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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훈칠의 맥스MLB] '셔츠 5장의 여정', 마이크 포드 이야기

[전훈칠의 맥스MLB] '셔츠 5장의 여정', 마이크 포드 이야기
입력 2023-07-21 13:49 | 수정 2023-07-25 10:37
마이크 포드

마이크 포드

다음은 한 선수의 2022년 소속팀 변동 기록이다.

3월 16일 시애틀과 마이너리그 계약
4월 19일 시애틀 소속으로 메이저리그 콜업
4월 25일 시애틀에서 지명 할당 조치
5월 3일 샌프란시스코 웨이버 클레임 절차 통해 영입
5월 11일 샌프란시스코에서 지명 할당 조치
5월 12일 시애틀로 현금 트레이드
6월 5일 시애틀에서 지명 할당 조치
6월 10일 애틀랜타 웨이버 클레임 절차 통해 영입
8월 10일 애틀랜타서 지명 할당 조치
8월 16일 LA 에인절스와 마이너리그 계약
9월 28일 LA 에인절스에서 지명 할당 조치
10월 7일 FA 선언


매일 크고 작은 트레이드 소식이 전해지는 메이저리그에서도 한 시즌에 이 정도 경로를 거친 선수는 흔치 않다. 주인공은 현재 시애틀 소속의 마이크 포드. 위 기록은 메이저리그 구단 기준으로만 정리한 것인데, 소속 메이저리그 구단이 바뀔 때마다 산하 트리플A 팀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발생한 서류상의 추가 기록까지 종합하면 해당 기간에 포드의 신분 상태가 변경된 횟수는 총 32차례였다고 한다.

MLB닷컴은 포드의 2022년을 설명하면서 “직업 야구 선수의 소속팀 변경 상황에 적용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동사가 사용되었다”고 했다. (마이너리그 구단으로) 할당되고, (26인에 해당하는 현역 선수로) 활성화되고, (빅리그 팀으로부터) 선택받고, (마이너리그 강등을 위해) 옵션되고, (40인 명단에서 제외돼) 지명 할당되고, 트레이드되고, 웨이버 클레임 절차를 통해 이동하고, (메이저리그 구단으로) 승격되고 (소속팀에서) 방출되는 식이다. 포드 자신도 2022년이 하나의 시즌이라기보다 한 선수의 커리어와 다름없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특집 기획물로 보도된 포드의 2022년 여정

특집 기획물로 보도된 포드의 2022년 여정

포드는 2022년에만 메이저리그 4개, 트리플A 4개 팀 등 모두 8종류의 유니폼을 입었다. 3주간 세 경기만 뛰기도 했고, 소속팀이 없는 상태에서 열흘 동안 집에 머문 적도 있었다. 트레이드가 잦다 보니 별일이 다 있었다. 샌프란시스코로 이적할 때는 자정이 넘은 시각에 전화 통보를 받은 뒤 새벽 4시 반에 공항에 나가 오후 1시 경기에 맞춰 이동해야 했다. 서류상으로는 클릭 몇 번이면 끝날 일이지만, 현실 세계에서는 선수 스스로 감당해야 하는 부분이 만만치 않았다.

이적 후 샌프란시스코에서 딱 한 경기를 뛰고 트리플A팀인 새크라멘토로 강등됐다. 그리고 텍사스주의 엘 파소 원정 경기에 갔다가 시애틀 복귀 소식을 들었다. 당시 시애틀은 뉴욕 원정 경기를 준비하던 시점이었다. 신변 정리를 위해 플로리다주 탬파의 집에 들렀다가 다음날 뉴욕 원정에 합류했는데 경기장에 가보니 상대 투수가 맥스 셔저라는 걸 알고 기가 막혔다고 했다. 그날 포드는 셔저를 상대로 뜬공과 몸에 맞는 공, 볼넷을 기록했다.

시애틀 소속으로 뉴욕 원정에 합류할 당시, 포드는 자신의 모든 짐을 다 챙기지 못해 나중에 새크라멘토에 다시 들러야 하는 상황이었다. 포드는 이때를 기억하면서 “항공 마일리지가 정말 많이 쌓여 시즌이 끝나면 공짜 비행기표로 여행이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이러다 보니 나름의 요령도 생겼다. 시즌 초만 해도 짐가방 3개를 들고 다녔는데, 차츰 짐을 줄이기 시작하면서 짐가방 1개로도 문제없이 다녔다고 한다. (공항에서 추가 짐가방을 부칠 때마다 지불해야 하는 150달러가 절약된다고 즐거워했다.) ‘베이스볼 프로스펙터스’는 포드의 2022시즌을 요약하는 중요한 통계 수치로 ‘셔츠 5장, 바지 2벌, 여분의 반바지, 그리고 티셔츠’라고 적었다. 또 포드가 1년 내내 ‘한 도시에서 2주 이상 살기 프로젝트’에 도전한 것과 다름없다며, 연예인 중에서도 명성이나 인기도가 남다른 인물을 ‘연예인 중의 연예인’이라고 하듯 팀을 옮긴 빈도가 월등히 남다른 포드를 ‘저니맨 중의 저니맨’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이 정도로 자주 이적한 선수를 보는 시선은 대체로 두 가지다. 확실한 강점이 없기에 어느 팀에서도 정착하지 못하는 선수로 평가받을 수도 있고, 그냥 지나치기에는 아까운 장점이 있기에 어느 팀이든 공백이 생겼을 때 먼저 떠올리는 선수라고 볼 수도 있다. 두 시각이 혼합된 결과가 포드의 현실이다.

누구나 그렇듯 포드에게도 주목받던 시절이 있었다. 2013년 프린스턴대 소속으로 뛰어난 활약을 펼쳐 아이비리그 최고의 선수는 물론 최고의 투수로 선정되기도 했다. 아이비리그 창설 이래 두 부문에서 나란히 최우수 선수로 뽑힌 것은 포드가 처음이었다. 자연스럽게 5개 팀으로부터 계약을 제시받았고 이 가운데 뉴욕 양키스와 계약을 맺었다.
뉴욕 양키스에서 프로 입문한 포드

뉴욕 양키스에서 프로 입문한 포드

포드는 마이너리그에서 5년을 보내는 동안 0.272의 괜찮은 타율에 .380의 높은 출루율을 기록했다. 삼진(245)보다 볼넷(267)을 많이 얻어 트렌드에 부합하는 선수로 인식됐다. 2014년 싱글A 소속으로 한 경기 홈런 4개를 때려 시선을 사로잡기도 했다. 전반적으로 자신만의 스트라이크존이 확고히 설정되어 있고, 스트라이크가 무엇인지 알고 대응하는 타자라는 평가를 받았다. 어느 정도 적응기만 거친다면 메이저리그 수준에서도 포드의 장타력이 발현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물론 탄탄한 기본기를 갖추었다는 평가와 실제 성공 여부는 별개의 문제다.)

그리고 2019년, 포드는 뉴욕 양키스의 줄무늬 유니폼을 입고 데뷔해 50경기에서 홈런 12개를 기록했다. 당시 왼손 타자가 많지 않던 양키스의 입장에서는 기대를 가질 만했다. 그런데 그게 끝이었다. 2020, 2021년 시즌에 잇따라 1할대 초반 타율을 기록하면서 포드의 양키스 시대는 금세 끝나버렸다. 메이저리그에서 꽃피우지 못한 유망주의 전형적인 이야기다.
기대와 달리 양키스 시절은 길지 않았다

기대와 달리 양키스 시절은 길지 않았다

그렇게 2021년 시즌 도중 트레이드와 방출을 겪은 포드는 2022년 마지막일지 모를 도전에 나섰다. 이후 앞서 설명한 32회의 선수 상태 변경 절차를 겪었다. 여러 팀에서 마지막 기대를 걸었다가 모두 실패한 흔적이었다. 선택지가 많지 않던 포드는 2023년 시애틀과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고 초청 선수 신분으로 스프링캠프를 참가했다. 만 30세에 수비력으로는 가치가 없는 1루수. 그나마 포드가 노려볼 만한 시애틀의 지명타자 자리는 이미 A.J.폴락이 예약한 상태였다. 누구도 포드를 팀 전력에 유의미한 존재로 바라보지 않았다.

모두가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여기에서 포드에게 새로운 시작점이 생겼다. 마지막 현역 생활일 수도 있는 트리플A 시즌. 시작부터 성적이 꽤 괜찮았다. 시즌 초 3경기 연속 홈런을 날리더니 한 경기에 3홈런을 폭발시키기도 했다. 4월에만 37타점에 1.214의 OPS로 타격 도사 수준의 경기력을 과시했다. 한풀 꺾이기는 했지만 5월 성적도 나쁘지 않은 덕에 49경기를 뛰는 동안 13홈런 56타점에 1.032의 OPS를 찍었다.

사람 일은 정말 알 수 없다. 만약 시애틀 타선에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면 포드가 트리플A에서 어떤 성적을 기록하든 구단에서 눈길조차 주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시애틀 타선이 ‘마침’ 심각한 상태였다. 전반적인 팀 타격도 문제였지만 특히 지명타자 자리는 최악의 수준이었다. 시애틀은 5월까지 지명타자 타율이 0.169에 불과했다. 다른 팀은 타력을 보강하는 포지션인데, 시애틀은 어쩌다 얻은 공격 기회의 맥을 끊고 승리를 날려버리는 자리가 지명타자였다.

6월이 되자 트리플A에서 더 보여줄 것이 없던 포드는 ‘옵트 아웃’을 선언해 다른 팀을 알아보려 했다. 시애틀이 메이저리그 명단에 포함시키지 않으면 포드는 자유 계약 선수가 되는 상황. 다른 메이저리그 구단에서도 제안이 없을 경우, KBO리그 구단이 대체 외국인 선수로 영입할 수 있는 자원이라며 국내에도 소개되기 시작했다.
생일에 4안타를 몰아친 포드

생일에 4안타를 몰아친 포드

다행히(?) 시애틀의 지명타자 후보 누구도 반등의 기미조차 보여주지 않았고, 시애틀은 포드를 한 번 믿어보기로 했다. 물론 큰 기대를 한 것은 아니었다. 시애틀 팬 대다수는 포드가 한심한 기존의 지명타자들보다 더 못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정도의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6월 2일 빅리그에 복귀한 포드는 예전과 조금 달랐다. 서너 경기 조율하는가 싶더니 곧바로 2경기 연속 홈런에 멀티 홈런 경기를 작성하며 시애틀의 지명타자 대안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6월 기록은 6홈런에 타율 0.204. 상식적인 기준으로는 여전히 부족한 성적이지만 시애틀에는 희망을 주는 숫자였다.

안정적인 환경이 선수의 잠재력을 끌어내는 사례는 스포츠 분야에 유독 흔하다. 본격적으로 기회를 얻기 시작한 포드는 7월 들어 제대로 폭발하기 시작했다. 7월 4일에는 홈런에 2루타 2개를 터뜨리는 등 데뷔 후 첫 4안타 경기를 만들었다. 3루타 하나만 추가했다면 자신의 생일에 사이클링 히트를 기록할 뻔했다. 사흘 뒤에는 홈런 포함 3안타를 몰아쳐 휴스턴 원정에서 10대 1 대승을 이끌었다.

지명타자가 타선에 힘을 주는 모습은 시애틀 팬들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포드를 찬양하는 다양한 인터넷 밈(meme)이 등장했고 시애틀 구단 기록원도 포드의 온갖 기록을 찾아내 팬들이 찬양하도록 부추겼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포드가 기록한 전반기 0.944의 OPS는 아이비리그 출신의 메이저리거로는 1937년 전설적인 스타 루 게릭이 기록한 1.124의 OPS 이후 최고라는 식이다. 아이비리그 선수 출신 메이저리그 선수 자체가 한 손에 꼽는 수준이라는 점을 알면 웃자고 공유한 것이나 다름없는 기록이다.
조금 유치하지만 이름 탓에 자동차와 합성된 이미지가 많다.

조금 유치하지만 이름 탓에 자동차와 합성된 이미지가 많다.

물론 언제든 방향은 바뀔 수 있다. 포드의 고생길이 끝났다고 단언할 수 없다. 올해 메이저리그에서 두 달도 채 뛰지 않은 선수인 만큼 갑자기 침몰한 뒤 사라져도 놀라울 일은 아니다. 시애틀의 지명타자 갈증도 아직 해결된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짐가방을 줄여가며 온갖 기회를 찾아다니던 선수가 메이저리그에서 잠시나마 환호를 받는 장면은 충분히 기억될 만하다. 포드는 2022년의 경험을 통해 봉우리와 골짜기를 번갈아 만날 수밖에 없는 인생의 섭리를 새삼 실감했다고 말했다. (봉우리보다 골짜기가 많았다고는 했다.) 온갖 지역을 이동하며 다양한 경험을 쌓는 동안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더 자세히 알게 됐다고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다.

유망주 시절 4홈런 경기를 작성해 화제가 된 뒤 한동안 부진을 극복하지 못하다가 결국 일어선 선수. 우리에게는 박병호가 똑같은 사례로 기억된다. 젊은 시절 줄무늬 유니폼을 입고서 잠시 기대를 부풀렸다는 점까지 같다. 포드에게 더 좋은 기억이 많이 남길 바라는 마음이라면 조금 억지스러운 사연을 붙여도 괜찮을 것 같다.

덧붙여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많은 트레이드를 경험한 선수는 전천후 투수로 알려진 제시 차베스이다. 2008년에 데뷔해 아직도 현역으로 뛰는 차베스는 현재까지 모두 10번의 트레이드를 겪었고 아메리칸리그와 내셔널리그의 서부, 중부, 동부지구에서 모두 뛰어봤다. 차베스는 자주 팀을 옮기는 과정에서 꼭 잊지 말아야 할 개인 물품으로 플레이스테이션과 엑스박스 등 콘솔 게임기를 꼽았다. 트레이드를 거칠 때마다 가장 어려운 일은 아이 돌봐줄 사람을 찾는 것이라는 현실적인 답변도 했다. 그러면서 야구계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일을 즐길 자세가 되어 있어야 트레이드도 잘 받아들일 수 있다고 했다.
10번의 트레이드를 겪은 제시 차베스

10번의 트레이드를 겪은 제시 차베스

1950년대에 활약한 왼손 투수 딕 리틀필드도 8번의 트레이드를 경험해 이 분야에서는 기록적인 인물로 꼽힌다. 사실 아홉 번째 트레이드도 진행될 뻔했다. 하지만 맞상대 선수가 트레이드 소식을 접한 직후 은퇴를 선언해 실제 트레이드가 성사되지는 않았다. (당시 은퇴한 선수는 그 유명한 재키 로빈슨이다.) 번외로 한 시즌에 가장 많은 팀에서 뛴 선수는 오른손 투수 올리버 드레이크로 기록돼 있다. 2018년에 밀워키와 클리블랜드. LA 에인절스, 토론토, 미네소타까지 다섯 개 유니폼을 수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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