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8월 영화관을 찾은 이재명 대통령이 객석에 앉아 영화를 보기 전 유심히 읽고 있던 편지는 누가 건넸고, 그 편지에는 어떤 사연이 담겨 있었는지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편지를 건넨 건 30년 전 경비교도대원으로 복무하다, 갖은 가혹행위 끝에 스스로 생을 마감한 고 김성철 일교(일병)의 동생인 김성진 씨.

지난 8월, 영화 관람 전 이재명 대통령이 시민이 건넨 편지를 읽는 모습
https://imnews.imbc.com/news/2025/society/article/6778072_36718.html
이와 함께, MBC는 김 일교의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지난달 사실상 승소했다는 소식도 전했습니다.
다만 그때까지만 해도, 법무부가 항소할지 결정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 '국가폭력'에 숨진 경비교도대원‥정성호 "항소 포기"
그런데 MBC 보도로부터 약 20일이 흐른 뒤인 지난 11일, '답장'이 전해졌습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SNS에 글을 올린 겁니다.
정 장관은 "뒤늦은 정의라도 결국 실현해 내는 것이 국가의 책무"라며, 법무부가 '고 김성철 일교 사건'의 항소 포기를 결정했다고 밝혔습니다.
고 김성철 일교는 육군에 입대한 뒤 경비교도대로 차출돼, 마산교도소에서 복무하던 지난 1995년 스스로 세상을 등졌습니다. 교도소 측은 내부 자료에 고인이 '여자친구 문제로 고민하다 극단적 선택을 했다'고만 남겼지만, 지난 2021년 군 사망사고 진상규명위원회는 "고인이 부대 내 만연한 구타와 욕설, 가혹행위와 부대 관리 소홀 등으로 사망했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지난 1992년, 서울대 입학식에서 가족과 함께 사진을 찍은 고 김성철 일교의 모습. 동생 김성진 씨 제공
1년 반 만인 지난달 19일, 서울중앙지법 제45민사부는 국가가 고 김 일교의 유족들에게 약 6억 원을 배상하라고 선고했습니다.
재판부는 판결문을 통해 "고인이 부대 내 구타나 가혹행위 등으로 자살에 이른 건 아닌지 실체적 진실을 규명해야 함에도, 국가가 이 사건에 대해 제대로 된 조사를 했다고 볼만한 자료가 없다"고 지적하며, '국가가 유족의 정신적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정성호 장관은 "고 김성철 일교는 복무 중 숱한 구타와 가혹행위, 부대의 방치 끝에 투신 사망한 것이었으나 당시 군과 교도소 측은 고인이 이성 문제로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은폐, 왜곡했다"며 "유가족들과 군 사망사고 진상규명위원회의 끈질긴 노력 끝에 2021년 진상이 밝혀지고 마침내 '순직'이 인정된 또 하나의 국가폭력, 군 사망 사건"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법무부는 국가의 과오를 반성하며, 고인과 유가족의 명예를 회복하겠다는 결자해지의 마음으로 최근 유가족들의 승소로 끝난 국가배상사건의 항소를 포기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습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
이어 "항소 포기가 고 김성철 일교를 비롯한 군 사망사고 피해자들의 안식과 영면에 조금이나마 기여하길 기원한다"고 덧붙였습니다.
■ '달걀로 바위 치기' 끝에‥30년 만의 명예회복
"저, 처음으로 울었어요. 그동안 정말 오래 싸워 왔는데, 이제까지는 꾹 참아 왔는데…"
만일 국가가 항소한다면 유족에게 또 다른 폭력이 될 거라고 말했던 고인의 동생 김성진 씨, 그랬던 김 씨도 항소 시한 만료를 앞두고선 마음을 비우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다 들려온 법무부의 항소 포기 소식은 오빠의 명예를 위해 긴 세월 싸워 온 막냇동생을 눈물짓게 했습니다.
김 씨는 지난 시간이 말 그대로 '계란으로 바위 치기'에 가까웠다고 말합니다. 한시적으로만 문을 열었던 군 사망사고 진상규명위원회의 문을 두드려 오빠를 죽음에 이르게 한 진실을 찾아내고, 끝내 순직을 인정받았습니다.
오랜 세월 유족의 피해를 외면해 온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까지 진행한 끝에, 법무부의 이번 항소 포기로 비로소 오빠의 명예회복을 이뤄낸 셈입니다.

지난 6월 법원에 탄원서를 제출한 김성진 씨. 본인 제공
국가가 책임을 인정하고 보상을 한다지만, 억만금을 준다고 해도 유족의 고통이 오롯이 치유되기란 어려운 일입니다.
앞서 정성호 장관은 항소 포기 사실을 알리며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라고 하지만, 뒤늦게라도 잘못을 바로잡고 정의를 실현해 내는 것이 국가의 책무"라고 언급했습니다. 지극히 당연한 이 명제가 다시는 번복되지 않고, 반드시 흔들림 없이 실천되기를 바랍니다.
고 김성철 일교를 비롯한 군 사망 피해자들의 영원한 안식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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