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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기자이미지 정혜인

'인천 맨홀 사고'로 숨진 5남매 '슈퍼맨 아빠'‥아이들은 어떻게?

'인천 맨홀 사고'로 숨진 5남매 '슈퍼맨 아빠'‥아이들은 어떻게?
입력 2025-10-14 06:10 | 수정 2025-10-14 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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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 '한 달 차이로 산재 불가'‥다섯 아이 남겨진 '인천 맨홀 노동자' (2025.10.09/뉴스데스크)
    https://www.youtube.com/watch?v=mJ44sLpRnNw

    인천 맨홀에서 노동자 2명 숨져‥'슈퍼맨 아빠' 이용호 씨도 하늘나라로

    지난 7월, 인천 계양구의 한 맨홀에서 하수관 조사를 하던 노동자 2명이 숨졌습니다.

    이 가운데 한 명은 48살 이용호 씨로, 땅 밑에서 유해가스를 마시고 의식을 잃은 동료를 구하러 뛰어들었다가 같이 질식해 숨졌습니다.

    이 씨는 필리핀 국적의 아내와 3녀 2남의 다섯 자녀를 둔 가장이었습니다. 첫째가 11살, 막내가 이제 6개월입니다.

    이 아이들이 기억하는 아빠는 "슈퍼맨"이었습니다. 이제 만 4살 된 넷째가 제게 말해줬는데요.

    이 씨는 땅밑에서 하수관을 조사하는 고된 일을 하면서도 주말에는 꼭 아이들을 데리고 전국 곳곳 여행을 다녔다고 합니다.

    그때의 추억은 이 씨가 모두 가족사진으로 남겨 집안을 온통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아이들은 주말만 되면, 함께 갔던 캠핑에서 아빠가 맥주를 마시며 행복해했던 모습을 얘기합니다.

    사고가 난 건 일요일이었습니다.

    이 씨는 출장을 가 있었는데, 사고 전날에도 아내에게 전화해 "아이들이 너무 보고 싶다, 얼른 올라가겠다"고 얘기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주말까지 무리하게 일했던 거고요.

    사는 곳은 대구였지만 조금이라도 일당이 더 센 곳을 찾아 인천까지 갔다가 변을 당한 겁니다.

    하청에 재하청‥공공기관이 발주했지만 '나 몰라라'
    '인천 맨홀 사고'로 숨진 5남매 '슈퍼맨 아빠'‥아이들은 어떻게?
    사고 당시 이 씨는 1인 사업자로, 무려 3단계 하청을 거쳐 일을 받게 됐습니다.

    발주처인 인천환경공단이 A 업체에 일을 맡겼고, 이 용역업체가 B 업체에 다시 하청을, B 업체가 이 씨에게 또다시 하청을 줬습니다.

    유가족은 공공기관의 일을 하다 사고가 났으니, 합당한 사과와 보상이 있을 거라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습니다. 공단 측이 책임을 인정하지 않으면서부터입니다.

    공단은 정식으로 일감을 준 업체가 자신들 모르게 불법으로 재하청을 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계약할 때 '발주처 동의 없는 하도급을 금지한다'고 했는데, 이걸 어겼다면서 책임을 떠넘겼습니다.

    공단 측 직원이 업무 현장을 직접 점검했음에도 불구하고 재하청 노동자였는지 몰랐다고도 했습니다.

    유족은 "재하청 문제가 그렇게 중요한 거였다면, 왜 진작 확인하지 않았느냐"며 울분을 토했습니다.

    그래서 사고가 난 지 석 달이 지났지만, 여전히 책임 소재를 따지고 있습니다. 공단 측에서 소정의 위로금을 줬다고 하지만 그걸로 대체될 수는 없겠죠.

    다만 경찰이 조사 과정에서 "공단이 하청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는 취지의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한 달 차이로 "보상 어려워"‥남은 외국인 아내와 5남매는 '망연자실'
    '인천 맨홀 사고'로 숨진 5남매 '슈퍼맨 아빠'‥아이들은 어떻게?
    정부가 3개월간 지급했던 긴급지원마저 끊기면서, 유족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산재 보상의 하나인 '유족 연금'이 꼭 필요한 상황입니다.

    외국인 아내가 어린 다섯 아이를 혼자 키우면서 일자리를 구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인데요.

    유족이 근로복지공단에 이 보상이 가능한지 문의한 결과, 돌아온 답변은 "보상이 어렵다"는 충격적인 소식이었습니다.

    이 씨가 사고 당시 산재보험에 들지 않았다는 이유입니다. 산재보험은 국가 4대 보험 중 하나로, 사업자라면 가입이 의무가 아닌 '선택'입니다.

    원래 이 씨는 5월까지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로서 산재보험 대상이었지만, 6월 1일 자로 사업자 등록을 해 산재보험에서 빠졌습니다.

    이 씨처럼 수입이 고정적이지 않고 일당이 많지 않은 업종은 개인사업자로 일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사고가 7월 초에 났던 걸 고려하면 불과 한 달여 차이로 보상을 받기 어려워진 건데요.

    명백히 재하청을 받아 일한 '노동자'였지만 서류상 신분이 발목을 잡았습니다.

    1인 사업자 산재보험 가입자는 2만 3천 명‥1%도 안 돼
    '인천 맨홀 사고'로 숨진 5남매 '슈퍼맨 아빠'‥아이들은 어떻게?
    문제는 이런 1인 사업자가 이 씨 말고도 너무나 많다는 겁니다.

    MBC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이용우 의원실과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확보한 자료를 보면, 올해 6월 기준 산재보험에 가입한 1인 사업자(고용원이 없는 자영업자)는 2만 3천961명입니다.

    같은 시점 전체 1인 사업자가 420만여 명인 걸 고려하면 0.57%로, 단 1%도 안 되는 수준입니다.

    1인 사업자 상당수가 하청업자인 걸 생각하면 하청구조의 취약성 탓에 누구보다 위험에 노출되기 쉽습니다.

    누구보다 쉽게 사고를 당할 수 있는 노동자 상당수가 죽거나 다쳐도 보상받기 어려울 수 있다는 뜻입니다.

    지난해 이들의 산재승인 건수는 1천277건으로, 최근 3년간 매년 1천여 건을 기록했습니다.

    이용우 의원은 "지난 2018년부터 고용원 없는 1인 사업자의 산재보험 특례 가입이 허용됐지만, 지금까지도 가입이 매우 미미한 상황" 이라며 "홍보 부족과 소득 불안정, 보험료 부담이 장애 요인으로 지적되는 만큼 적극적인 행정과 지원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인천 맨홀 사고'로 숨진 5남매 '슈퍼맨 아빠'‥아이들은 어떻게?
    절망 속에도 유족의 선택은 장기기증‥ 이제는 '슈퍼맨'에서 '천사'로


    고 이용호 씨는 마지막 가는 길에 다른 사람들에게 새 생명을 주고 떠났습니다. 장기기증을 한 건데요.

    이 씨는 태어날 때부터 한쪽 눈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만큼 아픈 사람의 마음을 잘 알았고 도움도 많이 줬다고 합니다. 유족들이 미어지는 심정에도 이같이 결정한 이유입니다.

    하지만 정작 이들의 생계는 위태롭습니다. 지금까지 보상에 대해 그 어떠한 안내도 받지 못하면서 어느 때보다 절망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는데요.

    그래도 다행인 건, 보도된 리포트를 보고 이들 가족을 돕고 싶다고 나선 분들이 생겼습니다. 이들의 변호를 돕겠다는 분도, 지원을 하겠다는 단체와 개인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건 이들이 끝까지 이 씨의 남은 몫까지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는 거겠죠.

    이 씨가 그렇게 지키고 싶어했던 가족들을 위해, 또 어디선가 혼자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을 위해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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