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전훈칠
전훈칠
[전훈칠의 맥스MLB] 평균을 거부하는 '가을 DNA'의 마력
[전훈칠의 맥스MLB] 평균을 거부하는 '가을 DNA'의 마력
입력
2020-11-09 14:00
|
수정 2020-11-09 15:12

2020 포스트시즌의 스타, 랜디 아로사레나
상식적인 이야기다. 물론 충분한 표본이 전제돼야 한다. 몇 경기만 보고 평균치를 따져 전략을 세울 수는 없다. 팬들 사이에서 종종 언급되는 ‘야잘잘’이라는 말도 그렇다. ‘야구는 원래 잘하는 선수가 잘한다’는 뜻인데, 이 역시 충분한 표본이 있다는 전제 하에 통용되는 말이다.
가을 야구도 원칙적으로 다르지는 않다. 간판 선수가 활약하는 ‘야잘잘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확률과 평균을 거스르는 인물과 사건들이 생긴다. 경기수가 많지 않아 그렇다. 다만 가을야구에서는 누구도 적은 표본을 따져 묻지 않는다. 오히려 ‘가을에만 미치는’ DNA가 존재한다고 믿기도 한다. KBO리그 포스트시즌 미디어데이에서 ‘이번 시리즈에 미친 활약을 펼칠 선수’를 묻는 단골 질문만 봐도 그렇다. (요즘은 식상한 질문으로 평가받는다.)

표본에 근거한 예측은 가을에 어울리지 않는다
쿠바 출신의 아로사레나가 이 정도 돌풍을 일으킬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없다. 짐작할 만한 표본 자체가 없었다. 세인트루이스 소속이던 2018년 트리플A에서 더블A로 강등되는 시련을 겪은 뒤 다시 트리플A에 복귀해 구단 마이너리그 월간 최고 타자로 선정되며 빅리그 승격까지 이룬 게 작년이었다. 잠재력은 있었지만 세인트루이스의 풍족한 외야진에 아로사레나가 주전으로 뛸 자리는 없었다.

너무나 당연했던 챔피언십시리즈 MVP
두 번째 사연 역시 경기 외적인 내용이다. 작년 디비전시리즈에서 세인트루이스가 애틀랜타를 꺾은 직후 마이크 실트 감독이 클럽하우스에서 선수들을 화끈하게 다독이며 거친 욕설을 내뱉었는데, 아로사레나가 이 장면을 SNS에 실시간 중계한 것이 문제가 됐다. 결국 욕설 장면이 공개된 실트 감독은 기자회견을 통해 사과해야 했다. (그러면서도 아로사레나가 원래는 괜찮은 친구라며 감싸는 말도 잊지 않았다.)

세인트루이스 트리플A 최고 타자였던 아로사레나
아로사레나가 홈런을 날릴 때마다 세인트루이스 모젤리악 사장이 연관 검색어로 엮여 비판받곤 했다. 선수 잘 키우기로 유명한 세인트루이스가 알짜 타자를 알아보지 못하고 남 좋은 일만 했다는 얘기인데, 뉴욕 양키스의 루크 보잇, 샌디에이고의 토미 팸 등 세인트루이스에서 나가 다른 팀 소속으로 포스트시즌 활약을 이어가는 선수들이 나올 때도 함께 원성을 샀다. (아로사레나와 보잇은 세인트루이스의 트리플A 팀 멤피스 구단 사상 사이클링 히트를 기록한 3명 중 2명이기도 하다.) 모젤리악 사장은 월드시리즈 종료 후 기자회견에서 이례적으로 자신의 실책을 먼저 인정했다.
멕시코 리그에서 뛸 때는 물론 세인트루이스 데뷔 당시에도 아로사레나는 등번호 66번을 달았는데 우리에게 너무나 잘 알려진 ‘야생마’ 푸이그를 보며 동질감을 느껴 선택한 번호였다. 강한 어깨와 역동적인 플레이 스타일이 스스로 비슷하다 여겼다고 한다. 쿠바 선수들 사이의 소문난 유대감도 작용했을 것이다.
쿠바 출신이면서 빅리그 경력이 많지 않은 유망주가 포스트시즌에서 미친 활약을 펼친 사례. 곧바로 1997년 플로리다 말린스의 리반 에르난데스가 떠오른다. 90년대부터 본격화된 쿠바 선수들의 탈출과 망명 가운데 초기 사례로 가장 유명한 선수가 바로 에르난데스다.

쿠바 돌풍의 선두 주자, 리반 에르난데스
쿠바를 탈출한 스물 둘의 2년차 투수가 143개의 공을 지치지 않고 뿌려 매덕스를 완투로 제압한 건 희대의 사건이었다. 다만 에릭 그렉 주심의 ‘태평양 존’ 덕을 톡톡히 본 건 사실이다. 에르난데스에게 유독 넉넉했던 볼 판정은 지금도 회자되는데 좌타자 맥그리프를 루킹 삼진으로 돌려 세운 바깥쪽 커브는 우타자라면 몸에 맞을 수준의 공이었다. (에릭 그렉 주심은 이후 포스트시즌 무대에 서지 못했다.)

챔피언십시리즈와 월드시리즈 MVP를 동시 수상한 에르난데스
쿠바 출신 선수가 정상적인 절차를 거쳐 메이저리그 선수가 되기 어려웠던 시대적 환경까지 더해져 에르난데스의 활약은 야구계는 물론 외교적 파장마저 불러왔다. 마이애미의 쿠바 이민자 사회는 말할 것도 없고 쿠바 현지 여론까지 들끓었다. 야구 스타의 해외 유출을 저지하던 쿠바 정부도 플로리다 구단과 주정부의 끈질긴 요청에다 동료 선수들의 탄원서까지 날아오자 3주의 논의를 거쳐 이례적으로 에르난데스의 어머니에게 일시 출국을 허가해줬다. 에르난데스 열풍이 입증될 만한 일화다.

97년 플로리다는 가장 의외의 우승팀 중 하나였다
가을 DNA로 신선한 충격을 던진 리반 에르난데스는 이후 200이닝 시즌을 열 차례나 기록하며 대표적인 고무팔 투수로 활약했다. 다만 말로는 좋지 않았다. 은퇴 후 파산하면서 97년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와 MVP 트로피를 경매에 내놓았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플로리다의 쿠바 이민자 사회까지 들썩였다

역대급 '뜬금포'의 주인공, 레이리츠
당신의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