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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훈칠의 맥스MLB] '봐줄 수 없는 요즘 야구?' 진짜 야구 논쟁

[전훈칠의 맥스MLB] '봐줄 수 없는 요즘 야구?' 진짜 야구 논쟁
입력 2019-09-02 17:06 | 수정 2020-09-15 09:53
현대 야구의 흐름에 독설을 던진 고시지

현대 야구의 흐름에 독설을 던진 고시지

7,80년대 활약하며 마무리의 선구자로 이름을 떨쳐 명예의 전당까지 입성한 리치 고시지가 최근 USA 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도발적인 의견을 던졌다. "요즘 야구는 도저히 지켜볼 수가 없다. 이건 야구가 아니다. 다양한 전략이 어우러진 야구의 아름다움이 실종됐다. 그냥 비디오 게임같다. 매일 발사 각도를 과시하는 홈런 더비일 뿐이다." 평소 성격을 감안해도 꽤 과감한 내용이다.

루 피넬라 감독도 거들었다. "모든 선수가 공을 퍼올리는 데에만 관심있다. 매일 야구에서 보이는 게 홈런 뿐이다. 히트 앤드 런이나 도루는 없다. 나는 3천 400경기 이상 빅리그 경기를 지휘했는데 단 한 번도 한 쪽으로 완전히 쏠린 극단적 시프트를 지시한 적이 없다. 그럼에도 꽤 이기긴 했다." 통산 최다 안타 기록 보유자 피트 로즈도 목소리를 냈다. "지금 야구인들이 원하는 게 이런 것이라면 할 말 없다. 하지만 관중은 줄고 있다. 내가 아이비리그 출신은 아니지만 이건 아닌 것 같다." 나름 한 성격하는 레전드들의 거침없는 언사는 모두 같은 기사를 통해 공개된 내용이다.

투수에겐 강속구, 타자에겐 강한 타구를 요구하고 홈런과 삼진이 넘쳐나는 시대. 여기에 극단적인 수비 시프트가 일상인 것은 물론 AI 심판까지 거론되고 있는 현실에서 자신이 경험했던 시절의 야구가 부정당하는 모습을 안타까워하는 듯하다.

그저 어느 시대마다 나오는 야구 원로의 불평일 수도 있다. 고대 수메르인의 점토판과 이집트 피라미드의 낙서는 물론 소크라테스 대화록에도 '요즘 애들 안 되겠다'는 취지의 내용이 남아 있다고 할 정도니 말이다. 사실 야구계도 다르지 않다. "예전 야구 선수들이 훨씬 영리하다. 요즘은 반발력 높은 공에 짧은 담장이 어우러져 홈런만 나올 뿐이다." 20세기 초반을 풍미하며 통산 3루타 1위(309개)에 오른 샘 크로포드가 이런 말을 남긴 건 1966년이다. "거액을 받는 선수들이 몸 사리는 모습을 보면 견딜 수 없다." 이 말은 1940년대와 50년대에 활약한 앤디 파프코가 70년대에 한 말이다. 이런 흐름을 감안하면서 고시지의 의견이 나온 맥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시대를 초월했던 야구 원로의 비판

시대를 초월했던 야구 원로의 비판

세이버메트릭스가 대중화되면서 이런 논쟁은 익숙하다. 한 쪽에서는 정교한 수식을 통해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야구의 이면을 드러내 의미를 창출하기도 하고, 다른 쪽에서는 경기를 보지 않아도 몇 가지 웹사이트만 이용하면 산출되는 숫자로 현실 야구를 설명한다며 언짢아한다. 그런 경향이 결국 경기의 획일화를 부추겨 홈런 과잉 시대까지 초래했다는 얘기다.

세이버메트릭스가 자발적 연구에서 시작돼 메이저리그의 패러다임을 좌우할 정도로 폭이 넓어진 것은 일단 환영할 만한 일이다. 긍정적인 효과도 많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추신수다. 전통적인 야구관에서 중요시하는 30홈런이나 100타점을 기록한 적 없지만 세이버메트릭스를 통해 팀에 기여할 수 있는 다양한 요소를 갖춘 타자로 평가되면서 7년간 1억 3천만 달러라는 대형 계약을 맺을 수 있었다. 2013년 류현진의 팀 동료였던 2루수 마크 엘리스는 세이버메트릭스의 존재 이유를 설명하는 사례라고 본다. 공격과 수비 모두 내실 있는 활약을 펼치면서도 독보적인 면이 없어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지만 WAR 수치를 통해 가치를 드러내곤 했다. (엘리스는 에이전트가 WAR로 설명하는 자신의 가치를 듣고, 좋은 말인 것 같지만 이해는 안 간다고 말한 적이 있다.) 반대로 1999년 팔메이로는 1루수로 단 28경기에 출전하고도 골드글러브를 수상했다. 평소 이미지로만 선정된 골드글러브의 흑역사인데 세이버메트릭스가 가미된 요즘 골드글러브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물론 무엇이든 지나치면 문제다. WAR의 개념과 완성도가 크게 공감받는 과정에서 과도한 '줄 세우기'가 나타난 측면은 있다. 내외야에 걸쳐 여러 포지션을 무리 없이 소화하면서 준수한 공격력을 과시한 벤 조브리스트는 2009년 탬파베이 시절 아메리칸리그 타자 중 WAR 1위에 오르기도 했는데 일부에서 이를 지나치게 의미부여한 것도 사실이다. 아무리 조브리스트가 훌륭한 선수라도 2009년 현역 선수를 늘어놓고 드래프트를 펼친다면 1순위로 조브리스트를 뽑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세이버메트릭스로 진가를 인정받은 추신수

세이버메트릭스로 진가를 인정받은 추신수

이런 갈등은 현장과 전문가 집단 사이에서 벌어지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때론 통계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신구세대의 갈등이 빚어지곤 한다. MLB 닷컴의 통계 전문가로 잘 알려진 마이크 페트리엘로는 지난 5월, 텍사스의 조이 갈로에 관한 분석 칼럼을 작성했다. 해당 칼럼은 조이 갈로가 어떤 지표를 이용해도 리그 최고의 타격을 보여주고 있을 뿐 아니라 중견수 수비도 충실해 MVP로 부족함이 없다는 내용이었다. 소속팀 성적이 좋지 않아 득표에 불리하겠지만 타격 접근법을 바꾼 뒤 볼넷 비율도 높아져 이전의 갈로와는 전혀 다른 타자가 돼 있다는 내용이다. 작년보다 늘어난 볼넷 비율 6.3%는 양대 리그 1위에 해당한다는 특유의 숫자도 덧붙였다.

페트리엘로는 이 칼럼을 자신의 트위터에도 게시했다. "갈로는 선구안을 개선하고 시프트에 굴하지 않음으로써 MVP급 시즌을 보내고 있다."는 설명과 함께. 그런데 꽤 강한 반발이 들어왔다. 그것도 세이버메트릭스의 창시자 빌 제임스로부터 말이다. 제임스는 게시물의 답글에서 "페트리엘로는 단기간의 플루크와 실제 선수 능력을 구분하지 못함으로써 형편없는 한 해를 보내고 있다."며 페트리엘로의 설명을 풍자해 조롱까지 했다. 안타깝게도 갈로는 6월까지 상승세를 이어가다 7월 이후 손목 부상으로 이탈하면서 해당 논란에 대한 결론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통계 전문가 사이에서 벌어진 세대 갈등

통계 전문가 사이에서 벌어진 세대 갈등

숫자끼리 인과 관계가 성립한다 해서 모두 현실 야구를 설명하거나 단정 짓는 데 쓸 수는 없다. 그래서 숫자와 통계 그 자체보다는 그것을 이용하는 방법이 중요하다고들 한다. '클러치 히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 유행하는 것도 비슷하다. 이러한 명제가 나온 논리 구성은 설득력을 갖고 있다. 아주 간단히 요약하면 득점권 상황이라 해서 선수의 능력이 극적으로 달라질 리가 없다는 상식적인 말이다.

하지만 이것을 현실 야구에 적용할 때는 주의해야 한다. 수훈 선수 인터뷰에서 여전히 가장 많이 나오는 대답은 "득점권에 주자가 있어서 집중했다"는 내용이다. 류현진의 경기 후 인터뷰에서도 비슷한 취지의 답변이 나온다. 그런데 이 선수들을 향해 "안타깝지만 득점권에 집중해도 님의 평균 실력에 수렴하는 결과가 나올 뿐입니다"라고 말할 수는 없다. 예의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시각은 구단 프런트 중 일부 관리자와 통계 분석 전문가들만 갖고 있으면 된다. 매우 유력한 가설일 뿐, 누구에게 주입할 수 있는 사실이라고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실제 클러치 히터의 허상을 최초로 널리 알린 빌 제임스조차 자신이 입증할 수 없는 사안에 대해 지나치게 단정했다고 후회한 일도 있다. (클러치 히팅과 리더십, 선수사이의 관계와 같은 부분이 숫자로 입증할 수 없지만 경기를 꾸려가는 중요한 요소라고 했다.)

이치로는 올 초 은퇴 기자회견에서 요즘 미국 야구가 머리를 쓰지 않는 식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했다. 선수들이 자신의 생각 대신 구단에서 나눠준 기록지를 보고 수비 위치를 정하는 건 일반적인 모습이 됐다. 간혹 투수 제이슨 해멀처럼 공개적으로 수비 시프트에 반대한다고 말한 경우도 있다. 이 경우 구단에서 단순히 시프트로 몇 실점을 줄여줄 수 있는지 설명하는 것만으로는 설득하기 힘들다.

타율 2할 5푼 타자가 3타수 무안타를 기록한 뒤 네 번짜 타석에 들어섰을 때, "이제 안타 하나 칠 때 됐다"고 기대하는 사람에게 무지하다고 말하는 것을 방송에서 본 적이 있다. 2할 5푼 타자는 언제 타석에 들어서도 그저 기대 타율 2할 5푼의 타자일 뿐이라는 것이다. 꽤 근사한 말처럼 들리지만 주사위가 방망이를 들고 타석에 선 채 굴려지는 것이 아닌 이상 앞선 세 타석을 경험한 타자가 어떻게 반응해 어떤 결과를 얻을지는 알 수 없다. 극단적으로 거칠게 말하면 네 번째 타석의 결과는 안타 아니면 아웃이다. 지켜보는 모두가 그렇다. 기대 타율이 2할 5푼이라 해도 0.25개의 안타 따위가 근사하게 나올 리는 없다.
극단적 시프트는 영원히 지속될까

극단적 시프트는 영원히 지속될까

같은 날 한국의 경제 상황을 진단하는 두 기사에서 전혀 다른 결론이 나오는 장면을 종종 본다. 이미 결론을 설정해두고 그 방향에 맞는 통계 수치를 가져다 해석하는 식으로 접근하면서 벌어지는 일이다. 통계 분석이 발달할수록 야구에서도 비슷한 일이 자주 벌어진다. 류현진이 호투하면 좋아진 수치를, 못하면 나빠진 기록을 인용해 논리를 채우는 건 대체로 아무 때나 가능하다. 레너드 코페트는 '야구란 무엇인가'의 통계 편에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다만 거짓말쟁이가 숫자를 이용할 뿐이다."라는 격언을 덧붙여 놨다.

다시 고시지의 말로 돌아가 본다. 여러 논박이 가능하지만 그럼에도 야구를 도저히 봐줄 수가 없어서 채널을 돌릴 정도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물론 메이저리그는 당분간 현재의 방식을 심화하는 쪽으로 흘러갈 것이고, 이런 갈등도 지속될 것 같다. 단순히 통계라는 단어로 압축될 수 없는 다양한 분석 도구가 집단 지성을 통해 급속도로 발달하는 과정에서 그에 대한 반작용을 자연스럽게 흡수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물론 어느 쪽이 더 의미있다고 저울질할 필요는 없다. 그리고 이 흐름이 어떻게 달라질 지도 알 수 없다. 수십 년 후에도 극단적인 시프트가 유지될 지는 아무도 모른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의견 대립이 작용과 반작용을 거치는 모습마저 야구를 보는 또 하나의 재미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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