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당 서현역 흉기 난동 사건. 남편과 손을 잡고 길을 걷고 있던 60대 여성이 숨졌고 13명이 다쳤습니다. 평화로운 목요일 저녁, 사람들이 북적이던 백화점과 지하철역이 순식간에 참극의 현장으로 변했습니다. 중상자가 많은데, 20대 여성은 의식을 찾지 못한 채 뇌사 상태입니다.
흉기 난동범 22살 최원종의 '스토킹 조직' 관련 진술이 알려지자, 또 한번 분노가 일었습니다. "이게 말이 되냐", "이런 말을 믿냐", "일부러 심신미약으로 처벌 안 받으려는 거 아니냐"는 댓글들이 달렸습니다.
아무런 근거도 없이 누군가 나를 해칠 것이라 믿는 것, 정신질환의 대표적 증상인 '망상'입니다. 경찰은 최원종을 상대로 사이코패스 검사를 했지만 '측정 불가' 결과가 나왔다며, "정신질환 때문에 저지른 범행"으로 결론냈습니다. 또래 남성들에 대한 열등감을 표출하며 범행을 저질렀던 '신림동 흉기난동범' 조선과는 다른 유형인 겁니다.
최원종은 중학생 때부터 대인기피증이 심해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진료를 받았고, 조현성 인격장애 진단도 받았습니다. 하지만 "정신과 약을 먹어도 효과가 없다"며 어느 순간부터 병원에 가지 않았습니다. 고졸 검정고시를 치르고 대학교에 입학한 후엔 부모의 집에서 나와 범행 직전까지 혼자 살았습니다. 그러는 동안 증상이 더 악화했을 수 있습니다.[김영희/대한정신장애인가족협회 정책위원장]
"모든 범죄 유형별로 따졌을 때 정신질환 환자들이 일반 인구 집단에 비해 특별히 범죄율이 높은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약을 끊거나 중단했을 때는 위험성이 높아지고, 강력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살인이나 방화 같은 중범죄의 경우에는 일반 인구 집단에 비해 범죄 가능성이 5배~8배 정도 높다는 연구가 있습니다."
'망상', '환각', '환청'은 치료받지 않은 정신질환자들이 범죄를 저지르게 되는 가장 흔한 이유 중 하나입니다.
"새끼 호랑이 한 마리가 앞다리를 들고 저한테 아는 척을 해요."
"해병대원이 헬리콥터에서 밧줄을 타고 우리 집으로 내려왔어요."
"전기포트 밑에는 꼭 식칼을 놓고 물을 끓여야 돼요."
이런 황당한 생각에 끝도 없이 시달리던 한 조현병 환자.
급기야는, "아버지가 저를 발로 차서 아파트에서 떨어뜨리려고 해요!!" 라는 망상 때문에 60대 아버지를 살해하려고 흉기를 휘두르다 경찰에 붙잡혔습니다.
계속 먹던 조현병 약을 자의로 끊었다가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존속살해미수 사건, 2021년 4월 부산지방법원 서부지원 판결문 중)
"할머니의 뇌랑 제 뇌가 연결돼 있어서, 할머니가 움직일 때마다 제 뼈가 부서지는 것 같은 고통이 느껴져요‥"
조현병을 앓고 있던 한 10대는 "할머니만 사라지면 네 몸이 낫는다"고 누군가 자신에게 계속 얘기하고 있다며, 결국 아파트 윗집에 살고 있는 70대 할머니를 흉기로 찔러 살해했습니다.
당시 증세가 심각해 의사가 입원 치료를 권할 정도였지만, 본인이 강하게 거부해 집에서만 지내던 상황이었습니다.
범행 후 이 10대는 경찰 조사에서 "할머니를 죽였는데도 몸이 계속 아파요. 연결이 안 끊어졌나 봐요. 이제는 망했어요." 라고 말했습니다.
(경남 창원 이웃 할머니 살인사건, 2019년 4월)
치료감호 처분을 받은 '정신질환 범죄자'들을 진료하는 국내 단 한 곳의 병원, 충남 공주의 국립법무병원에서 2017년부터 2021년까지 5년간 일했던 차승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환자는 많은데 의사는 늘 정원 미달이어서, 많은 날은 하루에 170~180명씩 환자를 진료했습니다.
조현병 등 중증 정신질환자들의 가장 큰 문제는 '병식'(病識:본인에게 병이 있다는 자각)이 없는 것이라고 합니다.[차승민/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저희도 계속 해결책이 뭘까, 범죄를 줄일 수 있는 예방책이 뭘까 하면 약을 꾸준히 잘 먹게 하는 건데‥ 이 병은 자기가 스스로 약을 챙겨 먹을 생각이 전혀 없어요. '나는 병이 아닌데?' 그럴 때 아무리 말로 설득해도 안 되는 거예요. 그것 자체가 증상의 시작이니까."
그래서 비자의입원(본인 동의 없는 입원)으로라도 치료 시작을 할 수밖에 없는 병인 거예요. 약을 일단 먹고 나면 본인도 좀 편해지는 게 있거든요. 계속 자기를 괴롭히던 소리나 안 좋은 생각들이 사라지니까. 그럼 조심스럽게 '병식 교육'이라고 하는 과정을 거쳐요. '약을 먹고 당신이 좋아진 걸 보니까 분명히 당신이 조금 아팠던 게 맞는 것 같다, 아프면 치료를 해야 되지 않겠냐' 이렇게 해서 접근을 하는 거죠."
여기서 잠깐, 궁금한 몇 가지를 물어 봤습니다.
Q. 망상, 환각 이런 걸 갖고 있어도 일상생활을 하거나 대화를 할 수 있는 건가요?
A. 우리가 갖고 있는 편견 중에서 하나가 '조현병 환자는 정말 아무것도 못할 것이다, 24시간 내내 미쳐 있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을 하는데 정말 증상이 급성기일 때를 제외하고는 일상생활을 어느 정도는 해요. 그러다 보니 치료 시기를 놓치는 것도 좀 있고요. 다들 처음엔 믿기지 않는 거죠. '우리 똑똑한 애가 그런 병에 걸렸다니, 아닐 거야' 믿기지 않으니까 치료 시기를 자꾸 놓치고.(조현병은 10대 이후 20~30대에 주로 뇌 신경계 이상이 생겨 갑자기 발병하고, 아직 정확한 발병 원인도 밝혀진 게 없다)
Q. 약물 치료는 효과가 있나요?
A. 환청이나 망상은 약 먹기 시작하면 한 달 정도 후부터는 많이 없어지고요. 요즘은 장기 지속형 주사제라고 해서 한 달에 한 번 주사를 맞는 약제도 나왔거든요. 굉장히 편리하죠. 그런데 약물 치료로 한 달 만에 좋아진다는 얘기는 거꾸로 보면 한두 달만 약을 끊어도 굉장히 나빠질 수 있다는 거예요.
Q. '정신과 약을 먹으면 바보가 된다', 이런 얘기도 있잖아요?
A. 보호자들이 '얘가 안 그랬는데 정신과 약 먹으면서 점점 둔해지네, 바보가 되네' 하는데 그게 아니고요. 조현병 같은 정신질환의 증상은 양성(망상, 환각, 환청)과 음성(감정 둔화, 무기력)이 있는데 양성 증상은 약을 먹으면 굉장히 빨리 좋아져요. 그런데 음성 증상은 천천히 좋아져요. 몇 년이 걸릴 수도 있어요. 그래서 약을 먹기 시작하면 헛소리 하고 이런 증상은 금방 사라지는데 음성 증상은 아직 진행되고 있으니까 오해를 하실 수 있어요. (음성 증상은 직업 훈련, 재활 치료 등을 병행)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이런 과정이 쉽지 않습니다. 특히 조현병 같은 정신질환은 청소년기 이후 성인기에 발병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성인 환자를 대상으로 가족들이 완력을 행사해야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김영희/대한정신장애인가족협회 정책위원장(조현병 환자 가족)]
"환자들은 환각이 굉장히 생생하게 나타나거든요. 그걸 현실과 구분하는 게 너무 어렵습니다. 본인이 알아서 치료를 받지 않으니까 가족들이 약을 챙겨야 하고, 약을 안 먹으려고 할 때 '먹어라' 하는 과정에서 갈등이 커지게 되죠. 그런데 자꾸 약을 먹으라고 하면 '여기 독을 탔네' 생각하고‥ 그런 망상을 가지면 가족에게 폭력을 휘두를 수 있습니다. 논문이 하나 있는데요. 존속살인 중에서 조현병 환자가 범인인 사건이 전체의 40퍼센트나 차지한다고 합니다. 조현병 환자가 전체 인구의 약 1퍼센트 정도라는 것을 감안하면 상당히 심각한 수준인 것이죠."
정신질환의 증상이 가볍거나, 본인이 치료에 동의한다면 크게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본인이 치료를 강하게 거부하고, 그래서 증상이 계속 악화될 경우에는 환자 스스로는 물론 가족과 다른 사람들에게 매우 위험할 수 있는 겁니다.
그런데 2016년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과 2017년 정신건강복지법 개정 이후 우리나라에서 환자의 동의 없는 입원은 '하늘의 별따기'가 됐습니다. 현행 보호의무자제도에 따라 2명 이상의 보호자, 서로 다른 병원에 소속된 전문의 2명 이상의 일치된 소견이 있어야만 입원을 시킬 수 있게 된 겁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이 조건을 충족하기가 너무나 어렵다는 게 관계자들의 이야기입니다.2019년, 22명의 사상자(5명 사망, 17명 부상)를 낸 진주 아파트 방화 흉기난동 사건. 범인 안인득은 조현병 환자였습니다.
안인득은 병원에서 퇴원한 후 3년 가까이 치료를 받지 않다 범행을 저질렀습니다. 안인득의 형은 범행 이전부터 동생의 증세가 심각하다고 생각해 강제입원을 시키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안인득의 법적 보호의무자는 건강 상태가 좋지 않은데다 고령인 어머니가 유일했고, 한집에 같이 살지 않는 형은 보호의무자에 아예 해당하지 않았습니다. 스스로를 '멀쩡하다'고 생각하는 안인득이 순순히 병원 두 곳에 가서 진단을 받을 리도 만무했습니다. 그러다 끝내 참극이 벌어졌고, 무고한 이웃들이 희생됐습니다.지난 수요일 국회에서는, 다른 해외 선진국들처럼 최소한 조현병과 같은 중증의 정신질환만이라도 가족이 아닌 국가가 주도해서 관리하고 책임지는 <중증정신질환 국가책임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기자회견이 열렸습니다.
특히 "이번 사건 후 법무부와 보건복지부가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사법입원제(법관이 중증정신질환자 입원 결정)'를 공식 검토하기로 한 결정을 환영한다"며, "이번에야말로 사법입원제가 반드시 통과되어야 한다"고 호소했습니다.[이화영/대한신경정신의학회 법제이사(순천향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정신질환은 제대로 치료가 됐을 때 공격성, 범죄율이 훨씬 낮게 떨어지고, 적절한 치료를 받았을 때 회복까지 가능한 질환입니다. 그래서 여러 나라에서 적절한 치료를 어떻게 할까, 고민을 하면서 미국에서는 사법입원, 영국과 호주에서는 정신건강심판원 제도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시행되고 있는 보호의무자제도에 의한 비자의입원은 대한민국에서 정신보건법이 처음 제정될 때 일본의 법을 많이 반영을 했는데, 정작 일본에서는 20년 전부터 보호의무자제도에 의한 비자의입원을 축소시키기 시작해서 2013년에 없어졌습니다. 보호자에 의해서 입원이 유지되는 건 이제 대한민국이 유일합니다.
사법입원, 심판입원 이러면 인권이 침해되는 제도인 것 같지만 오히려 그 반대의 측면이 큽니다. 그래서 저는 사법입원, 심판입원 이런 용어보다는 '안심입원, 안심인권입원' 이런 용어로 좀 바꿔서 진행을 하면 어떨까 말씀드립니다."
실제로 법무병원에 온 정신질환 범죄자들은, '재판'이라는 절차를 거쳤다는 것만으로도 치료의 필요성을 어느 정도 수긍한다고 합니다.
[차승민/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국립법무병원 2017~2021년 근무)]
"저도 민간병원에서 입원을 시킬 때는 상당히 부담스러웠어요. 의사가 1대 1로 얘기를 계속 해야 하니까, 환자들은 믿지 않고. 그런데 법무병원에 가서 보니까 입원을 결정한 사람이 법원이잖아요. 판사와 1대 1로 얘기를 하는 것도 아니고, 변호사도 있고 검사도 있고, 이렇게 굉장히 익명적인 느낌을 주거든요. '내가 공적인 과정을 통해서 입원을 했구나', 그래서 재판 자체를 의심하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자기가 억울하게 입원했다고 얘기하는 사람도 드물었어요. 이런 게 재판이라고 하는 공적 절차의 힘인가 그렇게 생각을 했고."
정신질환자의 입원을 법원이 결정하자는 '사법입원제'라는 대안이 이번에 처음 나온 게 아닙니다. 2018년 故 임세원 교수 피살사건, 2019년 진주 아파트 방화 살인 사건 이후 사법입원제가 핵심 대책으로 떠올랐고, 법안까지 발의됐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언론과 여론의 관심에서 멀어지다가 어느 순간 흐지부지, 국회 임기 만료와 함께 해당 법안이 폐기돼 버렸습니다. 이 시기, 법무병원에 의사로 재직 중이었던 차승민 씨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회고합니다.
[차승민/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국립법무병원 2017~2021년 근무)]
"계속 법 개정을 해달라고 저희 신경정신의학회에서 얘기를 하면‥ 결국엔 이게 누군가 일을 해야 되는 거니까 인력 문제가 항상 제일 크잖아요. 사법입원 제도라고 하는 게 판사님들이 정신과 입원을 판단해줘야 하는 부분이라서 판사 인력 문제가 제일 난항이었고, 가정법원 판사나 다른 인력들을 어떻게든 활용하는 방법을 논의하다가‥ '시작 자체가 불가능하다, 이게 현실적으로 필요는 하지만 불가능하다' (법무부가) 이런 입장이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얘기가 더 이어지기 힘들었던 것 같아요."법관 인력이 하루아침에 늘어날 리 없으니, '사법입원제' 논의가 이번에도 또다시 제자리만 맴돌다 아무 성과 없이 중단되는 것은 아닌지 관계자들이 한목소리로 걱정하는 이유입니다.
[차승민/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국립법무병원 2017~2021년 근무)]
"우리나라는 비자의입원의 요건인 '자·타해 위험성'도 너무 협소하게 봐요. 실제로 뭔가 막 저질러야, 하다못해 그릇이라도 깨고 부숴야 해당하는 거예요. 그런데 예를 들어 미국 뉴욕에서는 환자가 이렇게 공격적인 행동이나 폭력적인 언행을 할 때는 당연히 위험성이 있다고 보고, 거기에 더해 본인이 스스로 약을 먹지 않고 치료를 받지 않으려고 하는 것도 '넓은 의미의 자·타해 위험성'이 있다고 보거든요. 우리도 이런 부분은 좀 더 범위를 확대 해석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여지고요."
[김영희/대한정신장애인가족협회 정책위원장(조현병 환자 가족)]
"급성기 치료를 시작하지 않으면 자·타해 위험성이 급격하게 높아질 경우라면 결정권을 일부 제한하는 게 오히려 환자분의 인권에 더 부합한다고 봅니다. 자신이 어떤 강력 범죄를 일으키는 범인이 되고 싶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본인이 원치도 않는데 앓고 있는 정신질환과 관련해서 그런 범죄자가 된다는 것은 더더군다나 더 비극적인 일이죠."
[배점태/심지회·한국조현병회복협회 회장 (조현병 환자 가족, 조현병으로 입원치료 받았던 아들은 이후 회복해 대학 진학, 사회복지사 자격증 따고 취업)]
"최소한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일정 부분 제한할 필요가 있어 보이는 상황에서만이라도 환자의 건강과 인권, 그리고 이번 사건에서 보듯이 우리 사회의 안전을 위해서 국가가 책임지라는 것입니다. 모든 조현병 환자가 위험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적절한 치료를 못 받거나 치료받다가도 임의로 치료를 중단한 조현병 환자는 아주 극소수이지만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더 이상 끔찍한 사건이 발생하지 않도록 국가가 책임질 것을 호소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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