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9일이면 10.29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지 꼭 1년이 됩니다. 서울 한복판에서 헬러윈 축제를 즐기려던 젊은이 1백59명이 숨지고, 3백20명이 다친 사건은 그 자체로 충격적이었습니다. 경찰의 부실한 사고 대응과 구청의 안일한 안전관리에 문제 제기가 잇따랐습니다.
하지만, '윗선 책임' 논란과 함께 국회 국정조사는 여야 간 정쟁 속에 파행으로 마무리됐습니다. 검찰은 사고 예방과 참사 대응에 실패한 책임을 물어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과 박희영 용산구청장 등을 지난 1월 재판에 넘겼습니다.
MBC는 이 사건의 수사기록을 확보해 분석했습니다. 전체 기록만 1만 2천여쪽에 달합니다. 수사 내용을 정리한 보고서가 161건, 경찰과 소방관, 공무원, 또 생존자와 목격자까지 169명의 진술도 담겨있었습니다. 무엇이 문제였고 책임자들은 무엇이라고 변명했는지 살펴봤습니다.박희영 "주최자 없는 행사‥대비하면 직권남용"
박희영 구청장은 구속된 직후인 지난 1월 검찰 조사에서도 줄곧 다양한 이유를 들어 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박 구청장은 "핼러윈 축제는 행사에 참여한 관람객도 없었고 지역 축제가 아니기 때문에 안전 관리 계획도 수립할 필요가 없었다"고 진술했습니다. 지난해 참사 이틀 뒤 MBC 카메라 앞에서 "핼러윈 데이는 축제가 아니라 일종의 '현상'"이라며 주최자가 없기 때문에 관리 책임도 없다는 입장에서 한발도 움직이지 않은 겁니다.
박 구청장은 또, "인파 관리나 군중 통제는 경찰의 업무"라고 책임을 떠 넘겼습니다. 그러면서 "권한도 없는 자신이 대비를 하는 것이 오히려 직권 남용"이라고 말했습니다. 구청장인 자신이 경찰 업무를 하면 안 되기 때문에, 사고 예방을 위해 안전 관리에 나서면 범죄라는 주장입니다.
검찰 진술에서 박 구청장이 인정한 건 법에 정해진대로 자신이 재난관리책임기관의 장이란 점 단 한 가지였습니다. 검사는 재난관리 책임자라면 지역 특색을 반영해 안전관리 계획을 수립할 의무가 있다고 지적했지만, 박 구청장은 12가지 이유를 들어 부인했습니다.
12가지 방어논리 내세운 박희영 "나는 신이 아니다"
수사 검사조차 답답했던지 "아무 준비한 것도 없고 부구청장에게 대비 현황을 확인하지도 않았는데 잘못한 것 아니냐"고 물었습니다. 박 구청장은 "나는 신이 아니"라고 대답했습니다.
"사람들도 사고가 날 줄 몰랐기 때문에 온 것 않았냐", "제가 신도 아니고 어떻게 예측을 하냐"고 반문했습니다. 그러면서 "사회는 예측을 했나, 언론이 기사를 쏟아낼 때 예측을 했냐"며 억울하다는 취지로 진술을 이어갔습니다.
사건 당일 재난상황실을 겸해야할 당직실 직원들은 박 구청장 지시로 사고 발생 시점까지 집회 전단지를 수거하고 있었습니다. 서울시는 용산구청에 사고 발생 사실을 5차례 전하려 했지만 연결이 되지 않았습니다.
박 구청장은 "자신이 알았으면 뛰쳐 나갔을 텐데, 도대체 어떻게 했길래 이런 건지 안타깝다"고 진술했습니다. "자신은 몰랐다"며 책임을 직원들에 돌리고 "자신은 할 수 있는 역할은 다 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유가족들을 위해 하루에도 몇 번씩 기도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계속 만나서 위로를 하겠다"고 검찰에 진술했습니다."15분이면 기동대 도착‥더 구할 수 있었다"
앞서 10.29 이태원 참사 발생 직전 '압사 당할 것 같다'는 112신고 11건이 접수됐는데도 제대로된 대응 없었다는 사실이 공개됐습니다. 경찰과 검찰은 왜 현장 조치 없이 신고가 종결처리 됐는지 하나 하나 따졌습니다. 수사 기록에선 사고 당일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던 경찰 112시스템의 맹점이 나타났습니다. 인파가 몰리는 상황에서 종종 접수되는 '압사 신고'와 달리 "구조가 진행되고 있다"는 구체적 상황이 담겼고, 112 상황실에서 긴급성이 가장 높은 코드0를 부여했지만 참사를 막지 못했던 이유가 드러났습니다.
참사가 발생한 밤 22시 15분 이후, "압사 당하고 있다", "빨리 와달라"는 신고가 쏟아진 뒤에도 현장 지휘관들의 판단은 늦었습니다. 경찰청 특별수사본부는 <경력 운용 세부 현황 분석과 압사사고 인과관계 검토> 수사보고서에서 사고 1시간여가 지난 밤 11시 40분쯤에야 가까운 곳에 있던 11기동대가 사고 현장에 도착한 과정을 분석했습니다. 종로에서 거점 근무 중이던 기동대는 뒤늦게 지시를 받고도 17분, 여의도에선 20분만에 현장에 도착했습니다.
수사보고서는 만약 용산경찰서가 사고 사실을 파악한 밤 10시 32분쯤 곧바로 동원 지시를 했다면, 15분 만인 10시 47분쯤 기동대의 현장 투입이 가능했을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실제 사고 40여분 지난 밤 11시 1분까지 살아서 스스로 119에 신고한 희생자가 있었지만, 뒤늦은 구조로 끝내 숨진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보고서는 "사고 발생 이후 신속한 상황 파악 및 전파, 기동대 경력 요청이 없어 인명피해가 더 큰 과실이 있다"고 봤습니다. 다만, 법적 책임을 묻기 위해선 숨진 시각과 위치 등을 하나 하나 특정해야하지만, 파편화된 기록으로 이를 확인할 수 없어 이 부분은 재판에 넘기지 못했습니다.<뉴스데스크> 10.29 이태원 참사 기록 분석 결과 공개
1년이 지났습니다. 참사에서 살아남은 부상자들은 스스로를 생존자로 부르고 있습니다. MBC와 만난 이주현씨는 참사 1주기를 보름 앞둔 지난 16일 "골반과 종아리에 있던 상처가 그대로 흉터로 남아 평생 없어지지 않을 것 같다"며 "우리를 잊지 말아달라"고 호소했습니다.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에 참여했던 박상은 전 조사관은 "조사의 골든 타임은 지났다"면서도, "수사에서 드러난 사실 관계를 다시 들여다보고, 어떻게 제도와 시스템을 바꿀지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MBC는 참사 1주기를 맞아, 1만 2천여쪽 수사 기록을 분석했습니다. 공개되지 않았던 구체적인 사실관계들이 촘촘히 담겨 있었습니다. "위험을 신고하면 도와준다"는 국가에 대한 믿음이 깨진 이유를 따져봤습니다. 수사기록에는 공무원들의 무사 안일주의와 근무 태만 행태도 담겨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책임을 져야 할 이들이 뭐라고 변명하는지도 정리했습니다. 분석 결과와 생존자들의 이야기를 이번 주 <뉴스데스크>를 통해 차례로 보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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