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종섭 주호주대사의 발단, 전개, 위기, 절정, 결말
이종섭 전 국방부장관, 현 주호주대사가 뜨거운 감자입니다. 흔히 소설의 구성으로 알려진 발단, 전개, 위기, 절정, 결말, 다섯 단계로 이 전 장관이 겪은 일을 돌이켜 봤습니다.
'발단'은 해병대 채 상병 수사외압 의혹으로 고위공직자수사처의 수사를 받고 있는 이 전 장관을 호주대사로 임명한 것, 그리고 '전개'는 이 전 장관의 출국금지 사실이 MBC 보도로 확인되자 법무부가 속전속결로 출국금지를 풀어준 과정이 해당될 겁니다. 출국금지가 풀리자마자 취재진들을 피해 비행기에 오르려다 예상치도 못하게 만난 MBC 취재진에게 "왜 이렇게까지‥" 하냐며 도망가는 듯한 모습, 그 순간은 이 전 장관에겐 '위기'였습니다.
현실은 소설과 달라서 보통 이 정도면 마무리될 법도 했습니다. 여론이 잠잠해지거나, 호주대사 자리에서 스스로 물러나거나… 그런데, 이 대사의 선택은 둘 다 아니었습니다. 호주로 떠난 지 11일 만인 지난 21일 다시 한국으로 들어왔고, 이번엔 수십 명의 취재진 앞에 섰습니다. 아마도 '절정'인 듯합니다. '결말'은 아직 알 수 없습니다.
법원 출입 기자인 저는 '전개' 부분에 집중했습니다. 제가 잘 모르는 정치나 외교 문제, 그리고 추후 수사와 재판으로 밝혀져야 할 이 대사의 범죄 혐의는 차치하고, 제 시각에서 궁금했던 건 범죄 혐의자의 출국금지 해제 과정입니다.
출국금지는 국가가 국민 한 사람의 기본권을 상당히 제한하는 제도입니다. 그래서 출입국관리법으로 그 절차를 엄격히 규정해 놨습니다. 출국금지와 해제 모두 국민 누구에게나 동등한 기준 아래 적용돼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출국금지 대상자는 출입국관리법 4조에 나옵니다. 먼저 6개월 단위로 출국금지가 가능한 대상은 형사재판을 받고 있는 사람, 징역형이나 금고형의 집행이 안 끝난 사람, 일정 금액 이상의 벌금·추징금을 안 낸 사람, 일정 금액 이상의 세금을 안 낸 사람 등입니다. 그리고 1개월 단위로 출국금지가 가능한 대상은 범죄 수사를 위해 출국이 적당하지 않다고 인정되는 사람입니다.
재판을 받거나, 벌금·추징금을 안 낸 사람, 수사를 받고 있는 사람에 대해 경찰·검찰 등 수사기관이 출국금지를 법무부에 요청하면 법무부가 최종적으로 출국을 금지시킵니다. 세금을 안 낸 사람은 국세청이나 지자체(지방세)가, 병역을 기피하면 병무청이 출국금지를 요청하기도 합니다. 역시 최종 결정권자는 법무부입니다.
2018년 법무부 보도자료에 따르면, 매년 1만 5천 명이 출국금지되는데, 지금은 더 늘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1만 5천 명 가운데 4천~5천 명이 매년 범죄수사를 이유로 출국금지 됩니다. 이종섭 대사도 그중 1명이었습니다.
■ 출국금지를 푸는 세 가지 방법과 전임자의 '태클'
출국금지를 풀 수 있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집니다. 일단 출국금지 결정 권한을 가진 법무부를 통하는 방법이 2가지 있습니다. 1) 당사자가 출국금지를 알게 되거나 연장된 날로부터 10일 이내에 법무부에 이의신청을 내면, 법무부 내 출국금지 심의위원회가 심사해 해제 여부를 결정합니다. 2) 위원회를 굳이 안 열고 법무부장관 직권으로 해제를 할 수도 있습니다. 3) 마지막 방법은 법무부를 상대로 출국금지를 풀어달라고 법원에 행정소송을 내는 겁니다.
공수처는 이종섭 대사를 지난해 12월 출국금지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3월 6일 MBC 단독 보도로 출국금지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습니다. 하루 뒤 7일 이 대사는 공수처에 4시간 자진출석해 조사를 받았습니다. 다시 하루 뒤 8일 법무부는 심의위원회를 열고 이 대사의 출국금지를 풀었습니다. 출국금지 사실이 알려진 지 이틀 만이었습니다. 공수처는 반대입장을 법무부에 밝힌 상태였습니다.
아래는 법무부가 밝힌 이 대사의 출국금지 해제 이유 3가지입니다.
법무부 출국금지심의위원회에서는 ① 고발장이 2023. 9.경 공수처에 접수된 이후로 출국금지 조치가 수회 연장되었음에도 단 한 번의 소환조차 전혀 없었고, ② 공수처에 자진 출석하여 조사받고, 증거물을 임의제출하면서 향후 조사가 필요할 경우 적극 출석하여 조사에 응하겠다고 하고 있으며, ③ 아그레망(주재국의 부임 동의)까지 받아서 출국해야 할 입장인 점 등을 감안하여, 더 이상 출국금지를 유지할 명분이 없어 출국금지를 해제한 것입니다.
논란이 커지자 지난 2017년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을 지낸, 차규근 전 본부장이 입을 열었습니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출국금지 과정에 대한 논란으로 재판도 받고 있어 여러모로 출국금지에 빠삭한 인물입니다. 차 전 본부장은 지난 12일과 13일 라디오 방송 등에 출연해 법무부에 태클을 걸었습니다.
"법무부 출국금지심의위원회 위원장으로 재직하며 심의한 경험에 비춰보면 법무부가 이종섭 전 장관의 출국금지 이의신청을 인용한 것은 지극히 비정상적이다, 수사를 이유로 한 출국금지에 대해 이의신청을 인용해 주는 사례는 거의 없다"
법무부는 지난 14일 차 전 본부장의 말이 '허위'라며 기자들에게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엄포를 놨습니다. 그러면서 수사기관의 반대에도 출국금지가 해제된 적이 있다고 공개했습니다. 최근 5년간(2019년~2023년) 출국금지 이의신청 6건을 받아줬고, 그 중 2건은 이 대사처럼 출국금지 심의위원회를 거쳤다는 겁니다. 또 6건 모두, 수사기관은 출국금지 해제에 동의하지 않았지만 법무부가 심사해 이의신청을 받아줬다고 밝혔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몇 건 중 6건을 풀어준 걸까요? 이의신청이 들어온 전체 건수 등 다른 통계들이 궁금했습니다. 이 대사처럼 모두 수사를 받던 중이었는지, 재판을 받던 중이었는지, 수사기관은 검찰인지 경찰인지, 아니면 관세청이나 국세청, 병무청 등 특별사법경찰인지‥ 그걸 알아야 이 대사의 경우가 이례적인 건지 좀 더 명확히 따져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법무부는 언론사들의 질문이 쏟아진다며 당일엔 답을 주지 않았습니다.
■ 4년 치 행정소송 1심 판결문 75건 분석해 보니‥
법무부 설명은 수사기관이 반대해도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면 출국금지를 풀어줄 수 있다는 취지로 해석됩니다. 과연 현실에서 그런지 통계를 알려주지 않으니 대신 출국금지를 푸는 마지막 방법인 행정소송 판결문도 모아서 분석해 봤습니다. 2020년부터 최근까지 4년 치 출국금지를 풀어달라고 법무부에 요구한 소송의 1심 판결문 75건을 모아 분석했습니다.
일단 크게 출국금지 소송을 낸 사람은 세금·추징금 미납자/ 재판중인 사람/ 수사중인 사람으로 크게 나뉘었습니다. 75건 중 59건, 78%로 대다수를 차지하는 건 세금 또는 추징금 미납자였습니다. 법원은 이들 가운데 해외로 재산을 빼돌릴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3분의 2는 출국금지를 유지했습니다.
수사를 이유로 출국금지된 수사대상자가 낸 소송은 4년간 3건밖에 없었습니다. 그럴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통상 수사를 받고 있는 피의자가 수사기관과 법무부를 상대로 급한 일이 있으니 해외로 나가게 해달라고 요구할 수 있을까요? 아마 쉽지 않은 일일 겁니다. 자연스럽게 도주 우려나 증거인멸 우려를 수사기관에서 의심할 가능성이 큽니다. 법원은 수사 대상자가 낸 소송 3건을 모두 기각했습니다. 절차적 차이가 있지만 이 대사와 달리 누구도 출국하지 못했습니다. 더 자세히 살펴봤습니다. 코인 시세조종 혐의로 검찰 수사선상에 오른 박모씨. 사업을 위해 두바이와 일본에 가야 한다며 출국금지를 풀어달라고 소송을 냈지만 작년 12월 기각됐습니다. 박씨는 "검찰이 9달 동안 출국을 막고도 출석 요구조차 없었다"고 항변했습니다. 법무부가 설명한 이종섭 대사 출금 해제의 첫 번째 이유 "① 출국금지 이후 (3달간) 단 한 번의 소환조사도 없었다"와 같은 맥락의 주장입니다. 하지만 법원은 "사건의 조사대상과 증거가 많아 장기간 수사가 불가피하다"며 "증거인멸 방지나 실체적 진실 발견 등 출국금지로 얻는 공익이 크다"고 일축하며 수사기관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이미 압수수색도 받았고 구속영장도 기각된 또다른 코인사기 피의자도 20개월, 즉 1년 8개월째 출국금지 상태였지만, 법원은 "출국하면 수사차질이 우려된다"며 계속해서 출국을 막았습니다.
수사가 끝나고 이미 재판에 넘겨졌으니 출국금지를 풀어달라고 제기된 소송도 9건 있었습니다. 법원은 그래도 그 중 6건은 계속 출국금지를 유지하라고 판결했습니다. 수사 당사자에게는 없었던, 소송당사자에게 출국금지를 왜 풀어줬는지 살펴봤습니다.
하나는 횡령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던 외국인이 낸 소송이었는데, 이 외국인이 미국에 있는 병원에서 약을 처방 받아와야 한다고 하자, 법원은 해당 미국 병원에서 이 외국인이 간암수술을 한 전력을 확인한 뒤에야 출국금지를 풀어줬습니다. 이 정도는 돼야 출국금지가 풀리는구나 싶었습니다.
또 다른 사례의 주인공은 우연히 발견한 낯익은 이름. 이명박 정부 시절 군사기밀 유출 혐의로 기소됐던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이었습니다. 김 차장은 2017년 10월 검찰 수사 대상이 되면서 출국금지가 내려졌습니다. 이 조치는 기소 이후 1심에 이어 2심 선고까지 유지됐습니다. 2심 법원은 김 차장에게 벌금형을 미루는 벌금형 선고유예로 선처했습니다. 그런데 이때 당시 법무부는 행정소송 과정에서 "대법원이 파기 환송하면 실형이 나올 수 있다"면서 김 차장의 출국금지를 유지해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이 대사의 상황과 비교하면 사뭇 다른 태도입니다. 당시 법원은 "법무부 주장이 막연하다"면서 출국금지를 풀어줬는데, 김 차장에게 처음 출국금지 조치가 내려진 지 3년 2개월 만이었습니다. 그 외에 재판이나 수사 당사자에게 법원은 증거인멸이나 도주우려 등을 이유로 출국금지를 기각했습니다. 구속영장이 3차례나 기각되고, 1년 넘게 재판에 꼬박꼬박 참여한 피고인도 예외는 없었습니다. 피의자나 피고인의 기본권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대체로 수사기관의 편의를 봐준 셈입니다.
이미 수사를 모두 받고 압수수색도 당한 뒤 재판에 넘겨진 사람들도 사업상 이유 등을 들어 출국금지를 요구했다가 재판에서 진 걸 보면, 이 대사의 출국금지 해제 2번째 이유 "② 공수처 자진 출석과 증거물 임의제출, 적극 출석 의지" 역시 이것만 가지곤 법원의 기준을 통과하기란 쉽지 않아 보였습니다.
■ 이재용도 못 피한 출국금지‥법무부는 열흘째 "정리 중"
물론 국방부장관 출신의 대사가 도주할 우려는 극히 낮을 겁니다. 하지만 법원이 제시한 출국금지 해제 기준 중에는 도주 우려 외에도 증거 인멸 우려가 남아 있습니다. MBC 취재 결과, 이 대사가 공수처에 제출한 휴대전화 기기는 채 상병 사건과 수사 외압 의혹이 발생한 뒤부터 사용한 기기로, 공수처로선 무용지물인 증거물이었습니다. 공수처의 수사는 이제 막 시작된 상태인데, 수사에는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수사기관의 출국금지 관행이 어떤지 엿보이는 옛 기사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지난 2017년 1월 한국경제 기사인데, 당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미국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 초청을 받았는데 이 사실을 통보받은 국정농단 특별검사팀이 출국을 금지해, 이 부회장이 결국 못 간 것으로 알려졌다는 내용입니다. 공교롭게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당시 특검팀 소속이었습니다. 당시 미국 대통령 초청을 받은 재벌 총수는 해외 도피 우려가 있었을까요? 출국금지와 해제에 대한 기준이 엿장수가 엿가락을 늘이듯이 아닌 제대로 설정돼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출국금지의 기준 문제에 대한 지적은 계속돼왔고, 2018년 7월 문재인 정부는 당사자가 이의신청을 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었습니다. 그게 이종섭 대사의 출국금지를 풀어준 법무부 출국금지 심의위원회 제도가 바로 그것입니다. 최근 5년간 수사기관의 반대에도 법무부가 출국금지를 해제한 건 6건. 그 중 2건이 심의위를 통한 경우였습니다. 매년 내려지는 출국금지 결정이 1만 5천 건, 5년이면 대략 7만 5천 건입니다. 그 중에서 출국금지를 몇 명이나 풀어달라고 이의신청했는지 법무부는 여전히 말하지 않고 있습니다. 유일하게 공개한 인용한 출국금지 해제 건수는 6건. 단순히 7만 5천으로 나눠보면 0.008%였습니다.
Q1. 출국금지 이의신청 관련 최근 5년 간 총 몇 건 중 6건을 인용인 것인지
Q2. 출국금지 이의신청 총 건수의 통계(수사중인지, 재판중인지, 체납인지, 병역법 위반인지)
Q3. 인용된 6건 출국금지 해제에 대한 수사기관은 모두 검찰인지
Q4. 출국금지자 수사기관별 구분 요청(수사, 재판, 체납 등)
Q5. 전체 출금 요청과 결정 건수
법무부가 6건이라는 통계를 발표한 당일부터 저는 위 질문들에 대해 매일 법무부에 답변을 달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법무부는 열흘째 답이 없습니다. 법무부가 말하지 않은 것, 저는 아직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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