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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들을 수 없게 된 '글로리 투 홍콩'‥대체 왜?

다시 들을 수 없게 된 '글로리 투 홍콩'‥대체 왜?
입력 2024-05-11 09:02 | 수정 2024-05-11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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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들을 수 없게 된 '글로리 투 홍콩'‥대체 왜?
    "정의 구현 위하여 시대혁명, 민주 자유 영원히 홍콩 비추길 영광이 다시 오길"

    지난 2019년 6월, 수백만 명의 홍콩 시민들이 거리를 나섰습니다. 범죄인 인도 조약을 체결하지 않은 국가나 지역에 범죄인을 인도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범죄인 인도 법안'을 홍콩 정부가 추진하자, 시민들은 이 법이 인권운동가 등을 중국 본토로 인도하는 데 악용될 것이라며 맞섰습니다.

    당시 시민들은 시위 현장에서 '글로리 투 홍콩(Glory to Hong Kong)'이라는 노래를 다함께 부르며 단결했고 연대 의식을 키웠습니다. 시위 정보와 글 등을 공유하던 홍콩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시작된 이 곡은 시위 현장에서 널리 불리며 당시 홍콩 민주화 시위를 상징하는 곡이 됐습니다.

    홍콩 항소법원 "'글로리 투 홍콩', 국가 안보 위해 금지 필요하다"

    그리고 약 5년이 흐른 지난 8일, 홍콩 항소법원은 '글로리 투 홍콩'의 연주, 배포 등을 금지해달라는 홍콩 법무부 신청을 받아들였습니다. 법원은 "'글로리 투 홍콩'이 홍콩 독립을 추구하는 분리자들의 '무기'가 될 수 있다"며 "국가안보를 지키기 위해 금지 결정을 내려야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법원이 금지한 행위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 선동적 의도를 가지고 홍콩과 중국의 분리를 주장하는 목적으로 인터넷 등에 '글로리 투 홍콩'을 공연하거나 배포하는 등의 행위.

    둘째, 노래를 공연하거나 배포하는 등의 행위를 통해 홍콩을 독립 국가로 표기하거나 그러한 내용을 시사하는 행위.

    셋째, 중국의 국가를 모욕하려는 의도로 앞선 두 행위를 타인에게 방조하거나 선동하고, 참가하도록 하게 하는 행위.

    '글로리 투 홍콩'이 홍콩의 민주와 자유를 열망하는 가사를 담은 점을 고려할 때, 사실상 온라인상에 곡을 공유하거나 부르거나, 재생하는 행위 등이 모두 금지된 것입니다. 홍콩 법원이 특정 곡을 금지곡으로 설정한 것은 지난 1997년 영국이 홍콩을 중국에 반환 이후 처음입니다.

    '글로리 투 홍콩'을 국가로 제창하자, 차단 나선 정부

    이번 금지 결정은 '글로리 투 홍콩'을 막으려는 홍콩 정부의 부단한 시도 끝에 나왔습니다.

    시작은 보안법 제정이었습니다. 지난 2020년 들면서 시위가 6개월 넘게 장기화된 데다, 코로나19 유행까지 덮치면서 시위는 동력을 상실했습니다. 그 틈을 타 중국 정부가 직접 나섰습니다. 중국 인민대 상임위원회는 지난 2020년 6월 홍콩보안법을 제정했습니다. 홍콩 독립을 언급하며 선전, 시위 활동을 할 경우 체포하고 처벌할 근거를 만든 것입니다. 이 법이 시행된 뒤 홍콩의 수많은 민주진영 인사들이 체포됐고, '글로리 투 홍콩'을 부르는 행위도 처벌할 수 있게 됐습니다. 실제로 지난 2022년 9월,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를 추모하려 영국 총영사관 앞에 모인 시민들 앞에서 시민 한 명이 '글로리 투 홍콩'을 하모니카로 연주하다가 경찰에 체포되기도 했습니다.
    다시 들을 수 없게 된 '글로리 투 홍콩'‥대체 왜?
    주권반환 기념일 하루 앞두고…'홍콩 사망 선고'/김희웅 기자 (2020.06.30 뉴스데스크)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214/0001048617?sid=104

    결국 홍콩 정부는 전 세계 우려 섞인 시선에도 불구하고 보안법을 제정하여 처벌 근거를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또 다른 문제가 생겼습니다. 인터넷이었습니다.

    지난 2022년 11월 우리나라 인천 남동아시아드 럭비경기장에서 개최된 '2022 아시아 럭비 세븐스시리즈' 한국 대 홍콩 결승전의 국가 연주 시간에 '글로리 투 홍콩'이 울려 퍼졌습니다. 조직위 직원이 인터넷에 홍콩 국가를 검색했다가 나온 '글로리 투 홍콩'을 내려받아 국가 연주에 튼 것입니다. 이러한 '사고'는 두바이나 보스니아 등 다른 국제 스포츠 대회에서도 재현됐습니다. 2019년 민주화 시위를 계기로 '글로리 투 홍콩'이 널리 알려지면서, 홍콩의 국가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당시 구글 등에 홍콩 국가를 검색하면 중국 국가인 '의용군 행진곡' 대신 '글로리 투 홍콩' 관련 게시물이 더 많이 노출된 탓도 컸습니다.

    따라서 홍콩 정부는 검색엔진인 구글 등에 홍콩 국가를 검색할 경우, '글로리 투 홍콩'이 아닌 '의용군 행진곡'이 노출되도록 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구글은 '검색 결과는 사람 입력이 아닌 알고리즘으로 생성되는 것'이라며 요청을 거절했습니다.

    결국 지난해 6월 홍콩 법무부는 법원에 금지 명령을 신청했습니다. 당시 법무부는 "'글로리 투 홍콩'은 타인을 선동해 국가 안보를 위험에 빠뜨리는 데 사용돼왔다"며 "홍콩의 국가로 잘못 알려져, 국가를 모욕하고 국가와 홍콩에 해를 끼쳤다"고 주장했습니다.
    다시 들을 수 없게 된 '글로리 투 홍콩'‥대체 왜?
    중국 국가 연주에 야유했다고‥홍콩 경찰 "처벌할 것"/이해인 기자 (2022.09.25 뉴스데스크)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214/0001224447?sid=104


    1심 기각 "표현의 자유 훼손, 무고한 사람도 위축"‥2심은 인용

    1심을 맡은 홍콩 고등법원은 지난해 7월 정부의 신청을 기각했습니다. 재판부는 "기존 법으로도 노래의 출판과 유포 행위를 처벌할 수 있다"며 "금지 명령까지 내릴 경우 표현의 자유를 훼손하고 잠재적 위축 효과를 야기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무고한 사람들까지 금지 명령을 위반할까 두려워 합법적인 행동을 삼가는 등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지난 8일 나온 항소심 판단은 달랐습니다. "인터넷 플랫폼 사업자들을 설득해 해당 노래와 문제 영상을 삭제하려면 금지 명령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결국 홍콩 정부는 법원 명령을 통해 구글 등 온라인상에 게시된 '글로리 투 홍콩' 관련 영상과 곡들을 금지하고 삭제할 근거를 마련했습니다.

    중국 "당연한 결정"‥미국 "홍콩 인권 잠식 상황 우려"

    이번 결정을 두고 중국 정부는 "당연한 결정"이라는 입장을 내놨습니다. 하지만 서방은 우려를 표했습니다. 미국 국무부 매슈 밀러 대변인은 지난 8일(현지 시각) 브리핑에서 "표현의 자유를 포함한 홍콩 인권이 계속 잠식되고 있는 상황을 심각하게 우려한다"며 "이 노래를 금지한 결정은 독립적인 사법부를 가지고 있다고 자부했던 한 도시의 국제적인 명성에 타격을 입힌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국제적인 인권단체 앰네스티의 사라 브룩스 중국팀장은 "홍콩인의 표현의 자유에 대한 무의미한 공격일 뿐만 아니라 국제인권법 위반"이라며 "시위곡을 부르는 것이 결코 범죄가 돼선 안 되며, 정부가 주장하는 것처럼 '국가 안보' 위협으로 간주돼서도 안된다"고 말했습니다.

    홍콩 민주화 시위가 발발한 지 5년이 지났습니다. 그새 홍콩의 모습은 많이 바뀌었습니다. 국가안보를 지킨다는 이유로 제정된 보안법에 의해 시민과 민주 진영 정치인과 언론인 등 수백 여 명이 체포됐습니다. 지난 2021년 정부가 인정한 '애국자' 자격을 갖춘 사람에게만 출마 자격을 주고, 구의회에서 시민이 직접 뽑는 의원들의 비율도 전체 5분의 1로 줄이는 등 선거법을 개정하면서 범민주진영은 아예 사라졌습니다. 더욱 강화된 국가보안법이 올해부터 시행되면서, 이제 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다고 생각한 외국계 은행, 로펌, 언론사 등도 사무실을 닫고 홍콩을 떠났습니다. 한때 중국과는 분리된 법률 시스템 아래에서 아시아 경제의 허브로 꼽히며 각광받던 홍콩을 이제 다들 떠나고 있습니다. '민주 자유 영원히 홍콩 비추길, 영광이 다시 오길'이라며 '글로리 투 홍콩'을 부르던 홍콩 시민들의 희망과 바람에 갈수록 그림자가 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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