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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기자이미지 정승혜

"서초119가 안산까지 오면 어떡하나"‥도처에서 응급실 '뺑뺑이'

"서초119가 안산까지 오면 어떡하나"‥도처에서 응급실 '뺑뺑이'
입력 2024-08-12 15:02 | 수정 2024-08-12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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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초119가 안산까지 오면 어떡하나"‥도처에서 응급실 '뺑뺑이'
    ■ '응급실 뺑뺑이' 끝에 간신히 도착했지만‥분노보다 절망감

    "경기도 파주에 사시던 분인데 갑자기 심장마비로 쓰러지셔서 응급실 찾다가 인하대 병원에 겨우 갔었대‥" 지난 주말 직장 동료의 어머니 문상을 다녀온 동생에게 들은 이야기에 따르면, 고인은 응급실 뺑뺑이 끝에 간신히 인천에 갈 수 있었지만 뇌손상을 입었고 (심장마비로 인해 뇌로 가는 혈액 공급이 몇 분 이상 중단되면 뇌세포가 손상될 수 있습니다) 중환자실에 계시다가 결국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그 상가에 만난 지인도 서초구에서 사시던 분이 뇌출혈이 왔는데 응급실 뺑뺑이를 돌다 간신히 강북의 한 대학병원에서 받아준다고 해서 갔지만 골든타임을 놓쳐서 도착 후 돌아가셨다면서 한숨을 내쉬었다고 합니다.

    상가에 있던 사람들이 이런 상황에 분노하지 않더냐고 동생에게 물어봤습니다. "분노보다는 무기력하다는 점, 의사도 정치인도 아닌 이들은 이런 상황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현실에 절망하는 것 같았다"고 말했습니다.
    "서초119가 안산까지 오면 어떡하나"‥도처에서 응급실 '뺑뺑이'
    ■ 50대 중반 교수가 당직하는 응급실‥언제까지 가능할까

    가까운 친지도 얼마 전 갑자기 낙상하신 어머니를 모시고 응급실 뺑뺑이를 겪었습니다. 119에 전화하니 주소지인 동작구의 구급대는 다 출동하고 없어서 인근 서초의 119구급대가 달려왔다고 합니다. 구급대원은 고령의 뇌출혈 환자라면서 지척에 있는 중앙대병원부터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지만 모조리 거절당했습니다. 성모병원, 보라매병원, 강남 세브란스병원, 삼성병원 등 동작, 서초, 강남에 있는 대형 병원은 물론 2차 병원에도 연락했지만 다들 받을 수 없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시간은 계속 흐르고 초조했지만 그저 전화돌리는 모습을 지켜볼 수 밖에 없었는데 갑자기 구급대원이 "됐습니다. 뚫렸습니다. 빨리 갑시다"라고 외쳤습니다. 경기도 안산에 있는 고려대병원에서 받아주겠다고 했다는 겁니다. 급하게 달려서 병원에 도착했는데 막상 응급실 간호사는 연락하고 온 거 맞냐, 그냥 온 것 아니냐면서 확인을 요구했습니다. 구급대원은 분명 전화를 했다면서 핸드폰 통화기록에 남아 있던 응급실 전화번호를 보여줬고 그제서야 간호사는 “아 교수님이 전화를 받았나 보네요”라면서 들여보내줬다고 합니다 (밀려드는 환자들을 감당하기 어려운 병원 응급실의 사정도 분명 있었을 겁니다). 사직한 전공의 대신 당직을 서던 응급의학과 교수님이 전화를 받았던 모양이었습니다.

    꼬박 밤을 새던 50대 중반의 응급의학과 교수님은 "아니 서초에서 안산까지 오면 어떡해요, 반포 정도에서 해결해야지”하면서도 흔쾌히 환자를 받아줬다고 합니다. 임무를 끝낸 구급대원들은 감사하고 또 미안해하던 친지에게 이런 상황이 익숙해서 괜찮다면서도 "여기 뇌 사진 찍으러 온 거에요. 입원은 안 시켜 줄 겁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습니다. 뇌출혈이 나타난 CT결과를 본 응급의학과는 신경외과와 협진해야겠다면서 다급하게 환자를 중환자실로 옮겼다고 합니다. 50~60대 의대 교수들이 하루 이틀 건너 응급실 당직을 선 지도 벌써 6개월째인데, 중년의 교수들이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서초119가 안산까지 오면 어떡하나"‥도처에서 응급실 '뺑뺑이'
    ■ 열사병으로 쓰러진 40대, 응급실 14곳 '뺑뺑이' 끝에 사망

    전공의들이 없어 당직과 회진, 외래를 혼자 도느라 며칠 만에야 만날 수 있었던 친지의 주치의는 환자 상태에 대한 설명을 끝낸 뒤 “여기가 주소 맞아요?”라고 물어봤다고 합니다. 서울에서 꽤 떨어진 안산까지 온 상황이 의외라고 생각했나 봅니다. 그래도 이 경우는 병원에서 받아줬으니 다행인 경우인데 이런 긴박한 ‘응급실 뺑뺑이’가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지 암울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난주에도 열사병으로 쓰러진 기초 수급자, 깔림사고를 당한 화물차 기사가 응급실 뺑뺑이를 돌다 사망했다는 기사가 있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사례들을 종합해보면 기사화되지 않은 병원들의 수용 거부, 이송 지연 사례는 더 많겠구나 라는 추정이 가능합니다.

    사실 의사 수 정원 문제를 둘러싼 의정 갈등으로 인해 전공의들이 병원을 비운 이후로는 아플까 봐 겁이 납니다. 운전을 하면서도 사고가 나지 않도록 더 조심하게 되고, 건강검진에서 재검 항목이라도 통보받으면 긴장됩니다. 지금 큰 병이라도 걸리면 치료도 못 받을텐데..라는 걱정이 앞서기 때문입니다.
    "서초119가 안산까지 오면 어떡하나"‥도처에서 응급실 '뺑뺑이'
    ■ 당장 1만 명 전공의 사라져‥정치가 의정 갈등 해소해야

    의대생 증원 발표로 시작된 정부의 의료개혁 방안에 처음에는 찬성하는 여론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의료 공백사태가 장기화되면서 국민들의 불안과 피로가 쌓이고 있습니다. 매년 1천 5백명의 의대생을 늘리자고 당장 1만 명이 넘는 전공의들이 사라졌고, 그로 인해 병원이 위급한 환자들을 받지 못하고 제 때 수술을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년에 의대에 입학하는 학생들은 대학 6년과 인턴, 전공의 수련을 거쳐 10년 후에나 의사가 됩니다. 그러나 지금 자리를 비운 1만 명의 전공의가 돌아오지 않으면 당장 국민의 생명이 위태롭습니다. 그런데 대통령도 정부도 여야 정치권도 탄핵, 특검, 거부권 갖고 싸우기만 할 뿐 의정 갈등을 해결할 생각은 없어 보입니다. 이슈가 장기화되면서 오히려 뒷전으로 밀려나 있는 형국이지만 사실 의료 공백은 너무나 심각한 문제입니다.

    21세기 선진국 대한민국에서 환자가 아픈데 받아주는 병원이 없어서, 의사가 없어서 응급실에 전화를 돌리다 죽어간다면 너무하지 않습니까. 의사와 정부, 양쪽 모두 각자의 입장에서 다 양보하기 어려운 이유가 있겠지만 사회적 갈등이 너무나 커지고 있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기 전에 이 갈등을 풀 방법과 주체는 결국 정치밖에 없습니다. 우리 사회의 갈등을 중재하고 해결하는 것, 그것이 정치의 책무이고 국가가 존재하는 이유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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