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를 셀 수가 없다.
더 많은 시신이 쌓이면 내 아래 더 많은 죄수가 충원되는 일이 끊임없이 반복됐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최격전지로 꼽히는 동부 바흐무트에 투입됐던 한 러시아 용병의 고백입니다.
26살의 안드레이 메드베데프는 지난해 6월 러시아 용병기업 와그너그룹과 계약을 맺고 우크라이나 바흐무트에서 현장 지휘관으로 활동했습니다.
메드베데프는 미국 방송 CNN과의 인터뷰에서 처음 자신에게 배치된 인원이 10명이었지만 이후 죄수들을 전쟁에 동원하면서 숫자가 급격하게 늘었다고 밝혔습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측근인 예브게니 프리고진 와그너그룹 대표가 러시아 각지 교정시설에서 죄수들을 용병으로 영입해 전선에 대거 투입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충원된 병력 중 상당수는 제대로 된 작전 지시조차 받지 못한 채 전장에 내몰려 무의미하게 죽어갔습니다.
또 전사자가 나오면 나올수록 더욱더 많은 부하를 받았다고 메드베데프는 털어놨습니다.
"실질적으로 전술 따위는 없었다.
우리에게 내려진 명령에는 그저 적의 위치 정도만 나와 있었다.
우리가 어떻게 행동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지시가 없었다."
이 때문에 메드베데프는 와그너그룹 용병들이 '총알받이'였다고 회상했는데요.
그는 우크라이나 파병 6일째 되던 날 그런 모습을 보고 더는 전선에 나서고 싶지 않아졌다고 고백했습니다.
또 와그너그룹 상층부는 사기가 떨어진 용병들을 공포로 다스렸다고 합니다.
메드베데프는 "그들은 싸우길 원치 않는 이들을 둘러싸고 신병들의 눈앞에서 총살했다. 전투를 거부한 죄수 두 명을 모두의 앞에서 사살하고 훈련병들이 파낸 참호 안에 매장하기도 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와그너그룹을 창립한 프리고진 대표와 러시아군 특수부대 장교 출신인 드미트리 우트킨에게 직접 보고할 때도 있었다면서 이 두 사람을 "악마"로 지칭했습니다.
메드베데프는 "만약 프리고진이 러시아 영웅이었다면 그는 스스로 총을 들고 병사들과 함께 나섰을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 전사자 위로금도 '실종' 처리해 미지급 >
또 프리고진이 우크라이나 전선에서 전사한 죄수 출신 용병의 유족에게 1인당 500만 루블, 우리 돈 약 8천700만 원의 위로금을 지급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실제로는 "누구도 그런 종류의 돈을 받지 못했고, 전사자 다수는 그저 실종 처리됐다"고 주장했습니다.
결국 메드베데프는 지난해 말 부대에서 탈주해 러시아 내에 잠적해 있다가 최근 국경을 넘는 데 성공하고 노르웨이에 망명을 신청했습니다.
그는 이 과정에서 10차례 이상 체포될 뻔했고 마지막에는 흰옷으로 위장한 채 얼어붙은 강을 건너야 했다고 말했습니다.
메드베데프는 자신의 진술이 프리고진과 푸틴 대통령을 법정에 세우는 데 도움이 되길 원한다면서 "늦든 이르든 러시아에선 선전전이 먹히지 않게 될 것이고 민중이 봉기하면서 새로운 지도자가 등장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한편, 프리고진은 이와 관련해 CNN에 보낸 이메일 성명에서 "현재까지 와그너그룹이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은 사례는 단 한 건도 기록된 바 없다"며 전사자 위로금이 지급되지 않았다는 의혹을 부인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와그너그룹이 소속 용병을 총알받이 취급하고 즉결처형을 일삼았다는 메드베데프의 발언과 관련해선 "군사상 사안"이라며 언급을 거부했습니다.
프리고진은 앞서 메드베데프가 죄수들을 괴롭히려 시도한 혐의로 처벌됐어야 하는 인물이라고 주장하기도 했었다고 CNN은 전했습니다.
세계
신정연
[World Now] "우리는 총알받이"‥러시아 용병의 고백
[World Now] "우리는 총알받이"‥러시아 용병의 고백
입력 2023-02-01 14:57 |
수정 2023-02-01 15:00
당신의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