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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훈칠의 맥스MLB] 돌아온 사람들의 이야기
[전훈칠의 맥스MLB] 돌아온 사람들의 이야기
입력
2021-06-25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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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21-06-25 10:48
짐 모리스는 1983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에 지명된 유망주 투수였다. 기대는 컸지만 잦은 부상에 발목이 잡혀 수술과 재활을 거듭하는 사이 마이너리그에서만 6년을 소모했다. 메이저리그에는 근접조차 하지 못했다. 20대 후반으로 접어들자 더 기회를 주는 팀도 없었다. 결국 89년을 마지막으로 선수 생활을 포기한 모리스는 텍사스의 작은 고교에서 야구부 코치를 겸한 화학 교사로 근무하며 살아간다.
그다음은 꽤 알려진 얘기다. 고교 야구부 학생들은 훈련 과정에서 모리스의 심상치 않은 투구를 알아보고 메이저리그 도전을 권유하게 된다. 수년이 흐르면서 모리스의 구위가 자신도 모르게 살아난 것이다. 적극적인 복귀 의사가 없었기에 모리스는 학생들이 지역 대회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면 입단 테스트라도 해보겠다며 상황을 무마했다.
똘똘 뭉친 야구부는 모리스의 예상을 뛰어넘어 실제 지역 대회에서 우승하는 사고를 친다. 모리스는 약속대로 테스트에 응하기로 하고 탬파베이 구단도 배려 차원에서 자리를 마련해줬다. 그런데 이게 웬걸, 모리스는 98마일짜리 강속구를, 그것도 12개 연달아 뿌리면서 스카우트들을 당황하게 한 끝에 정식 계약을 맺게 된다. 탬파베이 유니폼을 입은 모리스는 교사 생활을 하던 텍사스에 원정 경기로 방문해 메이저리그 데뷔전을 치르게 된다. 볼품없는 88마일짜리 직구를 던지다 은퇴한 마이너리거가 10년이 지난 후 강속구 투수로 돌아온 영화 같은 이야기는 실제 영화 ‘더 루키’로 제작돼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줬다.
어떤 이유든 돌아오는 선수들의 이야기는 해마다 다양하다. 돌아온 과정이나 방식도 가지각색이다. 그러나 올해만큼 충격적인 복귀는 없을 것 같다. 드류 로빈슨 이야기다.
로빈슨은 2017년 텍사스에서 데뷔해 첫 안타를 홈런으로 기록하며 잠시 주목받긴 했지만 이후 인상적인 장면을 남긴 선수는 아니었다. 2019년 세인트루이스에서 7타수 1안타를 남긴 뒤 자취를 감췄고 자연스럽게 야구팬들의 기억에서도 멀어졌다.
그런데 지난 2월 ESPN을 통해 로빈슨의 충격적인 근황이 전해졌다. 우울증에 시달리던 로빈슨이 권총 자살을 시도했다가 실패했고, 이 과정에서 한쪽 눈을 잃은 채 돌아왔다는 비현실적인 내용이었다.
로빈슨은 2010년에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지만 이후 빅리그 승격까지 8시즌이나 마이너리그 생활을 견뎌야 했다. 그래도 만 25세에 데뷔해 마이클 피네다를 상대로 홈런을 때리면서 최고가 된 기분을 느끼기도 했다. 이제 앞만 보고 달릴 줄 알았는데 다음 날 곧바로 강등됐다.
타격이 월등히 뛰어난 것도 아니었고, 내야 수비 불안을 지적받아 외야로 전업하기도 했다. 뚜렷한 미래 없이 트레이드와 방출을 연달아 겪었다. 신인급 선수들에게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처럼 보였지만 로빈슨은 그때마다 찾아오는 좌절감을 제대로 다루지 못했다.
2019시즌이 끝난 뒤 샌프란시스코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고 다음을 준비하던 시점에 예상치 못한 코로나19 사태가 터졌다. 2020년 마이너리그 시즌 전체가 취소됐다. 지인들과의 접촉이 제한되고 격리가 권고되는 상황 속에서 끝 모를 좌절감만 깊어졌다. 한 달 이상 홀로 지내던 로빈슨은 낮아진 자존감을 극복하지 못했다. 아무도 자신의 존재를 알지 못하도록 스스로 사라지기로 했다. 그렇게 권총으로 극단적인 행동을 했다. 계획과 달리 다음 날 의식을 찾은 로빈슨은 재차 극단적인 시도를 할까 망설였지만, 현실을 받아들이고 911에 구조 전화를 하게 된다.
회복을 위해 여러 차례 큰 수술을 겪는 과정에서 후각과 미각이 상실됐다. 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야구였고 매달리고 싶은 것도 야구였다. 그라운드 복귀는 장담 못 해도 한쪽 눈으로 야구가 불가능한 것 같지 않아 훈련을 지속했다고 한다. 물론 꾸준히 정신과 전문의의 도움도 받았다.
그리고 올 시즌 샌프란시스코 산하 트리플 A팀인 새크라멘트에 합류해 세 경기 만에 안타를, 네 경기 만에 홈런을 터뜨렸다. 직선 타구를 멋진 다이빙 캐치로 잡아내기도 했다.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복귀 이후 명장면으로 야구계를 떠들썩하게 했다.
작년에는 콜로라도의 다니엘 바드가 화제의 중심에 섰다. 2009년 보스턴에서 데뷔한 바드는 100마일의 불같은 강속구를 손쉽게 뿌리는 구원 투수였다. 2011년에는 25경기 연속 무실점 기록을 세우며 차기 마무리 투수감으로 꼽히기도 했다.
그런데 보스턴 투수진 구성에 변화가 생기면서 2012년을 선발 투수로 시작했다. 보직을 바꾼 바드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됐다. 원래 볼넷이 적은 투수가 아니었다 해도 이 정도로 제구력이 무너질 줄은 몰랐다. 흔히 말하는 ‘입스’ 때문이었다. 입스는 신체 기능에 문제가 없음에도 심리적인 이유로 일상적인 동작을 못하는 현상을 말하는데, 야구에서는 원하는 방향으로 공을 던지지 못하는 상황을 설명할 때 주로 쓰는 말이다.
우여곡절 끝에 구원 투수로 돌아갔지만, 예전의 위력을 찾지 못했다. 오히려 사회인 야구만도 못한 수준의 폭투 영상으로 흑역사만 남겼다. 2013년을 끝으로 메이저리그에 서지 못했고, 마이너리그에서 몇 년을 버티다 2017년 은퇴했다. 정식 경기는 커녕 포수와 코치만 둔 채 연습 투구하는 데도 폭투가 속출하자 그대로 포기한 것이다. 그만두겠다고 통보한 뒤 눈물이 나올 정도로 안타까웠지만 동시에 마음이 편해졌다고 할 만큼 그간 고통이 심했다.
선수를 그만두고 야구와의 연을 끊으려던 바드는 지인의 설득에 못 이겨 멘털 코치로 일하게 된다. 자신의 경기력을 회복하지는 못했어도 수년간 다양한 시도를 하면서 쌓은 노하우를 공유하지 않는다면 이기적인 인간이 될 것 같다고 느꼈다. 마이너리그에서 나이를 먹을수록 강등되는 상황은 우울했지만, 역설적으로 팀 동료들과 나이 차가 벌어지다 보니 자신에게 조언을 구하는 유망주가 많았는데 그조차 의미가 있을 것 같았다. 같이 지내던 유망주들이 구종과 그립 뿐 아니라 여자친구 상담을 한 적도 있다고 하니 바드의 공감 능력이 평소에도 나쁘지 않던 모양이다.
애리조나 구단의 멘털 코치로 새 삶을 시작한 바드는 마이너리그 각 레벨의 선수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수십 번, 수백 번 들려줬다. 굳이 상담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 선수들과도 밀접하게 지내며 믿음을 쌓았다. 다양한 방식으로 이야기를 나눈 뒤에는 선수들이 편하게 느끼는 장소에서 캐치볼을 하곤 했다.
선수들과의 상담은 사실 자신에게 필요한 내용인 경우가 많았다. 그러면서 스스로 문제가 나아지고 있었는지 모른다. 어느 순간 캐치볼을 하던 유망주들이 바드의 구위에 주목했다. 입단 테스트라도 받아보라는 선수들의 말을 웃어넘기던 바드는 실제 자신이 공을 던지면서 더 이상 괴롭지 않을 뿐 아니라 심지어 스스로 즐거워한다는 것을 깨닫고 진지하게 복귀 시도에 나서게 된다. 2013년 구글 검색창에 입스 극복 방법을 검색하던 선수는 그렇게 2020년부터 콜로라도의 핵심 불펜으로 뛰고 있다.
조금 결은 다르지만 이 분야에서 가장 전설적인 인물은 폴 슈라이버다. 1922년 브루클린 다저스에서 만 스무 살을 한 달 앞두고 데뷔한 슈라이버는 이듬해 초라한 기록과 어깨 부상을 안고 짧은 빅리그 경력을 마감한다. 10년 넘게 마이너리그와 독립리그를 전전하면서 선수 생활을 지속했지만 별다른 성과는 없었다.
그러다 한 스카우트가 주선해 1938년 뉴욕 양키스의 배팅볼 투수로 일하게 된다. 슈라이버는 치기 좋은 공을 지속적으로 던질 수 있다는 평을 받았다. 실전 투수라면 치명적인 단점이지만 배팅볼 투수로는 더할 나위 없었다. 루 게릭, 조 디마지오 등 양키스 강타자들은 슈라이버의 배팅볼이 훈련에 상당한 도움을 준다고 인정했고 실제 그해 우승에 성공하면서 슈라이버 역시 선수들과 똑같은 보너스를 받았다.
그렇게 배팅볼을 던지며 지내던 1945년 9월. 양키스의 조 맥카시 감독은 슈라이버를 선수 명단에 전격 등록한다. 단순 이벤트 차원이 아니라 실제 슈라이버가 특정 상황에서 쓸모있는 투수라는 언급도 덧붙였다. 그리고 9월 4일, 디트로이트에 10대 0으로 끌려가던 경기에 6회 투아웃 상황에서 슈라이버가 투입된다. 만 42세의 나이였다. 3.1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은 슈라이버는 나흘 뒤 다시 디트로이트전에 1이닝을 뛰었다. 전쟁 여파로 인해 선수 수급이 비정상적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슈라이버가 22년 만에 메이저리그 경기에서 공식 투구 기록을 남긴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 됐다.
슈라이버는 그렇게 최장기 복귀 기록을 남긴 뒤 1948년 맥카시 감독이 보스턴으로 옮길 때 함께 유니폼을 갈아입었다. 보스턴에서도 배팅볼 투수로 좋은 평판을 얻어 10년을 일했고 원정 경기에서는 테드 윌리엄스의 룸메이트로도 존재감이 있었다고 한다. 이후 보스턴 스카우트로도 활동한 슈라이버는 1964년 이후 야구계에서 완전히 은퇴했다.
2005년 휴스턴의 첫 월드시리즈 진출 당시 주전 외야수였던 제이슨 레인은 헌터 펜스에 밀려 2007년 은퇴한 뒤 2014년 투수로 복귀한 바 있다. 성적이나 기록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레인은 다양한 상황이 세밀하게 얽혀 9이닝이 이뤄지는 야구 경기의 매력을 너무 사랑했다고 했다. 신시내티의 90년 월드시리즈 우승 멤버였던 호세 리호는 부상으로 은퇴한 후 5년이 지나 명예의 전당 투표 명단에 등록된 이후 현역 투수로 복귀하기도 했다.
영화의 주인공 짐 모리스는 메이저리그에서 대단한 기록을 남기지는 못했다. 극적으로 돌아온 드류 로빈슨도 냉정하게 볼 때 올해 빼어난 성적이라고 할 수 없다. 대신 모리스는 은퇴 후 두 차례 자서전을 펴내고 저명한 강연가로 활동 하며 사람들에게 용기를 불어넣고 있다. 로빈슨도 이제 행복이 뭔지 알겠다면서 주위 사람들에게도 진짜 행복이 뭔지 스스로 느끼게 해주고 싶다고 했다. 물론 자신처럼 극단적인 경험을 거치지 않더라도 말이다. 팬그래프 기준으로 짐 모리스의 대체 선수 대비 승리 기여도(WAR)는 0.1, 드류 로빈슨은 -0.3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들이 메이저리그 1승과 비교할 수 없는 가치를 남겼다는 점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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