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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훈칠의 맥스MLB] 장칼로 슈어저와 개그니, 그리고 흐레호리위스
[전훈칠의 맥스MLB] 장칼로 슈어저와 개그니, 그리고 흐레호리위스
입력
2019-02-18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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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20-09-15 09:55

네티즌끼리 소통하는 목적이라면 진지하게 따질 이유가 없다. Kershaw를 부를 때 커쇼든 귀쇼든 열정맨이든 알아듣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일정 수준 이상의 공신력을 갖춘 미디어에서 선수 이름을 표기하려면 어떤 식이든 원칙이 필요하다. 물론 원칙이 없는 건 아니다. 허나 때로는 이 원칙이 명확하지 않아서, 때로는 그 원칙이 두루 공감을 얻지 못해서 난감한 상황이 생긴다. 모든 분야가 다 그렇겠지만 해외 스포츠 분야는 태생적으로 이런 일이 잦을 수밖에 없다. 다양한 국가 출신의 선수들이 용광로 안에 녹아 있기 때문이다.
선수 이름 표기법을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질 때 간혹 ‘본토 전문가’의 말을 근거로 제시하곤 하는데 이것도 불확실하다. “현지에서 이렇게 말한 걸 직접 들었다”며 미국인의 발음을 출처로 주장하는 것도 공식적인 정보라고 할 수는 없다는 얘기다. 생전 처음 보는 성씨가 드물지 않은 미국에서, 미국인이라도 모든 고유명사를 완벽하게 알아채 발음하기는 어렵다. 특히 경력이 짧거나 새로 이적한 선수, 출신지가 독특한 선수를 부를 때면 더 그렇다.
가장 일반적인 원칙은 국립국어원에서 제시한 외래어 표기법이다. 간혹 해외 거주 경험이 있거나 외국어 실력이 출중한 경우 국립국어원을 폄하하기 쉽지만 그렇게 간단하게 제압될 성질의 것은 아니다. 특정 이름을 한 가지 표기로 써야 한다고 논리 대결을 펼칠 경우 이보다 더 나은 방법은 현실적으로 없다.
대표적인 사례를 보자. 2002년 오클랜드에서 데뷔해 2006년 내셔널리그 다승왕을 차지하기도 했던 (동시에 2008년 ‘다패왕’에 오른 적도 있던) Aaron Harang. 체구에 걸맞지 않은 앙증맞은 투구폼의 소유자이기도 한 이 선수를 많은 팬들은 손쉽게 ‘하랑’이라 불렀다. 그런데 국립국어원이 정한 표기는 ‘허랭’이다. 같은 모음(‘a’)이라도 강세 여부에 따라 소리가 달라지는데 Harang은 2음절에 강세가 있다 보니 /hərˈæŋ/으로 발음된다는 점을 확인해 표기한 것이다.
문제는 이렇게 정리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류현진의 데뷔 시즌에 애틀랜타 소속으로 맞대결을 펼쳤고, 이듬해엔 LA 다저스로 이적해 팀 동료가 되기도 했던 Paul Maholm을 보자. 국립국어원에선 ‘머홀름’으로 정리해뒀다. 역시 앞선 ‘허랭’처럼 2음절에 강세가 있다는 점을 감안해 /məˈhɔlm/으로 계산한 듯하다. 하지만 메이저리그 사무국에서 권장하는 발음은 ‘마홀름’(/Mah-HALL-uhm/) 이다. (‘마’나 ‘머’나 발음할 때야 무슨 상관이 있겠나만 표기를 위해 굳이 따지는 것이다.) 강세가 없는 ‘a’지만 일반적인 법칙과는 다르게 소리 난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냥 고유명사이기 때문이다. 2014년 애리조나 스프링캠프 취재에서 만난 LA 다저스의 투수 코치 허니컷은 인터뷰 도중 이 선수를 ‘마홀름’이라고도 부르고 ‘마홈’이라고도 불렀다. 미국인의 발음이라는 것 자체가 판단 근거가 될 수는 없는 이유다.

국립국어원에서도 모든 선수를 포용할 만한 원칙을 정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점은 어느 정도 인정하고 있다. 문의 결과, 여러 예외를 모두 반영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대체로 세 가지 경우를 나눠 본다고 한다. 원래 미국에서 태어난 미국인 선수. 미국에서 태어나긴 했지만 부모가 미국인이 아닌 선수. 미국 태생도 아니고 영어권 출신도 아닌 선수 등이다. 이 기준에 몇 가지 개인적인 의견을 보태 정리해본다.


고유명사의 특징도 반영해야 한다. 박찬호의 빅리그 초창기 시절 동료 유격수였던 Greg Gagne, 그리고 선발투수 유망주였다가 훗날 84경기 연속 세이브까지 달성한 최강 마무리 Eric Gagne는 발음이 다르다. 미국 본토 출신의 Greg Gagne는 ‘개그니’이고 캐나다 몬트리올 출신의 Eric Gagne는 ‘가니에’다. 90년대 캐나다 쇼트트랙의 강자로 군림했던 Marc Gagnon이 초기에는 ‘마크 개그넌’으로 소개됐다가 후에 ‘마크 가뇽’으로 바꿔 표기된 것도 비슷한 경우다. 앞서 언급한 마홀름도 결국 고유명사라는 점이 부각되는 경우다. 모든 선수의 집안 내력을 알아낼 수 없기에 일일이 따져 묻기는 어렵지만 확인 가능한 부분이라도 적용하면 된다.
그럼에도, 여전히 부족하다. 때론 사회 통념상의 암묵적인 합의도 무시할 수 없는 경우가 생긴다. 오승환이 세인트루이스에 입단했을 때 마무리 투수였던 Rosenthal을 대중들이 ‘로젠탈’로 부른 것은 유명 칼럼니스트이자 방송인 켄 로젠탈(Ken Rosenthal)이 오래전부터 메이저리그 팬들의 인식에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국립국어원에서 정한 ‘로즌솔’이 실제 발음과 가깝기는 하나 이미 팬들 사이에 굳어진 명칭이 있다 보니 여전히 권고안을 받아들이지 않는 분위기다.
뉴욕 양키스의 유격수 Gregorius 역시 국립국어원에서는 ‘흐레호리위스’로 정리해뒀다. 메이저리그에서는 모든 관계자가 ‘그레고리우스’로 부른 지 오래고, 본인도 미국 매체에 자신의 이름을 소개할 때는 ‘그레고리우스’라 말하니 대다수 팬들은 어색하다고 느낀다. 하지만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출신에 네덜란드 국가대표로 뛴 경력도 있어 네덜란드식으로 표기한 것이고, 실제 유튜브에도 네덜란드어로 ‘흐레호리위스’라 불리는 영상이 존재하는 만큼 근거가 충분하다는 게 국립국어원의 입장이다.
클리블랜드와 피츠버그, 필라델피아 등에서 활약한 베네수엘라 출신 투수 Jeanmar Gomez 역시 미국 내에서는 예외 없이 ‘진마 고메스’로 통하지만 자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드러난 진짜 이름은 ‘헤안마르 고메스’다. 좀 더 유명한 선수였다면 ‘흐레호리위스’와 비슷한 논란이 일었을 것이다. 결국, 통념상의 합의를 어느 정도 인정해야 하는 지가 숙제인데, 축구계에도 호날두와 호나우도가 공존한다는 점에서 아예 불가능한 얘기는 아니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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