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소한 법무부, 수장 없는데 재판 포기 '이례적 결정'
검찰총장 시절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정직 2개월의 징계가 최종 취소됐습니다. 작년 12월, 징계가 정당했다고 봤던 1심 판결이 2심에서 뒤집히자, 법무부가 더이상 다투지 않겠다며 상고를 포기했기 때문입니다. 법무부는 작년 12월 29일 "항소심 판결을 검토한 결과, 징계 취소 판결에 헌법과 법률 위반 등의 상고이유가 없다"고 이유를 밝혔습니다.
1, 2심 판단이 엇갈렸는데도 정부가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고 상고를 포기하는 건 이례적입니다. 전향적 판단이 필요한 과거사 피해자의 국가배상 소송이 아니라, 공무원 징계가 적법한지 다투는 소송이기 때문입니다. 사회적 이목이 집중된 사건에 대해 의견을 구하겠다며 만든 국가송무자문위원회는 열리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상고 포기 결정을 내린 시점에 이 결정에 책임을 져야할 조직의 최고 수장, 법무부 장관은 공석인 상황이었습니다. 한동훈 전 법무부 장관은 법무부 상소 포기 발표 8일 전 장관직을 내려놓고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직행했습니다.
법무부가 차관 대행체제에서, 상고 포기 결정을 내린 이유는 뭘까. 차관의 결심이 있었냐는 MBC 서면 질의에 법무부는 "내부 의사결정 사항에 대하여 자세히 말하기 어려우나, 일반적인 절차에 따라 결정했다"고 답했습니다.
'판사사찰·한동훈 감찰방해' 법정으로 간 윤석열 징계
초유의 검찰총장 징계 사태는 3년여 전인 2020년 11월, 추미애 당시 법무부 장관의 주도로 시작됐습니다. 법무부 감찰담당관실은 윤석열 총장에 대한 대면 감찰을 시도했다 무산됐고, 1주일 뒤 윤 총장에 대한 징계를 청구하며 직무를 정지했습니다. 조국 수사 이후 윤석열 총장이 문재인 정권과 불편해진 상황이었습니다. 수장에 대한 '밀어붙이기식' 징계 청구에 검찰은 조직적으로 반발했습니다. 전국 58개 검찰청에서 '직무정지를 재고해달라'는 성명을 냈습니다. 정치적 징계라는 논란과 별개로, 이른바 '판사 사찰 문건'이 공개되면서 파장이 커졌습니다. 윤석열 총장의 지시로 대검 참모들이 주요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재판부 판사들의 이력과 성향을 문건으로 만들어 관리했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이와 함께, 징계위는 측근인 한동훈 검사장에 대한 감찰과 수사를 방해한 점까지 징계사유로 인정해 정직 2개월 징계를 의결했습니다. 윤석열 검찰총장은 곧바로 징계 취소 소송을 제기해 판단은 법원으로 넘어왔습니다.
쟁점은 크게 ① 징계 절차가 적법했는지 ② 징계 사유가 인정되는지 두 가지였습니다. 1심 재판부는 절차에는 문제가 없고, 징계 사유도 타당하다고 판단했습니다. 먼저 ① 에 대해서 검찰총장에 대해 법무부 장관이 징계를 청구한 일이 처음이다보니, 당시 적용된 검사징계법의 해석 문제가 불거졌습니다. 검사징계법 17조 2항은 "징계를 청구한 사람은 사건 심의에 관여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당시 징계청구자인 추미애 장관은 이에 따라 새로 위촉한 징계위원을 직무대리로 지정하고 심사 의결 과정에서 빠졌습니다. 다만, 1차 징계 심의 날짜를 지정하고 징계위를 소집했는데, 이게 법에서 말하는 사건 심의에 해당하는지 판단이 필요했습니다.
'검사징계법' 해석 엇갈린 1, 2심 재판부
1심 재판부는 다른 조항에선 당연직 검사징계위원장인 법무장관이 심의 기일을 정하고, 심의기록에 서명 날인하도록 하는 등 여러 권한을 행사하도록 하는 만큼, 법이 금지한 '사건 심의'를 좁게 봐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상세 규정이 없는 이상, 징계 청구권자가 관여할 수 없는 심의라는 건 "심의 기일에 이뤄지는 구체적인 심사 및 의결"이란 겁니다. 따라서 추미애 장관이 윤석열 총장의 징계를 청구하고 첫 심문기일을 지정한 것까지는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결론지었습니다. 또 1차 심의 날짜를 정한 것만으로 징계를 취소해야할 만한 실질적인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지적했습니다.
반면, 2심 재판부 생각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문제의 검사징계법 조항의 "관여하지 못한다"에서 '관여'라는 문구를 폭넓게 해석했습니다.
'관여'의 사전적 의미는 '관계하여 참여'한다는 것으로서, 어떤 절차에 관여한다는 것은 그저 그 절차 자체에 행위자로서 참가한다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절차와 관계를 맺고 유지하며 그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하는 것까지 포함한다.
따라서 재판부는 심의 기일을 정하는 것 역시 사건 심의에 '관여'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봤습니다. 또 해당 조항이 '제척', 즉 징계를 청구한 당사자를 배제시키라는 규정인만큼 엄격하게 적용해야 한다고 해석했습니다. 실질적 피해가 없다는 1심과 달리, 심의 기일 지정은 "방어 준비에 필요한 시간 확보와 관련이 있어 징계 심의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고도 지적했습니다. 이어, 징계청구권자인 추미애 장관이 징계위원을 새로 위촉한 과정도 "객관적으로 불편부당성을 지켰다고 도저히 보기 어렵다"고 비판했습니다.
같은 조항을 두고 1,2심 재판부의 해석이 정반대로 갈린 건데, 검사징계법이 검찰총장의 징계에 적용된 적이 없어서 벌어진 탓입니다. 당연직 위원장이자 검찰총장 징계청구권장인 법무부장관이 제척될 경우, 어떻게 징계위 소집과 구성이 진행돼야 하는지에 대해 법에 명시적 규정이 없는 것도 문제였습니다. 1심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절차와 문언적 의미에 방점을 찍었다면, 2심은 징계의 공정성을 보장하기 위해 원칙적 기준을 제시하는데 집중해 생긴 차이로 보입니다.
하지만, 참여연대는 "법무부장관은 소속 외청장인 검찰총장에 대한 징계 자체를 실효적으로 집행할 수 없다는 황당한 결론"이라고 2심 판결을 비판했습니다. 이런 해석을 유지할 경우 "검찰총장을 성역화하고 민주적 통제의 예외로 만들어버린다"는 겁니다.
1심 "중대한 비위"‥2심 징계 사유 판단 안 해
사건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②징계 사유에 대한 판단은 어땠을까? 1심은 전체 117쪽 분량의 판결문 가운데 절반 이상인 63쪽을 할애해, 판사 사찰 문건 작성 등 징계 사유의 정당성을 따졌습니다.
먼저 소위 판사 사찰 문건에 대해, 윤석열 총장측은 공판 대응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1심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주요 사건 재판부의 인적사항과 세평을 정리한 문건에, 공소 유지와 관계 없는 정보가 포함됐기 때문입니다. 실제 특정 판사에 대해선 우리법연구회 소속이었다고 적거나 검찰 간부의 친족이라는 정보를 담은 점을 문제 삼았습니다. 윤 총장이 이를 보고받고도 "삭제 혹은 수정하도록 조치하지 않고 오히려 대검 반부패부 및 공공수사부에 전달하라고 해, 법령을 위반했다"고 판단했습니다.1심 재판부는 또 윤총장이 측근인 한동훈 검사장에 대한 감찰과 수사를 방해한 행위를 인정하고 책임도 무겁다고 판단했습니다. 2020년 이른바 채널A 사건에 한동훈 검사장이 연루됐다는 보도 이후, 대검 감찰부가 감찰에 착수하자 윤석열 총장은 이를 중단시키고 대검 인권부에 조사를 맡깁니다. 재판부는 "각별한 관계인 한동훈 검사장에 대한 감찰 절차에 개입하지 않거나 자제해야할 직무상 의무가 있는데도 이를 어겼다"고 지적했습니다.
또한 뒤늦게 서울중앙지검 수사가 시작된 뒤, 수사자문단을 소집하도록 지시한 것 역시 부당한 수사 개입으로 봤습니다. 당시 윤석열 총장은 중립성 논란이 일면서, 대검 부장단회의에 수사지휘권을 위임하겠다는 뜻을 밝힙니다. 그러나, 그해 6월 한동훈 검사장의 휴대전화가 압수수색됐습니다. 이날 이 소식과 함께 한 장관 측이 수사자문단 소집을 요구했다는 사실을 보고받자, 윤총장은 자문단 소집을 지시합니다. 재판부는 당시 "대검과 일선 검찰청 간에 수사 관련 이견이 있어야 한다"는 수사자문단 소집 요건이 갖춰지지 않았는데 강행했다고 지적했습니다.
1심은 수사자문단 심의 대상에 한동훈 검사장 기소 여부가 포함된 것도 문제라도 봤습니다. 재판부는 "휴대전화 압수수색 외 별다른 수사가 이뤄진 상태가 아니라 혐의 유무를 판단하기 매우 일렀다"며 "수사를 유리한 방향으로 일찍 끝내려 한다는 의심을 살 수 있는 매우 부당한 조치"라고 질타했습니다. 이에 따라 "신속한 수사로 많은 증거가 수집됐을 수 있었던 사정에 비춰보면 비난가능성이 상당히 높다"면서, 면직 이상의 징계도 가능한 중대 비위라고 규정했습니다.
하지만, 2심은 ②징계 사유에 대한 판단을 아예 내리지 않았습니다. 윤대통령 측은 2심에서도 판사 사찰과 수사 감찰 방해 의도가 없었다며, 징계 사유에 대해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항소심은 여기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징계 절차가 잘못돼 징계 자체가 무효인만큼 그 사유가 정당한지는 따질 필요조차 없다는 이유였습니다.
변호인 교체·소극적 대응‥'패소할 결심' 실현됐나
법무부의 상고 포기로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징계 취소가 확정됐습니다. 검찰총장의 비위가 발견됐을 때 어떤 징계 절차를 밟아야하는지 대법원의 최종 해석은 받을 수 없게 됐습니다. 검사징계법의 구멍도 그대로 남게 됐습니다. 또한 1심이 인정한 윤 대통령의 징계 사유에 대해서도 법원 판단은 더 이상 나오기 어려워졌습니다.사실 2심 진행 과정에서도 논란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앞서 정직 2개월의 징계를 받은지 석달 뒤인 2021년 3월 윤석열 총장은 "대한민국 법치주의가 훼손됐다"며 사표를 던지고 여의도로 향했고 대권을 움켜쥐었습니다. 징계 사유에 등장하며 이해 관계가 있다고 할 수 있는 한동훈 검사장은 징계취소 소송의 상대이자 소송 지휘를 맡은 법무부의 장관으로 영전했습니다.
한 장관은 취임 후 이 사건에 관여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지만, 2심 진행과정은 매끄럽지 못했습니다. 법무부는 1심에서 승소한 외부 변호인 2명을 일방 해임했습니다. 다른 주요 사건에 외부 변호인을 선임한 것과 달리, 법무부 산하 정부법무공단에 2심을 맡겼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측이 증인 3명을 신청하는 동안 2심에서 법무부는 1명도 증인을 내지 않았습니다. 특히 채널A 사건 담당 부서장으로서, 구체적 증언을 해줄 수 있는 김관정 당시 대검 형사부장에겐 증언 요청도, 사건 협의도 하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상대편 증인에 대한 신문은 소극적이었습니다. 3차 공판에서 증인으로 출석한 노정환 전 검사장에게 윤대통령 측이 1시간여 질문한 반면, 법무부 변호인은 6분간 11개 질문만 던졌습니다.
신임 박성재 법무장관은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법무부의 상고 포기 결정에 대해 4차례 청문위원들의 서면 질의를 받았습니다. 위원들은 1,2심 판단이 다른데도 재판을 포기한 게 타당한지, 2심 부실 진행 의혹에 전임 장관의 책임은 없는지, 또 후보자 견해는 무엇인지 질문했습니다.
박성재 장관은 각 질문에 "중대한 절차 위반 때문에 취소판결이 선고돼 상고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법무부는 향후 감찰·징계 등의 과정에서 적법절차와 방어권이 보장되도록 만전을 기하고, 검찰의 중립성과 독립성이 훼손되지 않도록 하겠다"고만 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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