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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훈칠의 맥스MLB] 예측 불가능한 인생 그 자체, '너클볼!'
[전훈칠의 맥스MLB] 예측 불가능한 인생 그 자체, '너클볼!'
입력
2020-07-22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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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20-09-15 09:50
'야구는 인생의 축소판'이라는 말이 있다. 야구 경기 중 벌어지는 수많은 플레이, 그리고 선수들의 사연에 인생의 희로애락이 그대로 녹아 있다는 뜻의 말이다. 매일 온갖 상황이 기록과 뒤섞이는 야구의 묘미를 압축한 문구로 흔히 알려져 있다. 하지만 간혹 이를 과하게 해석해 야구를 특별히 예찬해야 하는 대상인 것처럼 목소리를 높이면 조금 부담스러워진다. 사실 따지자면 행위 예술의 결정체인 체조도 인생의 축소판이고, 근대 5종도 내면을 살피면 인생을 닮은 스포츠로 손색이 없다. 애초에 누군가 자신의 삶을 바쳐 만들어가는 일이라면 어느 것도 인생과 무관할 리 없다.
그런데 너클볼은 다르다. 너클볼이라는 구종 자체가 갖는 특별함은 물론 너클볼 투수가 굳이 그 공을 던지게 된 이야기까지, 곱씹을수록 인생의 희로애락이 제대로 응축된 것처럼 느껴진다. 조금 과장한다 해도 그럴 만하다고 납득하게 된다.
너클볼은 '손가락 끝이나 손톱, 관절 등으로 공을 찍어 누른 채 던지는 구종'이라는 게 사전적인 설명이다. 가장 큰 특징은 회전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시속 160km를 넘나드는 강속구와 현란한 궤적의 변화구 모두 젖먹던 힘을 쥐어짜 공을 최대한 강하게 회전시켜 만드는데 너클볼은 정반대다. 회전을 없애는 게 핵심이다. 메이저리그에서 93마일(150km) 짜리 직구의 분당 회전수는 보통 2,300회 정도다. 반면 너클볼의 분당 회전수는 150회 수준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 투구 이후 포수가 받을 때까지 물리적으로 한 바퀴 반 정도 도는 게 이상적이라고도 한다. 회전수를 조금이라도 높이기 위해 과학적 훈련법을 동원하는 현대 야구의 흐름에 정면으로 역행하는 공이 너클볼이다.
회전없는 공은 날아가는 동안 이리저리 흔들린다. 솔기가 있는 쪽과 없는 쪽의 기류가 달라지면서 사소한 공기의 움직임에도 쉽게 휘둘린다. 날아가는 모양도 제각각이다. "춤추고, 솟아오르고, 때론 날갯짓에, 비틀거리다 떨어진다. 회전 없이, 그리고 예측 불가능한 방향으로." 모두 폴 딕슨 야구 사전에서 너클볼의 움직임을 묘사한 수식어들이다. 너클볼을 시각적으로 보기 쉽게 구현한 것이 축구에 존재한다. 호날두와 주닝요의 전매특허로 유명한 무회전 프리킥이 정확히 같은 원리로 비행한다. (무회전 프리킥을 너클 프리킥이라고도 부르는 이유다.)
"타격은 타이밍, 투구는 타이밍을 빼앗는 것". 대투수 워렌 스판의 명언만 생각하면 너클볼은 타자의 리듬을 깨는 또 하나의 시도일 뿐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타자의 리듬만 깨는 게 아니라 포수가 공을 받는 방식마저 무너뜨린다는 게 문제다. 너클볼에 당황하는 포수와 무회전 프리킥에 넋이 나간 골키퍼의 모습도 꽤 비슷하다. 밀워키의 명 해설자이자 현역 시절 필 니크로의 너클볼을 받아본 밥 유커는 너클볼을 확실히 잡는 법에 대해 "공이 구르다 멈출 때까지 기다려서 줍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너클볼 투수에게 전담 포수는 필수다. 가장 최근에 두드러진 활약을 펼친 너클볼 투수 R.A. 디키에게는 전담 포수 조시 톨리가 있었다. 디키가 2012년 말 토론토로 트레이드되는 과정에서 톨리도 패키지처럼 함께 이적한 건 너무 자연스러웠다. 2011년까지 보스턴에서 뛰고 은퇴한 팀 웨이크필드도 덕 미라벨리와 호흡을 자주 맞췄다. 미라벨리 역시 트레이드와 관련된 사연이 있는데 극적인 면으로는 톨리보다 훨씬 강렬하다.
2006 시즌을 앞두고 보스턴은 미라벨리를 샌디에이고로 트레이드했다. 미라벨리가 수행했던 너클볼 전담 포수이자 백업 포수 역할은 조시 바드를 영입해 맡기는 것으로 정리했다. 보스턴 생활을 좋아하던 미라벨리에겐 원치 않는 트레이드였지만 샌디에이고에서 주전으로 도약할 가능성이 있었으니 섭섭한 일만은 아니라는 평가가 나왔다. (샌디에이고가 그 후로 피아자를 영입하기 전까지 얘기다.)
그런데 시즌에 돌입하자 문제가 생겼다. 새로 임무를 맡은 바드가 별 일 아닐 것 같던 ‘너클볼 받는 행위’를 해내지 못했다. 너클볼을 잡으려 안간힘을 쓰는 모습만 보면 사회인야구 선수로 보일 정도였다. 웨이크필드가 개막 후 던진 5경기에서 패스트볼(포일)만 10개. 바드가 별도로 개인 연습을 하는 장면이 중계방송에 잡히기도 했지만 극적인 변화는 없었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엡스타인 보스턴 단장이 결단에 나섰다. 당장 5월 1일 뉴욕 양키스와의 홈경기부터 웨이크필드의 공을 바드가 받지 않도록 해야 했다. ESPN을 통해 전국에 생중계되는 전통의 라이벌전이라는 것만으로도 결단의 명분은 충분했다. 하지만 무시 못 할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 이 경기는 ‘밤비노의 저주’를 깬 주역이자 ‘동굴맨’으로 불리던 조니 데이먼이 뉴욕 양키스로 이적한 뒤 깨끗하게 면도한 얼굴로 처음 펜웨이 파크에 서는 무대였다. 풍성한 이야깃거리 덕에 언론의 관심이 집중된 건 당연했다.
엡스타인은 전국적 망신을 피하기 위해 가장 쉬운 길을 택했다. 그냥 미라벨리를 다시 데려오는 것이었다. 샌디에이고의 케빈 타워스 단장과 속전속결로 얘기가 끝났다. 저녁 7시 경기를 앞둔 당일 아침에 트레이드가 성사됐다. 기장, 부기장, 그리고 미라벨리까지 모두 셋을 태운 6인승 자가용 비행기가 샌디에이고에서 이륙했다. 시차 3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6시간 일정의 비행. 열심히 날아간 자가용 비행기는 저녁 6시 48분 보스턴의 한 공항에 착륙했고 미라벨리는 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경기 직전에 가까스로 도착했다. (유니폼은 이동하는 차 안에서 갈아입었다.)
해당 자가용 비행기 업체 직원이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미라벨리 이송 대작전'을 떠들어 댄 덕분에 펜웨이 파크 주변은 이미 미라벨리 환영 인파로 북적였다. 미라벨리는 호위 차량에서 내리자마자 팬들의 박수를 받으며 경기장에 뛰어들었다. 마땅한 스파이크가 없어 윌리 모 페냐의 것을 대충 신었고 웨이크필드와 간단히 호흡만 맞춘 채 경기에 투입됐다. 웨이크필드는 7이닝 3실점으로 준수한 투구를 했고 미라벨리도 도루 저지 하나를 기록했다. 경기는 보스턴의 7대 3 승리. 역사상 가장 유명한 백업 포수 트레이드는 이렇게 완성됐다. 너클볼이 만든 사건이었다.
팬들에겐 흥미롭지만 엡스타인은 훗날 자신이 저지른 최악의 트레이드가 바로 미라벨리 트레이드였다고 털어놨다. 성적이나 결과 때문이 아니라 인내심 부족으로 경솔한 판단을 내렸다는 사실, 그리고 창의적인 방법을 찾지 못한 과정이 문제였다고 했다. 번외로 미라벨리 대신 샌디에이고로 이적한 조시 바드 역시 둘째 출산을 앞둔 만삭의 아내를 둔 채 새 팀 합류를 위해 다급하게 공항으로 가야 했다. 탑승을 기다리는 과정에서 다른 승객이 자신의 너클볼 포구 실력을 비판하는 말까지 듣게 된 것은 운명이라기엔 너무 잔인했다.
타자가 치기 힘들고 포수가 잡기도 힘든 너클볼. 하지만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잘 던지는 것' 자체가 어렵다는 것이다. 일단 일반적인 투수는 너클볼을 주무기로 삼을 이유가 없다. 굳이 비틀거리는 공을 던져 불확실성을 높일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다수 너클볼 투수는 스스로 자랑스럽게 너클볼을 던진 게 아니다.
웨이크필드는 피츠버그에 타자로 드래프트됐는데 마이너리그 성적이 형편없었다. 그런데 일상적인 연습 도중 무심코 던진 너클볼을 소속팀 감독이 목격했고, 아예 너클볼 투수가 될 것을 권유했다. 웨이크필드는 직업 야구 선수를 그만두라는 말이라 생각해 자존심이 크게 무너졌다고 한다. 하지만 냉정하게 볼 때 화를 낼 처지가 아니었다. 빅리그에 붙어 있으려면 할 수 있는 건 다 해봐야 했다. 1992년 초반 마이너리그에서 너클볼 투수로 꽤 괜찮은 성과를 내면서 빅리그 승격에 성공했고 데뷔전에서 완봉승을 거두는 사고를 쳤다. 너클볼로 쌓은 통산 200승의 첫 걸음이었다.
이 방면 최고의 드라마는 R.A. 디키 몫이다. 테네시 대학 시절 95마일의 빠른 공을 뿌리던 디키는 애틀랜타 올림픽 대표팀에 뽑힐 정도로 인정받는 유망주였다. 1996년 드래프트 1라운드에서 텍사스에 지명됐고 82만 5천 달러의 계약금을 약속받으며 순조로운 야구 인생이 진행되는 듯 했다.
그런데 사진 한 장이 운명을 바꿨다. 당시 올림픽 대표팀 주축 투수들이 나란히 등장한 '베이스볼 아메리카' 표지 사진이 문제였다. (크리스 벤슨, 빌리 코치, 세스 그레이싱어 등과 함께였다.) 텍사스 팀 닥터는 해당 사진을 보고 "디키의 팔꿈치 각도가 이상해 보인다"는 의견을 낸다. 의혹은 구단 내에서 진지하게 다뤄졌지만 디키는 상황을 알지 못했다. 텍사스 입단 신체검사의 마지막 단계에서 디키는 계약서에 사인할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진다. 팀 닥터가 "디키에게 오른팔 인대가 없다."며 평소 출입문 손잡이를 통증없이 열고 닫을 수 있었는지 묻는 황당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덕 멜빈 텍사스 단장도 인대없는 선수와 계약하는 것은 어렵다고 통보한다.
청천벽력이 따로 없었다. 텍사스 구단 측은 당초 제시금액의 10분의 1도 안 되는 7만 5천 달러에 합의한 뒤 일단 마이너리그를 버티던지, 아니면 이대로 돌아가야 할 것이라고 했다. 디키에게 다른 선택지가 하나 더 있긴 했다. 학창 시절 ‘팔 보험’에 가입해뒀는데, 혹시 팔에 큰 문제가 생겨 선수 생명이 중단되면 100만 달러의 보험금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이었다.
100만 달러를 받고 야구 인생을 접든지, 아니면 7만 5천 달러를 받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상황. 선택은 마이너리그였고 메이저리그 데뷔까지 4년이 걸렸다. 성공적이지는 않았다. 선발과 불펜을 오갔는데 거의 기억에 남지 않는 선수였다. 2006년까지 텍사스에서 뛴 6년간 베이스볼 레퍼런스 기준으로 대체 선수 대비 승리 기여도(WAR)가 0.1이었다. 말 그대로 대체 선수였다.
허샤이저 투수 코치와 상의 끝에 너클볼 투수로 변신을 한 것도 이 때다. 2005년 말부터 진지하게 시도해 2006년에 전문 너클볼 투수로 정식 선발 기회를 얻었는데 4회를 채우지 못하고 홈런 6개를 얻어맞았다. (한 경기 피홈런 6개는 메이저리그 최다 타이 기록으로, 디키에 앞서 웨이크필드도 6개를 내준 적이 있다.) 완성되지 않은 너클볼의 위력(?)만 체험했다.
디키의 남다른 점은 끝없는 추락을 거듭해도 포기하지 않는 데 있다. (영문학을 전공한 독서광으로 소문난 디키는 심란할 때 책을 통해 안정을 찾는다고 밝힌 적이 있다.) 너클볼 레전드 중 한 명인 찰리 허프와 꾸준히 교감하며 너클볼 그립과 구속을 조정하는 노력을 지속했고, 여러 팀을 전전하면서도 희망을 놓지 않은 끝에 2010년 뉴욕 메츠에서 비로소 제대로 된 너클볼 투수로 자리잡게 된다. 마이너리그에서 보여준 성과만으로 인정받아 선발진에 안착했고 2012년에는 너클볼 투수 최초로 사이영상까지 수상해 우여곡절 많았던 인생의 정점을 찍는다. (같은 해에 공개된 다큐멘터리 ‘너클볼!’에 디키와 웨이크필드의 인생 역정이 상세하게 묘사돼 있다.)
'가치있는 것은 쉽게 가질 수 없다'는 말을 좌우명으로 삼고, 야구 선수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으로 인내심을 꼽은 디키. 자신에게 가장 자랑스러운 점도 그동안 버텨 온 인생 여정이라고 말할 정도로 삶을 대하는 태도가 남다르다. 너클볼 투수에게는 재능보다 인생을 바라보는 관점이 더 중요한 것처럼 보일 정도다. 디키가 자랑스러워하는 또 하나는 데릭 지터와의 상대 전적이다. (지터와 통산 전적 20타수 4안타. 반면 오마 인판테에게는 36타수 17안타로 매우 약했다.)
제대로 던져 본 사람이 별로 없으니 너클볼 투수들은 적절한 지도를 받기도 어렵다. 그래서 선후배 너클볼 투수들이 모인 커뮤니티가 발달했고 서로 노하우를 전수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 그들의 문화도 생겼다. 기본적인 투구 정보는 물론이고 너클볼 투수에 대한 편견이나 그로 인해 빚어지는 다양한 사례를 공유하며 서로 ‘멘탈 관리’를 돕는 게 색다르다. 자신도 도움을 받았으니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것도 당연하다는 반응이다.
더 빠르게 던지고, 더 강하게 쳐야 인정받는 시대에 잣대가 하나만 있을 수는 없다고 웅변하는 공, 막다른 벽에 다다랐을 때 생존을 위해 시도하는 공이 너클볼이다. 던지기 어렵고 받기도 쉽지 않은 데다 코칭스태프마저 환영하지 않는 공. 주류가 아니어서 겪어야 했던 사연 하나 하나가 너클볼처럼 예측 불가능한 궤적의 삶으로 연결된다. 2020년 현재 전문 너클볼 투수는 없다. 누가 언제 나타날지 알 수도 없다. 그런 불확실한 안타까움과 혹시 모를 기대감까지 모든 게 뒤섞여 녹아든 게 너클볼이다. 필 니크로와 톰 캔디오티부터 웨이크필드와 디키의 너클볼 인생 모두 책으로 출간된 게 우연이 아니다. 이 정도 되면 인생의 축소판 얘기를 살짝 꺼내도 될 것 같다.
* 유튜브 엠빅뉴스 계정을 통해 내일 (23일) 너클볼에 관한 영상이 함께 공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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