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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훈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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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훈칠의 맥스MLB] 일상에서 무르익은 빅리거의 성공 비결
[전훈칠의 맥스MLB] 일상에서 무르익은 빅리거의 성공 비결
입력
2021-01-27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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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21-01-27 11:41

기대 받는 '타율 꼴찌' 에반 화이트
마이너리그에서 1루만 전담한 유망주라면 장타력이 폭발하지 않는 이상 매력이 떨어진다. 경기 장면을 직접 보지 않았더라도 그 자체로 수비력에 흠결이 있는 선수로 분류된다. 전통적인 1루수의 가치보다 다양한 포지션 소화 능력이 인정받는 현대 야구에서는 더 그렇다.
그런 면에서 화이트는 좀 다르다. 드래프트 당시부터 ‘뛰어난 1루 수비’가 먼저 언급됐다. 1루 수비 유형도 차별화된다. 현역 1루수 가운데 수비 좋은 선수가 여럿 있겠지만, 아드리안 곤잘레스처럼 안정적인 포구로 인정받는 경우가 대다수다. 화이트는 다르다. 1루수로는 보기 드문 화려함을 과시한다. 과거 캘리포니아 에인절스와 샌프란시스코에서 뛰었던 J.T.스노우처럼 안정감을 넘어 역동적인 자태로 명장면을 만들어낸다.

수비의 결이 다르다
2020년 골드글러브는 단축 시즌이라는 점을 고려해 투표 대신 통계 수치로만 포지션별 최종 후보를 선정했다. 그리고 화이트는 아메리칸리그 1루수 수상자로 선정됐다. 신인 선수가 1루수 부문 수상자가 된 것은 1957년 골드글러브 역사가 시작된 이래 최초다. 세이버메트릭스 만능론까지 주장할 필요는 없지만 타격 부진을 따져 묻는 사람의 편견 없이 수비력만으로 결실을 맺은 것은 의미심장하다.
시애틀의 디포토 단장은 화이트가 빅리그 데뷔도 하지 않은 지난 2019년 11월에 6년간 2천 4백만 달러의 장기 계약을 맺었다. 메이저리그 경력이 없는 선수가 다년 계약을 한 것은 휴스턴의 싱글턴과 필라델피아의 킹거리,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히메네스에 이어 화이트가 역대 네 번째다. 화제의 중심에 서고 싶어 하는 디포토 단장의 욕망이 드러난 계약이라고 폄하되기도 했지만 화이트의 골드글러브 시즌을 보면 아직 단정하기 조심스럽다.

평소 높게 평가받은 인성도 조기 다년 계약의 이유가 됐다
화려한 수비로 특화된 화이트에게 또 하나 특이점이 있다면 야수로는 드물게 좌투우타라는 것이다. 오른손잡이가 타격과 주루의 이점을 얻기 위해 후천적으로 좌타석에 들어서도록 길러지는 경우는 흔하지만, 반대로 왼손잡이가 우타자로 자리잡는 것은 희귀하다. 2000년 이후 주목할 만한 좌투우타 선수라면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리키 헨더슨 이외에 라이언 러드윅과 코디 로스가 떠오르는 정도다. (류현진의 경우 오른손잡이면서 왼손으로 투구하는 독특한 좌투우타인데, 타격 기회가 적다는 점에서 조금 느낌이 다르다. 투수로는 랜디 존슨이나 테리 멀홀랜드 등 사례가 있는 편이다.)

아동용 골프채가 좌투우타로 이어졌다
구체적으로 수치화하기는 커녕 확인조차 쉽지 않은 어린 시절의 몇 가지 경험이나 습관으로 메이저리그 선수를 설명하는 것이 무리수일 수 있다. 그러나 의외로 적지 않은 선수들이 이런 식으로 자신의 정체성 일부를 설명한다는 게 흥미롭다.
방금 좌투우타로 언급된 류현진은 현역 최고의 제구력을 지닌 선수로 지목해도 무방하다. 류현진이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이후에는 제구력의 비결을 묻는 어떤 질문에도 구체적으로 답한 바 없지만 한화 시절에는 자신만의 소소한 얘기를 들려준 바 있다. 류현진은 KBO리그에서 독보적인 활약을 펼치던 지난 2010년 8월 MBC 시사매거진 2580과의 인터뷰에서 "집에다 그물망을 만들어서 구멍을 뚫어가지고 거기다 집어넣는 연습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언젠가 메이저리그 무대에 서보는 것이 꿈이라고 수줍게 말을 이어가기도 했다. 사이영상을 논하는 지금 돌아보면 격세지감이다.

지난 2010년 자신의 제구력의 비결을 언급한 류현진
매덕스와 달리 류현진에게 반갑지 않은 연관 검색어로 등장하는 콜로라도의 놀란 아레나도 역시 이 분야에서 함께 언급될 만한 얘깃거리가 있다. 데뷔 후 8년 연속 골드글러브를 수상한 역대급 수비력은 물론 3년 연속 130타점을 기록한 최초의 3루수로 기록될 만큼 폭발적인 타력을 지닌 아레나도. 성적은 물론 경쟁을 즐기는 태도와 투지 넘치는 플레이로 팬들의 호르몬 분비를 촉진시키는 현역 대표 스타 선수다.

경쟁을 즐기는 아레나도
그 10명의 말썽꾼 가운데 한 명이 콜로라도 내야수 조시 푸엔테스다. 푸엔테스는 사촌 아레나도가 동네 야구를 하면서도 자신이 일일이 판정에 개입하고 커미셔너처럼 경기를 지휘하고 스스로 경기 MVP까지 선정하는 등 북치고 장구치는 행위를 주도했다는 뒷얘기도 털어놨다. 평범한 친구가 아니었던 것은 분명하다.

무키 베츠는 다양한 관심사를 가진 선수다
인과 관계를 수치로 입증해 야구의 단면을 풀어놓는 것도 근사하지만 때로는 당사자가 직접 털어놓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요소로 성공의 일부를 알아가는 것도 흥미롭다.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지올리토는 배우였던 어머니가 집에서 대본 연습하는 장면을 보며 결과보다 준비 과정의 중요성을 알게 됐다고 한 적도 있다. 선수들이 하루 하루 성장하는 장면을 모두 지켜볼 수는 없다. 모든 순간이 의미있다고 과장할 수도 없다. 그래도 어떤 선수의 평범한 하루가 훗날 기막힌 성공 비결로 완성되기 위해 무르익는 중이라고 생각하면 관심이 간다. 약간의 공감만 이뤄진다면 그 정도 의미부여는 나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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