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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기자이미지 이문현

모아타운 '골목길 쪼개기' 기승‥그들은 왜 '황금도로'를 팔았나?

모아타운 '골목길 쪼개기' 기승‥그들은 왜 '황금도로'를 팔았나?
입력 2024-05-26 09:30 | 수정 2024-05-26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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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아타운 '골목길 쪼개기' 기승‥그들은 왜 '황금도로'를 팔았나?
    "550평 골목길 주인이 130명으로 늘어났다"

    석 달 전 받은 이 한 줄의 제보가 취재의 시작이었습니다.

    문제의 골목길은 서울 서대문구 옥천동의 한 도로. 이 동네 중심과 골목 사이사이를 잇는 이 도로의 총 면적은 약 1,800㎡(약 550평) 정도이고, 실제로 등기부 등본을 떼어보니 땅의 주인이 130명이나 됐습니다.
    모아타운 '골목길 쪼개기' 기승‥그들은 왜 '황금도로'를 팔았나?
    22년 동안 한 명이 소유한 땅인데, 작년 8월 10일 부동산 업체 10곳이 이 도로를 3.3㎡당 약 300만 원에 사들였습니다. 그리고 3개월 만에 땅의 지분을 잘게 쪼개 130명에게 3.3㎡당 1,200만 원에 팔아치웠습니다.

    석 달 만에 4배 장사를 한 셈입니다.

    도로를 산 130명은 평균 3,000∼4,000만 원씩을 투자했고, 약 10㎡씩 땅을 나눠 가졌습니다.

    소유권을 행사할 수도 없고, 지분이 작아 해당 지역이 재개발된다고 하더라도 입주권(재개발 조합의 조합원이 될 권리)을 받을 수도 없는 이 땅을 이렇게 비싸게, 그리고 130명이 동시에 산 이유는 무엇일까?

    이 땅이, 서울시의 소규모 재개발 사업인 '모아타운' 부지 안에 있다는 것 외에는 단서가 없었습니다.

    ■ 동네 사정 빠삭한 공인중개사도 모르는 '실체 없는' 거래

    이 거래는 공인중개사를 끼지 않은 부동산업체와 개인 간의 직거래였기 때문에 마을 소식에 빠삭한 동네 공인중개사들조차 거래의 내막을 알지 못했습니다. 기획부동산의 이른바 '작업'으로만 의심할 뿐이었죠.

    게다가 등기부 등본에 나와 있는 매도인, 즉 부동산 업체 10곳의 주소는 대부분 경기도 외곽 지역으로 막상 찾아가보니 공유사무실 사용자들이었습니다. 간판은 물론, 일정한 사무실도 없는 겁니다.

    결국, 이 '투자의 이유'를 알기 위해선 직접 개인 투자자들에게 질문하는 방법뿐이었습니다.

    등기부등본상 투자자는 130명. 주소는 전국에 퍼져있었고, 외국 국적도 있었습니다.

    서울시청 출입기자인 만큼 시청을 중심으로 반경을 넓혀가며 개인투자자들을 한명 한명 만나러 다녔습니다. 하지만 여러 투자자가 자식 명의, 부모 명의로 투자해놓은 상황이라 집집마다 방문해도 '모른다' 답변을 듣기 일쑤였고, 막상 본인을 만나도 발뺌하며 투자한 사실 자체를 부인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거래 뒤에 무언가 있을 거란 의심은 확신으로 변해갔습니다.
    모아타운 '골목길 쪼개기' 기승‥그들은 왜 '황금도로'를 팔았나?
    나흘 동안 50여 가구를 방문했고, 다행히 4명을 인터뷰했습니다.

    이들이 땅을 구입한 부동산업체는 각각 달랐지만, 이 땅을 소개받으며 들었던 '달콤한 속삭임'은 비슷했습니다.

    '모아타운 선정지역으로 재개발될 것이다. 소액 투자해 놓으면 2∼3배 오른다'

    부동산 업체는 딱 공시지가 정도로 도로를 사들여 4배 비싸게 130명에게 팔아치웠는데, 여기서 다시 투자자들이 3배의 수익을 보려면, 이 도로가 공시지가의 12배까지 올라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황금도로'인 셈이죠.

    가능한 얘기일까요? 굳이 전문가 의견을 물어보지 않아도 될 법한 정도인데, 이런 기획부동산의 수법을 훤히 알고 있는 한 감정평가사는 "원금만 건져도 다행"이라고 표현했습니다.

    ■ 12배 오를 '황금 도로'를 왜 팔까?

    그럼 이렇게 좋은 땅을 부동산 업체들은 얼마나 소유하고 있을까요?

    투자자들을 통해 연락처를 받아 전화해서 물어보니, 정작 본인들은 그 좋은 땅을 이미 다 팔았다고 합니다.

    개인 투자자들에게 '3배 오를것'고 자신한 근거도 물어봤는데, 그런 홍보를 한 적이 없다고 잡아뗐고, "주식은 떨어지면 아무한테도 책임을 묻지 않는데, 왜 부동산만 가지고 그러냐"고 항변했습니다.

    소규모 재개발 사업인 모아타운은 서울 새 신축 아파트를 충분히 공급하기 위한 오세훈 서울시장의 역점 사업입니다.
    모아타운 '골목길 쪼개기' 기승‥그들은 왜 '황금도로'를 팔았나?
    그런데 이렇게 부동산 업체들이 모아타운 내에서 투기판을 벌이고 있는 동안 서울시는 무얼 하고 있을까요?

    지난 3월 MBC가 서울시에 관련 질의를 할 때까지, 그 현황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MBC는 지난 3월 20일. 뉴스데스크를 통해 <골목길을 130명에게 쪼개 팔아‥모아주택이 투기 대상?>을 보도했는데요.

    이후 서울시는 "조만간 대규모 조사를 시작할 계획"이라며 보도 다음날 '모아타운 투기 칼차단' 대책을 발표했습니다.
    모아타운 '골목길 쪼개기' 기승‥그들은 왜 '황금도로'를 팔았나?
    ■ 후련함보다 찝찝함, 취재의 확장

    등기부 등본만 손에 들고 시작했던 취재였습니다. 나흘을 꼬박 집집마다 방문해가며 투자자들에게 취재 이유와 목적을 설명하는 건 쉽지 않았습니다. 인터뷰하기 전, 우선 그들의 질문에 대해 제가 취재한 내용으로 답변을 해줘야 했는데 그럴 때면 대부분 '아이고'라는 탄식이 터져 나왔고, 심한 경우 욕설도 들어야만 했습니다.

    보통 이런 종류의 현장 취재를 마치면, 안도감이 느껴지고 후련합니다. 그런데 이번엔 오히려 숙제를 덜 끝낸 것처럼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이런 '골목길 쪼개기 투기'가 서대문구만의 문제가 아닐 것이란 확신 때문이었습니다.

    서울시가 지난 2022년 1월부터 올해 1월까지 발표한 모아타운 대상지는 25개 자치구에 총 85곳입니다. 앞서 취재한 곳은 이 85곳 중 1곳에 불과합니다.

    다른 모아타운 지역이라고 문제가 없을까요?

    그래서 데이터를 뽑아봤습니다.
    모아타운 '골목길 쪼개기' 기승‥그들은 왜 '황금도로'를 팔았나?
    서울시 내 2020년과 2021년 토지거래 내용을 모두 뽑아, 그중 '도로 지분 거래' 내용만 추려 정리해보니 총 거래 건수는 2,827건입니다. 그런데 모아타운 사업을 시작한 2022년과 2023년엔 5,048건으로 약 두 배 가까이 거래가 증가했습니다.

    특히 성동구의 경우 2020년과 2021년 도로 지분 거래는 96건에 불과했지만, 2022년과 2023년에는 655건으로 6.8배 증가했고, 빌라 밀집 지역인 강서구의 경우 같은 기간 57건에서 478건으로 8.3배 뛰었습니다.

    우연일까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섣부르게 취재를 시작할 수 없었습니다. 너무 방대해 엄두가 안 났기 때문입니다.

    ■ 모아타운 '골목길 쪼개기' 극성‥8개 자치구 추가 발견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조회 시스템에서 서울시 자치구별로 토지 거래를 조회하면, '쪼개기 거래(지분 거래)'가 발생한 날짜와 거래 면적, 매입가 등에 대한 자료는 나오지만, 해당 지번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쪼개기 거래'로 추정되는 도로의 지번이 <강서구 화곡동 123-45번지일 경우, 공개된 자료에는 <강서구 화곡동 1**>으로만 표시가 됩니다.
    모아타운 '골목길 쪼개기' 기승‥그들은 왜 '황금도로'를 팔았나?
    해당 도로가 서울시의 모아타운 사업 이후 쪼개기 거래가 진행됐는지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우선 그 도로의 주소부터 알아야 하는데 이것조차 쉽지 않았습니다.

    결국, 생각해낸 방법은 이렇습니다.

    ① 실거래가 자료를 통해 비슷한 시기 거래된 도로 중, 같은 가격, 같은 면적인 것들을 분류한 뒤, 면적의 합을 구한다.

    ② 부동산 사이트에 접속. 도로를 확대해 한 필지, 한 필지를 클릭해가며 ①번에서 찾은 면적과 비교해 같은 규모의 필지를 찾는다.

    ③ 그 필지의 주소를 확인한 뒤, 등기부 등본을 통해 쪼개기 거래 여부를 확인한다. (비슷한 크기의 필지가 많기 때문에 이 과정을 여러 차례 반복한다)

    ④ 쪼개기 거래가 확인되면 구청에 연락해 모아타운 사업지 여부를 최종 확인한다.
    모아타운 '골목길 쪼개기' 기승‥그들은 왜 '황금도로'를 팔았나?
    이렇게 4단계를 거쳐 겨우 한 필지를 확인할 수 있는데, 하루에 자치구 한 곳, 1개년도를 확인하는 것도 벅찼습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 취재에 대한 확신이 들었을 때, 팀장에게 요청해 동료 기자 2명과 함께 TF를 구성했고, 약 한 달하고도 열흘간의 취재 끝에 취재진은 서대문구뿐만 아니라, 중랑구, 종로구, 관악구, 동작구, 강서구, 도봉구, 금천구 등 총 8개 자치구에서 추가로 골목길 지분 쪼개기 거래를 확인했습니다.

    ■ 모아타운 옆 동네도, 혹시?

    문제는 또 있습니다.

    이런 '골목길 쪼개기 투기'가 모아타운 인근 지역으로도 확산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조만간 모아타운이 될 수도 있다'는 기대심리 때문인데, 이 기대심리는 기획 부동산들의 좋은 먹잇감입니다.

    기획 부동산 업체들은 재작년 서울 강서구 화곡동의 4,000㎡ 골목길을 29억에 사들여 두 달 만에 263명에게 96억 원, 3배 넘는 가격으로 팔아치웠고,

    성동구 송정동 골목길 2,440㎡도 같은 방식으로 개인 160명에게 2배 가까운 가격으로 매도했습니다.

    취재진이 2022년과 2023년, 서울시내 토지 지분거래 자료 확인 분석한 결과 모아타운 주변 지역에서 골목길 쪼재기 거래가 이뤄진 골목길의 총 면적은 1만 3,453㎡이고 투자자는 959명에 달합니다.

    이에 대해 서울시는 부동산 이상거래 등 투기세력 유입이 의심되는 경우 구청장 판단 하에 모아타운 공모에서 제외할 수 있다는 방침 밝혔습니다.

    또 기획 부동산이 도로를 저가에 매수한 뒤 투기를 조장해 이익을 취한 것에 대해서 고발 등 적극 대응할 계획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MBC가 취재한 기획 부동산 업체들은 '법을 위반한 게 없다. 서울시가 무엇을 조사할지 모르겠지만, 한번 해봐라'라는 입장인 가운데, 서울시가 어떻게 조사하고, 또 어떤 대응책을 마련하는지 취재해 다시 보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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