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 혐의로 구속기소된 김용현 전 국방장관이 대통령 경호처장 시절 공식 회의 석상에서 했다는 말입니다. 대통령 경호처가 경호 업무 수행을 위해 경찰, 검찰은 물론 소방, 합참, 외교부 등 유관기관을 불러 모아 연 안전 대책 회의 자리에서의 일이었습니다. 한 참석자는 "김용현 처장이 뜬금없이 자신이 차지철이라고 해 깜짝 놀랐다"며 "위세를 과시하려는 생각이었던 것 같은데, 다들 실세라고 하니까 표현을 못했을 뿐 황당해 했다"고 전했습니다. 무엇보다 군 출신으로서 차지철의 잘못을 누구보다 잘 알 그가 농담으로라도 차지철을 자부한 건 부적절하다는 취지였습니다.
차지철 자부한 김용현, 진짜 차지철은 어떤 인물?
차지철은 박정희 정권 말기 2인자로서 권력을 남용한 대표적인 사례로 꼽힙니다. 1974년 당시 육영수 여사 피격사건 뒤 경호실장에 임명된 차지철은 최고 권력인 박정희 전 대통령을 뒷배 삼아 월권을 일삼습니다. 스스로를 차관급에서 장관급으로 높이고, 군 장성을 경호차장으로 부렸습니다. 아예 수경사 30사단과 33경비단에 장갑차, 헬기 등의 사단 규모 화력을 갖추게 한 뒤 경호실장이 지휘할 수 있게 만들어, 경호인력을 사병화했습니다. 청와대 회의 석상이나 승용차 의전 순서에서도 자신이 두 번째임을 고집했다는 일화도 전해집니다. 김정렴 당시 대통령비서실장은 차지철이 독자적으로 수집한 정보를 대통령에 보고하고, 야당인 신민당에 대한 공작을 주도했다고 회고했습니다.
차지철은 1979년 부마사태가 터지자 강경 대응을 이끌었습니다. 김정렴의 후임인 김계원 대통령 비서실장은 자신의 회고록에 "차 실장의 주장에 누구도 반대하지 못했고, 온건적인 계엄사령관과 중앙정보부장 등이 끌려가는 판이었다"고 적었습니다. 후일 박정희 전 대통령과 함께 차지철을 권총 살해한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은, 차지철이 시민 피해는 신경쓰지 말고 강경 진압할 것을 대통령에 건의했다고 전했습니다.
"캄보디아에서는 300만 명을 죽이고도 까딱 없었는데 우리도 데모대원 100~200만 명 정도 죽인다고 까딱 있겠습니까"
강경론 이끈 핵심 실세 김용현‥1인 맞춤형 장관 인사까지
김 전 장관이 발언 당시 의도했는지 알 수 없으나, 윤석열 정부에서 김 전 장관의 행보가 차지철과 많은 면에서 닮았습니다. 김 전 장관은 윤석열 대통령의 충암고 1년 선배로, 캠프 때부터 외교 안보 분야 공약을 만들었습니다. '단 하루도 청와대에 머무를 수 없다'는 대통령의 뜻에 따라 용산 이전을 주도한 것도 김 전 장관이었습니다. 경호처장 시절엔 경호처가 경호 업무를 수행하는 군과 경찰을 지휘할 수 있도록 하는 시행령 개정을 추진했습니다. 차지철 시대에 존재하던 지휘 감독권을 부활시키려 한 겁니다.
지난 8월 윤석열 대통령이 갑자기 김용현 경호처장을 국방부 장관으로 임명하면서, 신원식 장관은 안보실장으로, 장호진 안보실장은 외교안보 특보로 연쇄 이동했습니다. 미국 정권 교체기, 산적한 외교 현안이 쌓인 상황에서 일곱 달 만에 안보실장을 교체하는 것이 이례적으로 평가됐습니다. 현 정부 외교 안보분야 고위공직자는 "김용현 장관을 위한 '원포인트 인사'였다"며 "장호진 실장은 경질 사유도 없이 경질된 모양새가 됐으니 특보 자리를 만들어 줬던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비상조치 필요하다'는 윤 대통령에 적극 동조, 가담
의아했던 인사의 배경은 이제 내란 사태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검찰은 내란 주요 종사 혐의로 김용현 전 장관을 재판에 넘기면서, 비상 계엄으로 정치인과 민주노총을 '조치'하겠다는 대통령의 반헌법적 인식에 김 전 장관이 어떻게 동조하고 가세했는지 밝혔습니다. 지난 3월 말에서 4월초, 삼청동 안가에서 윤 대통령이 김용현 당시 경호처장, 신원식 당시 국방장관, 조태용 국정원장을 불러 격한 상태로 "비상 대권을 통해 헤쳐 나가는 것 밖에 방법이 없다"고 했다는 겁니다. 당시 이종섭 전 호주대사 출국금지 사실이 MBC 보도로 알려지고, 의료 대란 등으로 총선 전 악재가 쏟아지던 상황이었습니다. 이 자리에선 신원식, 조태용 두 사람은 반대 뜻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윤 대통령의 뜻은 분명했습니다. 비상 계엄 반대 입장인 신 전 장관은 계엄을 건의하는 국방장관에서 안보실장으로 경질됩니다. 대신, 윤 대통령에게 동조한 '입틀막' 김용현 경호처장이 그 자리에 영전합니다.
윤 대통령은 김용현 전 장관과 수차례 "비상 조치권으로 정치인들을 조치해야 한다", "나라를 바로 잡아야 한다. 국회가 패악질을 하고 있다"는 논의를 이어갔습니다. 김 전 장관이 대통령의 엇나간 현실 인식을 바꾸기 위해 간언하는 등 노력한 흔적은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대통령의 뜻을 앞세워 적극적으로 계엄에 가담합니다. 국회를 폐쇄한다는 반헌법적 포고문을 작성하고, 방첩사령관을 불러 "계엄을 할 수 밖에 없다, 선관위 전산자료를 확보해 부정선거 증거를 찾아야 한다"고 지시했습니다. 계엄 당시엔 "이재명, 우원식, 한동훈 이 3명부터 잡으라"고 구체적 지시를 내렸습니다. 자신이 언급한 차지철처럼,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의 잘못된 인식을 교정하기는커녕 정보기관과 군조차 반대한 강경책을 이끌었던 겁니다.
강경한 입장은 정권의 핵심 지위를 보장해주기도 했습니다. 정보 분야 관계자는 "정권 초기부터 '누가 실세냐', '안보분야는 누가 총괄하냐' 말이 많았지만 이번 사태로 김태효도 신원식도 아닌, 결국 김용현 뿐이었다는 사실이 확인된 셈"이라며 "보수 유튜버들과 이들 주장이 정권에 어떻게 들어왔나, 김용현을 보면 된다"고 말했습니다.
김용현 "미래 세대 위한 것" 엄호‥조갑제 "대통령 미쳤다는 증거"
김용현 전 장관은 구속 상태에서도 대통령의 뜻을 받들고 차지철식 '심기 경호'에 나서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김 전 장관은 변호인을 통해 "이번 비상계엄은 국회의 국헌 문란과 내란에 준하는 패악질에 대한 경종"이라는 입장을 반복해왔습니다. "종북주사파를 비롯한 반국가세력 척결하고, 미래세대에 제대로 된 나라를 물려주려는 대통령님의 소중한 뜻이 담겨 있었다"고 내란 사태를 옹호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담화문과 같은 취지인데, 여인형 방첩사령관, 조지호 경찰청장 등 핵심 관련자들의 증언에 기초한 검찰 수사조차 전혀 인정하지 않는 태도입니다.
그러나, 비상적 조치로 정치적 반대자들을 일소하겠다는 생각은, 차지철이 활약하던 유신 독재 정권 시절에도 채택이 어려웠던 반헌법적 구상입니다. 검찰은 "윤석열 대통령과 김용현 전 장관의 비상계엄 선포는 위헌, 위법하고, 헌법에 의하여 설치된 국가기관인 국회, 국회의원, 선관위를 강압해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한 행위"라고 판단했습니다. 국회의장은 물론, 선관위 직원들까지 영장 없이 잡아다 가두는 건 영장주의 위반입니다. 민주화된 사회에서 용인되기 어렵습니다.
오죽하면 정통 보수 논객인 조갑제 전 월간조선 편집장조차 "민주당의 횡포에 대응할 수단이 많았음에도 적군에나 쓸 최후의 수단을 동원한 것이 미쳤다는 증거"라며 "세상에 경고성 계엄이 어디있냐"고 비판했습니다. "최고수준의 정보기관을 거느리고 있는 대통령이 저질 유튜브를 보다가 허무맹랑한 부정선거음모론에 정신이 팔려 헌법기관인 선관위를 쳤다"며, "야만과 문명, 비정상과 정상의 대결이고, 맨정신과 광기의 대결"이라고 단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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