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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훈칠의 맥스MLB] '통계 대부' 빌 제임스의 마지막 핸드북
[전훈칠의 맥스MLB] '통계 대부' 빌 제임스의 마지막 핸드북
입력
2024-01-22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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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24-01-22 10:26
빌 제임스는 현대 야구를 상징하는 인물 중 하나다. 공인된 기준은 없지만 세이버메트릭스가 대중적으로 활용된 2000년대 이후를 ‘현대 야구’로 규정해도 무리가 없다. 각자의 평가가 어떻든 빌 제임스의 식견이 기존 야구계의 사고방식을 '올드 스쿨'이라는 말로 밀어낸 것만은 분명하다.
세세한 야구 기록에 심취해 1977년 보고서 형식의 책자를 발간한 것을 시작으로, 빌 제임스는 왕성한 호기심과 탐구 정신을 꾸준히 기록물로 남겨 왔다. 제임스는 시행착오를 겪으면서도 꾸준히 보고서를 만들어 대중의 반응을 확인했고, 해마다 '빌 제임스 핸드북'을 발행해 이른바 '통계 덕후'들의 욕망을 충족시켜왔다. 독방의 아웃사이더에 불과하던 제임스는 그렇게 야구계의 대표적인 오피니언 리더로 자리 잡았다.
국내 메이저리그 팬들에게도 잘 알려진 ‘빌 제임스 핸드북’은 제임스를 비롯한 전문가 집단이 한 시즌 동안 고민한 흔적을 집대성한 결과물이다. 수비 시프트로 인한 타자별 득실이나 비디오 판독으로 거둔 팀별 이득, 수비와 주루 능력의 평가법 등 다양한 방식으로 야구를 다뤘다. 감독의 지휘 능력을 수치화하기도 했고, 부상 위험성이 높은 선수를 연구하기도 했다. 골프 세계 랭킹처럼 선발 투수나 타자들에게도 여러 시즌을 가로지르는 랭킹을 매기는 등 새로운 시도도 있었다. 논쟁적인 주제에도 거침없이 의견을 제시했다.
30년 넘도록 빌 제임스 핸드북이 발간되는 동안 세상도 많이 달라졌다. 월드시리즈가 끝나고 핸드북을 주문하는 행위가 자연스럽던 시절도 있었지만, 이제 어지간한 팬들은 온라인에서 모든 호기심을 해결한다. 수집가가 아닌 이상 굳이 두꺼운 간행물을 받아 들 이유가 없다. 다양한 온라인 플랫폼이 활성화됐고, 경기 기록을 수식과 연산으로만 풀어내던 작업이 일정 부분 한계에 이르기도 했다. 이제는 투구와 타구의 움직임을 실시간 데이터로 시각화해 의미를 부여하는 시대다.
무엇이든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 2023년 시즌이 끝난 뒤 출판된 빌 제임스 핸드북에는 처음으로 연도가 표시되지 않았다. 정식 도서명이 '빌 제임스 핸드북 Walk-Off 에디션'. 말 그대로 핸드북의 시대를 끝내는 판(版)이다.
이번 '끝내기 판'을 열면 빌 제임스가 쓴 '핸드북의 역사'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혈기 왕성하던 시절, 더 스포팅 뉴스(TSN)에서 제작한 '베이스볼 레지스터'의 형식적이고 쓸모없는 기록의 나열에 불만이 쌓여 직접 간행물 제작을 결심했던 순간. 그리고 훗날 스포츠 통계의 본산으로 자리 잡은 '스탯츠'사의 존 두안 부부를 만나 본격적으로 통계 전문화 작업에 뛰어든 과정. 그리고 출판 작업 착수 3년 만에 대중적인 지지를 얻어 야구 통계 분야에서 인정받은 사례가 적혀 있다.
핸드북의 공신력이 높아지면서 1993년 메이저리그 연봉 조정 협상 실무 과정에서 핸드북에 인쇄된 숫자가 모든 협상의 기준점이 된 장면을 지켜본 뿌듯함도 언급된다. (당시 12명의 협상 참가자 앞에 12권의 핸드북이 놓여 있었다고 한다.) 1995년 연봉 조정 과정에서는 빌 제임스 핸드북이 공식 협상 자료로 사용될 수 있도록 승인되기도 했다. 기록물에 오류가 없다는 점을 공인받아, 선수들의 일반 성적을 확인하는 용도로 10년 넘게 빌 제임스 핸드북이 사용되었다고도 했다.
제임스가 남긴 여러 발자취 가운데 선수의 예상 성적을 분석하는 '윈셰어(Win Shares)' 개발을 빼놓을 수 없다. 제임스는 직전 시즌 성적으로 다음 시즌을 예측하는 것에 대해 오래전부터 동료들과 토론을 거치면서 체계를 정립하고 있었지만, 초기 간행물에는 싣지 않았다고 한다. 논리적인 사고의 결과물이기는 해도 과학적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러나 존 두안의 의견은 달랐다. 그저 나름의 결과물을 소개하면 될 뿐, 자료를 공개한 다음은 받아들이는 사람의 자유라는 취지였다. 제임스는 자신의 예측 모델이 다른 간행물에서 이뤄진 적 없는 방식이라고 했다. 비슷한 시기에 예측 모델을 제시한 두어 군데의 출판물이 있었고, 정확도에서 자신들이 낫다고 주장하기도 했으나 제임스는 인정하지 않았다. 당시 판타지 베이스볼 리그가 성장하는 시기에 전문가가 내놓은 예측 자료는 시장 가치가 높은 데이터였다. 결국 존 두안의 사업 식견을 바탕으로 핸드북에도 예상 성적을 싣게 된다.
다만 제임스는 '윈셰어'를 다루는 별도의 글을 남기면서 “자신감이 지나친 상태에서 만들어낸 것”이고 “실수에 가까운 작업”이었다며 스스로 냉정하게 평가했다. 그러면서 윈셰어를 완성하는 과정에서 네 가지 실수를 저질렀다고 요약했다. 첫째는 승리에 기여한 공로와 패배에 대한 책임을 함께 아우르지 못한 점을 짚었다. 어떤 선수가 종합적으로 몇 승의 가치라고만 할 것이 아니라, 공격에서 몇 승 몇 패, 수비에서 몇 승 몇 패라는 식으로 정리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 실수로 윈셰어 시스템이 너무 복잡하게 이루어진 점을 꼽았다. 더 정밀한 평가를 위한 노력이었지만 돌아보니 소탐대실이었다고 했다.
세 번째 실수로는 윈셰어의 원리를 강경한 원칙에 의거해 세운 점을 들었다. 윈셰어는 반드시 실제 팀 승리 숫자와 일치하도록 설계한 반면, 팬그래프와 베이스볼 레퍼런스가 제시한 WAR은 실제 승수를 그대로 구현하는 개념이 아니다. 대중은 실제 승수와의 일치하는지에 대해 별 관심이 없었고, 결국 WAR이 일반적인 수치로 자리 잡았다. (제임스는 이런 WAR의 특성에 대해 여전히 비판적이다.) 그래서 대중적 활용도에 대한 고려가 결여된 점이 네 번째 실수라고 했다. WAR처럼 매일 갱신될 수 있는 수준의 개념이 아니어서 널리 인정받지 못했다고 봤다.
동시에 야구에서 운이나 환경이라는 요소가 차지하는 비중을 지나치게 폄하한 것도 문제라고 했다. 어느 정도 경력이 쌓인 29~32세의 메이저리그 선수 가운데 통계적으로 해마다 17%는 매우 실망스러운 성적을 거두는데, 같은 나이의 선수 중 팀을 옮긴 경우만 따로 계산하면 이 수치가 22%로 증가한다는 조사를 언급하기도 했다. 선수의 능력이 컴퓨터 게임처럼 간단히 수치화될 수 없다는 뜻인데, 동시에 인간이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도 어느 정도는 측정할 여지가 있다는 것으로 들린다.
그럼에도 선수의 기록과 팀 승리의 연관성을 정립한 것 자체는 의미있다고 자평했다. 빌 제임스는 윈셰어를 통해 말하고 싶던 것이 ‘승리의 가치’였다고 했다. 그저 통계 지표를 만들어 고민거리를 던지려던 것이 아니라, 진짜 승리 자체를 새로운 방법으로 논하고 싶었다는 것이다. 제임스는 그래서 WAR이 소수점으로 수치를 표시하는 것에도 거부감을 드러냈다. (0.1승처럼 표기하는 것은 편의적인 발상일 뿐, 실제 승리와의 연관성을 설명하는 숫자가 아니라고 했다.)
개인적으로는 윈셰어가 '승리를 논하는 새로운 방법'이 되길 바랐다는 말이 인상적이다. 제임스의 말대로 WAR이 절대적인 숫자처럼 통용되면서, 간혹 실제로 경기에서 승리했는지보다 특정 선수의 WAR 수치가 얼마나 달라졌는지가 더 중요한 것처럼 여기는 시각마저 있다. 야구라는 스포츠는 결국 한 시즌에 가장 많은 승리를 거두는 것이 목적인데, 세부적인 분석에 몰입하는 과정에서 승패의 본질을 잊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야구에는 수치화할 수 있는 요소가 매우 많다. 분석에 사용할 수 있는 자료 또한 무궁무진하다. 그러나 ‘씹고 뜯고 즐기는’ 방법이 많다는 것일 뿐, 야구가 다른 종목보다 예측하기 쉬운 종목인 것은 아니다. 여전히 야구의 리그 우승팀 승률은 다른 종목보다 낮다. 그만큼 의외성이 높은 종목이다. 숫자 사이에 인과관계가 입증된다 해도 그것이 경기의 어떤 부분에 대한 불변의 명제를 만들어낼 수는 없다. 각자 다른 신체와 개성을 지닌 선수들이 실시간으로 움직이고 나면 숫자가 기록되는 것이다.
제임스 자신은 통계에 대해 말하고 쓰는 것이 아니라 야구에 대해 말하고 쓰는 것이라 강조했다. 제임스는 어떤 사람의 건강에 대해 말하려고 키, 몸무게부터 심장 박동수와 헤모글로빈 수치 등 수백 가지의 통계를 제시한다고 해도 그것이 각각의 수치를 분석하기 위한 것이 아닌 건강 상태를 말하려는 것임과 같다고 비유했다. 그러면서 누가 MVP가 되어야 하는지, 어떤 선수가 명예의 전당에 합당한지에 대한 논의는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가 아니라고 했다. 대신 왜 승리하는지, 어떻게 승리하는지에 관한 토론을 추구한다고 했다.
제임스는 자신의 행보를 돌아보는 과정에서 개인 웹사이트도 폐쇄했다. 다만 그것이 야구에 대한 애정이 식었다거나 후회하고 있다는 뜻은 아닌 것 같다. 오히려 지금도 WAR보다 윈셰어가 우월한 통계 지표임을 자부한다고 했다. 자신의 향후 계획에 대해서도 진행 중인 것이 있다고만 알렸다. 다만 제 3자의 기대가 결과물을 왜곡시키기 때문에 완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공개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젊은 연구자들에게는 기존의 틀 안에서 논쟁하기보다 새로운 질문을 탐구할 것을 권유했다. 그러면서 커다란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서는 그 안에 숨은 작은 질문에 대한 대답을 모두 해내야 한다는, 빌 제임스다운 조언과 함께 ‘끝내기 판’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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