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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훈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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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훈칠의 맥스MLB] 타격 장갑의 시초를 찾다 발견한 사소한 의미
[전훈칠의 맥스MLB] 타격 장갑의 시초를 찾다 발견한 사소한 의미
입력
2021-03-17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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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21-03-17 15:32

가장 흔한 야구 용품, 타격 장갑
"대부분의 경기를 오후 4시부터 치르고 기차 편으로 이동하던 시절에는 우의(友誼)가 자연발생적으로 우러나오게 마련이었다. 그 시절의 선수들은 (누구나 경제적인 이유에서) 룸메이트가 있었다. 선수들이나 기자들이나 따지고 보면 경제적으로 같은 계층에 속해 있었다. 서로 살림살이를 걱정해줬고 비슷한 월급쟁이 신세라는 동류 의식이 있었다."
20세기 중반 메이저리그의 풍경을 현대 야구와 비교하는 관점은 다양할 수 있지만, 어떤 경우에도 경제 규모의 차이를 빼놓고 말할 수는 없다. 베이스볼 레퍼런스에 따르면 1967년 메이저리그 최저 연봉은 6,000달러, 평균 연봉은 19,000달러였다. 같은 해 미 통계국이 고시한 미국 가구당 연평균 소득은 8,200달러. 윌리 메이스처럼 12만 5천 달러를 받는 당대 최고 연봉자가 있기는 했지만 상당수 메이저리거는 일반 직장인과 동질감을 느낄 법했다. (물론 지금 상황은 전혀 다르다. 2019년 미국 가구당 연평균 소득은 68,000달러인데 메이저리그 최저 연봉만 해도 55만 5천 달러로 8배 이상 높고, 평균 연봉은 무려 438만 달러여서 동질감 따위는 사라진 지 오래다.)
실제 60년대 선수들이 용돈을 따로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한 일화도 여럿 전해진다.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해설자로 유명한 켄 해럴슨 역시 그랬다. 1963년 데뷔한 해럴슨은 초년병 시절, 가구당 평균 소득을 밑도는 최저 연봉 6천 달러로는 생활이 어려워 시간이 날 때마다 내기 골프나 당구, 때로는 팔씨름으로 용돈을 벌었는데 오히려 본업보다 소득이 좋았다고 너스레를 떨곤 했다.

해럴슨은 골프광으로도 유명했다.
서둘러 경기 전 타격 연습에 나선 해럴슨은, 그러나 골프를 치는 동안 생긴 손바닥 물집이 점점 심각한 통증을 유발한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문득 스친 생각에 곧바로 클럽하우스로 뛰어간 해럴슨은 청바지 주머니에 구겨 넣었던 빨간색 골프 장갑을 왼손에 끼고 나왔다. 임기응변치고는 효과가 있었다. 장갑 한 짝으로 물집의 아픔을 억누른 해럴슨은 그 날 홈런 2개를 날렸다. 이 장면을 본 상대팀 양키스의 대스타 미키 맨틀은 경기 직후 클럽하우스 직원에게 부탁해 골프 장갑 한 묶음을 사오게 했다. 다음 날 경기에서 양키스 타자들은 모두 빨간 골프 장갑을 착용한 채로 경기에 나섰다. 그리고 미키 맨틀 역시 홈런을 때렸다.
이 소문이 급격히 퍼지면서 타격 장갑이 유행처럼 번진 끝에 현재에 이르렀다는 게 해럴슨이 스스로 밝힌 타격 장갑의 역사다. 당연히 타격 장갑의 시초 역시 본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이야기의 반전이라면, 정작 야구장갑을 과감히 도입해 성공을 거둔 해럴슨은 그 날 이후 단 한 차례도 장갑을 낀 적이 없다는 것이다. (특유의 허풍으로 이해하자.) 50년 이상 흐른 이야기를 되짚는 과정에서 몇 가지 기억의 오류가 발견되긴 했지만 대체로 해럴슨의 이야기는 흥미롭게 받아들여졌다. (현실적으로 1950년대까지 타격 장갑을 낀 모습이 뚜렷하게 기억나는 게 없다 보니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진 측면도 있다.)

타격장갑 창시자로 나선 해럴슨
보스턴의 전설 중 한 명인 칼 야스츠렘스키가 먼저 장갑을 썼다는 주장도 있다. 검색을 통해 야스츠렘스키가 장갑을 낀 채 타격하는 모습은 쉽게 찾을 수 있다. 다만 해당 사진이 찍힌 정확한 시점은 알 수 없다. 1961년에 데뷔한 선수이니 해럴슨보다 앞설 수도, 아닐 수도 있다는 추측뿐이다. 이 밖에 롭 네이어는 1932년에 브루클린 다저스 소속으로 타격왕을 차지했던 레프티 오돌이 당시 어설프게나마 장갑을 끼고 나섰다고 했고, 딕슨 야구 사전은 1949년 바비 톰슨이 스프링캠프에 골프 장갑을 끼었다고 소개하고 있다. 장비가 발전하지 않았던 초기 야구에서는 선수들이 수비를 위해 생활용 장갑과 다를 바 없는 모양의 글러브를 끼었고, 그 상태로 타석에서 방망이를 쥐었다는 의견마저 제시됐다.

칼 야스츠렘스키도 초기 장갑 사용자 중 하나다
국내 MLB 팬들이 타격 장갑이라는 용품에 관심을 두게 된 것은 숀 그린 때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0년부터 라울 몬데시 대신 LA 다저스의 우익수로 활약한 그린은 ‘박찬호 도우미’ 계보에 이름을 올리면서 미국 현지 인지도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국내 인지도를 지닌 선수다. 그린은 다저스 이적 후 홈경기에서 홈런을 치면 자신의 타격 장갑을 어린이 팬에게 선물하는 독특한 세리머니로도 인기가 높았다. 덕분에 조용하고 선한 이미지가 형성된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그린은 작년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장갑 세리머니’에 얽힌 비화를 털어놓았다. 토론토 시절에는 거행하지 않았던 세리머니를 통해 LA 거주 어린이만을 우대하게 된 이유라도 있다는 말인가? 발단은 2000년 4월 언젠가 홈경기라는 게 그린의 기억이다. (홈런 기록을 보면 16일이나 30일로 추정된다.) 대기 타석에 서 있던 그린은 자신의 타격 장갑이 찢어진 것을 알게 됐는데 곧바로 타석에 들어서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새 장갑을 가져올 수도 없었다고 한다. 어쩔 수 없이 그대로 나섰는데 놀랍게도 홈런을 치고 말았다. (뭔가 해럴슨 이야기와 겹친다.) 베이스를 돌면서 장갑을 바꿔야겠다 생각했고, 그린은 끼고 있던 장갑을 덕아웃 옆 어린이에게 건넸다. 정말 아무 생각없이.

홈런 치면 장갑부터 벗던 숀 그린
선수는 말할 것도 없고 동호인들조차 사회인 야구에 가입하면 가장 먼저 구입하는 품목일 만큼 타격 장갑은 기본 중의 기본이 됐다. 오히려 장갑을 사용하지 않는 맨손 타자가 별종으로 분류될 정도다. 블라디미르 게레로를 시작으로 마크 그레이스, 호르헤 포사다, 모이에스 알루 등 맨손으로 유명했던 스타들의 목록은 널리 알려져 있다. 지금도 김하성의 팀 동료인 윌 마이어스를 비롯해 맷 카펜터와 브래드 밀러 등이 흙을 비비고 침을 뱉은 손으로 장갑없이 배트를 휘두르며 명맥을 잇고 있다. (KBO리그에는 KIA의 프레스턴 터커가 대표적이다.)

요즘은 맨손 타자가 별종으로 불린다
타격 장갑의 시초가 무엇이든 해럴슨의 이야기에는 시대상의 변화가 담겨 있다. 소소한 재미도 덤이다. 그렇게 자리잡은 타격 장갑은 숀 그린 이후에도 많은 스타들이 팬에게 건네는 기념품 중 하나가 됐다. 우연히 갖춰지고 퍼지면서 이야깃거리까지 담게 된 타격장갑. 이 정도면 가끔 주목할 정도의 의미는 확인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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