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급주택이란?

1975년, 행정안전부는 고급주택을 사치성 재산으로 규정하고, 취득세를 무겁게 물리도록 했습니다. 사치, 낭비 풍조를 억제하고, 한정된 자원을 생산 분야에 투자하도록 유도하기 위해서였는데요. 그때 기사를 보면 박정희 대통령이 문상을 갔다가 그 집은 물론 주변 호화주택을 보고 이런 지시를 했다는 소문이 실리기도 했습니다.

그럼 어떤 집이 고급주택일까요? 크고 넓으면 고급주택이었습니다. 다섯 가족이 단칸 방에 모여사는 게 흔하던 당시엔 넓은 집을 별장이나 골프장, 카지노, 요트처럼 사치성 재산으로 본 겁니다. 이후에 가격 기준 등이 추가로 반영돼 지금처럼 운영되고 있습니다.

고급주택 기준표
단독주택 공동주택
(아파트, 빌라 등)
공시가격 6억 원 초과
면적 대지 662㎡ 또는
건축물 연면적 331㎡ 초과
전용면적 245㎡ 초과
(복층의 경우 274㎡ 초과)
건축물 가액 9천만 원 초과 -

위 표에 있는 공시가격과 면적, 건축물 가액 기준을 모두 충족하면 취득세를 8%P 더 냅니다. 드물긴 하지만 수영장(67㎡ 이상)이나 에스컬레이터가 설치된 단독주택은 무조건 고급주택입니다.

고급주택 취득세 11% = 일반 주택 취득세 1~3%p + 중과분 8%p

50억 원짜리 집이라면 고급주택 여부에 따라 세금만 4억원정도 달라집니다. 일반주택이라면 1억 5천만 원이지만, 고급주택이라면 취득세만 5억 5천만 원 입니다. 적지 않은 돈입니다

그런데 고급주택 취득세 중과를 피해갈 수 있는 '꼼수'도 있습니다.

1. 회장님은 미술 애호가?

전통적인 부촌으로 유명한 서울 종로구 평창동의 한 단독주택. 일년 매출이 1천 5백억 원인 제조업체 권 모 회장 소유 입니다.

지난 2013년 27억원에 거래돼 지하1층에 지상2층으로 새로 지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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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시가격 12억 원(2013년 취득 당시 기준)에 건축물 연면적이 539.99㎡로 고급주택 가격과 면적 기준을 넘어서지만, 이 집은 고급주택이 아닙니다.

비법은 바로 전시장입니다.

건축물대장을 보면 지하1층 165.02㎡가 ‘기타 전시장’ 입니다. 전시장은 '주택' 용도가 아니기 때문에 고급주택 여부 판정시 면적으로 잡지 않습니다. 전시장을 제외한 지하1층부터 지상2층까지 주택 부분을 더하면 324.15㎡로 고급주택 기준에 6.85㎡(약 2평) 미달합니다. 집 일부를 전시장으로 허가 받아 무거운 세금을 피했던 겁니다.

그런데 이 집은 최근 건축법 위반건축물로 드러났습니다. 전시장으로 허가받아 놓곤 실제로는 집이나 사무실로 사용한 것이 드러난 겁니다. 취득세와 가산세를 포함해 3억 원 가까이 추징됐습니다. 권 회장 측은 원래 계획은 선친이 만든 문화재단의 전시장이었다며 세금 회피 꼼수는 아니었다고 반박했습니다.



이렇게 주택의 일부를 전시장 등 다른 용도로 허가받아 고급주택 취득세 중과를 피한 단독주택은 더 있습니다. MBC 기획취재팀이 서울의 단독주택 건축물대장을 전부 확인해 전시장, 기념관, 공연장 등을 둔 고급주택 의심 건축물을 추려냈습니다. 취재의 한계상 더 늘어날 수 있지만, 적어도 40채로 확인됐습니다.

종로구 평창동과 부암동, 용산 한남동, 성북구 성북동, 서초구 서초동에 많았습니다.

집주인 대부분은 기업 회장이나 재벌 일가, 디자이너와 소설가, 전직 국회의원 등 재력가나 유명 인사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대부분 "외부에 공개하지 않고, 사적으로 쓰고 있다"면서도 엄연한 전시장이라며, 불법을 저지른 것도, 세금 회피를 위해서도 아니라고 밝혔습니다. 걔 중에는 준비 부족이나 소송 때문에 개장이 늦어졌을 뿐 조만간 전시장을 열겠다고 해명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서울 종로구 구기동
서울 종로구 평창동
서울 종로구 부암동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 종로구 평창동
하지만 전시회 한 번 연 적도 없고,
외부에 공개하지도 않는 ‘무늬만 전시장'은 집으로 봐야하지 않을까요?

건축법 담당부처인 국토부는 MBC 기획취재팀의 문제제기에 "앞으로는 일반 공중, 즉 여러사람을 위해 설치되거나 이용되지 않는 시설은 판단하지 않겠다"고 밝혔습니다. 또 이런 비공개 전시장은 집으로 봐야한다는 공문을 전국 17개 시도에 보냈습니다.

2. '신문 한 장'이 세금 수억 원 좌우

한강이 내려다 보이는 서울 한남동의 고급 빌라입니다.

탁 트인 옥상정원이 눈에 띄는 최고층 중 한 세대를 지난 2018년 유명 인터넷쇼핑몰 대표 부부가 60억원에 사들였습니다.

분양 당시 평면도를 보면 방 5개에 메이드룸(도우미용 방)도 있습니다. 테라스만 하더라도 웬만한 아파트 한채 면적과 맞먹습니다. 세대별로 마련된 지하창고까지 더하면 실제 주거공간은 훨씬 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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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도 비싼데다 넓기까지 하지만 고급 주택은 아닙니다.

고급주택 면적 기준에 0.78㎡ 모자라서입니다. 전용면적만 면적 기준으로 삼다보니, 서비스면적인 테라스와 공용면적인 창고는 아무리 넓더라도 고급주택과 상관없습니다. 실제 주거공간은 넓게 쓰면서 고급주택 중과는 피할 수 있는 맞춤형 설계인 겁니다.


고급주택 전문 부동산중개업자

"대부분의 고급주택들은 다 호화주택에 안넘어갔어요. 보시면 다 그렇게 등록이 되어 있고요. 실제로도 베란다 같은 공간이라든지 테라스라든지 이런 것들은 다 서비스 면적에 들어가는 거라서..."


그런데 엉뚱한 데서 면적이 늘었습니다. 조세심판원은 지난달 "냉난방시설을 갖춘 옥상공간과 세대별로 쓰는 엘리베이터 앞 공간도 전용면적으로 봐야 한다"며 "전용면적이 245㎡를 초과해 고급주택에 해당한다"고 결정했습니다. 집주인은 최근 최득세 6억 원을 더 냈습니다.

세금 6억 원을 더 내고, 덜 내고 좌우한 건 결국 면적입니다. 고급주택 여부를 결정한 면적이 대단할 정도로 넓은 것도 아닙니다.

불과 신문 한두장 정도 넓이입니다.


공시가격 40억 원이 넘는 고가 아파트나 빌라 가운데 신문 한 장(0.42㎡)도 안되는 면적 차이로 취득세 중과 부담을 몇 억 원씩 던 집은 서울에서만 204채나 됩니다.

3. 집 값은 비싼데 세금은 가볍다

고급주택 여부를 결정하는 게 사실상 면적이다보니 집값은 비싼데도 고급주택에서 제외된 집들이 수두룩합니다.

MBC 기획취재팀이 지난 2015년 이후 서울의 아파트와 빌라 매매 내역 55만 3천여 건을 전부 추적했습니다. 용산구 한남동의 한 아파트가 84억 원(2019년 1월)으로 거래가가 가장 높았지만 고급주택은 아니었습니다. 70억 원(2019년 11월)짜리 강남구 아파트도, 67억 원(2020년 7월)짜리 성동구 아파트도 고급주택이 아니었습니다.

반면 가장 낮은 가격에 거래된 고급주택은 용산구 이촌동의 8억5천만 원(2015년 4월, 2016년 4월)짜리 아파트였습니다.

금액대별 고급주택(2015년~2020년 9월)
고급주택 거래수
10억 원 이하 5
10억 원대 17
20억 원대 12
30억 원대 4
40억 원대 8
50억 원대 2
60억 원대 1
70억 원대 0
80억 원대 0
문제는 이럴 경우 저가주택의 취득세율이 오히려 고가주택보다 무거워져 조세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겁니다.

최고가 거래였던 84억 원짜리 한남동 아파트가 집값은 이촌동 아파트보다 10배 가량 비싼데, 취득세율은 거꾸로 이촌동 아파트가 11%로 4배 가량 높습니다.

또 40억 원 넘는 고가 거래 711건 가운데 고급주택은 단 11채만 고급주택일뿐 나머지는 모두 제외돼 제도의 실효성도 미미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서울 용산구 한남동
서울 용산구 이촌동

4. 초고가 174억 원 집이 고급주택 아닌 이유는?

두 집 모두 대기업 회장 집입니다. 거리도 가깝습니다. 두 집 다 서울 한남동에 있습니다. 한 집은 2015년 130억 원에 거래됐고, 또다른 한 집은 2012년 174억 원에 사들였습니다. 초고가주택입니다.

하지만 두 집 모두 고급주택이 아닙니다.

단독주택일 경우 공시가격과 면적 이외에 건물 값어치를 뜻하는 건축물 가액이 9천만 원을 넘어야 고급주택인데 두 집 모두 기준에 못 미쳤기 때문입니다.

건축물 가액은 실제 건축비로 계산하는 게 아니라 복잡한 수식으로 구합니다. 지은지 오래되면 가액이 낮아지는 구조인데다 아무리 큰돈을 들여 호화롭게 꾸미거나 고쳐도 기둥이나 구조를 뜯어 고치지 않는 한 비용에 반영되지 않습니다. 그러다보니 초고가주택이 고급주택에서 빠지는 불합리한 경우가 발생하는 겁니다.

건축물 가액 산정방식

MBC가 확보한 행정안전부 내부자료를 보면 건축물 가액 미달을 이유로 고급주택에서 제외된 집은 전국적으로 1,021채(2018년 기준)로 확인됐습니다. 매년 2백 채 정도 고급주택으로 중과되는 걸 감안하면 거의 5년치 규모와 맞먹습니다.

5. "건축물 가액 폐지"한다는데, 조세 왜곡은 여전

행정안전부는 MBC에 불합리한 고급주택 과세 기준을 고치겠다고 밝혔습니다.

면적 조건은 그대로 두되 가격 기준을 통일하기로 했습니다. 공시가격 기준을 9억 원으로 높이고 건축물 가액 조건은 폐지하겠다는 겁니다. 11월 초 시행령 개정안 입법예고와 국무회의 의결을 거친 뒤 2021년 초 시행할 예정인데요.

고급주택 기준표
단독주택 공동주택
(아파트, 빌라 등)
공시가격 6억 원 초과 9억 원 초과
면적 대지 662㎡ 또는
건축물 연면적 331㎡ 초과
전용면적 245㎡ 초과
(복층의 경우 274㎡ 초과)
건축물 가액 9천만원 초과 삭제 -

MBC가 행정안전부안을 시뮬레이션해봤습니다. 먼저 건축물 가액 기준을 없애면 1천 채 정도가 새로 중과세 대상이 됩니다. 1백억 원대 초고가주택이 건축물 가액 미달을 이유로 고급주택에서 빠져나가는 불합리함은 일단 개선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또 공시가격 기준을 9억 원으로 높이면 6~9억 원(공시가격 기준) 저가주택의 취득세 중과도 피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조세 역전'을 바로잡기에는 효과가 제한적입니다. 공시가격 기준 상향으로 고급주택에서 제외되는 대상은 37채에 그칩니다. 반면 40억 원 넘는 고가 거래 대부분은 고급주택 중과 대상에서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행정안전부가 연구를 맡긴 <고급주택 취득세 중과세요건 개선방안>(2019년)을 보면 현재 기준은 그대로 두되 일정 금액, 예를 들어 20억 원을 넘는 고가주택은 별도로 중과세하는 방안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나옵니다. 이럴 경우 5,832채가 한꺼번에 고급주택으로 바뀝니다. 행안부안은 연구보고서가 내놓은 개선안에서 상당히 후퇴한 겁니다. 변죽만 울리는 꼴입니다.

권대중 교수 | 명지대 부동산학과

"서울이나 강남 지역같은 경우는 고급주택의 면적이 1㎡가 모자라서 절세하는 경우가 있어요. 이거는 불합리하다고 봅니다. 면적보다는 오히려 고급주택의 가격으로 결정하는게 맞습니다."

고급주택 중과 제도는 1974년에 생겼습니다. 당시만하더라도 크고 넓으면 비싼 집이었지만 지금은 어떤 동네인지 입지가 더 중요합니다. 감사원도 "조세 형평성에 어긋난다"며 이미 지난해 개선을 요구했습니다. 어긋난 건 바로잡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