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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훈칠의 맥스MLB] 게임과 현실 사이, 원조 '비더레'를 아십니까?

[전훈칠의 맥스MLB] 게임과 현실 사이, 원조 '비더레'를 아십니까?
입력 2018-11-20 11:21 | 수정 2020-09-15 09:57
6경기 연속 안타의 주인공, 조 디마지오

6경기 연속 안타의 주인공, 조 디마지오

지난주 한 야구팬이 앉은 자리에서 횡재를 만났다. KBO의 공식 기록 업체인 스포츠투아이는 "2018시즌 비더레전드 50콤보 달성자인 사용자 아이디 '물침대' 님에 대한 상금 전달식이 열고, 상금 5천만 원을 전달했다."고 발표했다. 야구팬이 이른바 '덕질'을 통해 거금을 손에 쥔 사건이다.

'비더레전드 (Be the Legend)'. 2014년에 스포츠투아이가 시작한 프로모션으로, 매일 타자 1명을 지정해 해당 선수가 안타를 치면 임무에 성공하는 일종의 판타지 게임이다. 이런 식으로 50경기 연속 안타를 기록하면 신원 미상의 '물침대' 유저처럼 최대 5천만 원의 상금을 받을 수 있다. 야구팬들은 이 게임을 '비더레'라 줄여 부른다. 누구나 참여할 수 있고 실력과 운에 따라 상금까지 받을 수 있는 건전한 도박인 셈이다. (부러움의 대상인 '물침대'님과의 인터뷰 내용은 글 마지막 부분에 공개한다.)

'비더레'의 원조는 메이저리그다. MLB.com에서 진행하는 '연속 안타 맞히기 (Beat the Streak)' 게임이 그것인데, 빅리그 역사상 가장 깨기 어려운 기록 중 하나로 꼽히는 조 디마지오의 56경기 연속 안타를 넘어서는 것을 목표로 한다. MLB.com에 회원가입한 뒤 30개 구단의 타자 한 명을 아무나 선택해 당일 안타를 치면 기록이 성립되고, 이런 식으로 57경기 연속 안타까지 성공하면 무려 560만 달러(진짜다!)의 상금을 준다. 2001년 시작된 이 게임에서 아직까지 57경기 연속 기록은 나오지 않았다. 아무도 상금을 타지 못했다는 얘기다. 귀가 솔깃해진다. 로또처럼 의미 없는 확률도 아니고, 요행에 가까운 프로토보다 확실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KBO의 '비더레'가 이미 몇 차례 당첨자를 배출한 것과 달리 MLB의 '연속 안타 맞히기' 성공자가 단 한 명도 없었던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리그 속성 때문이다. 올 시즌 KBO는 리그 평균 타율이 0.286에 달할 만큼 타고투저였지만 MLB는 타격 1위팀 보스턴의 팀 타율이 0.268, 양대 리그 평균 타율은 0.248에 불과할 만큼 정반대의 양상이었다. 아무리 30개 구단의 강타자들이 즐비하다 해도 선택지가 다양해진다는 것 이외에 확률적으로는 도움이 될 리 없다.

MLB 측도 그저 손 놓고 있던 것은 아니다. 당첨금을 주기 위해 나름대로 애를 썼다. 초기에는 하루에 한 명만 선택할 수 있었지만 최근에는 하루에 2명을 선택할 수 있다. 그렇게 지정한 2명이 모두 안타를 치면 2경기 연속 안타로 인정해준다. (대신 둘 중 한 명이라도 안타를 기록하지 못하면 연속 안타는 중단된 것으로 간주한다.) 뿐만 아니라 10경기부터 15경기 연속 안타를 기록한 유저에게는 한 번의 실패를 눈감아주는 '멀리건' 규정까지 마련했다. 허나 이 정도 도움으로는 현재의 투고타저 흐름 속에서 역부족이다.
하루에 한 명만 선택하던 초기(좌)와 달리 최근에는 2명 선택도(우) 가능하다.

하루에 한 명만 선택하던 초기(좌)와 달리 최근에는 2명 선택도(우) 가능하다.

MLB.com에서는 선택을 돕기 위해 다른 유저들이 많이 고른 선수의 정보도 제공한다. 대개 알투베, 베츠, 옐리치 등 MVP급 타자들이다. 무난한 선택이지만 무턱대고 따라갔다가는 큰 코 다친다. 알투베를 선택했다가 상위권 기록자들이 대거 낙방하는 등 비슷한 경우가 종종 있었다.
알투베를 선택한 유저는 모두 0으로 돌아갔다.

알투베를 선택한 유저는 모두 0으로 돌아갔다.

개인적으로 '연속 안타 맞히기'를 준비하는 몇 가지 방법이 있다. 가장 손쉬운 선택은 최근 불붙은 타자가 상대 전적에서 우위에 있는 투수를 만나는 경우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생각보다 흔치 않다. 보통은 최근 1주일 동안 최다 안타 순위로 타자를 정렬한 뒤, 해당 타자가 상대 선발 투수와 남긴 전적을 우선적으로 본다. 다만 연속 멀티 히트가 5경기를 넘어서거나 연속 안타 행진이 10경기를 돌파한 선수는 조심한다. 흐름이 끊어질 때가 됐다는 생각에서다. 추신수와 조이 보토 같은 스타일의 선수는 배제한다. 이런 '눈야구 귀신'들은 자칫 4타석 1타수 무안타 3볼넷 같은 괴이한 성적을 남기는 수가 있다. 버스터 포지 같은 주전 포수도 기피 대상이다. 상승세라 해도 휴식일에 대타로 나와 1타수 무안타로 끝나곤 한다.

타자 못지않게 상대 투수도 잘 봐야 한다. 정면 승부를 즐겨 볼넷은 적으면서도 구위로 압도하지 못하는 수준의 투수가 제격이다. 과거 미네소타와 시애틀에서 뛰었던 카를로스 실바는 최상급 볼넷 비율을 기록하던 한창때도 9이닝당 피안타가 10개를 훌쩍 넘었다. 최근에는 리키 놀라스코가 비슷한 유형이어서 등판할 때마다 반가운 마음이 든다. 하지만 역시 야구는 숫자가 아니다. 10년 넘게 이런 잔머리를 숱하게 이용했지만 개인 최고 성적은 20경기 연속 안타에 불과하다.

이 정도까지만 해도 소소한 재미로는 충분하다. 단순한 게임 방식에도 불구하고 '연속 안타 맞히기'는 판타지 게임으로 분류된다. 실제 경기의 기록을 바탕으로 한다는 점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판타지 이상의 '현실 스토리'가 생겨나기도 한다.

2013년 8월, 애틀랜타에 거주하는 경찰관 윌 브라이언 씨는 '연속 안타 맞히기' 게임을 즐기다 46경기 연속 기록까지 성공했다. 560만 달러의 상금에 서서히 접근하던 시점. 다음 날 47경기째 선수로 당시 애틀랜타 소속이던 저스틴 업튼을 선택했다. 업튼은 13경기 연속 안타로 상승세를 이어가던 참이었다. 하지만 장날을 맞은 업튼은 4타수 무안타로 침묵했고 팀도 14연승을 마감했다.

해프닝으로 끝날 수도 있었지만 운명의 장난인지 당시 업튼의 여자 친구도 '연속 안타 맞히기' 게임을 즐기는 유저였다. 브라이언 씨의 기록 행진이 끝났다는 사실은 여자 친구를 통해 업튼에게 전달됐고, 업튼은 자신을 자책하는 동시에 브라이언 씨를 위로하기 위한 방법을 찾았다. 결국 자신의 에이전트를 통해 브라이언 씨 가족 전체를 홈경기에 초대하고 직접 인사까지 하는 것으로 아름답게 마무리했다. 상금을 놓친 대가치고는 기억에 남을 만한 사건이 됐다.
업튼을 통해 게임이 현실과 접목됐다.

업튼을 통해 게임이 현실과 접목됐다.

조금 차이는 있지만 KBO의 '비더레' 당첨자인 '물침대' 유저 역시 자신이 가장 많이 선택한 선수로 꼽은 롯데 손아섭으로부터 축하 메시지를 전달받기도 했다. 손아섭은 "저를 많이 선택하셨다니 보는 눈이 있으신 것 같다"며 재치 있는 인사를 건넸다. 간단한 게임으로 거액의 상금을 탄 것도 흥미롭지만 그저 일시적인 재미로 끝나는 것이 아닌, 어떤 식으로든 현실 야구와 접점이 형성됐다는 점이 의미 있게 다가온다.

MLB '연속 안타 맞히기' 게임의 최고 기록은 작년 32세 남성 로버트 모슬리 씨가 세운 51경기다. 1941년 조 디마지오가 작성한 당시의 기록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반증하는 셈이다. 다만 아쉬운 건 이 게임의 상금은 미국과 캐나다 국적이 아니면 받을 수 없다는 점이다. 허탈할 수도 있지만, 단 한 번도 당첨자가 나오지 않은 만큼 실제 우리나라 팬이 기록을 세운다면 상금 못지않은 화제성으로 분명 주목받을 것이라는 얄팍한 기대를 해본다.

"하루에 15초면 충분합니다." '연속 안타 맞히기' 게임의 대표 홍보 문구다. 하루에 15초를 투자해서 소소한 재미를 느끼는 것으로 충분하고, 기록을 세운다면 실제 야구 선수와 접점까지 만들 수도 있다. (상금은 아쉽지만 말이다.) 이 정도면 하루에 15초, 충분하지 않을까? ['비더레' 당첨자, '물침대'님과의 전화 인터뷰]

Q. 먼저 축하드린다. 매일 이런 게임을 하다 보면 야구를 다르게 보는 경지에 이를 것 같은데.
A. 보통 재미없으면 채널 돌리게 되는데, 이 게임을 하고부터 자신이 선택한 선수를 보느라 경기를 끝까지 볼 수밖에 없다. 오늘 성공하면 내일도 예상을 해야 하니 또 본다. 야구가 계속 재미있어진다. 그 재미는 이루 말할 수 없다.

Q. 자신의 선택 방법이나 비법이 있다면?
A. 누구나 좋아하는 선수, 걸고 싶은 선수가 있을 거다. 다들 나름 분석은 할 것 아닌가. 상대 전적도 보고, 플래툰 적용 가능성도 보고, 불펜 투수도 보고, 자신이 좋아하는 애정도도 반영되고. 오늘 안타친 선수가 다음 날도 치는 경우가 가장 많다고 본다. 하지만 결국 운이 중요하다.

Q. 도박을 감행해서 성공했던 경우도 있나?
A. 다른 사람들이 모두 선택한 타자를 피하고 싶어서 바꾼 적이 있다. 나보다 기록이 앞서 있던 유저를 신경 쓰고 있었는데 둘 다 황재균을 찍은 거다. 경기 전에 차별화를 시도해보자는 마음으로 박병호로 바꿨다. 그날 황재균은 못 쳤고 박병호는 쳤다. 결과론이지만 그 바람에 제가….

Q. 손아섭을 유독 많이 골랐던데, 이유가 있을까?
A. 개인적으로 손아섭 팬이다. 워낙 정확하고 빠른 타자다. 보통 FA 계약 후 첫해에 슬럼프가 오곤 하는데, 워낙 성실한 선수라는 걸 알기 때문에 기대를 놓지 않았다. 제가 걸기 시작했을 때 살아나고 있던 시점이었다. FA 징크스를 깰 선수라고 믿었는데 다행히 잘 됐다. 사실 롯데 구단 팬이라기보다 손아섭 팬이다. 팀은 롯데 이외에 엘지도 좋아하고 한화도 좋아한다.

Q. 메이저리그에도 비슷한 게임이 있다. 도전할 생각은 없을까?
A. 류현진 때문에 지난 월드시리즈도 거의 다 봤는데 거기는 투수들이 굉장해서 기록은 불가능할 것 같다. 더군다나 56경기를 넘어야 한다니…. 어려울 것 같다.

Q. 상금은 미국·캐나다 시민만 받을 수 있다고 하는데….
A. 그럼 의미가 없죠 뭐.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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