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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이미지 이정은

"내 모든 질문은 사랑"‥강연 '빛과 실'

"내 모든 질문은 사랑"‥강연 '빛과 실'
입력 2024-12-11 03:05 | 수정 2024-12-11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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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앵 커 ▶

    한강 작가가 사흘전 스웨덴 한림원에서 노벨문학상 수락 강연을 했습니다. 자신의 문학 세계, 작품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공유하기 때문에 이 강연문을 '하나의 문학 작품'으로 여기기도 하는데요. 이번 강연문의 제목을 한 작가는 <빛과 실>로 명명했습니다.

    함께 들어보시겠습니다.

    [한강/2024 노벨문학상 수상자]

    지난해 1월, 이사를 위해 창고를 정리하다 낡은 구두 상자 하나가 나왔습니다. 열어보니 유년 시절에 쓴 일기장 여남은 권이 담겨 있었습니다.

    사랑이란 어디 있을까?

    팔딱팔딱 뛰는 나의 가슴 속에 있지.

    사랑이란 무얼까?

    우리의 가슴과 가슴 사이를 연결해주는 금실이지.

    서가에 거꾸로 꽂힌 '광주 사진첩'을 우연히 발견해 어른들 몰래 읽었을 때는 열두 살이었습니다. 쿠데타를 일으킨 신군부에 저항하다 곤봉과 총검, 총격에 살해된 시민들과 학생들의 사진들이 실려 있는…(중략) 인간은 인간에게 이런 행동을 하는가, 나는 생각했습니다. 동시에 다른 의문도 있었습니다. 같은 책에 실려 있는, 총상자들에게 피를 나눠주기 위해 대학병원 앞에서 끝없이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의 사진이었다. 인간은 인간에게 이런 행동을 하는가. 양립할 수 없어 보이는 두 질문이 충돌해 풀 수 없는 수수께끼가 되었습니다.

    한 젊은 야학 교사의 일기를 읽었습니다. (중략) "하느님, 왜 저에게는 양심이 있어 이렇게 저를 찌르고 아프게 하는 것입니까? 저는 살고 싶습니다." 그 문장들을 읽은 순간, 이 소설이 어느 쪽으로 가야 하는지 벼락처럼 알게 되었습니다.

    인간의 잔혹성과 존엄함이 극한의 형태로 동시에 존재했던 시공간을 광주라고 부를 때, 광주는 더 이상 한 도시를 가리키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보통명사가 된다는 것을 나는 이 책을 쓰는 동안 알게 되었습니다. 시간과 공간을 건너 계속해서 우리에게 되돌아오는 현재형이라는 것을.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

    진짜 주인공은 인선의 어머니인 정심입니다. 학살에서 살아남은 뒤, 사랑하는 사람의 뼈 한 조각이라도 찾아내 장례를 치르고자 싸워온 사람. 애도를 종결하지 않는 사람. 고통을 품고 망각에 맞서는 사람. 작별하지 않는 사람. 평생에 걸쳐 고통과 사랑이 같은 밀도와 온도로 끓고 있던 그녀의 삶을 들여다보며 나는 묻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사랑할 수 있는가?

    세계는 왜 이토록 폭력적이고 고통스러운가? 동시에 세계는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가?

    이 두 질문 사이의 긴장과 내적 투쟁이 내 글쓰기를 밀고 온 동력이었다고 오랫동안 믿어왔습니다. (중략) 그러나 이삼 년 전부터 그 생각을 의심하게 되었습니다. (중략) 첫 소설부터 최근의 소설까지, 어쩌면 내 모든 질문들의 가장 깊은 겹은 언제나 사랑을 향하고 있었던 것 아닐까? 그것이 내 삶의 가장 오래고 근원적인 배움이었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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