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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뉴욕의 그늘, 쪽방서 숨진 이민자들‥맘다니를 호출하다 [World Now]

화려한 뉴욕의 그늘, 쪽방서 숨진 이민자들‥맘다니를 호출하다 [World Now]
입력 2025-12-13 08:48 | 수정 2025-12-13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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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려한 뉴욕의 그늘, 쪽방서 숨진 이민자들‥맘다니를 호출하다 [World Now]
    지난 4월, 뉴욕 퀸즈의 부촌인 자메이카 에스테이츠의 한 저택에 불이 났습니다. 한밤중이었습니다. 일부 세입자들은 비명을 지르며 창문으로 뛰어내렸습니다. 화재 즉시 소방관들이 도착했지만 걷잡을 수 없이 불이 빠르게 집 전체로 번졌습니다. 집 안에는 제대로 작동하는 연기 감지기가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화려한 뉴욕의 그늘, 쪽방서 숨진 이민자들‥맘다니를 호출하다 [World Now]
    뉴욕 쪽방이 드러낸 이민자들의 현실

    결국 집 안에 있던 40대와 50대, 60대 남성이 숨졌습니다. 8명은 부상을 입고 이송됐습니다. 곳곳에 가벽을 세운 저택 내에선 최소 12명 이상이 세 들어 살고 있었고 대부분 이민자들이었습니다. 사망자 중 한 명은 자신의 신분을 증명할 수 있는 여권을 찾으러 빠져나온 불길 속으로 다시 들어갔다가 숨졌다고 지역 언론이 보도했습니다. 뉴욕타임스는 다음날 잔해 속을 뒤지고 있는 이집트 출신 아마르 씨를 인터뷰했습니다. 그는 이케아 가방에 혹시 이민 관련 서류가 있을까 찾으며 "참담하다"고 말했습니다.

    가장 부유한 도시라는 뉴욕에서 벌어진 참극은 예상과 달리 조용히 묻혔습니다. 뉴욕에는 불이 난 곳 같은 쪽방이, 이민자 밀집 지역 중심으로 오래전부터 성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집주인들은 지하실을 불법으로 개조하고, 방 한 칸 또는 침대 하나에 월 400달러에서 1,000달러를 받습니다. 미국판 중고 사이트인 ‘크레이그리스트‘나 페이스북에서 남미계 이주민을 상대로 한 스페인어 광고를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화장실과 부엌을 공유하다 보니, 부엌에서 조리하려면 돈을 더 내야 하는 곳도 있습니다.

    가장 부유한 도시의 '그림자 사람들'

    백만장자만 38만여 명에 달하는 뉴욕시. 여름이면 롱아일랜드 햄튼의 별장에서 시간을 보내는 이른바 '슈퍼 리치'들이 즐비합니다. 그러나 화려한 도시의 이면에는 쪽방에 거주하며, 건설 인부와 청소부, 식당 종업원으로 일하는 이민자들이 있습니다. 올해 뉴욕시 최저임금은 16.5달러로, 주 40시간 풀타임으로 꼬박 일하면 월 2,640달러를 손에 쥡니다. 환율을 고려하면 큰 금액처럼 보이지만 방 한 칸 구하면 남는 돈이 없습니다. 맨해튼도 아닌 퀸즈의 원룸 평균 월세는 올해 2,395달러(MNS Real Estate, 6월 발표)를 기록했습니다.
    화려한 뉴욕의 그늘, 쪽방서 숨진 이민자들‥맘다니를 호출하다 [World Now]
    게다가 지난해 기준 뉴욕시 통계에 따르면, 이민자 가구의 소득은 미국 태생 가구 소득의 75% 수준이고 시민권이 없을 경우엔 절반 수준까지 떨어집니다. 세전 소득의 절반 이상을 살인적인 렌트비에 쓸 수밖에 없어 3명 중 1명은 뉴욕시 기준 빈곤선에 해당하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간신히 주거를 해결한다고 해도, 인간다운 삶을 유지하는 게 쉽지 않은 수준입니다.

    사회민주주의를 내세운 조란 맘다니가 '생활비 부담' 문제를 내세워 선풍적인 인기를 얻은 배경엔 이처럼 팍팍한 이민자들의 삶이 있습니다. 가사 도우미로 일하는 마리아 헤르난데스는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진짜 공포는 강도가 아니라 집주인"이라며 "맘다니는 월세를 동결하겠다고 약속한 유일한 후보였다"고 지지 이유를 밝혔습니다. 지난달 투표장에서 MBC와 만난 시민들도 한결같이 '이 도시에 살고 머무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고 토로했습니다.

    불법 내몰린 푸드 트럭, 오르는 음식 가격

    뉴욕 타임스퀘어와 현대미술관, 브로드웨이 등 관광 명소마다 푸드 트럭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뉴욕 명물인 핫도그, 할랄 푸드 등을 파는 2만여 개의 푸드 트럭은 관광객뿐만 아니라 뉴욕 주민들의 허기진 배를 채워주는데요. 96%는 이주민들이 운영합니다.
    화려한 뉴욕의 그늘, 쪽방서 숨진 이민자들‥맘다니를 호출하다 [World Now]
    하지만, 제대로 허가를 받아서 운영되는 것은 네 개 중 하나인 5천1백여 대에 불과합니다. 뉴욕시가 허가증 총 숫자를 사실상 묶어두고 극히 일부만 추가 허가증을 발급해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주민들은 은밀히 다른 사람의 허가증을 1년에 1만 달러에서 2만 달러씩 주고 빌려 장사에 나섭니다. 경찰이 주기적으로 집중 단속을 벌이는 모습도 종종 목격됩니다. 뉴욕시의회 청문회에서, 한 이민자는 "2009년부터 기다렸지만 여전히 허가 대기번호는 1259번이다. 지난해에만 1만 2천 달러를 벌금으로 냈다"고 호소했습니다.

    맘다니 뉴욕시장 당선자는 캠페인 당시 영상에서 허가증 장사가 '할랄플레이션'(할랄푸드+인플레이션)을 일으킨다고 주장했습니다. 블랙 마켓에서 거액의 허가증 대여료가 오가는 탓에 대중 음식인 '치킨오버라이스' 가격이 10달러 이상으로 올랐다는 것입니다. 현재 운영 중인 푸드 트럭들을 합법화한다면 음식 가격을 낮출 수 있다는 것이죠. 그러면서 '치킨오버라이스'를 다시 8달러 이하로 낮추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디테일' 강한 맘다니의 생계비 부담 의제

    주거비를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뉴욕을 빠져나갑니다. 뉴욕 맨해튼 상부와 뉴저지를 연결하는 조지워싱턴대교 위로는 '지트니(Jitney)' 버스가 쉴 새 없이 오갑니다. 뉴욕에서 일하는 이들을 위한 사설 미니 버스입니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정해진 시간표 없이 남미계 이민자 인구 밀집 지역을 다닙니다. 현금만 받는 대신 2~3달러만 내면 맨해튼을 오갈 수 있고 늦은 시간에도 운영하기 때문에 식당 직원들의 발이 됩니다. 새벽에는 청소부와 건설 일용직 등으로 일하는 서민들이 애용합니다. 맘다니가 "도시가 지켜주지 못하고 쫓아냈다"고 말한 뉴욕의 노동자들이 지트니 버스를 채웁니다.
    화려한 뉴욕의 그늘, 쪽방서 숨진 이민자들‥맘다니를 호출하다 [World Now]
    맘다니의 승리는 뉴욕 고층 빌딩 그늘에 가려진 이민자들의 현실을 누구보다 구체적으로 포착해낸 덕분입니다. 그의 이력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정계 입문 전에는 퀸즈의 비영리단체에서 주택 상담사로 일했습니다. 택시 노조와 단식 투쟁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이때의 동지들이 현재 뉴욕시 인수위원회에 합류한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맘다니는 당선 직후 주거, 교통, 교육, 노동자 정의 등 주제별로 17개 위원회를 구성했습니다. 핵심 공약인 임대료 동결을 맡은 주거 위원회에는 뉴욕주 임대료 규제 강화를 이끈 활동가 시아 위버를 참여시켰습니다. 노동 정의 위원회에는 우버 등 플랫폼을 겨냥해 배달 노조와 택시 노조의 핵심 인사들이 포함됐습니다. 노점상 권익 단체도 소상공인 위원회에 합류해, 노점 합법화 공약을 의논할 계획입니다.

    활동가 중심으로 꾸려지다보니 행정력이 부족하고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제기됩니다. 이를 의식해서인지, 맘다니는 20년 이상 공무원으로 경력을 쌓아온 마리아 토레스 스프링거를 행정 부시장으로 선택했습니다. 스프링거는 현재 애덤스 시장 체제에서도 부시장을 맡아 시정을 이끌고 있는 '베테랑'입니다. 법무위원회를 꾸려 지방자치법 전문가인 컬럼비아대 로스쿨 교수를 영입하기도 했습니다. 공약 시행 과정에서, 주정부 및 연방정부와의 법적 다툼을 준비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맘다니 당선자는 다른 후보들과 달리 뉴욕의 그늘에 머무는 서민들을 대변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누구보다 맘다니 본인이, 임기가 시작되는 내년 1월 1일부터 이들의 열망에 결과로 응답해야 한다는 점을 알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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