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전훈칠의 맥스MLB] 돌아온 사람들의 이야기
[전훈칠의 맥스MLB] 돌아온 사람들의 이야기
입력
2021-06-25 10:48
|
수정 2021-06-25 10:48

충격적인 복귀의 주인공, 드류 로빈슨
그다음은 꽤 알려진 얘기다. 고교 야구부 학생들은 훈련 과정에서 모리스의 심상치 않은 투구를 알아보고 메이저리그 도전을 권유하게 된다. 수년이 흐르면서 모리스의 구위가 자신도 모르게 살아난 것이다. 적극적인 복귀 의사가 없었기에 모리스는 학생들이 지역 대회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면 입단 테스트라도 해보겠다며 상황을 무마했다.

35세에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모리스
어떤 이유든 돌아오는 선수들의 이야기는 해마다 다양하다. 돌아온 과정이나 방식도 가지각색이다. 그러나 올해만큼 충격적인 복귀는 없을 것 같다. 드류 로빈슨 이야기다.
로빈슨은 2017년 텍사스에서 데뷔해 첫 안타를 홈런으로 기록하며 잠시 주목받긴 했지만 이후 인상적인 장면을 남긴 선수는 아니었다. 2019년 세인트루이스에서 7타수 1안타를 남긴 뒤 자취를 감췄고 자연스럽게 야구팬들의 기억에서도 멀어졌다.

텍사스 시절의 로빈슨
로빈슨은 2010년에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지만 이후 빅리그 승격까지 8시즌이나 마이너리그 생활을 견뎌야 했다. 그래도 만 25세에 데뷔해 마이클 피네다를 상대로 홈런을 때리면서 최고가 된 기분을 느끼기도 했다. 이제 앞만 보고 달릴 줄 알았는데 다음 날 곧바로 강등됐다.
타격이 월등히 뛰어난 것도 아니었고, 내야 수비 불안을 지적받아 외야로 전업하기도 했다. 뚜렷한 미래 없이 트레이드와 방출을 연달아 겪었다. 신인급 선수들에게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처럼 보였지만 로빈슨은 그때마다 찾아오는 좌절감을 제대로 다루지 못했다.
2019시즌이 끝난 뒤 샌프란시스코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고 다음을 준비하던 시점에 예상치 못한 코로나19 사태가 터졌다. 2020년 마이너리그 시즌 전체가 취소됐다. 지인들과의 접촉이 제한되고 격리가 권고되는 상황 속에서 끝 모를 좌절감만 깊어졌다. 한 달 이상 홀로 지내던 로빈슨은 낮아진 자존감을 극복하지 못했다. 아무도 자신의 존재를 알지 못하도록 스스로 사라지기로 했다. 그렇게 권총으로 극단적인 행동을 했다. 계획과 달리 다음 날 의식을 찾은 로빈슨은 재차 극단적인 시도를 할까 망설였지만, 현실을 받아들이고 911에 구조 전화를 하게 된다.
회복을 위해 여러 차례 큰 수술을 겪는 과정에서 후각과 미각이 상실됐다. 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야구였고 매달리고 싶은 것도 야구였다. 그라운드 복귀는 장담 못 해도 한쪽 눈으로 야구가 불가능한 것 같지 않아 훈련을 지속했다고 한다. 물론 꾸준히 정신과 전문의의 도움도 받았다.

올해 그라운드로 돌아온 로빈슨
작년에는 콜로라도의 다니엘 바드가 화제의 중심에 섰다. 2009년 보스턴에서 데뷔한 바드는 100마일의 불같은 강속구를 손쉽게 뿌리는 구원 투수였다. 2011년에는 25경기 연속 무실점 기록을 세우며 차기 마무리 투수감으로 꼽히기도 했다.
그런데 보스턴 투수진 구성에 변화가 생기면서 2012년을 선발 투수로 시작했다. 보직을 바꾼 바드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됐다. 원래 볼넷이 적은 투수가 아니었다 해도 이 정도로 제구력이 무너질 줄은 몰랐다. 흔히 말하는 ‘입스’ 때문이었다. 입스는 신체 기능에 문제가 없음에도 심리적인 이유로 일상적인 동작을 못하는 현상을 말하는데, 야구에서는 원하는 방향으로 공을 던지지 못하는 상황을 설명할 때 주로 쓰는 말이다.

천당과 지옥을 오갔던 보스턴 시절의 바드
선수를 그만두고 야구와의 연을 끊으려던 바드는 지인의 설득에 못 이겨 멘털 코치로 일하게 된다. 자신의 경기력을 회복하지는 못했어도 수년간 다양한 시도를 하면서 쌓은 노하우를 공유하지 않는다면 이기적인 인간이 될 것 같다고 느꼈다. 마이너리그에서 나이를 먹을수록 강등되는 상황은 우울했지만, 역설적으로 팀 동료들과 나이 차가 벌어지다 보니 자신에게 조언을 구하는 유망주가 많았는데 그조차 의미가 있을 것 같았다. 같이 지내던 유망주들이 구종과 그립 뿐 아니라 여자친구 상담을 한 적도 있다고 하니 바드의 공감 능력이 평소에도 나쁘지 않던 모양이다.
애리조나 구단의 멘털 코치로 새 삶을 시작한 바드는 마이너리그 각 레벨의 선수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수십 번, 수백 번 들려줬다. 굳이 상담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 선수들과도 밀접하게 지내며 믿음을 쌓았다. 다양한 방식으로 이야기를 나눈 뒤에는 선수들이 편하게 느끼는 장소에서 캐치볼을 하곤 했다.

콜로라도에서 부활한 바드
조금 결은 다르지만 이 분야에서 가장 전설적인 인물은 폴 슈라이버다. 1922년 브루클린 다저스에서 만 스무 살을 한 달 앞두고 데뷔한 슈라이버는 이듬해 초라한 기록과 어깨 부상을 안고 짧은 빅리그 경력을 마감한다. 10년 넘게 마이너리그와 독립리그를 전전하면서 선수 생활을 지속했지만 별다른 성과는 없었다.
그러다 한 스카우트가 주선해 1938년 뉴욕 양키스의 배팅볼 투수로 일하게 된다. 슈라이버는 치기 좋은 공을 지속적으로 던질 수 있다는 평을 받았다. 실전 투수라면 치명적인 단점이지만 배팅볼 투수로는 더할 나위 없었다. 루 게릭, 조 디마지오 등 양키스 강타자들은 슈라이버의 배팅볼이 훈련에 상당한 도움을 준다고 인정했고 실제 그해 우승에 성공하면서 슈라이버 역시 선수들과 똑같은 보너스를 받았다.

전설적인 복귀 스토리의 주인공 슈라이버
슈라이버는 그렇게 최장기 복귀 기록을 남긴 뒤 1948년 맥카시 감독이 보스턴으로 옮길 때 함께 유니폼을 갈아입었다. 보스턴에서도 배팅볼 투수로 좋은 평판을 얻어 10년을 일했고 원정 경기에서는 테드 윌리엄스의 룸메이트로도 존재감이 있었다고 한다. 이후 보스턴 스카우트로도 활동한 슈라이버는 1964년 이후 야구계에서 완전히 은퇴했다.
2005년 휴스턴의 첫 월드시리즈 진출 당시 주전 외야수였던 제이슨 레인은 헌터 펜스에 밀려 2007년 은퇴한 뒤 2014년 투수로 복귀한 바 있다. 성적이나 기록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레인은 다양한 상황이 세밀하게 얽혀 9이닝이 이뤄지는 야구 경기의 매력을 너무 사랑했다고 했다. 신시내티의 90년 월드시리즈 우승 멤버였던 호세 리호는 부상으로 은퇴한 후 5년이 지나 명예의 전당 투표 명단에 등록된 이후 현역 투수로 복귀하기도 했다.

모리스는 지금 새로운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당신의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