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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훈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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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훈칠의 맥스MLB] 지금 다시 '머니볼'을 본다면
[전훈칠의 맥스MLB] 지금 다시 '머니볼'을 본다면
입력
2019-03-11 13:50
|
수정 2020-09-15 09:55

'라이브볼 시대'가 100년이 되어 가는 시점에서 야구는 또 한 번 큰 변화를 맞고 있다. 정확히 언제 누가 주도한 흐름이라 규정하기는 쉽지 않지만 21세기 이후의 야구를 '머니볼 시대'라고 부른다 해도 크게 거부감이 없다. 20세기에도 투수의 결정구를 의미하는 '머니 피치(money pitch)'나 타자가 홈런을 때린 공을 뜻한 '머니 볼(money-ball)'이라는 용어가 존재하기는 했지만, 지금의 '머니볼'은 지난 2003년 마이클 루이스가 펴낸 뒤 아마존닷컴에서 3년 연속 베스트셀러에 선정된 책의 제목에서 온 말로 인식된다. 그래서 머니볼의 의미를 가장 확실하게 파악하는 방법은 마이클 루이스의 책을 읽는 것이고, 더 손쉬운 방법은 같은 제목의 영화를 보는 것이다.
영화 '머니볼'은 할리우드 시스템에서 만들어진 야구 영화 중 가장 최근에 화제가 된 작품이다. 마이클 루이스의 책이 (경영 서적으로 분류되긴 했지만) 한국어로 번역되고, 이 책을 원작으로 상업 영화가 만들어져 국내 개봉까지 이뤄진다는 소식은 당시 메이저리그 팬들을 꽤 흥분시킬 만한 것이었다.
"자신이 평생 해 온 경기에 대해 우린 놀랄 만큼 무지하다." 영화는 미키 맨틀의 명언이 등장한 뒤, 조니 데이먼과 로저 클레멘스의 맞대결 장면으로 시작된다. 2001년 아메리칸리그 디비전 시리즈에서 오클랜드가 먼저 2연승을 거두고도 뉴욕 양키스에 내리 3연패 해 아쉽게 탈락하는 순간. 1억 달러를 쏟아 부은 부자 구단의 벽에 막힌 예산 4천만 달러짜리 구단의 얘기라는 점을 친절하게 알려준다.

빌리 빈 오클랜드 단장(왼쪽), 2002년 오클랜드의 20연승에 기뻐하는 선수들(오른쪽)
대표적인 사례로 묘사되는 선수가 스캇 해티버그이다. 이렇다 할 전성기랄 것 없이 30대 초반에 은퇴할 것처럼 보였던 백업 포수지만 그의 출루 능력에 주목한 빌리 빈 단장이 과감하게 1루수를 맡겨 지암비를 일정 부분 대체하도록 했다. 새 계약서를 받아든 채 가족과 말없이 기쁨을 나눈 해티버그는 결국 가장 영화적인 순간이라 할 수 있는 20연승의 마지막 끝내기 홈런까지 기록한다. 오클랜드를 떠난 후 신시내티에서도 잠시 준수한 활약을 펼치면서 해티버그는 빌리 빈 단장 덕분에 30대 후반까지 선수생활을 지속할 수 있었다.
해티버그와 함께 중요하게 다뤄지는 선수라면 채드 브래드포드다. 극단적인 언더핸드 투구폼에 느린 변화구로 승부하는 구원 투수라 크게 주목받지 못하던 브래드포드는 오클랜드로 이적한 뒤 핵심 불펜으로 자리 잡았다. 영화에서 "3백만 달러 급 선수인데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아 지금은 23만 7천 달러만 주면 데려올 수 있다"는 설명이 붙는다. 실제 2002년 오클랜드에서 23만 5천 달러의 연봉을 받은 이후 볼티모어를 거치며 3백만 달러 수준의 연봉을 받는 선수가 됐기에 브래드포드에겐 빌리 빈이 인생의 은인일 수밖에 없다. 볼티모어가 훗날 비슷한 유형의 정대현을 영입하려 했던 것도 브래드포드의 영향이라고 본다.
연출을 맡은 베넷 밀러 감독은 실제 경기에서 일어난 상황을 최대한 현실적으로 묘사하길 원했다. "믿을 수 없을 만큼 극적인 사실을 잘못된 연출로 망치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그래서 해티버그를 비롯해 데이비드 저스티스와 에릭 샤베스 등 선수 역할을 맡은 배우들도 실존 인물과 닮은꼴로 구성했다. 주연 브래드 피트도 대중들이 갖고 있던 빌리 빈 단장의 지적이고 단호한 이미지를 제대로 구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반면 친구인 브라이언 캐시먼 뉴욕 양키스 단장은 빌리 빈의 극 중 캐릭터가 작위적이라고 지적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답게 경기 장면도 당시 중계 화면과 직접 촬영한 장면을 위화감 없이 교차 편집해 사실감을 높였다. 연출진은 이 영화가 비록 2002년을 다루는 것이지만 분명히 '시대극'의 성격을 갖고 있다고 보고 고증 작업에도 애썼다고 한다. 해마다 달라지는 유니폼의 디테일은 야구팬들이 알아채는 부분이기 때문에 더욱 정확히 구현하려 공들였고, 자유분방한 오클랜드 관중들의 복장이나 소품에 부착된 다양한 시대의 오클랜드 로고까지 신경 쓴 덕에 리얼리티가 살아날 수 있었다. 빌리 빈 단장의 현역 시절을 회상하는 장면에선 먼발치에서 등장하는 현수막 하나까지 검토했다고 한다. (회상 장면은 주로 다저스타디움에서 촬영됐다.) 극 중 비중이 높지는 않지만 주전 유격수 미겔 테하다는 실제 빅리그 유격수 출신인 로이스 클레이튼이 맡기도 했다.
반면 영화의 극적인 면을 위해 희생된 인물도 있다. 필립 세이무어 호프먼이 맡은 아트 하우 감독이 대표적이다. 현실의 하우 감독은 사사건건 빌리 빈 단장과 충돌할 정도의 공격성을 가진 인물은 아니었다. 오히려 비교적 원칙에 충실했던 인물이라는 평이 많다. 영화가 대성공을 거둔 이후 아트 하우 감독이 "나와 관련된 장면은 90%가 허구"라며 공개적인 반감을 드러냈을 정도였다. 관습에 물든 스카우트 집단도 다소 몰상식한 인물들로 처리됐다.

왼쪽부터 허드슨, 멀더, 지토
현지에서는 아무 관심 없겠지만 눈썰미 좋은 국내 야구팬들에게 포착될 만한 순간도 있다. 새로운 선수들로 야심차게 출발한 2002년 개막전에서 제레미 지암비가 안타를 기록할 때 살짝 스치는 박찬호의 투구 모습이 그것이다. 실제 박찬호의 텍사스 데뷔전이었는데 아쉽게 5이닝 6실점 하며 패전 투수가 됐다. 해티버그 기용을 끈질기게 거부한 하우 감독의 라인업 카드에 서튼이라는 이름도 얼핏 보인다. KBO리그에서 뛰었던 바로 그 래리 서튼이다.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도 있다. 머니볼도 빠르게 변하고 있다. 새로운 공식에 열광하며 각종 기록을 집요하게 분석했던 흐름에서 그치지 않고, 실제 현장에서 벌어지는 선수와 공의 물리적인 움직임을 활용하는 방향으로 진화하는 중이다. 투구 추적 시스템이나 트랙맨, 스탯캐스트 자료를 재가공한 데이터와 이를 근거로 한 이론은 초기의 세이버메트릭스에서 보여주지 못한 세계를 선보이고 있다.

빌리 빈의 머니볼은 2000년부터 4년 연속 디비전시리즈를 통과하지 못하며 한계를 드러내기도 했고, 제레미 브라운처럼 잘못 뽑은 선수로 쓴맛을 본 적도 있다. 넥센에서 뛴 마이클 초이스도 오클랜드가 1라운드에서 선발했지만 기대에 못 미친 케이스다. 그래도 '머니볼'이 음지에 있던 단장의 영역을 전면으로 끌어올리며 패러다임을 바꾼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그 여파가 최근 KBO리그에도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치고 있다. 데이터 야구가 '좌우놀이' 정도를 의미하던 과거에 비하면 상전벽해다. '머니볼 시대'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그리고 그 방향을 예측할 수 없다는 게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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