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제지회사에 취업하고, 공장 다니면서 치열하게 공부해 방통대 학사학위를 딴 만수는 한때 알콜 문제를 겪은 시간도 있었지만, 지금은 특수제지 분야의 전문가가 되었다. 사랑하는 아내와 두 자녀, 두 마리의 반려견과 함께 부족함 없이 살아가고 있는 이 평범한 가장이 25년간 헌신한 회사에서 하루아침에 해고된다. ‘실직은 내 잘못이 아니다’, ‘나는 반드시 재취업에 성공한다’고 거듭 자신을 다독여보지만, 번번이 면접에서 떨어지며 어렵게 장만한 집까지 내놓아야 할 처지에 몰린다. 더 이상 물러설 곳 없는 벼랑 끝, ‘만수’는 이제 자신만의 전쟁을 준비하게 된다.
이병헌은 만수가 원하는 자리를 얻기 위해 다른 이를 제거해야 하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베니스 영화제때 AI에게 남우주연상 후보를 물어보고 나를 포함 3명의 인물을 답해주길래 '이번에도 두 명을 제끼면 되나'라는 농담을 스태프들과 했었다"라고 하며 실제로는 동료 배우들과의 대화를 통해서도 불안정한 상황에 많은 영감을 받았음을 이야기했다.
그는 "저도 당장 차기작이 정해져 있지 않다. 하지만 지금 결정을 앞두고 있는 시나리오나 대본들은 있는 상황이어서 일이 끊겼다고 볼수는 없다. 하지만 많은 배우들은 작품과 작품 사이 공백기가 길어지면서 실직 같은 시간을 겪는다. 그런 동료들의 상황을 보며 간접적으로 감정을 이입했다"고 전했다. 이어 "AI 기술의 발전이 영화계에도 이미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화 속 제지산업이 사양 산업에 놓인 것처럼 극장도 위기에 처해 있다는 점에서 만수의 직업적 상황과 제 배우로서의 현실이 닮아 있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어쩔수가없다'에서 만수는 재취업을 위해 자신의 경쟁자들을 제거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런데 그가 제거하려 하는 대상들이 오히려 자신과 닮아 있다는 점도 흥미로운 지점이었다. 이병헌은 “범모는 곱슬머리 헤어스타일부터 성격까지 만수와 많이 닮았다. 아날로그적이고 뭔가 한 분야에만 몰입하는 모습도 비슷하다. 범모의 아내 아라와의 관계를 보면서는 만수와 미리의 모습을 떠올리게도 한다"고 설명했다.
또 "선출은 내가 질투하면서도 부러워하는 대상이었고, 만수가 가진 허세의 확장판처럼 보였다. 시조를 찾아갔을 때는 딸을 보며 만수와의 동길감을 느꼈다. 리원이가 늘 가방을 앞으로 메는데, 시조의 딸도 가방을 앞으로 메고 들어오는 모습을 보며 저절로 딸을 떠올렸고 누가 묻지도 않는데 주절주절 딸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꺼내고 있다. 그런 식으로 세 캐릭터 모두에게 감정 이입이 됐고, 계획을 세우면서도 주저하고 갈등하게 만들었다. 결국 만수가 자기 자신을 조금씩 제거해 나가는 듯한 과정으로 느껴졌다”고 말했다.
영화에서 만수는 짠한 모습을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그 짠한 모습이 기가막히게 웃기기도 했다. 특히 질투와 지침과 화가 버무러진 표정으로 춤을 추는 장면과 뒤 이어 그 어디에서도 보지 못한 부부싸움 장면은 웃음과 충격을 안겨줬다. 이병헌은 "대본에 스테이지로 접근하는 장면이 춤을 추는 걸로 되어 있었다. 아내에게 다가가는 만수는 다른 사람들 사이에 섞여서 마치 춤을 추듯, 눈에 띄지 않게 동질감을 주며 접근하는 거였다. 현장에서 테이크마다 다르게, 즉흥적으로 상대의 움직임에 맞춰 춤추듯 연기했다. 모니터로 확인했을 때 김혜자 선생님의 ‘마더’ 마지막 장면이 떠올랐다"고 회상했다.
또 "배우끼리 '잘생겼잖아, 예쁘잖아'라고 주고받는 대사는 최종 각색 과정에서 새로 들어간 대사였다. 미리가 '너도 잘생겼잖아'라고 하는 말에 대한 만수의 다양한 버전의 리액션을 찍었는데 어떤 때에는 뭔가 만족한 표정도 지어봤고 지금 영화에 들어간 얼어붙은 표정도 지어봤는데 지금 영화에 들어간 버전이 가장 웃기고 효과적인 것 같다”고 말했다.
유난히 몸으로 하는 연기가 많았던 것에 대해서 이병헌은 "만수는 처절한 상황에 놓여 있다. 그 몸부림이 바깥에서 볼 때 우스꽝스러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제가 코미디를 하려고 연기하면 그 순간 연민과 감정은 사라진다. 관객이 '저 배우가 웃기려고 한다'고 느끼면 안 된다. 그래서 진지함을 유지하면서도 관객이 몰래 웃게 되는 정도로만 선을 지키려 했다"며 선타는 연기의 비결을 밝혔다.
이성민-염혜란과 함께 연기한 '고추잠자리'장면은 이번 영화의 대표적인 장면으로 꼽힌다. 그는 “며칠 동안 찍은 장면이었는데 정말 힘들었다. 합이 짜여 있는 액션보다 훨씬 힘든 장면이었다. 배우들이 뒤엉켜 위치가 바뀌고 세 명이 한꺼번에 엉키는 상황도 있었다. 염혜란 씨는 발가락에 골절이 있었는데도 씩씩하게 해내셨다. 그 장면은 영화에서 가장 큰 숙제였고, 어떤 관객들은 그 장면을 "'올드보이'의 장도리 장면처럼 시그니처 시퀀스"라고도 하더라. 저도 같은 생각”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극 초반에 등장하는 관자놀이를 두드리는 장면은 실제로 존재하는 테라피라고 하더라. 마음을 치유하고 용기를 북돋아주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며 관자놀이의 핏줄은 자신의 것이 맞지만 핏줄이 펄떡이는 건 약간의 그래픽이 가미된 것임을 고백했다.
이병헌은 "만수를 연기하며 결국은 자기 자신을 무너뜨리는 인물을 보여주고 싶었다. 영화 처음에 모든 걸 다 이뤘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모든 걸 잃은 사람으로 끝나게 된다. 그 여정 속에서 관객이 웃음과 슬픔을 동시에 느낀다면 그게 이 영화가 가진 힘일 것"이라고 전했다.
'다 이루었다'고 느낄 만큼 삶이 만족스러웠던 회사원 '만수'(이병헌)가 덜컥 해고된 후, 아내와 두 자식을 지키기 위해, 어렵게 장만한 집을 지켜내기 위해, 재취업을 향한 자신만의 전쟁을 준비하며 벌어지는 이야기 '어쩔수없다'는 9월 24일 개봉했다.
iMBC연예 김경희 / 사진출처 BH엔터테인먼트 / ※이 기사의 저작권은 iMBC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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