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오전 서울 신촌 세브란스 병원 로비, 흰 가운을 입은 남성이 피켓을 들고 섭니다. 소아혈액종양과 한정우 교수입니다.
'어느 나라에도 없는 30초 진료'가 왜 대한민국에만 있는지, 3시간 기다려도 뭐 하나 제대로 물어보지도 못하고 30초 만에 일어서야 하는 환자도, 그렇게 시간에 쫓겨 환자를 봐야만 하는 의사도, 모두 피해자라고 쓴 피켓을 든 한 교수에게 지나가던 환자, 보호자들의 시선이 짧게, 때로는 길게 머무릅니다.몇 분 넘게 자신을 쳐다보고 서 있는 이들에게만 한정우 교수가 조심스럽게 다가가 유인물을 건네는데, "잘 읽어보겠다" "힘내시라"는 응원의 말을 건네는 이들도 있는가 하면 "변호사 늘릴 때도 저항이 심했지만 수임료가 많이 낮아졌다, 의사들도 무조건 반대하지 말라"고 주장하는 이도 있었습니다.
전공의들이 떠난 뒤 하루가 멀다 하고 돌아오는 당직 근무 때문에 수면 부족에 시달리는 한 교수는 왜 병원 로비로 나왔을까?"초라하고 부끄럽고 분노해서… 최근 '소아청소년과 오픈런'은 의사 수가 모자라서가 아닌데, 그걸 내세워 의대 증원을 홍보하는 정부의 거짓말, 무능력, 기만을 알리고, 소아청소년과의 현실을 제대로 알리고 싶어서 나섰다"고 그는 말했습니다.
저출산, 코로나 유행을 거치면서 환자가 줄어든 소아과들이 도산하고 폐업했기 때문에 소아과 오픈런이 벌어지고 있는데 정부는 이를 자극적으로 이용해 의대 2,000명 증원의 이유로 내세울 뿐 제대로 된 해법은 내놓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소아청소년과 상황은 더 악화될 수 있다는 겁니다. 세브란스병원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정원은 지난해 10명이었지만 아무도 지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뒤늦게 1명이 지원해 헌신적으로 소아암 병동에서 일해왔는데 전공의가 떠나버리자 60세 넘은 교수까지 당직을 서고 있다고 합니다.
"의사 면허를 딴 후에 대학병원에 남은, 특히 요즘같이 전망이 나쁜 때에 세브란스병원 소아청소년과에 지원한 전공의는 정말 필수의료에 대한 사명감에서 지원한 겁니다. 돈 때문이라면 나가서 피부미용 일반의 개원하겠죠. 재단이 튼튼한 삼성이나 아산병원, 또 서울대병원과 달리 세브란스 병원은 적자가 계속 쌓이면 어렵습니다. 그동안 세브란스 어린이병원은 인건비를 줄여 겨우 버텼는데, 전공의들이 떠나면서 많이 힘들어지고 있습니다."
'의대 증원'에 반대해 떠난 전공의들이 돌아올 방법은 없을까? 한 교수에게 물었습니다.
"정부와의 신뢰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필수의료 패키지가 제대로 작동한다면 소아청소년과를 지원하는 숫자가 늘겠죠. 지금까지는 아니잖아요? 진료 볼 때마다 적자를 보는 구조입니다. 의대 증원 숫자는 의대교수, 의협, 예방의학교실이 각각 수요를 정확하게 조사해서 1년 후에 정해도 됩니다. 합리적으로 설득해야죠."그에게 오늘 정부가 2천 명 증원을 발표하면 사직서를 내고 병원을 떠날 건지 물어봤습니다.
"정부가 정말 그렇게 할까요? 발표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의사라는 직업을 선택한 이들은 그렇게 매정하지 않습니다. 돈만 바라면 절대 의사 못 합니다. 이 시대에 사명감 없이 어떻게 의사를 하겠습니까. 물에 빠진 사람도 건지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인데 어떻게 환자를 포기하고 떠나겠습니까? 잘 해결되기를 정말 바랍니다."
청진기를 낀 동네 소아과 선생님을 보면서 의사를 꿈꾸게 됐고, 아기가 너무 좋아서 내과와 소아과 전문의 자격증을 모두 딴 뒤에도 소아과를 선택했다는 한정우 교수와의 인터뷰를 마치고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아 한덕수 국무총리는 "의대 2천 명 증원"을 공식 발표했습니다.
정부의 강공 드라이브에 앞으로 의사들은 어떻게 할 것인지, 환자들은 어떻게 될 것인지, 대화를 통한 해결의 가능성은 없는 걸까요...
사회
정승혜
소아암 교수는 왜 병원 로비에 섰나?‥정부 '의대 2천 명' 쐐기
소아암 교수는 왜 병원 로비에 섰나?‥정부 '의대 2천 명' 쐐기
입력 2024-03-20 16:41 |
수정 2024-03-20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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