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군 러시아 파병'에‥연일 보도자료 내며 "우방국 공조" 강조
북한의 러시아 파병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심상치 않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외신을 중심으로 제기돼 온 '파병설'을 지난달 16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직접 거론한 이래, 파병 당사자인 북한도 사실상 파병을 인정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18일 긴급 안보회의를 주재하며 '북한군 파병에 따른 조치를 강구할 것'이라고 공언했고, 대통령실도 우방국들을 상대로 연일 정보 공유에 나서며 숨 가쁘게 움직이는 분위기입니다.
특히 대통령실이 최근 언론에 제공한 공식 보도자료만 보름 사이 10건이 넘습니다. 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 사무총장과 우크라이나 대통령, 캐나다 대통령과 윤 대통령이 전화 통화를 했다는 내용은 물론, 신원식 국가안보실장이 체코 국가안보보좌관, 덴마크 의회 대표단, 영국 국가안보보좌관 등과 북한의 러시아 파병 관련 정보를 공유하고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는 내용 등이 비교적 상세하게 담겼습니다. 지난달 30일 밤, 대통령실 출입기자단에 공유된 보도자료의 한 대목은 이렇습니다.
신 실장은 북한의 러시아 파병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면서, 러북 간 불법적인 군사협력은 한반도와 유럽을 넘어 전 세계의 안보를 위협하는 심각한 사안이라고 평가하고, 우리 정부는 이를 좌시하지 않고 상황 진전 여하에 따라 실효적인 단계적 대응조치를 취해나갈 것이라고 했습니다. (10월 30일, '신원식 국가안보실장, 팀 배로우 영국 국가안보보좌관과 통화' 보도자료)
북한군 파병이 우크라이나 전쟁과 국제 정세에 적잖은 영향을 미치는 사안인 데다, 북한과 마주한 우리로선 우방국들과 현재 상황을 공유하는 일 자체는 필요한 일일 겁니다. 하지만, 북한군 파병과 관련해 대통령실이 보도자료를 통해 안보 위기를 강조하는 것에 다른 의도가 있는 건 아닌지 의구심이 드는 측면도 있습니다.
■ '우크라이나에 비군사적 지원만' 여론 높은데‥"명분 중요"
대통령실은 지난달 30일 기자들을 상대로 백브리핑 자리까지 마련하며 안보 위기 상황이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현지에 파병된 북한군의 동향을 감시하고 분석하는, 이른바 '전황분석팀' 파견의 필요성을 언급했습니다. 전날 국정감사에서 우리 측 인력 파견에 대해 '어떠한 입장도 가지고 있지 않다'며 말을 아낀 국가정보원의 설명과 사뭇 달라진 겁니다.
이 관계자는 "북한군의 실전 경험 습득 자체가 우리에 대한 직접적인 군사적인 위협"이라고도 평가했는데요. 무기 지원과 관련해선 "우크라이나 측과 논의를 아직 시작하진 않았지만, 앞으로 무기 지원 논의가 나온다면 일차적으로 방어무기 지원을 얘기하는 것이 상식적"이라고도 말했습니다. 동시에, 곧 있을 미국 대선 결과를 지켜봐야 하지 않냐는 취지의 질문에는 이렇게 답변했습니다.
누가 차기 미국 행정부의 수장으로 선출이 되든 우크라이나 전쟁은 분명히 대한민국 안보에 중대한 시그널을 보내고 있는 단계에 와 있습니다. (…) 그리고 이것은 특히 불법적인 침공이면서 자유 세계가 앞으로 국제 규범에 입각한 세계 질서를 어떻게 보듬어 나가면서 안정적으로 예측 가능한 평화를 구축할 수 있느냐의 문제입니다. 6.25 전쟁 때 16개 이상의 유엔군이 아무런 조건 없이 대한민국에 와서 피를 흘리고 싸워주었기에 현재의 자유로운, 풍요로운 대한민국이 가능했듯이 우리나라도 우리의 안보를 지키기 위해서 그리고 세계의 평화에 책임 있는 기여를 하기 위해서 미국의 뜻도 중요하지만 명분과 우리의 필요한 국익도 우리에게 그만큼 더더욱 중요한 것이다… (10월 30일,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 발언)
정리하면 우리 측이 우크라이나에 전황분석팀을 파견하는 일이나, 무기 지원 가능성을 열어두는 일 모두 '세계 평화에 책임 있는 기여를 하는 것'이라는 설명입니다.
하지만, 전쟁을 치르고 있고 '북한군 파병'을 빨리 알려 국제사회의 지원을 끌어내야 하는 우크라이나와 달리 우리나라가 공세적 대응에 나서는 것은 우려스럽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특히, 북한이 러시아 파병의 대가로 미사일 기술을 전수받을 것이라는 전망에 대비해 대책을 세우는 것을 넘어서 우리가 먼저 나서 '살상무기 지원'을 언급하는 것은 섬세하고 신중해야 하는 외교전략에서 오히려 협상력만 떨어뜨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살상무기 지원을 언급하는 윤 대통령의 모습에 명태균 씨 파문과 '김건희 여사 의혹'과 관련돼 이를 무마하기 위한 술책 아니냐는 의구심도 큽니다.
한국갤럽이 지난달 22일부터 24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천1명을 상대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우크라이나에 '비군사적 지원'만 해야 한다는 응답이 66%로 나타났고, '어떠한 지원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응답도 16%로 나타났습니다. 현실은 이러한데, 대통령실의 설명에선 '우크라이나 지원의 명분과 정당성'만 담겨 있을 뿐, 무기 지원 등을 반대하는 국민 여론을 어떻게 설득할 것인지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이런 가운데 젤렌스키 대통령은 어젯밤 공개된 KBS와의 인터뷰를 통해 "우크라이나군과 북한군의 교전이 곧 현실화될 것"이라면서, "한국에 화포 지원과 방공 시스템 등을 요청할 것"이라고 언급했습니다. "북한이 우크라이나 시민들과 싸우기 위해 온 군대라는 공식적인 지위를 얻은 후 구체적인 요청서를 제출할 것"이라고 부연하긴 했지만, 조만간 우크라이나 측이 우리에게 보낼 특사가 더욱 구체적인 명세서를 들고 올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윤 대통령은 어제 소상공인 4천여 명이 집결한 '2024 대한민국 소상공인대회'에 참석해서도 "북한이 ICBM을 발사했다", "뒤로는 몰래 러시아에 용병을 보내고, 앞으로는 우리의 안보를 직접 겨누고 있는 것"이라며 안보 위기를 거듭 강조했습니다. 우크라이나 지원 확대에 부정적인 여론 속에, '돌을 던져도 맞고 가겠다'는 윤 대통령의 답은 과연 무엇일지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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