 셈입니다.
과거 국정농단 특검이 이재용 당시 삼성전자 부회장을 기소할 때 박근혜씨와 최서원(최순실)씨에게 줬다고 본 뇌물 액수가 298억원이었습니다. 이재용 부회장은 이 돈을 직접 건넸고, '428억원 약정설'은 현재로선 약속에 불과하긴 합니다. 아무리 그렇다해도 대기업 총수도 아닌 기자 출신 일반인이 정치인에게 428억원을 약속한다‥ 상식적으로는 쉽게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결국 야당 총수를 검찰청 포토라인에 세운 '대장동 사건', 그 시작과 끝은 김만배씨입니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지금까지 현장에서 취재한 내용들을 정리해보려 합니다. 김만배씨를 단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그를 설명하는 핵심단어는 바로 '인맥'입니다.
1) 언론계 "내가 김 '이지스, 다 막는다'"‥핵심은 '인맥'
1천 3백여쪽 분량의 '정영학 녹취록' 중 2020년 3월 정영학 회계사와의 대화. 김씨는 "김만배 방패가 튼튼하다", "이지스함이야, 김 이지스"라고 말합니다. "이 큰 사업(대장동 개발)을 해서 언론에서 한 번 안 두드려 맞는 것 봤냐"고도 합니다. '이지스함'은 적 항공기와 전함, 미사일 등을 제압하는 대형 함정입니다.
남욱 변호사도 김씨가 기자들에게 여러 차례 로비를 한 것으로 안다고 진술했습니다.
남 변호사는 검찰 조사에서 "김씨가 기자들과 골프 칠 때 각 기자들에게 100만원씩 줬다고 했다. 2019년 5월, 한겨레 기자의 집을 사줘야 된다고 하면서 저와 정영학에게 3억원씩 가져오라고 했고, 실제로 줬다. 기자들 로비를 했기 때문에 대장동에 대한 기사를 모두 막을 수 있었다고 했다"고 진술했습니다.
한겨레·중앙일보·한국일보의 간부급 언론인들이 김씨와 거액의 돈 거래를 한 사실이 밝혀져 해고되거나 사표를 내고 물러났습니다. 한겨레 전 기자는 2019년 총 9억원을 김씨에게 빌렸고, 중앙일보 전 기자는 2019년 9천만원, 2020년 1억원을 받았습니다. 한국일보 전 기자는 2020년 1억원을 김씨에게 빌렸습니다.
김씨는 기자 시절 법조계를 오래 출입했고, 각 언론사의 법조팀장을 맡았던 이들과 친해진 것으로 전해집니다. 대장동 수익이 발생하기 시작한 2019년 이후에 돈들이 오고 갔습니다. 한겨레 전 기자의 경우 차용증 없이 9억원을 빌려줬습니다. 동료들에게 이렇게 많은 돈을 빌려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2) 법조계 "특검 딸 11억 빌려주고 대법관 방 들락거려‥"
남욱 변호사는 또 검찰에서 "김씨가 판검사들과도 수도 없이 골프 치면서 1백만원씩 용돈을 줬다고 들었다. 골프 칠 때마다 5백만원씩 가져 간다고 했고 엄청 썼다고 들었다"고 진술했습니다.
김씨와 법조인들의 관계는 이른바 '50억 클럽' 의혹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50억 클럽에 거론된 이들 대부분 고위 법조인들입니다. 20년 넘게 법조를 출입하며 법조계 인맥을 깊고 넓게 쌓아왔다는 건 기자들 사이에서 잘 알려졌습니다.
대표적 인물들이 박영수 전 국정농단 특검과 권순일 전 대법관입니다.
먼저 박영수 전 특검과의 인연을 정리해보겠습니다. 김씨는 2002년 뉴시스 법조 기자로 근무할 당시 서울지검 1차장이었던 박영수 전 특검과 친분을 쌓았다고 전해집니다. 그 뒤 2011년 머니투데이로 옮긴 뒤 동료 기자 배모 기자가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출신 변호사를 소개해달라고 해 박 전 특검을 소개해주기도 했습니다. 배모 기자는 천화동인 7호의 소유주로 120억원을 배당받게 된 인물입니다.
김씨는 나중에 대장동 사업에 관여하기 시작한 2014년엔 남 변호사와 또다른 대장동 개발업자 조우형씨에게도 박 전 특검을 소개해주줬습니다. 남 변호사와 조씨는 박 전 특검의 사무실인 법무법인 강남을 자연스럽게 드나들게 됐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김씨가 박 전 특검에게 직접적으로 금품이나 향응을 제공한 적이 있는지는 명확하게 확인된 바가 없습니다. 다만 김씨는 검찰 조사에서 화천대유에 취직한 박 전 특검의 딸에게 돈을 빌려준 사실을 시인하며 사실상 박 전 특검과의 각별한 인연을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김씨는 "박 전 특검 딸에게 매월 400만원 상당의 급여를 지급한 것 외에 총 11억원을 빌려줬다. 처음에는 박 전 특검 딸의 개인 소송 때문에 3억원을 빌려주고, 그 이후에는 생활비 명목 등으로 빌려주게 된 것"이라고 검찰에 밝혔습니다. 박 전 특검 딸은 화천대유로부터 대장동 신축 아파트를 분양받기도 했고요.
또 다른 핵심 인맥 권순일 전 대법관은 향후 대장동 수사의 또 다른 뇌관이 될 수도 있습니다. 2019년 이재명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최종 선고 당시, 권 전 대법관이 김씨의 부탁으로 무죄를 줬다는, '재판거래' 의혹이 불거진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당시 유무죄 의견이 팽팽하게 엇갈렸던 상고심 판단에서, 최종적으로 권 대법관의 한 표 덕분에 무죄가 선고됐습니다. 당선무효형이 확정될 뻔 했던 이재명 지사는, 이 판결로 기사회생해 정치적 생명을 연장할 수 있었습니다.
그 판결 무렵인 2019년 7월부터 이듬해 8월까지 김씨가 권순일 대법관 집무실을 여덟 차례 방문했다는 출입 기록이 이미 공개됐습니다. 퇴직 이후 권 전 대법관은 화천대유 고문으로도 활동한 이력이 있습니다.
3) 그리고 지역 정계‥"정진상 거쳐 이재명에 보고됐다"
2014년 7월 28일자 머니투데이 보도입니다.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과의 대담 기사인데, 이 시장과 대담한 기자가 바로 김만배씨입니다. 이 대담 외에 김씨가 이재명 대표와 직접적으로 만났다는 사실이 추가로 드러난 건 아직 없었습니다.
취재 결과, 김만배씨는 정진상 실장과 오랜 기간 친분을 이어온 것으로 보입니다. 이 대표가 성남시장이던 시절, 정진상씨는 성남시 정책실장이었습니다. 주로 성남시 주재 기자들과 인연을 쌓았지만, 서울 주요 언론 기자들 몇몇과도 소통했다고 합니다. 김씨 역시 기자 대 취재원으로 알게 됐는데, 정 실장은 김씨에게 주로 '법조계 소식'을 물어보고, 이를 이 대표에게 보고했다고 합니다.
김씨와 정씨 사이에 대해 잘 아는 한 관계자는 "지역지가 아니고 어떤 중앙지 기자가 성남시 정책실장에게 관심을 주겠나. 소소한 인연이 닿아도 주요 언론 기자들을 알게 되면 고마워 했다"고 전했습니다. 정 실장은 이런 김씨와의 친분에 대해선 검찰에서도 인정한 바 있습니다.
검찰은 정 실장이 김씨와 친분을 쌓고 대장동 사업을 함께 논의하며, 개발이익을 나눠갖기로 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정영학 녹취록'에는 김만배씨와 정영학 회계사 등이 대장동 수익을 어떻게 나눌지 논의하는 대화 내용이 담겼습니다. 검찰은 논의 바로 다음 날부터 사흘 간 네 차례 김씨와 정 실장이 통화한 내역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검찰은 이재명 대표에게 보고하기 위해 정진상씨가 김씨와 여러 차례 통화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최근 공개된 공소장에는 "유동규 전 본부장이 김만배씨의 '지분 약속'을 '정진상 실장을 통해' 이재명 시장에게 보고해 승인받았다"고 적시됐습니다. 김만배 로비의 최종 정착지는 이재명, 거기 이르는 통로는 정진상이란 게 검찰의 시각입니다.
정 실장 측은 "당시 진행되고 있던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재판 동향에 대해 물어보려고 김씨와 통화한 것"이라며 "여러 차례 전화를 했지만 각각 20초, 1분 정도에 불과하다"고 검찰에 해명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이재명 대표가 또다른 최측근인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이 검찰에 체포될 무렵, 정 실장에게 김만배씨와의 관계에 대해서 물었던 것으로도 파악됐습니다. 당시 이 대표가 정 실장에게 "김씨와 연락하는 사이인 게 맞냐"고 묻자, 정 실장이 "얼굴을 자주 보는 건 아니고 통화만 주고받는 사이"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이재명 조사 이후에도 남는 로비 의혹들‥'김만배의 입' 열리나?
검찰은 일단 대장동 본류 수사가 먼저라는 입장입니다. 기자들과의 돈거래, '50억 클럽', 지역 정계까지 '이지스함' 김만배의 전방위적인 로비 의혹도 조사할 건데, 일단 큰 줄기부터 정리하고 잔가지를 수사한다는 겁니다.
김씨는 천화동인 1호의 주인은 자신이며 지분도 모두 자신의 것이라며 '428억 약정설'은 허위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가 스스로 로비에 대해 말한 사실이 녹음된 '정영학 녹취록'도 "과장되고 사실이 아닌 말들을 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기자들, 법조인들, '이재명측'에 대한 로비 의혹 규명은 결국 김만배씨의 '입'에 의존할 수 밖에 없습니다. 검찰은 1년 4개월 동안 끊임없이 김씨를 압박했습니다. 특히 최근 최측근 2명이 대장동 개발 이익 245억원을 숨긴 혐의로 체포돼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김씨 스스로 최측근들의 체포에 자해를 하고 극단적 선택을 시도할 정도로 압박은 거세졌습니다. 검찰은 지금도 김씨가 대장동 이익을 어디 숨겼는지 쫓고 있습니다.
이런 압박 때문에 김씨가 유동규 전 본부장, 남 변호사처럼 진술 입장을 번복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검찰 수사는 한결 더 수월할 겁니다. 이재명 대표 조사로 대장동 수사가 클라이맥스를 향해가고 있습니다. 아직 언론계, 고위 법조인 등 '김 이지스'의 로비 의혹은 해소되지 않았습니다. 기자 출신 로비스트 김만배씨 수사가, 몇 번 더 서초동을 뒤흔들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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