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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훈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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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훈칠의 맥스MLB] 투구의 근본을 묻는 '왼손 매덕스'
[전훈칠의 맥스MLB] 투구의 근본을 묻는 '왼손 매덕스'
입력
2019-06-07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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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19-06-07 11:35

“그를 상대하고 나면 바보가 된 것 같다. 그의 공이 압도적이지는 않다고 하지만 제구와 무브먼트, 구속 가감이 더해지면 다른 식의 압도적인 투수가 된다.”
“경기를 하면서 별로 대단한 투구라 생각하지 않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전광판을 보니 7회까지 한 점밖에 못 뽑은 상태였다.”
메이저리그 팬들이라면 요즘 많이 들어본 얘기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 대상으로 누구나 한 사람을 예상할 것이다. 하지만 이 칭찬들은 올해 류현진의 것이 아니다. 다름 아닌 명예의 전당 멤버인 그렉 매덕스의 현역 시절을 설명한 말들이다.
첫 번째 인용구는 매덕스가 최초로 사이영상 4년 연속 수상에 성공한 1995년에 샌디에이고 타격 인스트럭터 레튼먼드가 LA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했던 얘기다. 두 번째는 같은 기사에서 인용된 래리 워커의 말이고, 세 번째는 짐 토미가 1995년 월드시리즈를 돌아보며 털어놓은 후일담이다. 매덕스는 메이저리그 역사에서 제구력으로 시대를 평정한 대표적인 선수다. 그 매덕스에 대한 평가와 류현진의 투구를 본 감상이 이제는 정말 비슷하다. 얼마 전까지 립서비스처럼 들렸지만 적어도 ‘단기 활약’에 한정한다면 어색해 할 이유가 없어졌다.
규정을 거부하는 류현진의 투구
류현진이 믿기 힘든 활약을 이어가면서 매 경기 후 소감을 밝혀야 하는 로버츠 감독뿐 아니라 LA 다저스 담당 기자들의 표현도 한계에 이르고 있다. 한 두마디로 정의하거나, 몇몇 수치로 규정하기 힘든 방식의 투구인 탓에 더 그렇다. 류현진 경기 생중계에 참여한 김병현 해설위원은 류현진이 너무 잘해서 재미없다고까지 했다. 결국, 뉴욕 메츠의 캘러웨이 감독과 ESPN의 알든 곤잘레스 기자는 류현진을 매덕스와 비교하고 말았다.
현대 야구의 흐름을 주도하는 통계 전문가들은 특정 선수가 돋보이는 활약을 펼치면 곧바로 근거를 찾아낸다. 탬파베이 선발투수 글래스노우의 올해 초 활약이나 휴스턴 이적 후 커브 활용에 눈을 뜬 콜린 맥휴의 선전은 전문가들이 자신의 존재 이유를 드러낸 좋은 사례다. 공의 회전수나 회전축 정보를 근거로 새롭게 시도한 투구가 현실 야구에 적용되면서 인과관계가 입증됐기 때문이다. 클리블랜드의 트레버 바우어나 시애틀의 미치 해니거처럼 선수 본인이 직접 연구에 나서 긍정적인 변화를 얻어낸 사례도 많다.
류현진의 투구에서도 어떤 값을 찾아 의미를 부여하는 게 불가능하지는 않다. 과거와 비교해 다양해진 구종은 물론, 같은 구종이라도 구속을 다르게 하면서 얻어진 값으로 일정 부분 설명할 수는 있다. 하지만 류현진의 경기 운영 전체를 볼 때 특정한 숫자로 호투의 근거를 찾기는 어렵다. 이 방면으로 가장 앞선다고 평가받는 ‘디 어슬레틱’이나 팬그래프도 류현진을 숫자로 규정하려 무리수를 두기보다 일어난 현상을 정리하는 정도에 만족하고 있다. ESPN의 다저스 담당 기자인 알든 곤잘레스는 애틀랜타전 완봉승 당시 류현진이 93개의 공을 던졌는데 이 중 58개가 포수 마틴이 미트를 움직이지 않고 그냥 받아낸 숫자라고 했다. 경기 자료화면을 다시 볼 때 ‘미트를 움직이지 않은’ 기준이 애매하긴 하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류현진의 투구를 설명하는 색다른 표현이었다고 칭찬할 만하다.

결국 야구라는 스포츠와 투수라는 포지션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으로 이어진다. 구종이나 구위, 투구 전략은 모두 원하는 곳에 공을 던질 수 있는 능력이 전제된 이후의 얘기다. 랜디 존슨 정도의 돌연변이가 아닌 이상 어떤 이론이나 논리도 제구력보다 앞설 수는 없다. 그래서 류현진의 호투 비결은 ‘같은 자세로 다양한 구종을 다양한 위치에 원할 때마다 스트라이크 존 경계에 집어넣는 능력’ 이상으로 표현하기 어렵다. 투타 대결을 타이밍 싸움으로 정의한다는 면에서 보면 류현진은 ‘타자를 불편하게 만드는 방법의 달인’이라고 해도 될 것 같다. 구체적으로는 일정한 패턴을 만들지 않으려는 노력인데, 뉴욕 메츠전에서 피트 알론소에게 이례적으로 연속 커브를 던진 장면이나 왼손 타자 마이클 콘포토에게 몸쪽 체인지업을 구사한 장면, 애리조나전에서 크리스찬 워커에게 체인지업 세 개를 연속해 던진 것들은 그나마 예상 가능한 수준의 패턴마저 읽히지 않으려는 시도였고, 실제로 통했다.

매덕스는 경기 중에도 어떤 타자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순간이 있다면 반드시 기억했고 다음 경기든 다음 시즌이든 잊지 않고 활용했다고 한다. 야구에서 홈플레이트의 너비는 17인치(43.18cm)다. 사람들은 매덕스가 홈플레이트의 가운데 15인치는 쓰지 않고 양쪽 1인치(2.54cm)만 활용해 투구한다고들 했다. 그마저도 최전성기 때는 양쪽 0.5인치라는 극찬까지 나왔다.
제구력도 후천적으로 길러질 수 있을까? 베이스볼 아메리카에서 발간한 명예의 전당 연감에 매덕스의 어린 시절 일화가 소개돼 있다. 매덕스는 현재 세인트루이스 투수 코치로 활동하고 있는 친형 마이크 매덕스와 어린 시절 ‘홈런 더비’ 라 부르는 게임을 자주 했다고 한다. 나무 의자 하나를 홈으로 정해두고 장난감 공을 던져 스트라이크 하나만 되면 타자가 아웃되는 방식이었다. 헛스윙이나 파울 한 번도 역시 아웃이었다. 이때 투수 역할을 맡으면 공을 나무 의자에 맞히려 애썼는데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제구 훈련이 됐다는 얘기다. 매덕스 본인이 어린 시절 가장 재미있게 했던 놀이였고, 한순간도 고된 훈련처럼 느껴지지 않았다며 실제 도움이 됐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일정한 투구폼을 유지하는 것도 류현진과 매덕스를 묶는 또 하나의 연결 고리다. 매덕스는 자신이 좋아하는 골프를 이용해 투구폼에 대한 철학을 드러낸 바 있다. 투수에게 구종을 선택하는 것은 골프에서 클럽을 고르는 것과 같은데, 클럽을 잘못 고르더라도 안정적으로 스윙하면 괜찮은 결과가 나오는 것처럼 구종 선택에 문제가 있더라도 안정적인 투구폼으로 일정하게 던지면 좋은 결과를 얻어낼 수 있다고 했다. 이 말은 결국 안정적인 투구 자세로 일정하게 던지는 것이 가장 근본적이라는 뜻으로 읽힌다.

(사진 출처 : LA 다저스 공식 사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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