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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기자이미지 나세웅

[서초동M본부] 국방부가 세 번 추방한 군인‥왜 군에 돌아가고 싶으세요?

[서초동M본부] 국방부가 세 번 추방한 군인‥왜 군에 돌아가고 싶으세요?
입력 2023-05-07 07:30 | 수정 2023-05-07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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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초동M본부] 국방부가 세 번 추방한 군인‥왜 군에 돌아가고 싶으세요?
    세 번의 추방… 명예회복 위한 법정 싸움에 14년이 걸렸다

    14년… 군에서 강제 전역 당한 지영준 소령이 명예를 회복하는데 걸린 세월입니다. 파면과 복무부적합 판정, 강제 전역… 지난 3월 대법원은 지 소령을 세 번째 쫓아낸 군의 강제 전역 처분이 부당하다고 판결했습니다. 지 소령은 군을 사랑했지만, 군은 집요하게 그를 추방시켰습니다. 그는 돌아가기 위해 법원에 14년을 호소했습니다.

    발단은 2008년으로 거술러 올라갑니다. 그해 10월, 군 법무관이던 지 소령은 동료 법무관 5명과 함께 헌법소원을 제기했습니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뒤, 국방부는 갑자기 불온 서적이라며 23개의 책을 군 부대에 반입할 수 없도록 조치했습니다. 지 소령은 이 조치가 "헌법상의 표현의 자유와 학문의 자유를 침해했다"고 봤습니다.

    * 불온 : 사상이나 태도 따위가 통치 권력이나 체제에 순응하지 않고 맞서는 성질이 있다

    독재정권 시절, 정권을 비판하는 자에게 붙였던 딱지가 공문서에 다시 등장했습니다. 옛 기무사령부의 엉뚱한 보고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기무사령관은 국방부 장관에게 일부 단체가 군장병들에 대한 반정부 반미 의식화 사업을 위해 특정 서적들을 추천하고 있다고 보고했습니다. 보고를 받은 국방부 장관은 그 책들에게 불온 서적이란 딱지를 붙여 차단하라고 지시한 겁니다.
    [서초동M본부] 국방부가 세 번 추방한 군인‥왜 군에 돌아가고 싶으세요?
    '베스트셀러' '우수 추천 도서'가 "불온서적"?

    불온 서적 딱지가 붙은 책 중에는 장하준 교수의 <나쁜 사마리아인들> 같은 경제분야 서적은 물론,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의 <대한민국사> 등 시중에서 널리 읽히는 베스트셀러가 포함됐습니다. 아동문학가 권정생 선생의 산문집 <우리들의 하느님>, 소설가 현기영 작가의 <지상에 숟가락 하나>처럼 우수 추천도서도 불온서적에 포함돼 논란이 됐습니다. 상대를 격파할 반대 논리로 군을 무장시키는 것이 아닌, 단지 군 영내에 책 몇가지를 들여올 수 없도록 하겠다는 대응 방식 자체도 문제였습니다. 헌법재판소가 연 토론회에서 국방부 관계자는 "학문적 관점에선 문제가 안될 수 있다"면서도 "군은 정신 전력 차원에 수용하기 어렵다"고 주장했습니다.

    헌법소원냈다고 보복 징계… 주동자는 파면

    군의 대응은 단호했습니다. 이듬해인 2009년 3월, 헌법소원에 가담한 6명을 모두 징계했습니다. 처음 헌법소원을 제안한 박지웅 법무관, 그리고 가장 선배인 지 소령을 주동자로 보고 파면 했습니다. 하루 아침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가장이 됐습니다. 군 법무관은 10년 복무를 해야 변호사 자격을 얻을 수 있습니다. 지 소령은 9년 가량 근무해 1년여를 못 채운 상태였습니다. 게다가 파면된 공무원은 3년간 변호사 사무실 직원으로도 고용될 수 없습니다. 호구지책으로 아내가 학습지교사로 나서야 했습니다.

    정작 헌법소원은 허망하게 끝났습니다. 당시 헌재는 재판관 6대 3의 의견으로 헌법소원을 기각했습니다. 국가 안보와 정신 전력 보전을 이유로 들었습니다. 징계 처분을 취소해달라고 소송을 냈는데, 100% 승소는 아니었습니다. 1,2심 재판부는 파면은 과도하다고 봤지만, 상부 보고 없이 헌법소원을 제기한 것이 징계 사유는 된다고 봤습니다. 복직 되더라도 다시 징계를 받을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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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년 6개월 만에 복귀… 또 보복 그리고 강제전역

    군은 2심 판결에 대해 상고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군은 파면 2년 6개월만인 2011년 9월 지 소령이 복귀하자 마자 다시 정직 1개월 징계를 내렸습니다. 정직 기간이 끝나자, 이번엔 현역 복무에 부적합하다며 강제 전역을 명령합니다.

    두번째 추방. 지 소령은 다시 소송에 나섰지만, 이번엔 대법원이 발목을 잡았습니다. 양승태 대법원이 결론을 내리지 않은 채 차일피일 시간을 끈 겁니다. 결국 김명수 대법원이 들어선 뒤인 2018년 3월에서야 대법원은 부당 징계라며 지 소령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 소령 등이 헌법소원을 제기한 것이 정당한 지시에 불복종해 군 기강을 저해하기 위한 목적이 있다고 할 수 없고, 헌법소원 청구 전에 군 내부의 사전건의 절차를 거쳐야 할 의무가 있다고 볼 근거도 없다"고 결론지었습니다. 두 번째 소송에만 6년 7개월이 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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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끈질긴 군의 보복… 계급 정년 문제로 또 다시 강제전역

    그러나 군은 보복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2018년 8월 파기환송심에서 지 소령을 복귀시키라는 판결이 확정됐지만, 이번엔 나이를 문제삼고 나섰습니다. 소송이 진행되던 2015년, 지 소령이 계급 정년인 만 45세를 넘긴 겁니다. 군은 3년을 거슬러 올라가 전역 명령을 다시 내렸습니다.

    또 다시 소송… 다시 4년 여가 흐른 지난 3월에야 대법원은 이 조치 역시 부당하다고 판결했습니다. "군이 거듭해서 위법한 징계를 내려 제대로 근무하지 못했고, 그 결과로 근무평정도 받지 못했다"고 봤습니다. 따라서 "계급 정년을 연장해 적용해야 하고 현역 지위에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체제에 순응하지 않고 맞서는 성질이 있다"는 '불온'의 사전적 의미를 다시 떠올려 봅니다. 부당한 징계라는 법원의 거듭된 판결에도 세 번씩 지 소령을 추방한 군의 고집이 오히려 불온한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조금도 태도가 변하지 않은 군과의 어려움 싸움에 그렇게 14년이 걸렸습니다. 언론의 관심은 사그라들었습니다. 신문지상에 오르던 지영준 소령의 이름은 대법원 판결을 전하는 짤막한 기사에서도 A씨라는 익명으로 처리됐습니다. 그의 이름 세 글자를 다시 찾아주고 싶었습니다. 대전에서 변호사로 일하고 있는 지 소령에게 전화 인터뷰를 청한 이유였습니다.

    지 소령은 MBC와의 전화에서 "뉴스도 많은데 기억해줘서 고맙다"는 말을 반복했습니다. 그러면서 "이제 네 번째 입대를 준비하려고 한다"고 웃으며 승소 소감을 말했습니다. 또 "시간이 많이 흘러 오래 복무하긴 어렵게 됐다"며 "명예롭게 제대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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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무실 직원들도 승소 사실을 잘 모르더라.

    주변 사람들은 잘 모른다. 승소했다는 소식이 들린 다음에야 아내에게도 말해줬다. 사실 나 때문에 너무 고생을 해서… 말을 잘 안 하려고 했었다. 지금은 괜찮지만 그전에 너무 스트레스를 받고 힘들어 했다. 2018년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승소 판결이 나왔을 때엔 아내에게 알리지 않았다. 그러다 다른 곳에서 듣고 온 아내가 서운하다며 엄청 혼을 낸 적이 있다.(웃음) 그래서 이번엔 먼저 알렸다.

    군대의 문을 강제로 나선 뒤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다. 언제가 가장 어려웠나?

    첫 파면 때가 힘들었다. 2년 11개월 정도를 제대로 된 직장이 없이 지내야 했다. 사실 미국 육군 법무관학교 위탁 교육에 선발돼서 가족들과 연수를 갈 준비를 하고 있다가 당한 일이었다. 어학반에서 원대복귀시키고 다음날 파면했다. 사위를 믿던 장인어른이 많이 충격을 받으셨다. 파면 징계로 나오니 변호사 사무실 직원으로도 일을 할 수가 없었다. 그때 아이들이 5살 3살이었다. 언뜻 아빠가 계속 일을 안하고 자기들하고 인라인 타고 놀았던 게 기억이 난다곤 하더라. 그 아이들이 이제 고3 고1이 됐다.

    한번의 파면과 두번의 전역명령, 대법원이 재판을 끄는 동안 시간이 흘러간 것이 당사자 잘못이 아닌데도 계급 정년을 이유로 내보냈다. 군은 거듭 괴롭혀서 쫓아내겠다는 것 같다.

    군에선 헌법소원 자체를 항명이라고 보고 용납하기 어려운 행동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처음 복직했을 때, 법원이 파면은 부당하다면서도 징계 사유는 된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내 잘못이 있다고 하니 전역하겠다는 의사를 타진한 적은 있다. 국방부에선 잠시만 기다려보라고 하더라. 그러더니 1개월 정직 중징계를 내리고 (자진전역이 아닌) 강제 전역을 시키더라. 그게 군의 자존심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발단이 됐던 헌법소원으로 돌아가보자. 장병을 위한다는 취지라고 해도 상부에 사전 보고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 있다.

    다른 것도 아니고 누구나 낼 수 있는 헌법소원을 내는거라 문제가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기자주- 대법원은 사전 건의를 했어야 한다는 국방부의 주장에, "건의 제도는 위법 의심이 있는 명령의 적법성과 타당성을 확보하고자 하는 것일 뿐 정당한 기본권인 재판 청구권을 행사하기 전에 거쳐야하는 절차는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때 헌법소원을 처음 낸 것이 아니었다. 당시 법에는 군 법무관 보수를 법관에 준하게 돼 있는데, 그 시행령을 만들지 않고 일반 장교 봉급에 맞춰서 주고 있었다. 그러니 좋은 인력이 들어오지 않고 근무 연한만 채워서 퇴직하는 문제가 있었다. 동기 회장을 하면서 소송을 주도해서 승소해 보수 규정이 바뀌었다. 그때는 아무도 문제삼지 않았다.그때 연으로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 동기들이 월급에서 매달 돈을 모아 생활비를 주기도 했다.


    아쉽게도 애초에 시작했던 군 불온서적 헌법소원은 승소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군을 상대로 재판을 계속해온 이유는?

    잘못된 인사 보복에 대한 선례를 남기고 싶다. 예전에는 아니었지만 이제 보수 진보 진영간 갈등이 심해지면서, 정권을 누가 잡느냐에 따라 최선을 다해 성실히 복무한 공무원들을 해임하고 그러지 않나. 그런 강제적인 인사조치를 막을 수 있는 하나의 표본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다만,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라고 하지 않나.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결론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결정이 나오기까지 대법원이 오랫동안 사건을 들고 있었던 게 좀 아쉽다.


    군을 원망하거나 앞장서서 인사조치를 했던 사람들이 야속하진 않나?

    (잠시 침묵) 그럴 때도 있었다. 이제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그런 생각을 빨리 잊어야 내가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제 과거의 지난 일고 돌아보면 지금까지 다 잘 버텨왔던 것 같다. 아내도 나도.

    대법원 판결 덕분에 소송으로 흘려보낸 시간 만큼 정년이 연장될 수 있지만 이제 판결이 파기환송심에서 확정되면 (소속이었던) 육군 법무실하고 협의를 할 생각이다. 다시 돌아가서, 군을 나오는 결정을 하더라도 명예롭게 제대하고 싶다.


    * 그의 바람대로 이제 대법원 판례에 따라 아무리 군인이라고 해도 정당한 기본권 행사를 이유로 지휘부가 보복성 징계를 내릴 순 없게 됐습니다. 계급 정년을 볼모로 한 부당한 압박도 앞으로는 어려워졌습니다. 군 문화가 내부 자정을 통해 개선될 수 있는 길이 더 넓어졌습니다. 그는 이걸 위해서 그렇게까지 군에 돌아가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익명의 A씨가 아닌 이름 세 글자로 그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지영준 소령 덕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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