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앙받던 '스타 검사'의 추락, 그 후‥스피처와 윤석열 [World Now]](http://image.imnews.imbc.com/news/2025/world/article/__icsFiles/afieldfile/2025/11/15/ljm_20251115_5.jpg)
<어느 '스타 검사'의 성공과 몰락>
뉴욕 브롱크스 출신인 스피처는 말 그대로 엘리트 코스를 밟았습니다. 명문 프린스턴대를 나와 하버드대학 로스쿨을 졸업했습니다. 연방법원 로클럭으로 근무한 뒤엔 잠시 뉴욕의 대형 로펌에 몸을 담았지만 금세 로펌 생활이 자신과 맞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범죄와 싸우는 검사가 되기로 결심합니다.
처음 배치 받은 건 맨해튼 지방검찰청의 노동 조직 범죄 담당 부서. 그는 대형 사건을 해결하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합니다. 스피처는 의류 도매 회사가 몰려 있는 의류 지구에 주목합니다. 뉴욕의 5대 마피아 중 하나인 갬비노 패밀리가 트럭회사와 노조를 장악하고 의류 운송을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경쟁 업체의 진입을 막고 높은 운송비를 받아 챙기는 구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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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누구도 마피아에 맞서서 피해를 진술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한물 갔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마피아의 영향력은 강력했습니다. 스피처 검사는 꾀를 냈습니다. 위장 공장을 차린 것입니다. 30명의 노동자를 실제 고용하고 연방 요원들을 잠복시켰습니다. 일종의 함정수사였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마피아 조직원들이 위장 공장에 찾아왔습니다. 자신의 트럭회사에 운송을 맡기지 않으면 "다리를 부수겠다"고 위협했습니다. 수사팀은 어떻게 갬비노 패밀리가 의류 단지를 장악했는지, 내부 증언도 확보하는데에도 성공했습니다.
결국 갬비노 패밀리는 플리바게닝을 통해 1천2백만 달러의 벌금을 내고 운송 사업에서 철수해야 했습니다. 마피아 퇴출이라는 성공 신화를 쓴 스피처는 스타 검사가 돼, 주 검찰총장으로 승승 장구합니다. 그는 "모두가 알고 있으면서도 해결하지 못하는 시스템의 문제"에 검사가 개입해야 한다는 소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1999년 민주당 소속으로 뉴욕주 검찰총장에 선출되자 성역처럼 굳건하던 월스트리트의 대형 투자 은행들에 칼을 겨눴습니다.
당시 투자은행들은 IB부서에서 기업공개나 인수합병 관련 자문을 제공하면서, 같은 건에 대해 리서치 부서가 투자자들에게 긍정적인 보고서를 발행하는 일이 잦았습니다. '닷컴 버블' 시기 이는 일반 투자자의 큰 손실을 낳기도 했습니다. 일종의 이해충돌이지만 월스트리트는 무감했습니다. 스피처는 이를 "사기 리서치"로 규정하고 대대적인 수사를 벌였습니다. 메릴린치, 골드만삭스 등 월가의 거물들이 수사망에 걸려들었습니다. 10개 대형 증권사가 8억 7천5백만 달러를 벌금으로 냈습니다. 리서치 부서와 자문 부서의 분리 정책이 시행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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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처는 또 보험회사들도 수사 대상에 올렸습니다. 보험사들이 보험 계약을 따오는 브로커에 리베이트를 지급하는 관행이 있었는데, 리베이트에 눈이 먼 브로커들이 고객에게 불리한 보험을 팔게 된다는 게 그 이유였습니다. 잘못된 관행을 혁파하는 스피처 검찰총장에겐 "월스트리트의 보안관"이라는 별명이 붙여졌습니다. 자연스럽게 전국적인 인지도도 따라왔습니다. "언론 플레이가 과하다"는 비판도 있었지만 극히 소수에 그쳤습니다.
서민을 위해 싸우는 검사 스피처, 잘못된 시스템을 해체하는 칼잡이. 가디언은 '무자비한 윤리 십자군'으로 그를 묘사했습니다. 어느새 스피처는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기준의 상징처럼 여겨졌습니다. 일찌감치 민주당 소속으로 차기 주지사 선거 출마를 선언한 그는 변화와 개혁, 기득권 타파를 내세웠습니다. 2006년 69%의 압도적인 득표율로 뉴욕주지사에 당선됩니다. 취임 직후에는 주 정부와 주 의회가 있는 "알바니의 윤리를 바꾸겠다"고 일성을 토했습니다. 정치권의 로비 관행을 대폭 개혁하겠다는 뜻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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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대선 주자로 거론되던 그는, 임기 채 2년이 안돼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합니다. 이번엔 나쁜 쪽이었습니다. FBI가 비밀리에 수사 중인 고급 성매매 조직, '엠페러스 클럽'의 회원인 사실이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졌기 때문입니다. 그는 워싱턴 D.C로 이동해 성매매 여성을 만나온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몰래 수천 달러씩 돈을 보낸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무엇보다 그는 취임 이듬해인 2007년 성매매 및 인신 매매를 중범죄로 규정하고 성 구매자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의 법안을 추진하고 있었습니다. 그 자신이 정확히 해당 법안의 취지에 반하는 행위를 하고 있었던 셈입니다. 보도 이후 스피처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며 자진 사퇴했습니다. 임기 시작 14개월 만이었습니다. 서민을 위한 '정의의 사도'는 하루 아침에 미국 정치사 최악의 '위선자'로 전락했습니다. 정치 평론가들은 스피처가 백악관으로 가는 길 위에서, 자기 몸에 불을 질렀다고 평가했습니다.
<추락한 두 검사의 다른 처신>
불의에 저항한 강골 검사의 추락. 우리도 익숙합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검사 시절 박근혜 정부 댓글 수사를 이유로 탄압 받았습니다. 문재인 정부 들어선 이른바 적폐 청산 수사를 주도하며 국민 검사로 등극했습니다. 국민적 인기에 힘입어 검찰총장에선 곧바로 대선으로 직행해 대권을 움켜쥐었습니다. '공정과 법치'를 내세워 당선됐지만, 결국 공정의 기반인 민주주의와 법치를 파괴하는 계엄을 일으켜 탄핵됐습니다.
그러나 이후 모습은 상당히 다릅니다. 스피처는 자신의 비위가 드러나자 곧바로 잘못을 인정하고 사퇴했습니다. 한 차례 뉴욕시 감사관 선거에서 낙선한 뒤로는 공적인 영역에서 사라졌습니다. 반면 윤 전 대통령은 평생 몸 담았던 형사 사법 절차를 모독하는 자신만의 법정 투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경호처를 동원해 체포 영장 집행을 막으려 했습니다. 한국 국민들은 한때 대한민국을 대표하던 그가, 군 지휘관의 법정 진술을 흔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술잔을 들이켰는지를 따지는 모습을 봐야 했습니다. 뉴욕의 유권자들은 겪지 않은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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