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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훈칠의 맥스MLB] 그들의 눈물로 돌아본 2019 MLB

[전훈칠의 맥스MLB] 그들의 눈물로 돌아본 2019 MLB
입력 2019-11-01 13:55 | 수정 2020-09-15 09:52
창단 50년 만에 처음 정상에 오른 워싱턴

창단 50년 만에 처음 정상에 오른 워싱턴

워싱턴의 사상 첫 월드시리즈 우승은 대다수의 예상을 깬 이변답게 수많은 이야깃거리를 남겼다. 특히 원정팀만 승리한 최초의 시리즈라는 점은 곱씹어도 흥미롭다. 월드시리즈 7경기 모두 홈팀이 무너져 역대 가장 많은 직관팬들이 실망한 시리즈로도 남게 됐다. 워싱턴이 휴스턴 뿐 아니라 LA 다저스까지, 양대 리그 홈 승률 1위팀을 모두 제압하고 정상에 오르면서 '홈 어드밴티지'에 대한 다양한 의견도 쏟아지고 있다.

덩달아 2014년 디트로이트도 새롭게 주목받는 중이다. 5년 전의 디트로이트는 올해 워싱턴처럼 걸출한 선발진이 강점인 팀이었다. 벌랜더와 셔저, 포셀로, 산체스, 그리고 프라이스까지 이름값으로는 최고였다. 그럼에도 기대치를 채우지 못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몇 차례 가을야구에서 성과를 내지 못한 디트로이트가 팀 노선을 바꾸면서 해당 선수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이 가운데 벌랜더는 2017년 휴스턴에서, 포셀로와 프라이스는 작년 보스턴에서 원하던 우승 반지를 손에 넣었다.

그리고 올해 셔저와 산체스가 우승 멤버에 이름을 올리면서 2014년 디트로이트의 주축 선발진 모두 팀을 옮겨 반지 수집에 성공하는 독특한 상황이 만들어졌다. 실력 못지않은 승부욕으로 잘 알려진 셔저는 주사까지 맞아가며 6차전 구원 등판을 준비하기도 했고 최상의 몸 상태가 아님에도 7차전을 버틴 끝에 정상의 자리에 설 수 있었다.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기다리며 잠시도 앉아 있지 못하던 셔저가 승리를 확인한 뒤 뛰쳐나가기까지의 모습은 현지에서도 화제가 됐다. 우승 세리머니가 한창인 수많은 선수들 사이로 셔저와 산체스, 30대 중반의 두 선수는 서로를 확인한 뒤 격하게 포옹하며 "우리가 결국 해냈다"고 외쳤다. 연봉과 경력으로 설명할 수 없는 원초적인 승부욕이 해소되는 순간처럼 느껴졌다. 디트로이트에서 이어진 두 노장의 눈물은 워싱턴의 우승이 가진 의미와 별개로 또 다른 감동이었다.
팀을 옮겨 함께 우승한 셔저와 산체스

팀을 옮겨 함께 우승한 셔저와 산체스

냉정한 승부의 세계에서 종종 화제가 되는 눈물이 꼭 성취나 업적과 맞닿는 건 아닌 것 같다. 지난 9월 26일 시애틀과 오클랜드의 경기. 포스트시즌 경쟁이 한창이었지만 모든 시선은 시애틀 선발 투수 펠릭스 에르난데스에게 집중됐다. 2013년 초에 맺은 7년짜리 연장 계약이 끝나는 시즌의 마지막 경기. 에르난데스 자신은 한 번도 은퇴한다고 말한 적 없음에도 경기장 안을 메운 관중과 동료 선수, 언론 관계자들은 이미 이 경기를 에르난데스의 고별 경기로 인식하고 있었다.

사실이 그랬다. 출전하면 5회를 버티는 것조차 힘겨운 선수. 꾸역꾸역 던지는 공은 여지없이 라인드라이브로 뻗어 나가고, 마운드에서 사투를 벌이는 모습이 안쓰럽기까지 한 선수. 냉정하게 볼 때 에르난데스가 나오지 않는 게 팀에 도움이 된다는 건 부인할 수 없었다. 올해 명예 회복을 벼르며 시즌 첫 경기에 승리투수가 되긴 했지만 이후 13경기에 더 선발 등판하고도 추가 승리를 올리지 못한 상태였다.

그래도 용케 수비 도움을 받아가며 5회를 버텼다. 투구수 101개. 물러날 때가 됐지만 서비스 감독은 에르난데스에게 기립박수를 선물하기 위해 6회 원아웃까지 맡겼다. 그리고 마운드로 걸어가 에르난데스에게 말했다. 이제는 때가 된 것 같다고. 네가 너무 자랑스럽다고. 이 도시에서 너 말고 누구도 '킹'으로 불릴 선수는 안 나올 것이라고. 서비스 감독의 메시지에 에르난데스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다. 동료들과 차례차례 포옹을 마친 뒤 에르난데스는 기립박수를 쏟아내는 관중들을 향해 인사를 반복하면서 좀처럼 자리를 뜨지 못했다. 팔뚝으로 눈물을 훔치고 더그아웃으로 들어갔던 에르난데스는 다시 뛰쳐나와 마지막 커튼콜을 조금 더 즐겼다.
시애틀 고별전에서 눈물을 쏟아낸 에르난데스

시애틀 고별전에서 눈물을 쏟아낸 에르난데스

2014년만 해도 아메리칸리그 평균자책점 1위에 올랐던 에르난데스는 2016년부터 하락세를 타기 시작하더니 단 한 번의 반등 없이 급격히 무너졌다. 2005년 열아홉의 나이에 데뷔해 오랫동안 팀의 에이스 노릇을 하며 누적된 투구 이닝이 근본적인 문제였다. 고국 선배 프레디 가르시아를 존경해 상대적으로 낮은 계약금을 감수하고 시애틀의 입단한 것도 운명의 장난이었다. 시애틀은 에르난데스가 데뷔한 시즌부터 9년 연속 5할 승률을 밑돌 정도로 형편없는 팀이었다. 에르난데스는 큰 부상도 없이 매년 200이닝 안팎을 던지며 리그 최고 수준의 경기력을 보여줬지만 그에 걸맞은 주목을 받지 못했다. 가을야구 무대는 아예 밟지도 못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통산 기록을 크게 손해 본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럼에도 이적을 생각한 적 없었고 연장 계약을 맺는 기자회견에서도 펑펑 울며 팀을 포스트시즌으로 이끌겠다고 다짐했던 선수였다. 시애틀 구단도 애를 쓰긴 했지만 운이 없었다. 2010년대 초반, 대니 헐첸과 타이후안 워커, 제임스 팩스턴 등 우수한 투수들을 집중적으로 뽑아 에르난데스와 함께 투수 군단을 구축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지만 이들 모두 잦은 부상으로 꿈을 이루지 못했다. (공교롭게 세 투수 유망주 가운데 가장 낮은 평가를 받았던 팩스턴이 그나마 살아남았다.)

이 모든 것을 알기에 관중들은 에르난데스에게 박수와 환호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부진해도 미워할 수 없는, 아니 오히려 미안한 마음이 드는 선수였다. 시기적으로나 맥락상으로나 LG 팬들이 이동현에게 갖는 심정과 비슷하다 해도 크게 무리는 아닐 것이다. 심지어 상대팀 오클랜드의 신인 투수 헤수스 루자도는 "나 자신이 빅리그에 승격됐을 때도 눈물이 나지 않았는데 오늘 불펜에서 에르난데스를 보고는 울고 말았다"고도 했다.
에르난데스는 경기 전부터 감정이 흔들린 상태였다

에르난데스는 경기 전부터 감정이 흔들린 상태였다

에르난데스의 눈물은 경기 도중 교체될 때 보였던 게 전부가 아니었다. 사실 경기 시작 전부터 그랬다. 워밍업을 위해 외야 불펜으로 천천히 향하던 에르난데스는 이때부터 이미 눈시울이 뜨거워진 상태였다. 애써 태연한 척, 과장된 표정으로 껌을 씹어 가며 걸었지만 이내 모자를 푹 눌러 눈을 가렸고 결국 눈가에 손을 댈 수밖에 없었다. "불펜으로 향하면서 이미 눈물이 나기 시작하는데, '지금은 절대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참 어렵더라고요." 개인적으로는 이때의 눈물에 더 관심이 간다. 스물 한 살에 보스턴 원정 경기에서 마쓰자카와 맞대결을 펼쳐 1안타 완봉승을 거두고 넘치는 패기를 과시했던 선수.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초로 사이영상 수상과 퍼펙트게임 달성, 그리고 2,500 탈삼진을 한 팀에서 이뤄낸 선수. 에르난데스는 눈물의 경기를 마치고 기자회견에서 "아직 은퇴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보다 앞선 9월 7일, 워싱턴과 애틀랜타의 경기 5회말. 구원 등판한 워싱턴 투수 애런 배럿은 1이닝을 별 일없이 막았다. 평범한 1이닝이었지만 배럿은 고개를 좀처럼 들지 못한 채 더그아웃을 향했고, 이런 배럿에게 동료들의 격려가 이어졌다. 잠시 후 배럿은 더그아웃 구석에서 아예 얼굴을 감싸고 펑펑 울기 시작했다. 마르티네스 감독도 배럿에게 수건을 건네며 한참을 위로했다. 이뤄질 거라 생각하지 않았던 빅리그 복귀전이 4년 만에 현실이 된 순간, 배럿은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다.
스스로도 믿기 어려웠던 배럿의 복귀전

스스로도 믿기 어려웠던 배럿의 복귀전

2014년 데뷔한 배럿은 첫 해부터 워싱턴의 주축 불펜 투수로 활약했다. 최근 KIA 지휘봉을 잡은 맷 윌리엄스 감독이 워싱턴 감독으로 부임한 시즌이었다. 그해 디비전시리즈 명단에도 포함됐을 만큼 인정받았다. 하지만 이듬해 손가락의 감각이 사라질 정도로 팔에 통증이 심해졌고, 결국 팔꿈치 부상으로 토미존 수술을 받게 된다. 1년 정도 재활을 거쳤고 2016년 7월에는 연습 경기에 참가할 수 있을 정도가 됐다. 그런데 여기서 치명적인 문제가 생겼다. 투구 도중 팔이 부러져버린 것이다. 당시 상황을 묘사한 워싱턴 포스트 기사에 따르면, 현장에 있던 선수와 코치들은 배럿의 뼈가 부러지는 순간 총탄이 발사되는 듯한 소리를 생생하게 들었다고 했다. 다음 투구를 위해 대기중이던 맷 레이토스는 이 상황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구토까지 했다. 배럿은 통증에 괴로워하며 자신의 처지를 한탄했다고 한다. 더스티 베이커 감독은 분석용으로 촬영 중이던 영상을 받아본 뒤, 이 영상이 공개되지 않도록 밀폐된 곳에 하드디스크를 보관했다고도 한다.

그리고 2년을 재활에 매진했다. 2018년 싱글A에서 투구를 시작했고 20경기를 뛰면서 가능성을 봤다. 그리고 올해 스프링캠프에서 빅리그 수준의 투구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줬다. 워싱턴 구단도 배럿의 안정적인 복귀를 돕기 위해 장기적인 시각으로 접근했다. 더블A 무대에서 부담이 적은 상황부터 테스트했다. 적응이 됐다고 판단되면 좀 더 부담스러운 상황에 투입하는 식이었다. 연투에 대한 시험도 이어졌다. 원하지 않는 결과가 나올 때도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향상되고 있는 것은 확실했다. 그렇게 50경기를 뛰면서 모든 시험이 끝났다. 워싱턴 구단은 배럿의 빅리그 합류를 결정했고, 이 사실은 더블A 감독 맷 르크로이에게 통보됐다. 르크로이는 팀 동료들 앞에 배럿을 세워두고 “내가 너의 감독이었다는 것이, 그리고 빅리그 승격 소식을 전할 수 있다는 것이 영광” 이라고 전했다. 배럿의 과거를 익히 아는 르크로이 감독이 눈물을 참아가며 동료들 앞에서 영광의 순간을 알리는 인간적인 모습은 SNS에서 큰 화제가 됐다.

키어마이어와 함께 화려한 중견수 수비로 잘 알려진 케빈 필라는 지난 4월 2일 토론토 클럽하우스 통로에서 두 눈이 시뻘겋게 충혈된 채 기자들과 마주했다. 샌프란시스코로 트레이드됐다는 소식을 알게 된 직후였다. 무엇 때문에 감정적으로 동요됐는지 취재진이 물었는데 한동안 기자들과 시선을 회피하면 답변하지 못했다. 잠시 추스린 후에야 토론토 구단과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 생각보다 컸다고 답했다. 이제 이적하면 몇 주 후 원정팀 자격으로 토론토를 방문해야 하는데 그걸 쉽게 받아들이지 못할 것 같다고도 했다.
트레이드의 감정을 고스란히 드러낸 필라

트레이드의 감정을 고스란히 드러낸 필라

정말 그랬다. 트레이드가 된 지 3주 후에 원정팀 선수로 토론토를 방문한 필라는 자신을 지극하게 환대하는 팬들의 박수에 쉽지 않은 표정 연기를 해야 했다. 전광판에 펼쳐지는 자신의 호수비 특집 영상을 애써 무신경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모든 관중의 환호가 들리는 가운데 말이다. 영상이 끝난 뒤 모자를 벗어 간단히 답례하고 경기에 돌입한 필라는 복귀 첫 타석에서 적시타를 터뜨리며 냉혹한 승부의 세계에 몰입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속마음은 그리 간단하지 않았다. 경기 후 필라는 또 한 번 충혈된 눈으로 인터뷰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정말 감정에 충실한 사람이란 것을 인정하면서 눈물을 참기 위해 더 경기에 집중했다고 털어놨다.

야구는 비즈니스, 선수는 상품이라는 메이저리그에서 숱하게 벌어지는 트레이드가 무슨 그리 대단한 일인가 싶지만 당사자들이 충격 받았다고 고백하는 일은 그리 드물지는 않다. 그럼에도 필라처럼 트레이드 직후 감정의 동요를 일으킨 모습이 생생하게 노출된 것 역시 흔하다고 할 수는 없다. 사람과 팀에 대한 진짜 애정이 묻어나는 그의 표정에서 잠시나마 메이저리그의 인간적인 면모도 확인할 수 있었다.

역시 전광판에 흘러나오는 가족들의 영상 편지를 보고 눈물샘이 터져 버렸던 C.C. 사바시아. 내셔널리그 동부지구 1위를 확정하고 홈팬들 앞에서 소감을 밝히다 말문이 막혀 버린 브라이언 스니커 감독도 올해를 돌아볼 때 기억 속에 남은 눈물의 주인공들이다. 프로에선 승부가 전부라는 말로 모든 걸 냉정하게 덮어 버리기엔 이런 기억들이 꽤 오래 가는 것 같다. 가공하지 않은 장면인 건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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