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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훈칠의 맥스MLB] 신으로 불려도 좋을 사나이, 마리아노 리베라

[전훈칠의 맥스MLB] 신으로 불려도 좋을 사나이, 마리아노 리베라
입력 2019-09-30 12:28 | 수정 2020-09-15 09:53
사상 처음 만장일치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리베라

사상 처음 만장일치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리베라

메이저리그 역대 최다인 652세이브를 기록하고 열 세 차례 올스타에 선정됐으며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 다섯 개를 수집한 뒤 사상 첫 만장일치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선수. 이미 야구계에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명예를 경험한 마리아노 리베라가 최근 또 하나의 영예를 얻었다. 세계 평화와 문화에 기여한 공로로 백악관에 초청돼 대통령 자유 훈장을 받은 것이다. 이 훈장은 미국 시민이 받을 수 있는 최고의 명예 중 하나로 꼽히는데, 처음 시상한 1963년 이후 스포츠 분야에서는 제시 오웬스, 타이거 우즈 등 거물급 스타들이 받았고 야구계에서는 재키 로빈슨, 조 디마지오, 테드 윌리엄스 등 실력과 상징성을 겸비한 인물들에게 주어졌다. 작년에는 베이브 루스와 엘비스 프레슬리 등이 사후 수상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리베라는 지난 2015년 10월, 멕시코 출신 가수 탈리아 등과 함께 미국 시민권을 취득한 바 있다.)

리베라는 대통령 자유 훈장 수상 소감에서 첫째로 신, 둘째로 가족에게 감사하다고 했다. 사실 메이저리거들이 신에게 공을 돌리는 것은 지극히 일상적인 얘기다. 너무 일반적이어서 의미부여할 여지조차 없다. 오히려 신을 언급한 소감과 일화가 넘쳐나다 보니 이것만을 모아 엮은 책이 나왔을 정도이다. 국내에도 지난 2006년 번역돼 발간된 ‘메이저리그의 영웅들(Life Lessons from Baseball)’이 그것인데 빅리거 30명이 이룬 성취의 인과관계를 종교로 풀어낸 일종의 간증집이다. (해당 종교와 무관한 독자가 받아들이기에는 꽤 버거운 수준이다.)

그런데 리베라는 좀 다르다. 리베라를 알면 알수록 신에게 가장 먼저 영광을 돌리는 게 납득이 간다. 야구를 하게 된 것부터 그렇다. 파나마의 어촌에서 태어나 축구와 펠레를 좋아했던 리베라는 다리를 다치면서 야구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됐다. 이후 지역 팀 경기에서 일회성으로 마운드에 오른 것이 스카우트의 눈에 포착돼 정식 계약까지 맺게 됐다. (해당 스카우트는 리베라의 유연한 투구폼을 눈여겨봤다고 한다.) 리베라는 당시 야구공을 가지고 노는 것이 재미있었을 뿐, 메이저리그에 대해 관심이 있거나 어떤 포부를 가지고 있던 것은 전혀 아니었다고 한다. 뉴욕 양키스와 계약을 맺기 전까지 집을 떠나본 적도 없고, 영어 한 마디 할 줄 몰랐을 정도였다. 올해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이후 가졌던 베이스볼 다이제스트와의 인터뷰에는 이와 관련된 일화가 소개돼 있다. 마이너리그 시절, 누군가 행크 애런에 대한 얘기를 했는데 애런이 누구인지 몰라 주위를 당황하게 했다는 일화에 대해 묻자, 리베라는 애런을 몰랐던 건 맞는데 그게 마이너리그 때가 아니라 메이저리그에 올라온 이후였다며 폭소를 터뜨렸다. (그래도 베이브 루스는 알았다고 항변하기도 했다.) 전혀 계획에 없던 일들이 겹치면서 메이저리그에 발을 디뎠고, 명예의 전당까지 이르게 됐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다.
축구를 좋아하던 파나마 청년, 리베라

축구를 좋아하던 파나마 청년, 리베라

652세이브를 남긴 리베라의 투구를 정의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커터다. 요즘 류현진의 주무기 중 하나로 정착돼 더욱 자주 언급되는 구종이다. 빠른 공에 약간의 변형을 가한 컷 패스트볼은 예전부터 존재했고, 플로리다와 뉴욕 메츠에서 전성기를 보낸 알 라이터의 주력 구종이기도 했다. 알 라이터는 자신이 슬라이더라고 생각해 던진 공을 상대 타자들이 커터라고 확인해주면서 구위를 더욱 가다듬어 재미를 봤다고 한다. 하지만 리베라처럼 극적으로 얻은 구종은 아니었다.

95년 데뷔한 리베라는 96년부터 구원 투수로 각광받았지만 이때도 빠른 공에 의존한 투수였다. 그러다 97년 6월, 디트로이트 원정 경기를 앞두고 운명의 순간을 맞게 된다. 동료 투수 라미로 멘도사와 평소처럼 캐치볼을 했을 뿐인데 멘도사가 "리베라의 공이 예전과 달리 자꾸 이상하게 휜다"는 점을 언급한 것이다. 당시 불펜 코치였던 마이크 보젤로는 그 날 리베라의 공을 받아보면서 실제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알아챘다고 한다. 한동안 공의 '이상한 움직임'을 없애려고 노력했던 리베라는 보젤로의 도움을 받아가며 그 움직임을 새로운 무기로 탈바꿈시켰다. 커터를 운명으로 받아들인 시점부터 리베라의 성적은 경이적인 수준으로 올라섰다. 3년 연속 1점대 평균자책점으로 압도했고 98년부터 뉴욕 양키스의 월드시리즈 3연패를 마무리하기도 했다. 리베라는 자신의 커터를 설명할 때마다, 마무리 보직의 시행착오를 겪던 시점에 ‘신이 내려준 선물’이라고 했다. 동시에 경건한 마음가짐과 생활태도가 겸비되어야 신의 선물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다는 말로 자신의 진정성을 드러냈다.
리베라가 직접 선보인 커터 그립

리베라가 직접 선보인 커터 그립

소소한 이야깃거리도 있다. 보젤로는 자신의 대부인 조 토레 감독이 뉴욕 양키스에 부임하면서 인맥을 통해 불펜 코치직을 맡은 것이었는데, 그 인연이 리베라의 커터를 발견한 계기로 작용했다. 토레 감독은 2007년 말, LA 다저스의 지휘봉을 잡으면서 보젤로 코치를 함께 데려갔고, 보젤로는 다저스의 마이너리그에서 특이한 공을 던진다는 유망주 얘기를 듣게 된다. 그 공을 직접 받아 본 보젤로는 리베라의 커터와 비슷하다는 평가를 했고, 여기에 자극을 받은 유망주는 다저스의 주전 마무리로 성장하게 된다. 많이 알려진 대로 켄리 잰슨 얘기다.

투구 분석 시스템이 정착된 2000년대 중반 이후의 통계만 보면 리베라의 투구 중 커터의 비중은 대략 85~90퍼센트 정도다. 리베라는 전성기를 잘라 말하기 쉽지 않은 투수지만, 초창기 리베라의 투구에 대한 정보가 자세히 남아있지 않다는 점은 야구팬들에게 큰 아쉬움이다. 리베라는 신이 주셨다는 그 커터를 가지고 리그를 압도했다. 특히 포스트시즌에는 더 위력적이었다. 95년부터 19년을 뛰는 동안 무려 16년이나 가을야구를 경험했고, 포스트시즌 96경기에 출전해 42세이브를 올렸다. 자책점은 단 11점, 평균자책점은 0.70에 불과했다. "닐 암스트롱을 비롯해 달 착륙에 성공한 인물은 12명, 그런데 포스트시즌에서 리베라를 상대로 홈을 밟은 선수는 11명이다." 리베라의 경이적인 기록을 찬양하기 위해 미국 현지 언론이 무리수를 둔 표현이었지만 누구도 반감을 갖지 않았다.
리베라의 커터에 부러진 배트를 모아 의자로 선물한 미네소타.

리베라의 커터에 부러진 배트를 모아 의자로 선물한 미네소타.

이토록 포스트시즌에 강한 리베라가 가장 큰 이변의 희생양이 된 경험은 바로 2001년 애리조나와의 월드시리즈였다. 리베라는 7차전을 앞두고 동료들을 모아둔 채 "오늘 승패는 신에게 달려 있다"고 했는데, 루이스 곤잘레스에게 끝내기 안타를 얻어맞고 무너졌다. 리베라는 이 패배를 돌아보며 역시 신의 뜻이 옳았다고 했다. 당시 7차전에 8회부터 등판한 리베라는 1이닝을 무난하게 막아냈다. 경기장에 핀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애리조나 관중이 침묵한 것만 봐도 양키스의 분위기였다는 게 리베라의 말이다. 그런데 9회에 이전까지 저지른 적 없는 실책이 나오며 경기가 꼬였다. 끝내기 안타를 맞기 전부터 리베라는 패배가 신의 뜻이라 믿었다고 했고, 결국 4년 연속 우승은 실패했다.

리베라가 그렇게 패배를 받아들일 만한 확실한 이유도 생겼다. 당초 양키스는 애리조나를 꺾고 우승할 경우 뉴욕 시내에서 퍼레이드 행사를 치를 계획이었다. 팀 동료 엔리케 윌슨은 행사를 마친 뒤 11월 12일 고국인 도미니카로 떠날 계획을 일찌감치 세워둔 상태였는데 양키스가 패하는 바람에 행사가 없어져 며칠 더 빨리 귀국했다. 공교롭게 엔리케 윌슨이 당초 예약하려 했던 11월 12일 뉴욕발 도미니카행 비행기(AA 587편)는 추락 사고로 승무원 포함 260명의 탑승객이 전원 사망했다. 보고 듣고도 믿기 힘든 얘기다.

리베라를 설명하는 데 등번호 42번도 빼놓을 수 없다. 42번은 최초의 흑인 선수, 재키 로빈슨의 번호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로빈슨을 추모하기 위해 1997년 4월, 42번을 전 구단에 걸쳐 영구 결번하기로 한다. 다만 당시 42번을 사용하고 있던 선수들까지는 등번호를 유지하도록 해줬다. 그 중 한 명이 리베라였다. 리베라는 1995년 메이저리그에 처음 올라와서 아무 등번호도 요구하지 않았다. 그냥 주어진 번호가 42번이었다. (이전까지는 58번을 달았다고 한다.) 이후 42번이 갖는 역사적 의미를 알아가면서 등번호에 애착을 갖게 됐는데 메이저리그의 영구 결번 조치에 따라 가장 마지막까지 42번을 사용한 선수가 됐다. 우연히 로빈슨의 등번호를 달게 된 것도 특이하지만, 로빈슨에 견줄 만한 상징성을 가진 선수가 된 것이 더 놀랍다.
그라운드 안팎에서 신적인 존재감을 과시한 리베라

그라운드 안팎에서 신적인 존재감을 과시한 리베라

2019년은 리베라가 가장 화려한 방식으로 추억된 해다. 명예의 전당 행사가 끝나면서 이제 리베라를 공식적으로 찬양할 기회는 많지 않다. 야구를 시작하고 빅리거가 된 것부터 새 구종을 익혀 명예의 전당에 만장일치로 헌액된 순간까지. 신을 말하는 사람은 많지만 이 정도면 리베라 자체가 신적인 존재감을 지닌 것으로 여겨진다. 리베라는 베이스볼 다이제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선수 시절의 어떤 패배나 실투도 되돌리고 싶다고 생각한 적 없다고 했다. 골짜기에 빠진 뒤에야 정상에 선 기쁨을 아는 만큼, 모든 실패와 시련도 신이 의미를 두고 실행한 것이라고 믿었다. 숱한 레전드들이 끊임없이 등장하는 메이저리그지만 이 정도의 선수를 또 만날 것이라는 생각은 좀처럼 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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