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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훈칠

[전훈칠의 맥스MLB] 이치로를 추억하는 또 하나의 방법
[전훈칠의 맥스MLB] 이치로를 추억하는 또 하나의 방법
입력
2019-04-01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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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20-09-15 09:55

이치로 은퇴경기
메이저리그에서 이치로가 뛴 경기는 거의 모두 생중계됐다. (2005년 8월 4일 펠릭스 에르난데스의 데뷔전은 특급 신인을 보호하려는 시애틀 구단의 의도로 인해 일반적인 형태의 생중계가 이뤄지지 않았다.) 그래서 그라운드에서 펼쳐진 이치로의 플레이는 대부분 공개돼 있는 반면 그의 속내는 좀처럼 드러나지 않았다. 대신 경기장 내외에서 이뤄진 미국 현지 매체의 평가와 인터뷰 일부를 모아 이치로의 빅리그 19년 경력을 돌아봤다.
평소 적극적으로 인터뷰에 응했다고 볼 수 없는 이치로가 미국 매체에 자신의 목소리를 진솔하게 전한 사례 중 하나로 메이저리그 역사 다큐멘터리인 '베이스볼'에 출연한 것을 꼽을 수 있다. 켄 번즈가 10년 단위로 제작한 이 다큐에서 이치로는 21세기 초반 부분의 한 챕터로 다뤄진다. 여기에서 이치로의 첫 마디는 이렇게 시작한다. "늑대는 태어나서 처음 본 생물을 자신의 어미로 여긴다죠? 제게는 아마 야구가 그랬던 것 같습니다." 이치로에게 야구가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이 다큐는 이치로의 아버지가 평소 네 가지 원칙을 세우고 지켰다고 소개한다. 조화, 인내, 노력, 그리고 투지. 성공하는 유일한 길은 고통을 인내하고 극복하는 것밖에 없다는 인식도 가졌다고 한다. 이치로의 아버지는 아들이 9살 때부터 매일 2~3시간씩 직접 훈련을 지도했고 한겨울 추위에 손이 곱아도 원칙을 어기지 않았다. 1년에 이런 훈련을 363일 정도 했다는 게 이치로의 회고다. 이치로는 오릭스 입단 초기, 타격폼을 교정하라는 코치의 말에 "이 자세로 누구보다 더 잘 칠 수 있는데요?"라고 답해 자신의 스윙을 유지했다고 했다. 오릭스 시절 원바운드 공을 걷어올려 우전 안타를 만든 장면은 이런 이치로의 타격을 대표적으로 설명하는 장면이다.
하지만, 메이저리그 진출은 달랐다. 많은 스카우트들이 깡마른 선수가 보여주는 특이한 타격폼에 의구심을 제기했다. 이전까지 노모 히데오를 비롯해 10명의 일본인 투수가 빅리그를 경험했지만 타자는 처음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일본 기업이 시애틀 구단 소유 구조의 일부분을 차지한다는 점, 그리고 시애틀 연고지에 아시아인이 많다는 점도 이치로의 능력을 평가절하하는 요소가 됐다.
물론 결과는 이미 나와 있다. 홈런 시대에 펼쳐진 이치로의 활약은 미국 야구계의 사고 체계를 완전히 뒤엎을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골드글러브 단골 수상자들이 이치로의 평범한 땅볼에 당황하는 장면은 하이라이트 영상으로 만들어졌다. 메이저리그 기록 모음집에서 이름만 접했던 윌리 킬러, 조지 시슬러, 타이 콥의 야구가 이랬을 것이란 평가도 나왔다. 이 다큐에 등장한 페드로 마르티네스조차 "이치로를 잡아내려면 정말 정확하게 원하는 공을 던져야 한다. 그래도 이치로는 투수가 더 공을 던지게 만든다. 이건 투수들이 가장 싫어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미 빅리그에 중남미 선수는 흔했고, 박찬호를 비롯한 아시아 투수도 종종 활약했지만 이치로의 등장으로 비로소 메이저리그의 세계화가 진짜 현상인 것처럼 인식돼 향후 큰 파급 효과를 불러일으킬 것처럼 여겨졌다. (물론 야구의 세계화는 뜻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베이스볼' 다큐에 따르면 당시 시애틀에 파견된 일본 기자들이 150명에 이를 정도였다고 한다. 당시 일본의 최대 외교 현안이었던 자위대의 이라크 파병 때 파견된 취재진이 100여 명 수준이었다니 비교가 된다.

이치로 안타기록
한 해 지나면 조금 달라진다. 2002년 11월 당시 시애틀 담당 기자였던 밥 피니건은 이렇게 썼다. "첫 시즌에는 이치로가 안타를 칠 수 있을지 자체가 궁금했다. 이제는 언제, 어떻게, 어떤 방향으로, 얼마나 멀리 때릴 지가 궁금해졌다. 뭐든 이치로는 사람들을 항상 궁금하게 만드는 존재다." 시애틀의 1루 코치를 지냈던 존 모지스는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와의 인터뷰에서 이치로의 천재적인 타격을 테니스에 비유하기도 했다. "이치로의 손에는 테니스 라켓이 쥐어있는 것 같다. 유격수 키를 살짝 넘기는 로빙샷, 우익수 선상에 떨어지는 강타를 라켓으로 마음껏 조절하며 치는 느낌."이라고 표현했다.
피니건은 이치로에게 2001년의 성과에 대해 만족하는지도 직접 물었는데 답변이 이치로다웠다. "만족이라는 말은 어려운 말이다. 아무리 좋은 성적을 거둬도 경기의 어떤 측면에서는 항상 할 일이 남아 있는 상태"라는 것이다. 그러니 아무 할 일이 남지 않았다고 확신이 들지 않는 이상 만족이라는 말을 쓸 수는 없다는 게 이치로의 답이었다. "타격에서 열 번 중 일곱 번은 실패이고, 그 일곱 번의 실패 이유는 각각 다르다. 개인적인 이유일 수도, 상대 투수에게 당한 것일 수도 있다."고도 했다. 극단적으로 보면 10할 타율을 기록하지 않는 한 할 일이 남아있다는 것이다. 이치로의 말을 옮기면서 피니건은 "경기장에서 음료와 과자를 파는 일, 혹은 그라운드 청소 같은 일이 남아있다면 모를까 이치로에게 남아있는 할 일은 없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치로 SI 40년 기념판
보스턴의 그래디 리틀 감독은 "이치로를 상대하는 특별한 방법은 없다. 그냥 다른 8명을 잡아내는 데 집중하는 편이 낫다."고도 했다. 마이크 하그로브 감독은 "볼 카운트가 유리한지 아닌지가 타격과 무관한 유일한 선수"라고 평하기도 했고,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짐 콜번 스카우트는 이치로의 미국 진출에 자신이 관여한 것을 두고 "스스로 내 등을 토닥거려줘야 마땅한 일"이라고도 했다. 이치로의 야구 자체를 극찬한 사례는 무수히 많다.
하지만, 경기력 이외의 부분에서는 미국 취재진이 보기에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던 것 같다. 시애틀 창단 40주년을 기념해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SI)에서 발간한 책자에는 이치로가 미디어, 특히 일본 취재진과 빚는 갈등을 묘사한 대목이 있다. 고국에서 영웅으로 대접받는 이치로를 취재하려는 일본 미디어가 2001년 스프링캠프에서만 무려 150장의 출입증을 신청했고, 이 가운데 취재 기자 23명, 사진 기자 11명, 방송사 한 팀은 시즌 전체를 취재할 수 있는 출입증을 발급받았다고 한다. 이치로 뒤를 따라다니는 일본 기자들의 행렬이 장관을 이루기도 했다. 시애틀이 10대 1로 이기든 1대 10으로 대패하든 피넬라 감독은 경기 후 일본 매체로부터 똑같은 질문을 받아야 했다. "이치로는 오늘 어땠나요?" 취재진 역시 원치 않는 상황이지만 대안이 별로 없던 시절이다. 그 취재진은 고스란히 이치로의 라커 앞으로 이동해 비슷한 질문을 이어갔다고 한다. 이치로는 스스로 팀에 도움이 되지 못했다고 느낄 때마다 트레이너 방에 피신(?)했다가 취재진이 철수한 이후 퇴근했다. 인터뷰에 응한다 해도 원론적인 답변이 대부분이었다. 미국에 살면서 가장 그립다던 반려견의 이름을 묻자 "그 친구 허락 없이는 이름을 공개하기 어렵네요"라 답했다고도 한다. (시애틀 진출 초기에 이치로의 숙소는 반려 동물을 키울 수 없는 조건이었다.)

이치로 일본 취재진
동료들과 우호적으로 지내던 이치로지만 팀 성적이 하락세를 타면서 갈등을 겪기도 했다. 팀은 갈수록 부진한데 선수단 내 입지가 높아지는 상황에서 클럽하우스 내의 문제를 방관하는 이기적인 선수라는 혹평을 받기도 했다. 결국, 이것이 2012년 트레이드를 자청해 뉴욕 양키스로 옮기는 단초로 이어졌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늘 50세까지 현역 생활을 하겠다고 다짐했던 이치로지만 뉴욕 양키스와 마이애미에서 뛸 때는 언제든 방출될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긴장감을 유지했다고 한다. 그래도 꾸준한 자기 관리를 통해 3천 안타 고지를 밟은 뒤부터 한층 유연한 모습으로 바뀌었다. 메이저리그에서도 이치로를 역대 급 레전드로 대우했다. 이치로는 작년 시애틀에 복귀하면서 은퇴에 대한 생각을 구체적으로 갖게 됐고 유례없이 화려한 은퇴 경기로 19년의 빅리그 경력을 마감했다. 고교 시절 메이저리거의 꿈을 갖게 했던 켄 그리피 주니어와 포옹을 나누는 비현실적인 상황도 함께 이뤄졌다. 동시에 자신을 보고 빅리그 진출을 꿈꾼 기쿠치가 눈물을 흘리는 순간, 귓속말을 나누는 모습도 묘한 순간으로 남았다. (둘의 대화 내용은 비밀이라며 공개하지 않았다.)

이치로와 그리피
이제 이치로에게 남은 기대가 하나 있다. 5년 뒤 명예의 전당에 입성할 때 전해줄 메시지이다. 진지하고 철학적이면서도 재기 발랄한 면을 잃지 않았던 이치로의 마지막 순간을 기대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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