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 공동생활가정, '그룹홈'에 대해 들어보셨나요? 보육원의 집단생활이 보호 아동·청소년 개개인에 대한 세심한 보살핌을 어렵게 하는 만큼 대안으로 제시된 보호 형태입니다. 아파트, 빌라 등 주택 형태의 공간에서 7인 이하 동성 아동들이 보호자와 함께 지내도록 규정돼 있습니다. 아동학대, 부모의 부재‥ 여러 이유로 집을 떠나온 미성년 아이들에게 '집'을 마련해 주자는 취지로 도입됐습니다.
지난 2021년, 경기도 부천의 한 그룹홈에서 원장과 그 아들인 보육 교사에게 지속적으로 학대를 당해왔다는 고소장을 경찰이 접수했습니다. 하지만 아동학대 사건의 특성상 입증이 어려웠습니다. 이곳의 경우 아이들의 휴대전화를 수시로 압수하곤 해, 증거를 남기기 더더욱 힘들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경찰 수사는 2년 가까이 걸렸습니다. 검찰이 보완 수사만 3차례 요구했는데, 최근 이곳에 있던 다른 학생 두 명이 추가로 고소하면서 그나마 속도가 붙은 겁니다.
현재까지 경찰이 보고 있는 피해 아동은 총 5명. 그 중 3명을 지난 2월 만나봤습니다.
"등 전체에 아예 피 터진 적도 있고, 머리 맞은 적도 있었어요."
"'사탄아 물러가라' 등을 때리면서 그러고. 손이나 파리채, 박타기 그런 걸로…"
심부름을 실수했다거나 집에 늦게 왔다, 휴대전화를 내지 않았다… 폭력의 이유와 형태는 다양했습니다. 손과 발로 때리고, '박타기'라고 부르는 나무 안마기로 매질하는가 하면 오리걸음과 '엎드려 뻗쳐' 등 얼차려도 호되게 시켰다고 합니다. 5시간 동안 그룹홈 2층 거실을 오리걸음으로 돌았다는 한 아이는, 다음날 덜덜 떨리는 다리로 등교해야 했다고 말했습니다. 주택 밖의 창고에 감금하거나, 다른 아이들로부터 소외시키기도 했습니다. 한 아이는 사진을 몇 장 보여줬습니다. 컴퓨터 앞에서 혼자 밥을 먹는 모습, 식사가 차려진 식탁 앞에 다른 아동들과 함께 앉아 있지만 그 아이 앞에만 개인 접시가 없는 모습… '문제가 있다'며 원장 성 씨 일가가 주도한 따돌림이었다고 합니다.
검증되지 않은 유사 의료 행위도 이뤄졌습니다. 원장 아들 최 씨는 해외에서 대체의학을 공부해왔다는 이유로 그룹홈 아동들을 일종의 연습 대상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소화불량에 시달리던 아동에겐 병원 진료 대신 나무 안마기로 폭행을 하고, 눈처럼 예민한 곳에 침을 놓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나마 심장병을 앓는 아이의 경우 복용하던 아스피린으로 인해 혈액 응고가 잘되지 않자, 그제서야 유사 침술 대상에서 제외됐다고 말했습니다.황당한 일도 벌어졌습니다. 2019년 가을, 서울 광화문에서 주말마다 이뤄진 전광훈 목사의 철야 태극기 집회. 주말마다 자정을 넘겨 끝났던 집회에 아직 미성년자인 보호 아동들이 동원됐다는 겁니다. 목사이기도 했던 원장 성 씨에게 끌려간 겁니다. 방한용품이나 두꺼운 외투 없이 밤을 지새운 아이들은 너무 추웠다고 말합니다.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한 10월, 새벽 시간 최저기온이 영상 2도까지 떨어지던 때였습니다.
온갖 방법을 동원해 시설 밖으로 쫓아내기까지 했습니다.
환청이 들리냐고 묻고, 그렇지 않다고 하면 때렸다고 합니다. 결국 근처 정신과 의원에 데려가 아동들에 대해 조현병 진단을 받기까지 이르렀습니다. 당시 진료 기록을 입수해 살펴보니, 보호자로 등장하는 성 씨는 아이들이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수차례 반복해 말했습니다. 사정을 모르는 친족들의 동의까지 얻어내 정신병원 폐쇄병동에 입원시키기까지 했습니다. 최근 다른 기관에서 재검사를 받아본 결과, 이들은 조현병이 없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한 학생의 경우 소년원에 보내지기까지 했습니다. 다른 아동과 장난을 치다 발가락에 전치 2주 상처를 입혔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경찰 신고를 한 원장 일가는, 법원 소년부로 넘겨진 학생에게 불리한 진술과 정황들을 정리했습니다. 자그마치 11장 분량의 진정서. 학생을 도와야 할 국선 변호인 역시 당사자와는 한 마디 논의 없이, 사실상 상대측인 원장 의견만 재판부에 참고 자료라며 제출했습니다. 이 학생은 결국 보호처분 7호를 받아 의료보호시설로 보내졌습니다.
지속된 민원과 신고에도 '문제없다'던 부천시‥이제 와선 "몰랐다"
아이들이 말해준 주소로 찾아가 봤습니다. 서울과 경기도 부천의 경계 지역, 인적이 드문 골목길 안쪽으로 들어가니 일종의 기독교 '공동체 마을'이 나타났습니다. 기독교 재단 소유의 부지엔 기도원과 선교회, 대안학교 등이 모여 있었습니다. 그사이 낡은 2층짜리 벽돌 주택이 보였습니다. 문제의 그룹홈이었습니다.
근처 주민들은 아이들을 본 지 오래됐다고 말합니다. 원장이 그룹홈을 더 이상 운영하지 못하게 되었다고 이야기한 뒤, 1년 넘도록 아이들이 오가는 걸 보지 못했다고요. 그룹홈 사업 정지 처분이 내려진 지난해 5월과 시기가 들어맞았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던 중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원래 이 자리엔 같은 재단 소속의 보육원이 있었다고 하더군요.
당시 운영 지원금 횡령 등 문제가 불거져 지난 2016년 폐쇄 결정이 내려진 곳이었습니다. 이곳에 있던 62명의 아이들도 성인이 됐단 이유로 퇴소 조치되거나 부천시 또는 타 지역 그룹홈으로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된 그룹홈은 보육원 건물에 그대로 세워졌습니다. '주택'에서 아이들에게 가정을 마련해준다는 그룹홈 취지에도 어긋나는 셈입니다.
부천시는 지난 2021년 피해 아동의 첫 고소가 이뤄지기 전, 이 시설에서 문제가 있었다는 걸 전혀 몰랐다고 합니다. 아이들이 직접 말하지 않으면 알 방법이 없다며, 그간 정해진 실태 조사를 충분히 해왔다고 합니다. 본인들도 이듬해 내린 사업 정지 처분 관련해 그룹홈 측과 행정소송을 진행하고 있는 상황이라, 취재에 대응하기 어렵다고도 했습니다. 그룹홈에 1년 이상 머무는 아동들의 경우 심층적인 면담이 필요합니다. 분리된 공간에서 일대일 조사를 해야 하는 겁니다. 그래서 한 학생은 현장 조사에 나온 아동보호 전담 요원에게 학대 사실을 알렸다고 합니다. 하지만 되레 원장에게 다시 사실관계를 파악한다며 전화를 해, 더 심한 폭력이 돌아왔다고 합니다. 분리 조치 등은 당연히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당시 학생이 작성하도록 강요당한 각서에는 '신고 전화를 하지 않겠다.' '기관과 선생님들을 비방하거나 욕설을 하지 않겠다.' '위반 시 민형사상 책임을 전적으로 지겠다.'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나아가 취재 중 이전 보육원의 문제들뿐 아니라 새로 세워진 그룹홈과 관련해서도 부천시 측에 수차례 민원을 제기했다던 분을 만났습니다. 학대 정황을 구체적으로 알지는 못했다고 하지만, 적어도 시설 운영의 투명성과 아이들의 양육환경에 관련한 문제제기는 이뤄졌던 셈입니다.
부천시가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는 사이 시간은 흘렀습니다. 왜 문을 연 지 4년 만에야 첫 경찰 고소가 접수됐을까요. 원장 일가는 아이들을 심리적으로 지배하려고 했습니다. 원장 본인의 교수 경력 등을 운운하며, 아이들이 문제를 일으킬 시 갈 곳이 없다며 협박했다는 겁니다. '부모님이 기르지 못하니까 이곳으로 보낸 건데, 신고를 하면 소문이 나서 다른 시설로 옮겨갈 수 있겠냐'며 폭언을 일삼았다고 합니다.
아이들이 다니던 학교는 물론, 조현병 진단을 내린 병원도 전혀 몰랐습니다. 병원 측에 찾아가 봤습니다. 아동학대 신고 의무자임에도 왜 관계기관에 알리지 않았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병원 측은 '아동보호시설에서 지내는 아이들인 만큼 양육환경에 결핍이 있으니, 아이들 여럿이 정신질환을 앓는 게 이상하지 않다고 여겼다'고 해명했습니다.
계속된 집착‥ 접근금지 명령에 개명, 전학까지
그룹홈을 처음 찾아간 날엔 성 씨와 아들 최 씨를 만날 수 없었습니다. 밤이면 원장 가족들이 모습을 보인다는 아이들의 말을 듣고 야간에 다시 찾아가 봤지만, 해외여행을 떠났다는 말뿐 만나보지 못했습니다. 전화로는 훈육 목적으로라도 체벌한 적이 없고, 태극기 집회는 아이들이 원해서 데려갔다고 항변했습니다.앞서 말했듯 아동학대 사건은 증거를 남기기 어렵습니다. 올해 초 원장과 아들 보육교사에 대해 경찰이 아동학대 혐의 기소 의견으로 사건을 검찰로 보냈지만, 재판이 끝나기까진 아직 긴 시간이 남아 있습니다. 2021년 첫 경찰 고소가 이뤄지고 나서 원장 일가가 남아 있던 아동들에게 작성하도록 강요한 사실 의견서도 바로잡아야 합니다. 해당 문서들엔 고소한 아동이 폭력적이었고, 문제아인 것처럼 묘사돼 있습니다.
아직 고등학생인 피해 청소년 한 명을 돕고 있는 로엘법무법인의 최건희 변호사는 이 부분에 주목했습니다. 피해 진술의 신뢰도를 낮추기 위해 다른 아이들을 이용했다는 겁니다. 형법상 강요죄가 적용될 수 있는 대목입니다.
사업 정지 처분 이후 아이들이 뿔뿔이 흩어지자 재판에 유리한 정황 확보를 위해 집요한 연락이 이어졌습니다. 성 씨 일가는 사실확인서를 내지 않은 다른 아이에겐 문자와 전화, 차단당한 이후엔 페이스북 메신저와 인터넷 메일로까지도 수차례 접촉을 시도했다고 합니다. 다니던 학교로도 직접 찾아와, 접근금지 명령에 전학을 가야 했습니다. 또 다른 아동은 개명까지 선택했습니다. 왜 피해자가 숨어다녀야 하는 걸까요.
원장 일가는 다시 그룹홈 문을 열 수도 있습니다. 지난해 5월 부천시가 내린 사업 정지 처분에 대해 행정소송을 제기해 아직 진행 중이기 때문입니다. 그마저도 집행정지 인용 결정이 내려져, 형식적으로는 그룹홈이 운영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아동학대 사건의 수사 및 재판 결과에 기반해 행정소송도 진행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폭로하기까지 걸린 2년과, 초기 수사가 마무리되는 데 추가로 걸린 2년. 아이들이 성년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검찰과 법원이 어떤 판단을 내릴지 주목됩니다.
온전하고 조화로운 인격 발달을 위해 아동은 가정 환경과 행복, 사랑과 이해 속에서 성장해야 한다.
사회에서 한 개인으로서 삶을 살아가기 위해 충분히 준비되어야 하며, 유엔헌장이 선언한 평화, 존엄, 관용, 자유, 평등, 연대의 정신 속에서 양육 받아야 한다.
- 유엔아동권리협약 中
(취재: 유서영 rsy@mbc.co.kr · 이지은 ezy@mbc.co.kr / 영상취재: 이지호 나경운 윤병순 이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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