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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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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도 특정 못했는데 경찰은 왜 서둘렀나‥이선균 사건이 던진 질문

날짜도 특정 못했는데 경찰은 왜 서둘렀나‥이선균 사건이 던진 질문
입력 2023-12-31 09:00 | 수정 2023-12-31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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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짜도 특정 못했는데 경찰은 왜 서둘렀나‥이선균 사건이 던진 질문
    2023년 12월 28일 고 이선균 씨가 영면했습니다.

    지난 10월 20일, 이선균 씨가 마약 투약 의혹으로 경찰 내사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 지 딱 70일만입니다.

    약 두 달의 시간 동안 이 씨는 경찰에 세 차례 출석했습니다.

    이 씨는 그때마다 언론의 포토라인에 서 고개를 연신 숙였습니다.

    이 씨가 숨진 날 윤희근 경찰청장은 "경찰의 수사 때문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이 씨 수사를 담당한 김희중 인천경찰청장도 "법적 절차에 따라 수사를 진행했다"고 밝혔습니다.

    원론적인 답변에 가깝지만 이 씨의 사망에 대한 책임 추궁에 대해 경찰이 선을 그은 겁니다.

    과연 그렇게만 볼 수 있을지, MBC는 이 씨의 마약 투약 의혹을 경찰에 진술한 유흥업소 실장 김 모 씨의 진술을 확인해봤습니다.

    날짜도 다 못 맞췄는데‥ 김 실장 진술 받고 사흘 만에 입건


    10월 19일 새벽 1시, 경찰은 김 실장을 마약 투약 혐의로 체포했습니다.

    이날 경찰은 김 실장으로부터 "불상의 연예인 사건으로 해커가 제 휴대전화를 해킹했다"는 진술을 확보합니다.

    이튿날, 경찰은 김 실장에게 "이선균을 아느냐"고 묻고, 김 실장이 "알고 있다"고 답합니다.

    그렇게 경찰의 이 씨 마약 투약 의혹 수사가 본격 시작됩니다.

    경찰은 10월 19일부터 12월 19일, 두 달 동안 김 실장을 무려 17차례나 불러 조사했습니다.

    조사 과정에서 경찰과 김 실장이 '이선균'의 이름을 언급한 건, MBC가 확인한 것만 260여 차례입니다.

    김 실장 본인에 대한 조사가 아닌, 사실상 이씨에 대한 조사나 다름없습니다.

    김 실장을 17차례나 불러 조사한 건 다 이유가 있었습니다.

    마약 수사는 피의자가 '언제, 어디서, 누구와, 어떻게 마약을 투약했는지, 기본적인 사실관계'가 확립돼야만 정식 수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김 실장이 이 씨가 마약을 투약했다는 날짜와 정황 진술이 곳곳에서 흔들린 겁니다.

    진술이 흔들리니 부르고 또 불러서 진술을 다듬어야 했던 겁니다.

    김 실장 본인도 조사 때마다 "밤낮이 바뀐 생활을 하다 보니 날짜 개념이 정확하지 않다, 오래된 일이라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는 말을 여러 번 반복했습니다.

    그럼에도 경찰은 불명확한 김 실장 진술 내용을 토대로 CCTV 등을 확인하며 수사를 밀어붙였습니다.

    경찰이 이 씨의 마약 투약 의심 날짜를 4개로 못박은 건 12월 중순이 돼서였습니다.

    이때 수사에 나섰어도 늦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경찰은 그보다 한참 전인 10월 23일, 이 씨를 피의자로 정식 입건했습니다.

    경찰이 김 실장을 체포하고 이 씨에 대한 진술을 받아낸 지 겨우 사흘째가 된 날입니다.

    10월 19일부터 22일까지, 초동수사가 어땠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날짜도 특정 못했는데 경찰은 왜 서둘렀나‥이선균 사건이 던진 질문
    "날짜 개념 정확하지 않다"는 말 반복했는데‥


    19일부터 22일까지 경찰은 김 실장을 매일 불러 조사했습니다.

    10월 20일 경찰은 김 실장 3차 소환조사에서 처음 이 씨에 대해 물어봤고, 김 실장은 "이 씨가 자신의 집에서 여러 차례 마약을 투약했다"고 진술했습니다.

    이때 경찰은 김 실장에게 "최대한 기억을 떠올려 보라"고 했습니다.

    결국 김 실장 진술을 토대로 이씨가 지난 8월 19일부터 8월 29일 사이, 마약을 투약한 것으로 의심했습니다.

    10월 21일 4차 조사. 경찰은 다시 김 실장 진술 토대로 올해 1월 12일, 그리고 5~6월경을 추가로 꼽았습니다.

    10월 22일 5차 조사. 1차 조사에서 대략적인 범위를 잡아놨던 8월경 투약 의심 날짜를 8월 20일로 특정했습니다.

    정리해보면 경찰은 이날까지 이 씨의 마약 투약 의심 날짜를 1월 12일과 8월 20일로 특정했습니다. 바로 다음 날 경찰은 이 씨를 피의자로 입건했습니다.

    그러나 12월 중순, 두 달 만에 경찰이 확정한 마약 투약 의심 날짜는 하나 빼고 다 바뀌었습니다.

    수차례 더 김 실장을 불러서 진술을 받아내고, 김 실장 집 앞 CCTV를 확인한 결과, 경찰은 날짜를 2022년 10월 27일, 2023년 1월 12일, 6월 6일, 7월 8일로 특정한 겁니다.

    12월 중순 투약 의심 날짜를 확정 짓기도 전에 경찰은 이 씨를 10월 28일과 11월 4일 두 번 불러 포토라인에 세웠습니다.

    이 씨의 마약 검사 결과는 두례에 걸쳐 '음성'이 나오고 한 번은 '감정불가'가 나왔습니다.

    결론적으로 경찰이 수사의 가장 기본이 되는 마약 투약 의심 날짜를 특정하지도 못한 채 이 씨를 성급하게 입건했다는 비판은 피할 수 없어 보입니다.

    "대마 파이프 집에 있다"‥ "찾아봤지만 발견 못했다"
    날짜도 특정 못했는데 경찰은 왜 서둘렀나‥이선균 사건이 던진 질문
    더 중요한 건, 경찰이 12월 중순이 돼서 날짜를 네 개 특정했다 하더라도, 이 씨가 마약을 투약했다는 직접적인 증거는 그때도 확보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경찰이 갖고 있었던 건, 역시 김 실장 진술을 토대로 한 정황뿐이었습니다.

    이마저도 김 실장 진술은 흔들렸습니다.

    김 실장은 "대마 흡연용 은색 파이프를 집에 두고 있다"고 진술했고, 경찰은 김 실장 동의를 받고 서울 동대문구 자택을 임의로 수색했습니다.

    하지만 은색 파이프는 어딜 봐도 없었습니다.

    "방 안 서랍장 위에 늘 금색 쟁반을 두고 그 위에 마약을 올려놨다"고도 진술했지만, 쟁반은 거실 서랍장 구석에 처박혀 있던 것을 겨우 찾았습니다.

    물론 김 실장은 경찰이 제시한 네 개의 날짜마다 이 씨가 마약을 투약했다고 매우 구체적으로 진술했습니다. 경찰은 이 점을 신뢰해 이씨를 수사하기로 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세 차례의 조사에서 이 씨는 마약을 투약한 적 없다는 입장을 유지했고, 경찰은 이에 반박할 만한 객관적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19시간 중 1~2시간 만 피해 진술"‥ "그게 문제냐"


    이씨측이 주장하고 있는 소환조사 당시 경찰의 태도도 놀랍습니다.

    이씨측은 이씨 사망 하루 전 경찰에 거짓말 탐지기 조사를 요청하면서 의견서를 냈습니다.

    의견서 내용을 살펴봤습니다.

    이씨측은 "수사관이 김 실장 진술을 제시하며, 실장을 성을 뺀 이름으로만 칭하는 등 경도된 듯한 언급을 여러 번 해 우려된다"고 주장했습니다.

    수사관이 조사 과정에서 "OO는..." 이라 칭하면서 실장과 친분을 드러내곤 했다는 겁니다.

    또 수사관이 조사 중 김 실장과 또 다른 공갈범 박모씨 사이에 나눈 메시지를 제시했는데, 이씨측이 "편집이 돼 맥락을 몰라 믿을 수 없다" 지적하자, 수사관이 "알고 있는데, 그래도 실장 진술이 신빙성 있어 보인다"고 답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자신에 대한 거짓말 탐지기 조사를 경찰에 간곡하게 요청하는 의견서인데, 오히려 경찰의 수사 태도를 지적하는 내용까지 적은 겁니다.

    이는 진술 조서가 정제된 단어로만 쓰이다 보니 이같은 부적절한 발언들이 제대로 담기지 않아 이씨측이 향후 재판 등에 대비해 어떤 형태로든 기록으로 남기려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또 이씨측은 경찰이 지난 23일 19시간 동안 이뤄진 3차 소환조사 당시 "이 씨가 김 실장과 박씨를 공갈 혐의로 고소한 사건에 대해선 겨우 1~2시간 물어본 게 전부였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김희중 인천경찰청장이 28일 브리핑에서 "이 씨의 공갈 피해 진술을 충분히 들어주느라 밤샘 조사를 한 것"이라고 발표했는데, 이씨측 입장에선 그게 아녔던 겁니다.

    이에 대해 인천경찰 관계자는 MBC와 통화에서 "그게 문제냐"고 되물었습니다.

    그리고 "공갈 피해에 대한 진술을 충분히 들었다"고 거듭 주장했습니다.
    날짜도 특정 못했는데 경찰은 왜 서둘렀나‥이선균 사건이 던진 질문
    포토라인 세운 건 경찰이지만‥


    경찰이 무리한 수사를 했다는 비판만큼, 언론을 향한 비판도 큽니다.

    이같은 경찰의 선 긋기에는 '경찰 탓만 할 수 없지 않느냐'는 뜻이 담긴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이선균 씨 조사 때마다 포토라인을 설치해준 건 경찰이지만, 그것을 보도한 건 결국 언론이었습니다.

    3차 조사를 앞두고도 기자들은 계속해서 경찰을 상대로 이 씨의 출석 시간 등을 취재했습니다.

    저희 취재진 역시 마찬가지였고, 이씨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마약 의혹 사건을 나름대로 취재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KBS는 이 씨의 마약 투약 혐의와 전혀 관련 없는 사적인 내용까지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이 씨의 사적인 대화 내용 전부를 공개한 인터넷방송의 행태는 변명의 여지도 없습니다.

    어떤 것이 경찰의 엄정한 수사인지, 또 언론의 공적인 역할은 어디까지인지, 세상을 떠난 이선균 씨는 우리에게 여러 질문을 던진 것 같습니다.

    기사가 나간 뒤 인천경찰 관계자는 "원칙적으로 그 누구도 포토라인을 세우지 않는다"며 "이선균씨가 청사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통제한 것"이라고 알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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