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놀라 게이'도 게이여서 안 돼‥미국판 역사 다시 세우기 [World Now]](http://image.imnews.imbc.com/news/2025/world/article/__icsFiles/afieldfile/2025/03/21/joo250321_10.jpg)
에놀라 게이와 리틀보이
"에놀라 게이, 어머니는 오늘 작은 소년을 자랑스러워할까? 아 네가 건넨 키스는 이렇게 사라지진 않을 거야"(Enola Gay Is mother proud of little boy today? Ah-ha, this kiss you give It's never ever going to fade away)
영국의 밴드 OMD(Orchestral Manoeuvers in the Dark)가 1980년에 발표한 노래 '에놀라 게이'의 가사입니다. 평범한 내용 같지만 어머니가 아들을 자랑스러워하는지가 왜 궁금한지, 이유가 안 나오는데요. 사실 여긴 역사적 사실에 기반한 은유가 있습니다. 여기서 에놀라 게이는 2차 세계대전 당시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떨군 B-29 폭격기의 애칭이고 꼬마 소년, 리틀보이는 (Little boy)은 루스벨트 대통령의 애칭이자 당시 실렸던 원자폭탄에 붙인 이름이었습니다. 여기서 핵심인 에놀라 게이(Enola Gay)는 이 B-29의 기장인 폴 티비트 대령의 어머니 이름입니다. 티비트 대령이 자신의 비행기이름을 어머니 이름을 따서 지은 거죠.
!['에놀라 게이'도 게이여서 안 돼‥미국판 역사 다시 세우기 [World Now]](http://image.imnews.imbc.com/news/2025/world/article/__icsFiles/afieldfile/2025/03/21/joo250321_7_1.jpg)
원폭을 투하한 에놀라 게이 [U.S. Air Force via AP]
에놀라 게이, 다양성(DEI)과 함께 사라지다
그런데 미 국방부가 웹사이트의 사진란에서 이 '에놀라 게이' 사진을 최근 삭제 대상에 올렸습니다. 현지시간 8일 AP통신의 보도에 따르면 일본에 원폭을 투하한 에놀라 게이 폭격기, 해병대의 보병훈련을 통과한 최초의 여성에 대한 언급 등의 사진과 자료 수만 개가 삭제대상으로 지정했습니다. 국방부가 다양성과 형평성, 포용성(DEI/ Diversiy, Equity and Inclusion) 콘텐츠를 제거하기 시작한 작업의 일환인데 사진만 2만 6천 개가 삭제 대상에 올랐다고 합니다.
실제로 미국 국방부의 사진 데이터베이스란에서 '에놀라 게이'를 키워드로 검색해도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미 삭제가 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에놀라 게이'도 게이여서 안 돼‥미국판 역사 다시 세우기 [World Now]](http://image.imnews.imbc.com/news/2025/world/article/__icsFiles/afieldfile/2025/03/21/joo250321_6_1.jpg)
미국 국방부 사진 DB에서 '에놀라 게이' 검색 결과
이오지마의 깃발도 삭제
뿐만 아니라 태평양 전쟁의 상징 같은 사진도 역시 삭제됐습니다. 미 해병대원들이 격전 끝에 점령한 이오지마 섬의 스리바치산 정상에 성조기를 꽂는 사진입니다. '이오지마의 성조기'로 불리며 미 해병대의 가장 자랑스런 승리의 순간을 보여주는 사진입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이 '아버지의 깃발'이란 영화로 이 사진의 주인공이었던 군인들의 이야기를 영상화하기도 했습니다.
에놀라 게이, 이오지마의 성조기 이 모두가 사라진 것은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 때문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연방정부안에서 모든 다양성 프로그램들을 없애라고 지시했습니다. 이에 따라 에놀라 게이나 이오지마의 깃발은 사라지게 된 거죠. 이오지마의 깃발은 이 깃발을 꽂은 주역인 해병대원들 가운데 미국 원주민 출신인 아이라 해밀턴 헤이스가 포함돼 있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의 이야기는 역시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영화에서도 주인공 격으로 다뤄졌습니다.
!['에놀라 게이'도 게이여서 안 돼‥미국판 역사 다시 세우기 [World Now]](http://image.imnews.imbc.com/news/2025/world/article/__icsFiles/afieldfile/2025/03/21/joo250321_5_2.jpg)
이오지마의 성조기 [위키피디아]
공병대 공사는 왜 삭제됐나? 엔지니어 이름이 게이라서?
그런데 에놀라 게이 폭격기는 왜 사라지게 됐을까요? 그것은 에놀라 게이의 '게이' Gay란 단어 때문으로 보입니다. 이 실마리는 특이하게 발견됐는데요. AP보도에 따르면 캘리포니아 육군 공병대가 하천 준설공사 하는 여러 사진도 삭제대상으로 올랐다고 합니다. 공병대의 공사사진이 왜 삭제대상인지 의아했는데 알고 보니 사진 속 엔지니어도 성이 Gay였다고 합니다. 즉 Gay란 성이 들어가면 다 아웃인 거죠.
영어단어 Gay가 동성애자를 의미하고 그래서 Gay란 단어가 있으면 소수자를 다룬 콘텐츠이므로 삭제 대상에 오르게 되는 겁니다. 하지만 여기서 보듯 엔지니어의 성인 '게이'나 에놀라 게이의 '게이'는 다 사람의 성(性)씨이지 동성애자와는 상관없습니다. gay는 또 쾌활한 이란 의미도 있지요. 에놀라 게이가 있던 2차 대전 전후까지는 게이는 동성애자의 의미는 없었고 그저 사람 이름이나 '쾌활한' 형용사로나 통했습니다. 다양성 옹호가 옳냐 그르냐는 둘째 문제고 그 이름이 쓰일 때는 다양성과는 관련도 없었던 겁니다.
모교조차 공격‥트랜스젠더 출전시켜서
그래도 트럼프 대통령의 다양성 가치에 대한 반감은 아주 뿌리 깊습니다. 백인, 보수층, 남성, 복음주의 등으로 자신의 지향점을 잡아 온 트럼프에겐 다양성 옹호는 자신의 가치와는 반대에 있는 것이죠. 특히나 정치적 올바름의 강조에 염증과 피로감을 느끼는 유권자층도 커지다 보니 트럼프는 대선 과정에서도 다양성 옹호를 공격해 표를 모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원성과 소수자 옹호의 중심인 대학에도 자금압박으로 공격을 가하기 시작했는데요.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의 핵심이었다고 컬럼비아대에 대한 연방정부의 보조금을 끊었습니다. 급기야는 자신의 모교이기도 한 펜실베이니아대에까지 압박을 가했는데요. 펜실베이니아 대학교가 여성 수영경기에 트랜스젠더 선수 출전을 허용했다는 이유로 1억 7천만 달러 우리 돈 2천5백억 원 규모의 정부지원금을 취소했습니다. 트럼프에겐 모교사랑보다 다양성 반대가 더 중요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게이아닌 게이는 살아나나?
그런데 이름이 게이라서 사라지게 된 '에놀라 게이'가 다시 살아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ABC 방송은 원폭투하한 에놀라 게이와 이오지마의 성조기 게양 사진은 국방성이 삭제하지 않고 다시 공개하기로 방침을 바꿨다고 현지시간 19일 보도했습니다. 에놀라 게이와 이오지마는 다양성 문제와는 관계가 없거나, 있어도 역사적 가치가 아주 큰데도 삭제한 것은 실수라는 겁니다.
에놀라 게이가 게이라서 삭제했다는 것은 정말 촌극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이오지마의 해병대 깃발은 그 깃발을 꽂은 병사가 원주민 병사 한 명뿐인 것도 아니고 여러 명 중 하나였고 설사 원주민 병사가 끼어있었다고 해도 2차 대전 최고 격전지에서의 승리와 애국심을 상징하는 사진을 그런 이유로 지우기엔 너무 형평이 안 맞는 것이기도 했던 겁니다.
!['에놀라 게이'도 게이여서 안 돼‥미국판 역사 다시 세우기 [World Now]](http://image.imnews.imbc.com/news/2025/world/article/__icsFiles/afieldfile/2025/03/21/joo250321_8_1.jpg)
2차 대전 당시 흑인 병사들
홍범도 동상 철거 논쟁과 닮은 미국의 삭제 논쟁
비슷하게 미 공군은 2차 세계대전에서 활약한 미국 최초의 흑인 조종사부대인 터스키기 항공대의 영상과 사진도 데이터베이스나 국립묘지 홈피에서 삭제했다가 엄청난 항의를 받았습니다. 결국 삭제를 번복해야 했습니다. 지우기엔 역사적 가치가 너무 크다는 여론이 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다양성 가치 지우기 논쟁은 이제 시작일 수 있습니다. AP통신에 따르면 미군 내에만 다양성 가치를 담은 사진과 자료들이 10만 개에 달한다고 합니다. 이 모두가 잠재적 삭제 대상입니다. 나라를 지키고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지키기 위한 희생과 노고여도 원주민, 히스패닉, 여성 등이 주역이 돼서 한 일들이라면 삭제될 수 있는 것입니다. 다양성과 역사적 가치를 옹호하는 여론이 잠시 약해지면 다시 삭제 작업은 더 크게 벌어질 것입니다. 미국판 역사 다시 세우기, 그러나 '오른쪽으로 세우기' 운동은 지금도 그렇지만 앞으로 더 거세질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에겐 '홍범도 장군 동상 철거' 논란을 연상시키는데요,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잘 봐야겠습니다.
!['에놀라 게이'도 게이여서 안 돼‥미국판 역사 다시 세우기 [World Now]](http://image.imnews.imbc.com/news/2025/world/article/__icsFiles/afieldfile/2025/03/21/joo250321_9_1.jpg)
2차 대전 때의 터스키기 항공대 [tuskegeeairmen.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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