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22년, 아파트 지하 분리수거장에 호기심에 라이터로 불을 질렀다가 8명을 다치게 한 혐의로 구속돼 재판에 넘겨졌던 27살 지적 장애인 김 모 씨.
인명피해도 다수 있었던데다, 아파트 수리비 등 피해액을 거의 갚지 못했습니다.
실형이 나올 수도 있었던 상황이었지만 지난해 12월 20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4부는 김 씨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하고, 3년간 보호관찰을 명령했습니다.
성년 지적 장애인이 처한 현실을 고려해, 재판부가 선처한 겁니다.
[재판부, '집행유예' 선처‥왜?]
판결문에는 고민의 흔적이 곳곳에 나타나 있습니다.
재판부는 먼저 "지적 장애인이 미성년자일 때는 초·중·고교의 특수반이나 특수학교 교육을 통해 여러 관리를 받을 수 있지만, 성년이 된 이후에는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제공하는 복지제도 내지 혜택이 상대적으로 줄어들게 된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성인 지적 장애인의 보호·관리 책임은 대부분 가족에게 귀속되어 가족 전체가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된다"고 짚었습니다.
지적 장애인이 성년이 되며 복지 사각지대에 놓이게 되는 현실에 주목한 겁니다.
재판부가 본 김 씨의 사정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김 씨는 성인이 된 뒤, 가족이 생계를 위해 경기도 성남에서 서울로 이사를 했는데, 서울에서는 장애인 복지관 프로그램 이용이 여의치 않았습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복지관 프로그램마저도 이용하지 못하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김 씨의 증세가 악화돼 일탈적 행동이 발현된 사정이 확인한다"고 밝혔습니다.
결국 지금 같은 구조에선 방화와 같은 지적 장애인의 일탈 행동이 발현될 가능성은 높아질 수밖에 없는 겁니다.
재판부는 "김 씨를 엄벌에 처하는 것만이 국가 형벌권의 적정한 행사인지 다소 의문"이라면서 "성년 지적 장애인이 한 명의 건강한 사회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비단 부모에게만 주어지는 개인적 책임이 아니라, 국가와 사회가 머리를 맞대고 함께 해결해야 할 공통의 과제"라고 지적했습니다.
[여전히 남은 민사 소송, 부모 책임 어디까지?]
이번 1심 판결에도 불구하고, 김 씨와 가족들에겐 여전히 문제가 남아 있습니다.
화재보험사 측이 아파트 수리비 등을 갚으라며 민사 소송을 낸 겁니다.
보험사 측은, 김 씨의 아버지가 책임을 져야 한다며 수억 원대 구상금을 청구했고, 한때 월급과 집까지 가압류를 걸었습니다.
김 씨 아버지는 이의신청을 냈고 법원은 "김 씨가 심신상실 상태로 아버지가 책임을 져야 하는 건지, 피해 액수가 얼마인지 등에 대해 다툼이 있다"며 일단 가압류는 취소했지만, 여전히 구상금 청구 소송은 진행되고 있습니다.
앞서 김 씨 방화 사건에서 1심 법원은 "김 씨는 심신미약자가 아니"라고 판단하며 책임을 줄여주지 않았습니다.
김 씨 가족은 아무리 지적 장애인이라고 하더라도 독립된 인격체라며 대체 지적 장애인들의 가족은 어디까지 책임을 져야 하는지 묻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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