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찰 및 동료들과 함께 약 16명의 무단 점거자를 현장 체포했다. 이 과정에서 재킷은 버려야 할 정도로 찢어졌고, 손에서는 피가 났고, 밖에서는 막대기와 여러 물품들까지 날아왔다. 또한 체포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도주한 10대 남학생이 다시 잡히면서 울부짖는 모습을 보고 도대체 무엇이 이들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싶었다." - 법원보안관리대 주무관 (1·19 폭동 사건 백서 中)

서부지법 경내로 진입한 시위대 [출처: 1.19 폭동 사건 백서]
법원 직원의 한탄처럼 '무엇이 이들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궁금했습니다. 오랜 시간 우리 사회의 '극우 청년' 문제를 연구하고 해법을 고민해 온 강성현 성공회대 교수를 지난 16일 만나 물어봤습니다.
※ 관련 보도: '법원 폭동'이 "안중근 의거"?‥누가 정당화하나 ('26.1.19 MBC 뉴스데스크)
https://imnews.imbc.com/replay/2026/nwdesk/article/6794728_37004.html
■ "언어의 '내란' 벌이는 극우 세력… 공존할 수 없다

강성현 성공회대 교수·동아시아연구소 소장
아래는 강 교수와의 인터뷰 내용을 일문일답 형식으로 재구성한 내용입니다.
Q. 지난 '법원 폭동'으로 감옥까지 다녀오고도 여전히 반성하지 않고, 자신들의 행위를 '애국'이라고 정당화하는 이들이 존재합니다. 왜 이러는 걸까요?
A. 논리나 이성의 문제로 이해하려고 하면 안 됩니다. (폭도 가운데 과반이) 20·30대 청년들로 지목되고 있는데, 자기 생각을 논리적으로 구축해서 말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기저에 깔린 건 생각보다 굉장히 감정이 토대를 이루고 있습니다. 불안과 분노, 억울함의 감정들과 경제적 문제, 젠더 문제 같은 사회 구조적인 배경과도 관련돼 있죠.
그런데 계엄과 내란 국면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이 본인들을 호명했고, 극우 유튜버들도 뒤따라 청년들을 호명했죠. 이 호명의 방식이 이른바 불안하고 고립돼 있는 세대들에게 '애국자'라고 불러주는 방식입니다. 그리고 직접 시위에 나가보고, 발언도 하고,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경험을 통해 이를 '애국'이라고 확신하게 되는 거죠.
보통의 경우, 이런 고양감은 집회나 시위 현장에서 유지됐다가도 금방 흩어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유튜브 같은 디지털 플랫폼이 제공하는 콘텐츠들은 그러한 감정들을 알고리즘으로 계속 유지해 주는 거죠. 그 안에 빠져들게 되면 너무나 멀리 온 거예요. 그렇게 '진영화' 되어가는 거죠.
Q. 법원을 침탈하는 행동이 잘못됐다고 정말로 느끼지 못하는 걸까요?
A. 이른바 '인플루언서'들이 법원 폭동이 '저항권'이라는 해석까지 해주고 있지 않습니까? 궤변이거든요. 그런데 이걸 '불법적이긴 하지만 정당한 저항 행위다, 그래서 자신들이 유공자가 될 거'라는, 말이 안 되는 방식으로 이해하고 있는 겁니다. 궤변을 계속 밀어붙이면 울림이 발생하고, 이걸 확증하게 되고, 결국 사실인 것처럼 받아들이게 되죠.
Q. 법원 폭동을 '애국'으로, '항쟁'으로 포장하는 세력이 여전합니다. 극우 유튜버들이나 내란 사건 변호인들, 일부 정치인들입니다. 목적이 뭘까요?
A. 우선 극우 운동은 희생자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정의로운 일을 했는데 탄압받고 있다는 서사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마찬가집니다. 그래서 극우 진영 사이에서 '저 청년들이 우리를 대신해서 희생했다, 유공자다' 이렇게 하는 거죠. 희생자가 있으면 운동은 지속돼요.
특히 이들은 폭력의 가담자들 아닙니까? 그런데 자신을 '피해자'로 부르고 있어요. '국가 폭력의 피해자'라는 말까지 스스로 하고 있는데요. 5·18 민주화운동 등을 겨냥해 자신들이 공격했던 피해자들의 언어, 피해자들이 했던 언어들을 지금 빼앗아 가는 겁니다. 갑자기 인권을 얘기하고 있고, 최고 권력자였던 사람의 방어권을 이야기하면서 소수자들, 약자들의 언어를 빼앗고 있는 거죠. 저는 이걸 '언어의 내란'이라고 봅니다.
역사적 사실에 대한 정확한 기록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사실이 혼미해지는 시대에, 12.3 계엄과 내란을 기록하는 게 그래서 필요한 것이죠. 끊임없이 재조명하고 의미를 찾아가는 한편 우리 사회가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 기록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Q. 이런 '언어의 내란'을 양분 삼는 세력이 있을 것 같습니다. 법원 폭동 사건으로 돌아와서, 그렇다면 우리 사회는 이 폭도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마주해야 하는 건가요?
A. 모든 폭력의 가해자는 각자 자기의 사정과 이유가 있습니다. 심지어는 공감이 가는 내용도 있어요. 그러나 그 행위의 결과에 대한 책임은 져야 합니다. 모든 사정들을 이해해 줄 생각은 없습니다. '이건 넘어서는 안 된다'는 명확한 선은 그어줘야 해요.
다만 엄벌주의가 모든 사태를 해결해 주지 않는다는 점도 생각해야 합니다. 갈등이 있고 문제가 있으면 그걸 제거하려고 하지 않습니까? 그렇지만 없어지지 않거든요. 대신 문제와 대면해서 그 문제가 뭔지, 개인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사회의 구조적 문제인 만큼 왜 그런 그늘이 생기는지 직시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이른바 극우 청년들, 사실 돌아오고 싶어 하는 이들도 많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미 그 안에서 '배신자'라는 낙인이 찍힐까 무섭기도 할 거고요. 기존의 관계가 파괴됐기 때문에 딱히 돌아올 곳도 없을 수 있어요. 이게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스웨덴이나 노르웨이 같은 나라에서도 극우 청년들의 문제가 제기되고 있지만, 그들을 '돌아올 수 있게' 하는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있어요. 단순히 교육이나 상담 등의 방법을 넘어 우리 사회가 정책적·제도적인 보완책을 고민할 때가 됐다는 생각을 합니다.
Q. 극우 세력과 공존하는 방법을 찾아야 하는 걸까요?
A. 아닙니다. 흔히 공존이라는 말을 쉽게들 하지만, 사실 자기를 해하려는 사람과 공존할 수가 없잖아요? 그런 점에서 분명히 선을 그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들이 왜 그러는지에 대해 헤아려 볼 수는 있지만 선을 넘는다면 단호히 대처해야 하죠. 그러면서도 문제 자체를 인정하고 우리 사회 안에서 바꿔나가는 건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부정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유튜브 알고리즘에 대한 규제라든지, 윤리적 규제에 대한 논의를 진지하게 고민할 시점이 된 거죠.
흔히 암세포는 외과적으로 제거하는 게 1순위라고 하죠. 지금 우리 사회의 '극우' 문제는 (암세포가 아니라) 호르몬의 불균형이 생긴 겁니다. 외과적인 게 아니라 내과적인 처방이 필요한 거예요. 그러면 환자의 신체 능력을 높이고, 면역력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가야 되잖아요. 마찬가집니다.
강 교수와의 인터뷰를 마무리하고 나오며, 1·19 폭동 사건 백서의 한 대목이 머릿속에 맴돌았습니다.
"극우 유튜버들이 정문 앞에서 애국시민들을 응원한다며 방송하는 모습을 보면 앞으로는 절대 이런 일이 또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장하지 못할 것 같다." - 종합민원실 행정관 (1·19 폭동 사건 백서 中)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법원 폭동이 다시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없을 거란 불안감, 이를 해소할 방안을 우리 사회가 모색해야 할 시점입니다. 동시에, 계엄과 내란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정확히 기록하고 조명하는 일도 끊임없이 이어져야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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